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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의 신앙생활(행 2:43-47)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예수님의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약속하셨던 성령님께서 임하셨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120명의 성도들은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이제 베드로와 11사도는 예루살렘 거리에 나가서 섰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담대하게 예루살렘에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큰 일”을 증거하였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와 저주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주셔서 부활하셨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 부활의 증인이라고 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예루살렘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님은 바로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야였다고 증거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열한명의 사도들은 생명을 걸고 이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저들은 두렵지 않았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접 목격한 제자들은 이제 생명의 복음,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사명이었습니다. 저들가운데 임재하신 성령은 저들로 하여금 이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예루살렘사람들은 놀랍게도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날 메시아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저들이 자신의 죄악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제자들을 찾아와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탄식하며 절규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38)”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중 3천 명의 남자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제자들도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대적들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이 임하자 이렇게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이 변했습니다. 이제 자기를 넘어서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파하였습니다.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은 저들가운데 역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3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이제 저들이 초대교회의 창립멤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온게 아닙니다. 갑자기 예수 믿게 되었습니다. 세례 받게 되었습니다.
이방종교와 이방문화 속에서 길들여온 사람들입니다. 또 한편의 사람들은 오랫동안 전통적인 유대교에 물들여 왔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새로운 복음, 새 성령, 새로운 놀라운 공동체의 출현을 맞이하면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지난 주에 살펴본 말씀 속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42절,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오늘 본문과 함께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의 네 가지 모습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초대교회 성도들은 말씀을 배웠습니다(42-43절).
사도들에 의해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체험하고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그 다음 무엇을 해야 합니까? 첫째는 하나님 말씀을 받는 일입니다. 말씀을 배우는 일입니다. 대부분의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의 문제는 말씀을 배우지 않고 말씀없이 어떤 영적 체험을 추구하는데 있습니다. 열정은 있는데 뿌리가 없습니다. 감정은 있으나 말씀은 없는 것입니다. 말씀이란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뼈대와 같은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뿌리와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이 없는 신앙생활이란 열매없는 무성한 나무와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보면 겉으로는 자랑할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신앙경력도 직분도 괜찮습니다. 체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말씀이 부족합니다. 말씀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기 경험으로만 이야기하고 실제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른 신앙이 없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위험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신앙과 삶이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말씀중심의 신앙으로 다져져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우리 교회가 강조하는 큐티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건강한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신앙 그것이 바로 올바른 신앙입니다. 그들은 성령의 체험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말씀에 대한 훈련이었습니다. 그들이 말씀을 배웠는데 누구한테 배웠습니까? 사도들로부터 배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신앙의 정통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말씀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누구한테 배웠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어디서 배웠는가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요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친다는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무슨 말씀을 가르치는지 전혀 종잡을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이단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여러분 말씀을 어디서 어떻게 배웠느냐가 또한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배웠는데 사도들로부터 친히 배웠기 때문에 그들의 말씀의 정통성은 의심할 바가 없는 그런 온전한 그리고 참 확실한 말씀을 배웠던 것입니다. 교회 역사 어느 시대건 부흥은 말씀의 부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힘이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때,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의 부흥운동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힘을 얻는 부흥이었습니다. 1907년 평양에 하나님의 부흥이 임했을 때 그때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힘이 있었고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렇게 말씀이 흥왕할 때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43절,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두려워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기사와 표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이 생겨서 그 말씀대로 순종하였더니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개입하십니다. 그래서 기적이 일상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뭔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당시 교회는 무력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돈도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권력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무엇이 있었습니까? 금과 은은 내게 없어도 내게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거룩한 백성이 서있는 곳에는 세상의 무기와 세상의 권력과 세상의 돈과 세상의 모든 세력이 벌벌 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초대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조직도 교파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성령님이었습니다.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두려워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보고 김해가 떨기를 바랍니다.
