중학교2년시절에는집안이가난해매월내는육성회비를못내매번
수업시간에 회비 가져오라고 수업 받다가도 쫓겨나기 부지기수였
다. 며칠 후에 낸다는 거짓말로 며칠간이나마 연장하며 공부를 할 수 있었
다. 그는 가난이 서럽지만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
에 절대로 원망한 적이 없었다. 그 소년은 그렇게 집안이 가난했지만 훗날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기업을 세웠고 오늘날 그 기업은 세계적인 보안장비
를개발, 수출하는회사가되었다.
“모든 일은 우연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개
개인의 노력이 있다.”(주)아이디폰 엄현덕 대표의 말이다. 1999년 구조조
정으로 하루아침에 잘 다니던 직장을 잃은 것도, 아이디어와 열정만으로
절정에 올랐다가 바닥을 친 것도, 그리고 재기하여 보안장비업체로 사업
을 전환하게 된 것도 모든 것의 시작은 우연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만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청년시절부터 여러 회사를 전전했지만 뛰어난 아이디어와 기술력이 있
었던 엄 대표는 여러 가지 제품을 만들어내는 발명꾼이었다. 그는 LG산전
에 재직 당시 마그네틱카드 리더기, 신용카드 조회기, 바코드 리더기, 레이
저 스캐너 등을 개발해 8개의 특허를 따내며 초대 발명왕으로 선발되는 등
그 진가를 떨쳤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IMF 시기에 맡고 있던 사업이 퇴
출되어회사를나와야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그 퇴출이 엄 대표에게는 전화위복의 계기가되었다. 함께 일하던 4명의
개발 직원과 함께 지금의 (주)
아이디폰을 1999년에 창업
했다. 자본금은 퇴직한 돈을
모아 1억 3천만 원으로 시작
했는데, 2000년 초기에 24억
원의 투자를 받았다. 이 시기
는 벤처 붐이 막 일어나던 시
기였고, 너도나도 신용카드
사용이 활성화되던 때였다.
시기를 잘 탔지만 순조로운
날들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
았다. 신용카드조회 회사가
12개로 늘어나면서 과다경쟁으로 수익성이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몇 년간의 적자 끝에 더 이상 사업을 지속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
러나 그때 또 한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LG그룹에서 일했던 지인이 미국 경
찰장비용 무선녹음장치를 개발해 줄 수 있느냐는 제의를 해왔던 것. 엄 대
표는이기회를놓치지않았다.
엄 대표는 무선설계에 대한 지식은 없었지만 기술력에 대해서만큼은 자
신이 있었다. 그 후 수차례의 시행착오와 연구개발 끝에 2002년부터 본격
적으로 미국 경찰에 납품하여 처음으로 해외 수출을 시작했다. 미국 경찰
의 보안장비 납품업체가 Made in Japan에서 Made in Korea로 바뀌는 순
간이었다. 그리고 수출 1년 만에 단일 아이템으로 150만 달러 수출로 미국
에서 히트상품으로 대박을 쳤다. (주)아이디폰에서 개발한 무선녹음장치는
단순한 녹음 기능은 물론 무선원격제어 기능을 갖춘 장치로 군사작전, 경
찰업무등에다양하게활용된다
그후미국경찰은그에게또다시새로운제품의개발의뢰를해왔다. 차
량용 DVR이라는 녹화·녹음 장치다. 경찰차량용 DVR은 경찰차량의 각종
운행정보를 영상으로 기록하는 장치로 이른바‘경찰차 블랙박스’로 통한
다. 1년의개발연구끝에이역시2004년부터수출을시작했고, 이로써(주)
아이디폰은본격적으로특수보안장비분야에주력하게되었다.
Made in Korea의위상을 드높인 (주)아이디폰
무선녹음장치가 히트하면서 이후 많은 유관기업들로부터 제품을 사고 싶
다는 러브콜을 받았다. 수출이 많으면 좋겠지만 업체가 많아지면 과격한
경쟁으로 회사를 망쳤던 기억이 되살아나 처음 계약했던 바이어에만 공급
을 했다. 이는 상도의도 지키고 신뢰도 얻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결정은 적중했다. 미국에서 마켓쉐어 1위인 바이어로부터 인정받아 전폭
적으로 새로운 경찰차량용 DVR의 개발을 의뢰받아 개발 및 생산해 2004
년부터 수출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경찰차량용 DVR로 인해 (주)아이디
폰은 비교적 안정된 특수시장을 확보하게 됐다. 해외 수출은 미국을 시작
으로 영국의 Security 사업 전시품 출품 등으로 해외시장에서 알려지게 됐
다. 그후국내시장에서도판매활성화를위해전략을세웠다.
