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 文孝大王(문효대왕) 4년 가을 7월, 9성에서 철수하여 여진의 옛 땅을 돌려줬다. 이보다 앞서 여진은 裊弗(요불)과 史顯(사현)등을 보내 상주하여 가로대, 「옛날 우리 太師(태사) 盈歌(영가)는 말하기를 <우리의 祖宗(조종)은 大邦(대방)(고려)에서 나와 자손에 이르렀다>라고 하였으니, 마땅히 귀부하여야 옳을 것입니다. 지금 태사 烏雅束(오아속)도 역시 대방을 부모의 나라로 삼고 있습니다. 갑오 연간에 이르러 궁한리의 사람들이 스스로 안정하려들지 않았는데 이는 본래가 태사의 지휘 밑에 있던 바가 아니었습니다. 국조가 죄를 앞세워 이들을 토벌하시더니 다시 수교를 허락하셨으므로 우리는 이를 믿고 조공을 끊이지 않았는데, 작년엔 크게 일어나서 우리의 耄倪(모예)를 죽이고 9성을 쌓아 외로이 남은 백성들로 하여금 떨게 하고 말려서 돌아가게 했습니다. 이에 태사는 우리를 보내어 땅을 되돌려 줄 것을 청하게 되었읍니다.」라고 하였다. 또 재상, 추밀원, 臺(대), 省(성), 知製誥(지제고), 侍臣(시신), 병마판관 및 문무의 3품 이상을 만나 다시 9성을 들려주는 일의 가부를 의논하니 모두가 「옳다」고 했다. 옛 사서에선 말한다. 「두장군은 비를 선춘령에 세우고 이곳에 이르러 고려의 국경 이라 한다고 했다. 선춘령은 두만강으로부터 700백리 밖 송화강의 가까운 곳 에 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