김해에 양문교회라는 말만 듣고 모든 죄악들이 모든 악들이 사탄들이 울며 통곡하며 떠나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러한 양문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굳건히 서 있을 때 보이지 않는 거룩한 능력이 나타날 때, 우리의 능력있는 기도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거룩한 모습이 모든 악한 세력들을 다 물리칠 수 있는 그런 거룩함이 우리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였습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 하나는 초대교회는 기적과 능력과 이런 것들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기사와 표적이 사도들을 통하여 나타났다고 그랬습니다. 저는 교회는 기적이 있어야 된다고 믿습니다. 교회는 표적이 있어야 된다고 믿습니다. 여러분, 세상이나 교회가 다 똑같으면 누가 교회를 두려워하겠습니까?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일이나 교회에서 볼 수 있는 일이 다 똑같다면 누가 교회를 두려워하겠습니까? 세상이 없는 것을 교회는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싸우지만 교회는 사랑해야 합니다. 세상은 의심을 하지만 교회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은 자기 것을 챙기지만 교회는 서로의 것을 챙겨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독특한 공동체인 것입니다. 이기주의적 공동체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자기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공동체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만약 앉은뱅이가 일어났다는 일이 있거나, 병든 자가 고침받고 어려움을 겪는 자들이 일어나 번창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하나님의 기적이 일상이 되는 역사가 여러분가운데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서로 교제하며 나눔을 실천했습니다(44-45절).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둘째 서로 교제하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말씀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세워주는 일입니다. 교제는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세워주는 일입니다. 교제한다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가 된 성도들이 서로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본래 인간은 자기 밖에 모르는 존재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사용합니다.
자기 자신이 목적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자신이 주인되어 살기 때문에 로마서 1:21절 말씀처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인생이 이제 이웃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나같은 죄인을 위해서 돌아가셨다는 복음을 듣고 깨달았던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내속에 부어지니까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웃의 필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입니다. 44-45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놀라운 변화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사랑공동체입니다. 자기입장에서 서 있으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으로 내려서서 상대방의 필요를 보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찾아가서 내가 먼저 용서하고 내가 먼저 이해하고, 내가 먼저 관심을 갖고 상대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입니다. 세상나라와는 너무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나라는 언제나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었는데 이제 이웃의 아픔과 이웃의 고통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나를 희생합니다. 나를 나누어줍니다. 이렇게 사랑은 나눌 때 배가가 됩니다. 나눌 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교회 안에서 이런 나눔을 경험해보았습니다. 나의 필요가 아니라 너의 필요에 관심을 갖고 채워본 적이 있습니까? 성령이 충만한 성도는 이처럼 이웃의 필요를 알아채고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주고 나눔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실천이 있는 교회가 바로 살아있는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받은 사람들의 교제권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 보면 축도가 나옵니다. 그 축도에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의 무엇입니까? (교통하심) 교통이 바로 교제라는 말입니다. 교회 안에 운행하시는 성령의 교통하심을 통해 진정한 교제권이 형성됨으로 함께 울고 함께 우는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서로 이 성령의 하나되게 하시는 참 성도를 온전히 하나되게 하시는 서로 보완하는, 서로 위로하고, 서로 협력하는 서로 하나되게 하는 이런 아주 놀라운 하늘의 교제권을 그들에게 주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 들어오면 먼저 구원받고 거듭나고 성령 받고 하는 일들이 참 중요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 다음에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하면 교제권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성도가 교제권속에 들어오지 않으면 외롭습니다.
고독해 집니다. 심지어는 불안해 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도간의 진정한 교통을 통해서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의 상처가 치료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왜 성도의 교제가 이처럼 중요할까요? 첫째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가족, 서로 형제 자매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한 형제 자매된 사람들, 피를 나눈 가족이니 남의 일로 여겨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교제는 마음과 마음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이겨 나갈 수 있습니다. 마음이 하나되면 아무리 외로워도, 아무리 큰 고난이 있어도 이겨 나갈 수 있습니다.
