戊午 六月二十日 政以首擬拜持平 二十一日以賓廳次對 牌招隨牌臨闕下 陳疏 還出給以牌不進罷聀 疏曰 伏以臣性質庸駑 言議巽軟 郞署未傄 尙愳不称榮塗顯望 本非素期 迺者 栢府新命忽下於千萬夢寐之外臣 誠驚惶感激 罔知措躬之所
무오년(1738년, 영조 14년) 6월 20일 마침 먼저 지평(持平)께 인사를 드리려고 하였습니다. 21일에는 대신과 비변사 당상 등이 정기적으로 모여 국사를 논의하였던 궐 안의 건물이자 이들로 구성된 회의 기구인 빈청(賓廳)에서 매월 여섯 차례 정기적으로 정부 당상과 대간(臺諫), 옥당(玉堂)들이 입시하여 중요한 정무에 대해 상주(上奏)하는 일인 차대(次對)를 가졌습니다. 예를 갖추어 패초(牌招)를 받아 패를 따라 대궐문 아래에서 소(疏)를 올렸으나 도리어 패초를 내어주기에 상소문을 올리지 못하고 신은 직책을 그만두었습니다. 소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신하된 저는 성질이 용렬하고 다른 이와 말하고 의론을 할 때면 겸손하고 말의 기운이 유약하니 사헌부의 관리로 당당하지 못하여 늘 벼슬길이 영예스럽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이는 본디 제가 기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처음으로 백부(柏府)에서 꿈속에서라도 잊지 못하게 지방을 떠도는 외직의 신하에게 갑자기 사헌부에 새로운 직책을 내려주시니 참으로 놀랍고 황송하며 감격스러워 이 몸을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 패(牌招) : 승지(承旨)가 왕명을 받고 신하를 부르는 일을 말한다.‘명(命)’자를 쓴 주색(朱色) 패의 한 면에 부름을 받은 신하의 성명을 기입하여, 승정원의 하례(下隷)를 시켜 송달한다.
* 백부(栢府) : 백대(柏臺)라고도 한다. 사간원 혹은 사헌부를 이르는 말이다. 한나라 때 어사대(御史臺) 뜰에 잣나무를 많이 심었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夫言官之職 任人主耳目之寄 上以補闕拾遺 下以糾劾官邪 當非言論風采素孚同朝者 莫宜居之 如臣齟齬疲劣之蹤 其何能称塞其萬一哉 加以素患伏暑之症 闖發於曹務多事逐日奔走之除 火熟內爍 虛汗外注 少有紛動 喘息靡定 方將呈病 請暇之際 忽而新除 繼因次對 天辟押臨 分義是惧 不敢坐違 扶舁病軀來臨九閽之下 才分之不逮院 必彼病狀之難絶 又如此反復 揣量萬無承膺之望 不得已猝章經歸 臣罪至此 萬煩難續 伏乞聖明罷臣之聀 治臣之罪 以警具傄 以安賤分不勝幸甚
同年八月初一日 敍用 同月十一日 改末擬正言受 點下諭于原州 同月二十五日 乘馹到京 故啓平地陳疏
무릇 언관(言官)의 직책은 성상(聖上)의 귀와 눈이 의지하는 곳이며 이를 맡아, 위로는 조정의 과실과 결점을 바로잡아 보필하는 것이며, 아래로는 간특한 관리를 규탄하거나 탄핵하는 자리입니다. 마땅히 말하는 것과 국가 대사를 논의하거나 행동으로 본디 조정을 믿고 동조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신이 일을 처리함에 어그러지거나 쓸모없는 흔적을 남긴다면 그 어찌 만분지일이라도 막을 수 있겠는지요? 더하여 신은 복더위의 증세로 평소 병을 앓고 있으며 업무가 많아 날을 다투어 분주한 즈음에 여름날 뜨거움이 더하여 속이 뜨거워 땀은 밖으로 흐르고 조금 메스껍고 천식은 가라앉지 않으니 혹여 병이 도지려는 것 같습니다. 휴가를 내려던 참에 갑자기 사헌부의 직책을 제수 받아 이로 인해 차대(次對)를 하는 자리에 성상께서 친히 오셔서 분수에 맞게 도리를 지켜 가는지 보실까 신은 두려웠고, 감히 자리를 뜰 수 없었습니다. 병든 몸을 이끌고 대궐 아래에 이르렀으나 재주와 도리에 맞는 분수가 사헌부의 직책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필시 이 병이 완전히 낫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이처럼 병세가 재발하니 깊이 헤아려 보아도 성상께서 바라는 바를 만분지일이라도 가슴 깊이 품을 수 없기에 할 수 없이 저의 문장과 경술(經術, 세상을 다스리는 방책)을 거두어 돌아갑니다. 신의 죄가 이에 이르렀으니 무척 고민이 되어 직책을 이어나갈 수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신을 파직하여 주시고 신의 죄를 다스려 동료 신하들에게 경계를 삼으면 어찌 천한 신분이 제게는 무척이나 다행이지 않겠는지요?
