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에세이>
체육교육과
E58086 김나예
철저히 계획한다. vs 즉흥적인 무계획이다.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눈다면 나는 확실히 즉흥적인 순간이 주는 짜릿함을 즐기는 직관적인 사람이다. 그로인해 생기는 돌발 상황 역시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잘 해결해왔고 사실 대부분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문제들이었다.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예측 못한 순간들이 닥쳤을 때 발을 동동 구르며 걱정하는 친구들을 보면 나는 직관적으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도 꽤나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두 유형의 사람 모두가 `상황'이라는 주변 여건으로 인하여 무계획 가운데 일을 처리해야 할 때가 있다. 예상외의 어려움이 오지만 이를 돌파해야할 순간을 주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내 인생에 내가 직관적임을 증명하는 여행기가 있다.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문득 대학 졸업 후엔 시간, 비용문제 등으로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항공사 사이트에 접속해 2주후 홀로 런던으로 떠나는 비행기 표를 샀다. 대학시절 비교적 가까운 일본, 중국, 베트남, 블라디보스톡 을 혼자 여행했기에 이번에도 부모님께서 큰 걱정 없이 보내주셨다. 그렇게 출국당일까지 런던에서 좀 거리가 있는 에어비엔비 숙소예약과 환전만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당시 런던도시에 대한 로망으로 가득 차있어서 머무는 숙소는 밀튼케인즈인 런던에서 1시간가량 걸리는 마을이었는데 눈만 뜨면 기차를 타고 런던으로 가서 마지막 기차를 타고 밤늦게 숙소로 돌아왔다. 영국에서 만났던 모두가 친절했고 에어비앤비 주인인 노부부를 보며 역시 어디든 사람 사는 거 똑같다고 느꼈다. 그렇게 긴장이 풀리고 다음 국가는 스위스-파리-크로아티아로 정했다.
# 인생 첫 렌트카
스위스로 넘어가니 식비, 교통비가 영국의 배로 들었고 각 여행지 간에 교통시설이 부족해서 차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음날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서 고민없이 허츠에서 렌트했다.
그 당시 운전면허를 따고 운전경험이 20회 미만이었다. 해외에 가면 생기는 생존력과, 거리를 보니 서울에 비해 차들도 적고 주차공간들도 넉넉한 것을 보며 생겨버린 자신감이 생각지도 못했던 도전을 낳았다. 차를 렌트한 건 모든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부모님께 말씀드렸고 삼일 넘게 혼이 났다.
스위스를 자동차로 여행하며 느낀 점은 물가가 쎈 만큼 교통법규 범칙금도 세고, 스위스인들의 수준이 높은 것인지 위반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위험한 상황은 없었다. 물가가 무서울 정도로 비싼 편에 비해 기름 값은 한국과 동일했고 스위스는 관광지 외에 곳곳 호수들이 너무나 평온하고 좋아서 내가 가고 싶을 때, 내가 좋은 곳에서, 머물고 싶은 만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다.
# 캐리어 도둑맞다.
그 다음 여행지인 파리에 저녁 늦게 도착해 캐리어를 찾다보니 밤이 되어서 숙소까지 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서둘렀다. 러시아워인지 인파속 정신없는 와중에 누군가 뒤에서 밀어줘 간신히 지하철에 낑겨 타고 멕시 보꾸~ 하려고 뒤도는 순간 어린 집시가 내 캐리어를 갖고 있었고 문이 닫혔다. 막 공항에서 나와 여기가 프랑스라는 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인터넷에서만 봤던 소매치기를 직접 당하니 앞이 캄캄했다.
다행히? 영국에서부터 여권과 카드, 현금 귀중품들은 옷 안 곳곳에 넣어둬서 지킬 수 있었다.
예약한 숙소에 도착하니 주인장은 계속해서 종이 바우처를 요구했고 영어는 전혀 통하지 않아 불어가 가능하신 엄마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주인에게 내 처참한 상황을 호소하게 했다. 숙소에 들어와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거니 숙소 주변에 골목이 많아 흑인들이 밤새 몰려다니니 나가지 말라는 주인의 당부를 전해 들었고 캐리어가 없어졌다는 내 소식에 “무거운데 잘 됐네” 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숙소마다 식기류나 샤워용품 등은 모두 있으니 나쁠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날 아침 마트에서 휴대폰 충전기와 음식을 사와 숙소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나의 하나뿐인 아디다스 삼선 추리닝 바지를 입고 나가서 에펠탑, 몽마르뜨 언덕 그 다음날은 루브르 박물관까지 4일간 현지인 마냥 잘도 돌아다녔다.