둘째로 성도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 12:5)고 하였습니다. 내가 아무리 온전한 믿음을 가졌고 능력이 있다 해도 그 지체 하나만을 가지고는 온전한 몸을 이룰 수 없습니다. 팔은 역시 팔입니다. 다리는 아무리 힘이 있고 재주가 있어도 다리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지체들은 서로 협력하여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몸의 한 부분이 고통을 받으면 온 몸이 고통을 받는 것이요 몸의 한 부분이 영광을 받으면 온 몸이 영광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한 교회에 몸을 담고 있는 우리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는 것이(롬 12:15) 지체된 사람의 생활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교제가 우리가운데 진정으로 일어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초대 교회 성도들은 모이기를 힘썼습니다(46절).
46절,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교회의 생명은 모임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개인이 아니라 단체요, 단수가 아니라 복수요, 소수가 아니라 다수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비추는 빛입니다. 하나의 빛은 많은 곳을 밝게 비출 수 없습니다. 여러 개의 빛이 함께 비출 때 그곳은 밝은 것입니다.
(히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여러분, 요즘처럼 바쁜 시대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특히 직업을 갖지 않은 어른들이 더 바쁩니다. 그러니 교회당에 나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다시말하면 예배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으면 모든 일정의 맨뒤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못나오는 이유는 한없이 많습니다.
그렇게 예배생활이 맨뒤로 간다는 것은 하나님이 맨 뒤로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이 여러분에게 그리 중요합니까?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분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보다 나를 더 사랑하고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시는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여러분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과 하나님을 비교해보십시오. 밀립니까? 여러분은 지금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내 생명을 주관하시고 영원한 하늘 아버지보다 더 중요한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예배 생활을 회복해야 신앙생활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예배생활이 제대로 안되면 신앙은 많은 부분에서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고 하였습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의 공식적인 모임은 회당이나 성전에서 모였고 성도간의 교제는 목장모임처럼 각 개인들의 집에서 소규모로 모였습니다.
이처럼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그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는 아마 성전밖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이는 대규모 공동체와 함께 진정으로 교제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소그룹모임은 가정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라 할지라도 소그룹모임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나누고 삶을 구체적으로 나눌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목장입니다. 함께 모여서 떡을 떼며 밥을 먹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서로 마음을 나누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될 때 거기 성령의 임재가 있습니다. 하나님나라가 거기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모이기를 힘쓰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이면 행복하다. 그렇게 화평을 만들어 내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뿐 만 아니라 예배생활을 회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일주일에 11번 교회에서 모임이 있습니다. 그중에 여러분은 몇 번 교회에 나옵니까?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가까이 하는 것이 예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하나님을 가
가이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보게 되고 그렇게 될 때 세상이 두려워하는 영적 권세가 회복되어질 줄 믿습니다.
4. 주께서 날마다 구원받는 자를 더하게 하셨습니다(47절).
47절,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우리가 그들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이것이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칭송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는 세상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과 교회는 달라야 합니다. 교회는 서로의 아픔을 감싸주고 상처를 싸메주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랑이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구체적인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사람과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근본적인 것은 내안에 예수님이 나의 주로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치관이 다릅니다.
우선순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합니다. 사랑을 받은 자이기에 구체적으로 실천합니다. 자기 것을 먼저 챙기고 자기 욕심을 채우기보다 이웃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고 그 필요를 위해 자기를 내어 놓는 것입니다. 이웃의 어려움을 듣고 내가 도움을 줄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 봅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을 찾아가 격려하고 기도해줍니다. 이런 사랑이 우리가운데 충만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주께서 구원받는 자를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내가 아니라 주께서 더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왜 초대교회의 신앙생활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은 그때와 지금 똑같이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변함이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모델링이 있습니다. 1)말씀을 배웠습니다. 2)사랑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3)모이기를 힘썼습니다. 4)주께서 구원받는 자를 날마다 더하여 주셨습니다. 이모든 것이 우리가운데 임하신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한 성도가 되어서 오늘 우리교회가 초대교회와 같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곳에서 재현하는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