同年八月初一日 敍用 同月十一日 改末擬正言 受點下諭于原州 同月二十五日 乘馹到京 故啓平地陳疏
같은 해 8월 초하루 날 면관(免官)되어 다시 등용이 되었고 같은 달 11일 교지의 끝 내용을 고쳐 정언(正言)으로 삼고 원주에 성상이 교서를 내려 결재를 받아 같은 달 25일 역마(驛馬)를 달려 한양에 이르러 평지에 엎드려 상소를 올리다.
答曰 省疏具悉爾 其勿辭俟 少間上來察職
疏曰 伏以臣空疏譾劣 百不猶人臺省之任意 臣所堪 頃者 忝聀之初 叨也 適緣病勢之猝劇 坐犯逋愑之科 恭竢鈇鉞之誅 聖慶天大罰止例勘 惶須踧踖 靡所寧措不料 恩叙遄降 繼有薇垣 新命馹召所臨榮光滿路在臣 分義唯當進身 京輦之下仰伸澄汰之請 而第臣病母胸腹塊痛 乃是十年痼疾 春和以後諸症少緩 每至秋冬 痛勢輒劇 見方隨在臣父原州任所峽玉 早凉脫看
성상께서 비답(批答)을 내리시길 “상소문을 살펴보니 홍모의 상소문은 자신의 신상에 관해 내용을 모두 상세히 적었으나 사직을 하지 말라. 조만간 성상이 와서 그대의 직무를 살펴볼 것이다.”라고 하였다.
소를 올려 말하기를 “신이 부질없고 변변찮은 상소로 백 명의 사람이라도 사헌부의 임무를 맡은 이의 뜻만 못합니다. 신이 견디었던 것은 근래에 욕되게 사헌부의 직책을 제수 받았던 처음인데 이에 마음이 끌렸기 때문입니다. 마침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어 자리만 차지하여 근무를 게을리 하는 것이었습니다. 공경스러운 마음으로 죽여줄 것을 바랍니다. 성인의 경사스러움으로 하늘의 큰 벌을 내려 예로 삼으면 신은 이를 헤아려 두려워 마땅히 조심을 하고, 마음이 편치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것입니다. 성상께서는 신을 어여삐 여겨 속히 서용(敍用)하시니 신은 계속하여 사헌부에 있게 되었습니다. 새로이 사헌부의 관리로 임명하여 성상께서 역마(驛馬)로 급히 부르셔서 신 앞에 가득 영광된 길이 열렸으니 신은 분수에 맞게 도리를 지키며 오로지 몸을 바치겠습니다. 한양 도성 아래에서 우러러 신의 무능함을 책망하여 주시길 주청(奏請) 드리며 아울러 신의 병든 어머니가 가슴과 뱃속에 혈괴(血塊, 혈액이 뭉쳐 굳어지는 증상)가 있어서 통증이 발작하는 증상이 있으니 이는 10년간 앓아온 고질병입니다. 봄기운이 따뜻해진 뒤에야 조금 통증이 누그러지나 매번 가을과 겨울철에 오면 통증의 기세가 번번이 심해집니다. 신의 아버지가 부임하여 있는 임지인 협옥(峽玉)에서 따라다니며 보니 가을이 일찍 와 서늘하고 낙엽이 떨어집니다.
夫宜宿病挾感重發 臣自湖中留廬倉黃來 省外中天 醫沒過時 症形轉變 氣升卽頭 厥痰壅而膈痞 晝夜叫苦 水醬不下 念臣獨身無他 兄弟若一去 病側別婢僕之外 替護無人 以此情理決 無頃刻離捨之勢而卽今關東方伯出巡遠邑縣道 請急亦將遲滯 一日虛靡 尤爲悚悶 別敢抑情 來到於京畿 啓平地封疏退歸 臣罪至此 尤萬萬矣 伏乞 聖慈察臣私情之悶塞 亟許鐫罷 俾得每是救護 仍諒臣臺聀之萬不近似 特命還却 勿復檢擬以量名器 以每私分 不勝萬幸
九月十七日 承召自原我離發 二十日入城 二十一日入 肅適値晝講入侍同爲入侍 榻前避嫌
숙환(宿患)에다가 거듭 감기까지 겹쳐 들었습니다. 신이 호서(湖西)의 오두막에 머무는 중 허둥지둥 와서 밖을 살펴보니 해는 중천입니다. 치료를 받는 시기를 놓쳐 증세가 급변하여 기운이 온통 머리까지 뻗치고 가래가 막히고 가슴이 결리고 막힌 증세로 밤낮으로 괴로워 울부짖습니다. 물과 장건건이를 먹어도 내려가질 않습니다. 신은 아무도 없는 독신임을 생각하신다면 형제가 만일 한 번 떠나버리면 어머니 곁에는 여자 종 외에 달리 교체하여 간호를 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정황으로 결단을 내리니 잠시라도 어머니 곁을 떠나버릴 수 없는 형편이고 이제 곧 관동의 관찰사가 멀리 떨어진 읍과 현의 순찰을 하는 중이라 급히 하루만이라도 지체코자 하오니 시간을 낭비함에 더욱 송구스럽고 민망합니다. 달리 감정을 억누르며 경기 지역에 이르러 엎드려 상소를 봉하여 올리고 물러나 돌아갑니다. 신의 죄가 이에 이르렀으니 더욱이 황공하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의 자애로움으로 신의 번민과 막힌 사정을 살피시어 속히 전파(鐫罷, 파직)하여 주소서. 더하여 신은 매번 나라로부터 구호를 받으니 이에 신의 사헌부 직책은 만의 하나라도 자리에 어울리지 않음을 해량(海諒)하여 주십시오. 특명을 거두어주시고 다시는 좋은 관직을 가지고 인사 검증을 하여 매번 사사로운 분수를 넘어서지 않게 하시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
九月十七日 承召自原衙離發 二十日入城 二十一日入 肅適値晝講入侍 同爲入侍榻前避嫌
9월 17일 부름을 받아 원주 관아를 떠나 20일에 한양에 도착하여 21일에 대궐에 들어가 엄숙히 주강(晝講)을 마쳤다. 동시에 성상께 입시한 가운데 논란 중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은 혐의가 다 풀릴 때까지 관직을 떠나 있었다.
