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재 시집 {살리는 공부} 출간
정동재 시인은 서울에서 태어났고, 2012년 계간 {애지}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는 {하늘을 만들다}가 있다. 그의 첫 번째 시집인 {하늘을 만들다}가 상징과 은유, 풍자와 해학을 통하여 자기 자신만의 새로운 시세계(하늘)를 창출해냈다면 그의 두 번째 시집인 {살리는 공부}는 그의 ‘삶의 철학’을 통하여 ‘우주’와 ‘인간의 조화’를 역설한다.
‘만듦(창조)’에서 ‘삶의 실천’, 즉, 이론철학에서 실천철학으로 그의 시쓰기와 삶의 운행을 진전시켜온 것이고, 따라서 그토록 깊이 있고 아름다운 ‘살리는 공부의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다. 모든 시인은 영원한 학생이고, 영원한 학생은 제일급의 시인으로서 영원한 스승의 길을 가게 된다. 앎(시쓰기)은 끝이 없고, 이 앎에의 의지가 있는 한, 정동재 시인의 삶은 행복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나의 죽음은 끈질긴 부덕함의 결과라고 K가 말했다
나의 삶은 끈질기게 부덕함을 두려워함이라고 J가 말했다. 의역했다
나의 죽이는 공부에 죽은 자들이 돌아와 끈질기게 나를 죽이고
나의 살리는 공부에 산 자들이 찾아와 끈질기게 나를 살렸다. 인과의 법칙이 성립했다
나의 살리는 공부가 나를 영생에 이르게 한다는 명제가 도출됐다
죽어도 살지 못하고 죽어도 죽지 않는 인과의 대명제 앞에서
석 달 열흘 눈물이 흘러내려
안부를 묻는다
거리를 벌려준 해와 달
거리를 좁혀준 나무와 새들
옷깃을 스치고 지나간 인연
숨 한 모금
모두
사랑합니다
―「살리는 공부」 전문
정동재는 단순한 구도를 설정하여 인생의 본질을 탐구한다. 그는 이번 시에서 “삶”과 “죽음”의 대비를 활용한다. 시인에게 ‘삶’은 “산 자들”과 “살리는 공부”로 연결되고, ‘죽음’은 “죽은 자들”과 “죽이는 공부”로 이어진다. 정동재가 ‘삶’계열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독자들에게 엄청난 감동으로서 다가올 테다. 그는 “해”, “달”, “나무”, “새들” 등 자연을 소중하게 여긴다. 또한 시인은 “인연”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그에게는 “눈물”과 “안부”와 “숨”을 향한 공감의 마음이 열려 있다. “사랑합니다”라는 뜨거운 표현은 세상 만물을 향한 정동재의 ‘살리는 공부’가 앞으로도 “영생”을 지향하며 열렬히 지속될 것임을 암시한다.
詩를 시라고 바꿔 쓰고 나면
글로 목탁 소리 낼 수 있어 좋다
글로 찬성 소리 낼 수 있어 좋다
글로 그림 그릴 수 있어 좋고
글로 영화 찍을 수 있어 좋다
수작 한 편 쓴 것 같아 다시 살펴보면
정답 없는 수학 문제를 풀다
정답을 못 찾은 것 같아서 좋다
점 하나 찍은 마침표에서
11차원 우주 물리학 이끌어내는 것 같아 좋고
행간 한 줄로 시작되는
천국의 계단 기하학 연결한 것 같아 좋다
부족한 내가 시 한 편 쓰고 나면
부족한 내가 별 하나 그리고 나면
시가 내게
안부를 묻는 것 같아 좋고
서툰 사랑에
서툴러도 된다고 고백해 주는 것 같아 좋다
시 한 편 쓰다 보면
온전히 나를 이끌어주려 하신다
―「시」 전문
이 시에서 가장 긴요하게 쓰이는 어휘는 “좋다” 또는 “좋고”이다. 시인은 ‘좋다’를 6회, ‘좋고’를 3회 사용함으로써 이 작품에서 ‘좋다(좋고)’의 시학을 전개한다. 정동재가 ‘좋다’의 시학을 연출함으로써 지향하는 바는 ‘시’ 또는 ‘글’의 본질이다. 그에 의하면 ‘시’에는 “목탁”이나 “찬송”으로서의 ‘종교’가 있고, “그림”이나 “영화”로서의 ‘예술’이 있으며, “수학”, “물리학”, “기하학”으로서의 ‘학문’도 있다. 우리는 이 시를 읽음으로써 종교, 예술, 학문의 총화로서의 시를 경험한다. 또한 시인이 추구하는 “우주” 또는 “별”로서의 시를 만난다.
정동재의 시집, {살리는 공부}는 ‘음악성’을 중요하게 활용하면서 단호하고 선명한 ‘메시지’를 제공한다. 그는 문장이나 표현의 다양한 색채를 세공하는데 힘을 쏟는 대신 우리가 두 발을 딛고서 살아가는 지상地上이 천국天國과 같은 완전한 공간임을 알려준다.
정동재는 「퍼런 감」이라는 시에서 “우주”와 “소우주 인간”을 아우르고 “설득력”을 구비한 “현자”를 제안한다. ‘우주’라는 시어는 「주문」, 「시」, 「심령술사」, 「태양을 멈춰 세워야 한다」 등 시인의 다른 시편에서도 자주 노출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는 ‘우주’와 관련하여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자신과 조화롭게 사는 사람은 우주와 조화롭게 산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언급한 ‘자신과 조화롭게 사는 사람’은 정동재의 시에서 ‘소우주 인간’에 대응한다. 또한 철학자가 가리킨 ‘조화’는 시인의 ‘설득력’에 해당한다. 정동재가 이번 시집에서 형상화하는 시 세계는 독자들에게 ‘우주’와 ‘인간’의 조화를 설득력 있게 제공한다. 필자는 리듬감을 중요시하는 현자의 우주론宇宙論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꽃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권온 문학평론가
----정동재 시집, {살리는 공부}, 도서출판 지혜, 값 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