# 비행기 놓치다!
그렇게 캐리어 없는 프랑스 여행을 잘 마치고 크로아티아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오스트리아에서 거치는 경유 비행기였는데 비행기를 기다리며 보니 경유시간이 15분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첫 번째 비행기가 지연되었고 캐리어에 이어 두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탑승 후 승무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승무원은 랜딩하자마자 달려가야 할 게이트 방향을 알려주며 ‘근데 우리가 랜딩하면 게이트가 닫힐 거야’ 라고 했다. 승무원 말대로 착륙하자마자 휴대폰으로 확인하니 이미 게이트 문이 닫혔고 그렇게 비행기를 놓쳤다. 새벽 한시에 오스트리아 공항에 혼자 남겨진 나는 해당 항공사 카운터로 가서 탑승했던 비행기가 지연되었다. 이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우리 비행기가 랜딩하기도 전에 게이트를 닫은 건 너네의 잘못이다. 라고 했고 그들도 인정했는지 30분후 출발하는 비행기 표를 제공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비행기를 놓치고 저렇게 침착하게 상황을 대처했던 것이 스스로도 놀랍다. 스위스에서 무모하게 도전해 운전을 하고 나서 생존력이 +50은 더 상승했고 캐리어를 도둑맞은 이후 더 놀라운 것도 없었다,
# 위기의 연속
그리고 내가 탑승할 비행기를 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추락사고로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45인승 버스크기에 20명 정도 수용 가능한 경비행기였다. 우리가 흔히 봐온 비행기 날개는 없고 헬리콥터 마냥 프로펠러 날개뿐인 비행기가 4시간 넘게 하늘을 날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창가자리에 앉아 가까이서 프로펠러를 보니 더욱 아찔했다.
무사히 도착한 크로아티아에서는 공항에서 바로 차를 렌트했고 이곳저곳 자유롭게 여행했다. 크로아티아에서는 공용주차장에 주차하고 해변에서 수영을 하고 돌아오니 생에 첫 주차딱지가 붙어있었는데 쿠나를 우리 돈으로 환산했을 때 40만원 정도였다. 직관적으로 말도 되지 않는 금액이여서 관공서에 갈 생각도 안하고 잊어버린 채 여행했는데 알고 보니 여행객들한테 경고 식으로 모두 붙이는 것이었다.
또 하루는 깊은 곳에서 수영하다가 만난 호주계 민머리 할아버지의 Hi~~를 시작으로 깊은 바다 속에서 20분 넘게 깔깔대며 대화했다.
(검은색 머리가 나, 살색 작은 동그라미가 할아버지 머리)
할아버지는 옆의 보스니아도 한번 가보길 권유했고 다음날 정말로 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라는 국가를 가보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런던을 떠나자마자 직관적인 선택이 끊임없이 요구되었고 말도 안되는 사건들이 수없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평소의 사고와 성격으로 상황을 대하다 보니 각 현지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혼자서 잘 해결해나갔다. 사실 이런 상황이 또 언제오겠어! 내가 캐리어를 언제 또 도둑맞아보겠어! 비행기는 또 언제 놓쳐보겠어! 하고 즐기기도 했던 것 같다.
이 모든 것을 경험을 준 여행으로 나는 어려움이 닥쳐도 낙심하거나 포기보다는 일단 실행해보자 하는 마인드를 지니게 되었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런던 행 비행기 표를 끊고 무작정 떠난 그때의 나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이 글을 적다보니 그때의 순간들이 생생하게 느껴져 너무나 즐겁게 기말과제를 하고 있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계획대로, 예측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다는 아프리카를 가봐야겠다.
이러한 나한테도 도전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고 무모하게 느껴질 나이가 분명 올 것이다.
동시에 나에게 남겨진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에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라는 골로새서 4장 5절 말씀과 같이 마음이 조금씩 급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결론은 앞으로도 원래의 나처럼 새롭고도 신선한 도전을 계속하며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을 경험하며 살아갈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