答曰 勿辭退 待物論
성상께서 비답을 내리기를 “사퇴를 하지 말라. 처치 결과를 기다려라.”
* 물론(物論) : 대간(臺諫)이 새로 제수되었으나 관직 제수의 규례에 어긋날 때, 어떤 사안이 사사로운 의리에 걸릴 때, 동료로부터 논핵 당하였을 때 등에 혐의를 피하고자 계사를 올린 일을 기록하는 방식이다. 이에 대해 사헌부의 관원은 사간원에서, 사간원의 관원은 사헌부에서 처치(處置)하는데, 인원이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는 홍문관에서 처치하였다. 물론(物論)은 바로 그 처치 결과를 말한다.
啓曰 臣之虛帶臺御 已閱月矣 頃緣母病危劇 猥以縣道陳懇 聖念體下許 以臨天上來母子相對感祝 天恩在臣 分義宜卽趨命而母病一向沈篤 私情所迫 未忍離捨一日二日 淹延至此 慢蹇之誅 益無所邂 且本院方有先正臣文正公金OO書 院請逮之啓 臣於OO爲外屬也 書院之留逮與否當付之云 議非子孫之所可干涉者 院不得余啓 不可一刻首昌也 決矣 請命遞斥臣聀
二十二日 持平宋昌明獻直曰 嫌難 余涉其勢因能撰 以臺體不可 仍直請正言洪遆差 答曰依啓
계(啓)를 올려 답하기를 “ 신이 헛되이 사헌부의 직책을 맡아 이미 여러 사건을 검열을 한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근래에 신의 어머니의 병이 위급하고 심각하므로 외람되게도 한 도의 현감된 자로써 간절하게 상소를 올리니 성상께서는 신을 생각하시어 천상에서 내려온 듯 신의 모자(母子)간의 만남을 감축하여 주시옵소서. 성상의 은덕이 신에게 미쳤으니 분수에 맞게 지켜나가는 도리로 마땅히 성상의 명을 좇아야 하나 어머니의 병세가 위독하여 신의 사정이 급박하니 하루 이틀 사이라도 차마 곁을 떠날 수 없습니다. 성상의 명을 받아 지체한 게 이 지경에 이르렀고 거만하여 죽임을 당해야 하니 더욱이 좋은 일은 아닙니다. 또한 사헌부에는 이미 고인이 된 현인(賢人)인 문정공(文正公) 金OO의 상소 글이 있어서 사헌부에서는 따를만한 계(啓)라고 하였는데 신에게 OO는 어머니나 아내의 친척인 외속(外屬)입니다. 사헌부에 남아있는지 여부를 서찰로 물어 있으면 부쳐 달라고 하십시오. 자손이 간섭할 수 있는 바가 아님을 말씀 드리는 것이니 사헌부에서 신의 계(啓)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한시라도 먼저 거의(擧義)를 할 수 없습니다.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청컨대 명을 내려 신의 직책을 삭직(削職)하여 주소서
二十二日 持平宋昌明前置曰 嫌難 余涉其勢因能撰 以臺體不可 仍置請正言洪遆差 答曰依啓
22일 지평 송창명이 직접 소를 올려 이르기를 “피혐(避嫌)은 어려우나 내가 그 처지를 보아하니 상황을 적을 수 있다. 사헌부에서는 불가하니 이에 직접 정언 홍모를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도록 청을 넣었다.” 비답을 내리기를 “계(啓)에 쓰이어진 대로 하라!”고 하였다.
* 문정공(文正公) 金OO :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