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인생을 숙제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언제부터인가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살기로 했다.
다른 사람에게 내 나이를 이야기하면 "벌써 그렇게나 되셨어요?"라고 반문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오십이라는 숫자를 넘긴 후에 부쩍 이런 말을 많이 듣는다.
상대방은 나에게 그 나이로 보이지 않는다는 칭찬으로 하는 말일 텐데 정작 나는 이 말에 별 감흥이 없다.
그러다 보니 몸이 약해지면 되레 반가운 마음이 든다.
점점 나이는 들어가는데 몸은 10대 청년 같다면 오히려 슬펐을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체가 어김없이 겪는 노화의 과정을 나도 겪는다는 생각은 잔잔한 슬픔과 함께 담담한 기쁨을 가져다준다.
백 세 시대가 된 지 오래다.
백 살까지 산다는 소리가 놀랍지 않다 보니 오래 사는 것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해졌다.
오십은 백을 기준으로 하면 절반인 터닝 포인트에 해당한다.
나이 오십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오십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에 대한 의미가 달라진다.
사람은 복잡한 존재이지만 크게 나누면 몸과 마음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오십을 기준으로 몸과 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몸을 생각하면 건강이 꺾이는 시기다.
오십 이전까지는 몸으로 산다.
특히 10대와 20대의 몸은 펄펄 난다.
며칠 밤을 새워도 끄떡없고 어디 뼈가 부러져도 금방 아문다.
쉽게 지치지 않아 하나를 마치면 다른 일로 달려간다.
그러다 오십이 되면 확연히 달라진다.
감각이 먼저 고장 난다.
노안이 오고 입맛은 둔해지며 귀에서 쇳소리도 가끔 들린다.
움직임이 느려지고 밤을 새우면 회복하는 데 며칠이 걸린다.
인생은 몸과 마음이 이어달리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오십이 되면 여태껏 열심히 달린 몸이 다음 주자인 마음에게 바통을 넘겨준다.
이제는 마음이 달릴 차례다.
이전에는 몸의 건강으로 생명을 유지했다면 지금부터는 마음의 건강으로 살아야 한다.
마음의 건강을 두 글자로 줄이면 지혜다.
지혜란 어려운 일이 생길 때 가장 적절한 방법을 생각해 내는 능력이다.
지혜가 생기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좋은 일에도 과하게 기빼하지 않는다.
좋은 일이 잠시 머물다 떠날 것임을 알고 이후에 힘든 일이 올 수도 있음을 알아서다.
그래서 나쁜 일에도 지나치게 낙담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어쨌든 해결될 것이고 삶에 필요한 배움 하나를 건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 몸이 주인이고 마음이 시중을 드는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마음이 주인이고 몸이 시중을 드는 시간이다.
몸이 주인이 되는 시기의 중요한 감정은 즐거움이다.
맛있는 걸 먹고 멋진 곳을 보고 짜릿한 연애를 하고 익스트림 스포츠에도 도전하면서 몸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시기다.
마음이 주인이 되는 시기의 감정은 잔잔함이다.
특별히 즐거운 것도 괴로운 것도 없이 답담해진다.
오십 이전에는 무슨 일이 생겨야 즐겁지만 오십 이후에는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아야 편안하다.
행복의 조건이 정반대가 된다.
연극에서 1막도 재미있지만 훌륭한 연극은 2막이 더 재미있다.
연극 1막에서는 내가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호락 호락하지 않은 세상의 벽에 부딪쳐 절망한다.
그러다 2막에서는 세상이 아니라 나를 바꾸려 노력한다.
욕심을 내려 놓으려하고 세상을 향한 적의의 시선을 따스한 포용의 시선으로 바꾸려 한다.
빨리 가던 걸음을 천천히 간다.
삶이 온전해지려면 오십 이전에는 즐거워야 하고 이후에는 화평해야 한다.
그러니 오십이 되니 몸이 무너진다고 슬퍼할 것이 아니라 마음이 꽃피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
바통을 건네주고 받는 데 성공했다고 축배를 들어야 한다.
몸의 시대는 가고 마음의 시대가 활짝 열린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삶의 무대가 아름답게 펼쳐지기 시작한다.
내가 30년간 스승으로 모시는 이근후 선생님은 노인은 잘못된 말이라고 했다.
"엄마 배에서 나온 순간부터 우리는 노인이거든. 배 속 시절보다는 더 나이가 든 셈이지. 이 세상에 늙은 사람이 아닌 사람은 없어. 모든 삶의 순간은 나이가 들어가는, 에이징(the Aging)이야. 청년, 중년, 노년은 세상이 구분해서 편의상 붙인 이름일 뿐 본질적으로 스무 살도 에이징, 육십 살도 에이징이야. 우리는 날마다 몸은 조금씩 약해지고 그만큼 마음은 성숙해져 가는 존재야."
오십 이후에 생긴 좋은 습관 중 하나는 한 번씩 멈취 서서 생각하는 빈도가 늘어난 것이다.
여러 해 전 교수 생활을 하다가 50대 후반에 몸이 불편해진 어른을 제자로 만났다.
그는 대기업 부사장까지 하던 어느 날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겨우 의식은 찾았으나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는 좌절했고 자살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가족을 생각하면 죽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재활을 시작했다.
반신마비에서 지팡이에 의지해 천천히 걸을 수 있게 되는 과정에서 전에는 없었던 시간이 생겼다.
한 번씩 멈춰 서서 주변을 바라보고 생각했다.
길가에 핀 들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비 온 후 땅 위로 나온 지렁이가 살기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해 기어가는지 눈에 들어왔다.
나만 생각하고 살았던 삶에서 다른 생명과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삶으로 바뀐 것이 기적이었다.
그는 자신과 같은 환자에게 위로와 친절을 베푸는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좀 더 사람들을 잘 돕고 싶다는 마음에 내가 있던 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학생으로 지원하여 공부했다.
그 제자를 보면서 깨달은 건 몸이 무너져도 마음이 살아나면 훨씬 더 풍요로운 세상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오십은 숫자에 불과하지만 바통 이어받기에서 중요한 숫자이기도 하다.
몸의 기능이 떨어지지만 마음은 성숙해지고 깊어진다.
몸의 시대가 저물고 마음의 시대가 열린다고 오십을 해석하면 오십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숫자다.
인생 2막에서 가슴 설레는 삶을 살 것인가, 약해지는 몸을 한탄하며 살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나는 기왕이면 설레는 삶을 살고 싶다.
인생 절반도 아름다웠고, 나머지 절반은 더 아름다웠다고 말하며 세상을 떠나고 싶다.
오십, 나는 재미있게 살기로 했다 중에서
이서원 지음
첫댓글 50은 아주아주 예쁜 청춘입니다.~
60보다 훨씬 적으니까요.~
60도 아직 입니다. 너무예뻐요.~
오늘이 가장 아름답고 예쁜날입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화훼장식기사는 늘 아름답습니다!
몸에게서 바통을 받은 마음 건강하게 지혜롭게 함께 걸을까요?
손잡고 걸어요!
예쁜 우리를 위해
60은 선물인 것 같습니다
포장지를 다시 조심스레 풀어봅니다.
그리고 하고싶었던 일들을 조금씩 도전해봅니다
좋은글. 고맙습니다♡
조심스레 풀어낸 도전은 벅참으로 가슴깊이 새겨질듯 합니다.
이번 하계연수때도 우리의 가슴깊이 새겨주실 진행!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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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8기 백경미)
@2기 인명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