우선 경찰과 소방서, 국방부를 대상으로 전략을 수립했다. 국내 경찰에
서는 평택공장 쌍용자동차 파업 현장에서 처음 사용됐는데 경찰 헬기에 카
메라와 무선 장거리영상전송 장비를 탑재하여 평택공장의 파업현장 중계
로 경찰청 본청 지휘부에서 원격으로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를 바
탕으로 무사고로 안전하게 평택공장 파업을 진압할 수 있었다. 또 한국 해
군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해적을 소탕하기 위해 파병할 때에도 카메라와 무
선 장거리영상전송 장비를 납품하여 객관적인 현장 영상자료를 수집하고
해적을소탕하는과정을해군본부로전송할수있었다.
DVR시장에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CCTV/DVR 개발업체들을 보며
엄 대표는 현존하는 일반 소비자 중심의 DVR시장에서는 수익 창출이 어
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찰차량용 DVR을 수출한 보안전문업체
로서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DVR의 틈새시장인 개인휴대형 DVR을 개발하
기 시작했다. 땀흘려 노력한 결과 2008년 4월, 위치기반과 무선전송이 가
능한개인휴대형DVR인카이샷(KAISHOT)을개발했다. 현재군·경·소방
및 해외시장 등 다양한 곳에 납품하고 있는 카이샷은 고화질의 영상, 음성
및 메타데이터의 녹화, 실시간 원격지까지 무선전송이 가능해 현지 상황의
동영상및음성을실시간으로지휘통제본부에서모니터링할수있다.
사업의 실패와 성공을 동시에 겪은 엄 대표는 자신의 회사가 지닌 장점
에대해어떻게생각할까?
“아무래도 기술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력을 바탕으로 하는 대기
업과 싸우기 위해서 대기업의 진출이 쉽지 않은 특수목적시장에 기술력을
가지고 진출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틈새시장 공략을 목표로 매출액의 10%
는 기술개발에 투자하여 최첨단 보안기술(휴대형 영상 녹화 장거리 무선전송장
비 등)을 개발하지요. 특허 등을 통한 지적재산권 보호 및 군·경·소방 등
특수목적시장에 맞는 맞춤형 제품을 개발하여 제품의 신뢰도를 높입니다.
또 고부가가치 상품을 판매함으로써 경쟁업체의 진입이 어려운 보안장비
전문업체로자리매김하고있는점이가장큰장점입니다.”
그렇다면 (주)아이디폰의 경쟁상대는 누구일까?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
가는 첨단기술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엄 대표는 자신감을
표시한다.
“현재의 동영상 무선 장거리전송 기술은 국내에서는 (주)아이디폰이 유
일합니다. 일부 국내 에이전트들이 영국, 미국 등에서 장비를 들여와 소개
하고 있지만 고가이며 외국산이란 이유로 현재는 국내 도입이 쉽지 않는
상황입니다.
국내의 원천기술로 가격경쟁력을 갖춘 당사의 카이샷은 고화질의 영상 및 음성의 녹화 및 실시간 원격지까지 무선 전송이 가능합니다.
현지 상황의 동영상 및 음성을 실시간으로 지휘통제본부에서 모니터링할
수 있고 이에 따른 즉각적 명령체계가 가능한 장비이지요. 군·경·소방
등에 3년 전부터 시연 및 교육훈련 등의 지원을 통해 당사 제품을 소개해
왔으며, 기술의 우수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러한 독자 개발 경험을 통해
멕시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등에서도 영국, 미국 등의 제품
보다가격, 기술, 성능면에서좋은평가를받고있습니다.”
자신감넘치는엄대표의태도가수긍이간다. 영국, 미국등을뛰어넘는
제품을 생산하니 그 누가 자부심이 없겠는가? (주)아이디폰은 현재 40건이
넘는 국내외 특허등록(출원)을 보유하고 있다. 항상 더 편리하고 창의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생각하며, 생각이 정리되면 바로 제품개발에
착수한다.
