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해방 이후 1950년대와 60년대 중반까지 진돗개에 관한 기록이나 사진은
쉽게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정충남씨의 인터뷰를 통해서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의 중요한 사실들을
증언하고 있는데 정충남씨의 증언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진돗개를 유형별로
3종류로 구분한 것이다. 그것은 세간에서 말해지고 있는 유,습, 파종론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동진개를 가장 좋은 진돗개로 여기고 있으며, 1960년대 초반에는 좋은 진돗개가 대부분
사라진 것으로 말하고 있다. 특히 유의할 점은 해남개의 존재인데 좋은 진돗개가 사라진 자리에
해남개가 둔갑하여 진돗개로 대체되었다는 것인데 외형은 보기 좋은 모습이었으나 진돗개와 같은
좋은 성품을 보여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요즈음 진돗개들이 외형은 보기 좋으나 성품은 외형에
미치지 못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는 것 같다.
정충남씨는 고창사람으로 1940년생으로 추정된다.
소싯적에 진도경찰서에 근무한 경력으로 진돗개를 진도에서 반출하여 육지에서 진돗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판매하였는데 그 분야에서 상당한 수완을 발휘한 분인 듯하다.
1950년대에서 60년대 초반까지 진도읍, 고군면, 지산면의 장날에 진돗개 거간꾼으로 유명했던 신종민(당시 50대)씨를 통해서 진돗개를 구별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동진개, 지산개, 고군개로 구분하였으며,1960년대 중반에 이미 진돗개다운 개는 대부분 사라지고 없었다.
지산개는 요즈음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홑개에 해당되는 개인데 역삼각형 두상에 키가 크고 날씬하며, 경쾌한 몸동작으로 노루 사냥에 주로 이용되는 개이며 굴사냥은 못하는 개라고 한다. 좋은 개는 사냥도 했지만 큰 힘은 못쓴다고 한다. 일명 피리개라고도 한다.
고군개는 체구가 작고 털이 긴 개이며 굴사냥에 특화된 개라고 한다.(너구리, 여우 사냥) 털이 거칠고 풍성하여 스피츠와 비슷한 모습이다. 무게는 15-20근(9-12kg) 정도였다.
동진개는 핏플 비슷한 개(?)라고 하며 겹개이고 벌어진 개(두상?)이고 싸움을 잘했다고 한다. 진도읍 주변에서 주로 사육되었으며, 대부분 황구이고 눈까지 노란색이었고 사냥도 잘했는데 산돼지 등 큰 짐승을 사냥하는 개였다. 동진개 가운데 네눈이는 100%사냥을 잘하는 개라고 한다. 동진개는 30-32근(18-19kg) 정도로 체격이 컸다. 총사냥은 동진개 위주로 사용되었는데 산돼지 사냥은 10마리 가운데 1마리 정도 가능했으며 직접 잡는 것보다 잡아서 세워두는 역할을 했다.
고군개와 지산개는 동진개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거래되었다고 하며, 신종민씨는 동진개를 키우라고 사람들에게 권했다고 한다.(정충남씨도 동진개만을 진돗개로 인정을 한 것 같다)
이승만 대통령이 진돗개 보호 지시를 한 이후 해남개가 진돗개로 둔갑하여 많이 판매되었는데 해남개는 황구이고 지산개와 비슷한 형태인데 체장이 길고 보기 좋은 모습이었으며, 주둥이가 긴 편이었다. 잘 짖고 체격이 커서 30근(18kg)이상이고 부자들이 사치(애완견)로 키웠으나 사냥은 잘하지 못하는 개였다. |
(정충남씨의 옛날 진돗개 분류)
구분 | 사진 | 비고 |
지산개 (확신) | 대표 | 1915년 해남개 |
동진개 (약간 애매) |
| 네눈이 출처불명 |
동진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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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개 |
| 60년대 중반 |
지산개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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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형적인 지산개 |
동진개 (애매) |
| 역삼각형이나 두툼함 |
동진개 (확신) |
| 1937년 8진도용사 |
고군개 (애매) |
| 8진도 두루 |
동진개 (약간 애매) |
| 8진도 귀둥이 |
동진+고군 |
| 8진도 두루 |
동진개 +고군개 |
| 8진도 장백이 |
동진개 |
| 80년대 노랭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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