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오늘의 동시문학상> 수상작
부드러운 냇물이 외 7편 __ 정진숙
모난 돌, 날 선 돌, 울툭불툭한 돌,
일그러진 돌, 뾰족한 돌들이
왈그닥 왈그닥
아무도 어쩌지 못한다.
그래도 냇물은
그래 그래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어 주고,
그래도 냇물은
그럼 그럼
잔잔한 목소리로 칭찬해 주고,
누구도 어쩌지 못하던
돌들
드디어
고집 꺽었다
둥글둥글 둥글어졌다.
선인장은
보이는 것만이 다는 아냐
겉이 가시투성이라고
사납쟁이라면 안 돼
살아남으려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거야
아픔이 가시 하나
눈물이 가시 하나
그리움이 가시 하나
희망이 가시 하나
오랜 세월 견뎌 오느라
가시투성이 되어
바람도 햇살도 피해 가지만
나비를 기다린다
여린 꽃
꺼내 놓고
기다린다.
아무도 모르는 일
발이 예쁜
달빛
댓돌 위에
가지런한 신발을
신어 봐요
아빠 신발
크고 무거워
도로 벗어 놓고,
엄마 신발
굽 높아 불편해
도로 벗어 놓고,
꽃무늬 아기 신발
맘에 꼭 들어
밤이면 와서 신고 놀지요
꽃무늬 신발 신고
아장아장 걸음마하는
아기 발걸음이
달빛처럼 환한 이유는
아무도 몰라요.
신발 ․2
봄이 길가의 신발가게에
노란 꽃신발을 내놓았어요.
나비가 신어보고
그냥 두고 갔어요.
벌이 신어보고
그냥 두고 갔어요.
몇날 며칠 놓여있던
노란 꽃신발
없어졌어요.
씨앗 몇 개
신발값으로 남겨놓고
신고 갔어요.
소리공사
굴착기 기사인
우리 아빠
드르릉 드르릉 드르릉
소리로 땅을 파고
소리로 허물고
소리로 세운다.
밤에도
하루 종일 몰고 다닌
소리를 놓지 못해
드르릉 드르릉
소리로 잠잔다.
꿈에서도
드르릉 드르릉
새집 짓고
새 길 내고
소리로 공사하나 보다.
무릎 꿇은 백로
살아서는 절대
무릎 꿇지 않겠다는 백로
먹이 먹을 때도
꼿꼿이 서서
힘들게 힘들게
잠잘 때도
뻣뻣이 서서
다리 아프게 아프게
비바람 칠 때도
버티고 서서
어렵게 어렵게
언제 어디서도
무릎 굽히지 않더니
동글동글
알 낳고는
생각 바뀌었나 봐.
너희를 위해 못할 게 뭐 있겠니?
털썩 무릎 꿇어
알 품는다.
조각 조각도
저고리 만들고 남은 조각
바지 만들고 남은 조각
가방 만들고 남은 조각
조각 조각들
버려질 뻔했는데,
엄마의 손길로
달래서 이어주고 붙여주니
알록달록 색깔 다시 눈뜨고
알록달록 무늬 제자리 잡곤
조각보 되었어.
혼자서는
밤톨 하나도 받아 안지 못하더니
조각보 되어선
식탁 반찬 그릇들
한꺼번에 덮고
커다란 선물꾸러미
한 번에 싸잖아.
물소리
물소리도
큰다.
자박자박
귀 기울여야 들리는
도랑물 소리
개울에 이르면
조잘조잘조잘
이야기 제법 풀어 놓더니
냇물에선 개구쟁이 되어
촬촬촬촬 우당탕탕
강물에 모여선
제법 의젓하게
스을스을스을.
커다란 바다!
이제 제 소리 대신
활짝 귀 열어 놓고
남의 소리 들어 준다.
물소리도 다 커선
조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