일당백의 정신으로 사회와 국가에 이바지
그러나 (주)아이디폰이 언제나 순탄한 길만 달려온 것은 아니다.
2001~2004년까지가 (주)아이디폰의 고난기였다. 창업 초기만 해도 신용카
드 조회기의 수요가 높았을 뿐만 아니라 벤처붐과 함께 24억 원이 넘는 투
자자금을 받아 경영자금 걱정없이 오로지 기술개발에 전념할 수 있었다.
다행히 매출은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비로소 기
대가 착오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2개 벤사들의 공격적 무상 마케팅
으로 시장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물론 (주)아이디폰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
무리 생산비용을 절감해도 수익은 날로 악화되어 2001~2004년까지 적자
의 늪에 빠져들었다. 결국 사업의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미국
지인을 통해 미국경찰용 무선 녹음장치와 경찰차량용 DVR의 개발 의뢰를
받게 되어 새로운 사업 전환의 기회로 회사는 보안장비전문기업으로 변신할수있었다.
거기에는 연구에 주력한 전략이 큰 힘을 발휘했다. (주)아이디폰의 근로
자 25명 가운데 약 절반인 12명이 연구인력이다. 영업 및 관리직 필수요원
을 제외한 나머지 인력이 연구개발, 품질관리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또
매출의 10% 이상을 R&D에 꾸준히 투자해오고 있다. 그 덕분에 2009년 근
로자 1인당 생산성은 연 5억 원에 달한다. 엄 대표는“향후 2~3년 내에 1
인당 생산성을 10억 원으로 끌어올리자는 각오로 직원 한 명이 일당백의
역할을수행하고있다”고밝힌다.
기업의 성공 외에도 엄 대표가 각별히 신경을 쓰는 것이 있으니 바로 사
회봉사와 기부이다. 자신의 가난했던 시절을 잊지 못하는 그는 우리 사회
의 어두운 부분을 보살피기에 여념이 없다. 매월 아이디폰의 날 행사를 통
해 연중 1~2회 독거노인, 불우이웃, 소녀소년가장 돕기 등을 추진하고 있
으며 부천기보회 회원으로 월 1회 무료배식에 참석하여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또 2006년에 사회복지사업의 일환으로 개발한 시각장애인용 길안내
시스템을강북구에 있는 한빛맹아원과방송통신위원회산하 한국정보문화
진흥원에무상설치를해주었다.
또한 보안전문업체로 2008년 레바논 파병 동명부대에 카이샷을 기증하
였으며, 2008년부터 3년 연속 육군정보학교 무기체계 소개회에 참여하여
미래 정보전력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으로 감사장을 받았고, 2009년 지역
사회 발전에 헌신하고 경찰행정 발전에 이바지한 공으로 제64주년 경찰의
날에 경찰청장의 감사장을 수상했다. 보통의 기업들이 사회봉사에만 주력
하는 데 반해 (주)아이디폰은 사회와 국방의 두 분야에 헌신하고 있으니 그
야말로사회적기업인셈이다. 이는엄대표의신념과도잘맞아떨어진다.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은 수익 창출을 통해 임직원 및 주주들에게 최대
한의 부를 분배하는 것입니다. 삶의 질 향상 및 자아실현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사회발전에 기여하고 환원함으로써 더불어 사는 사
회를실천하는것이지요.”
(주)아이디폰은 창업 후 첫 번째 적자사업을 경영하는 과정에서 많은 교
훈을 얻었으며 생존을 위해 어떻게든 탈출구를 모색해야만 했다. 결코 여
기서 사업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또 다른 아이템을 찾
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녔다. 이러한 꾸준한 탐색정신과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있으니그앞날은밝기만하다.
그는 장차 무역인, 기술인이 되려는 청년들에게 따뜻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세상은 넓고 수많은 경쟁자가 있어도 각자의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다
는 긍지를 가져야 합니다. 도전정신이 중요하며 언제나 긍정적(POSITIVE)
인 생각을 가지고, 적극적(ACTIVE)으로 행동하며, 주어진 일에 정열(PASSION)을다한다면반드시성공할수있습니다.”
(주)아이디폰의 장기 비전은 최근 사회안전과 국방 영상감시용으로 동영
상 전송기술의 수요가 크게 늘어남에 따라 앞으로 분야별 맞춤형 제품으로
더 다양한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특화된 보안영상 분야에서 세계 일류의
경쟁력을지닌회사로거듭성장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