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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을 때 공중에서 '낳았느냐?'라는 소리가 3번 들렸다고 한다. 3번째 질문에서야 비로소 아이를 출산했기 때문에 이름이 삼문(三問: 세 번 물어봄)이 되었다는 기이한 설화. 사진 권오철
2024년 10월 18일,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성삼문, 그는 누구인가' 출판기념회가 성대히 개최되었다. 이 행사는 昌寧成氏서울·경인지구화수회 주최로 열렸으며, 성삼문 선생의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공로와 충절을 기리는 자리로 꾸며졌다.
행사는 16시부터 시작되어, 식전행사로 성원식 회장의 경과보고와 성은영 총무의 편집 및 내용 소개가 이어졌다.
성원식 회장의 발간사에서는 "훈민정음의 과학적인 원리는 현대 사회에서 필수적인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의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며 성삼문 선생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성삼문 선생은 충절과 지조의 상징일 뿐 아니라, 한글 반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라고 밝혔다.
오늘날 스마트폰과 인공지능(AI)이 필수품이 된 시대에서, 이러한 기술 발전이 한글의 과학적 원리 덕분에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우리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성삼문 선생의 중요성을 되새겼다. 성삼문은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하는 데 큰 기여를 한 인물로, 주로 충절과 지조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성삼문이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사육신 중 한 사람으로, 충청남도 홍성 출신이며, 세종 20년(1438)에 과거에 급제해 집현전 학사로 활동하며 뛰어난 문학세계를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성삼문은 음운학에도 조예가 깊어, 훈민정음의 반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기존 논문과 자료를 바탕으로 성삼문 선생을 객관적으로 재조명하고, 시대에 맞게 정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성 회장은 "그동안 성삼문을 평가하는 데 있어 충절과 지조에만 치우친 경향이 있었다"며 "그의 한글 반포라는 업적이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 책이 성삼문 선생의 진면목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그의 업적이 널리 알려져 후손들에게 그의 정신과 가치를 전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발간사는 성삼문 선생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그의 업적이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어서 축사와 축시 낭송이 이어졌다. 최홍식 회장(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과 성상현 동국대 부총장이 축사를 통해 성삼문의 업적을 기렸다. 특히, 성삼문의 시문과 훈민정음 창제 노력을 조명하며, 그의 정신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특강에서는 김슬옹박사가 ‘성삼문 선생의 한글 반포 공헌’에 대해 심도 깊은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성삼문이 세종대왕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훈민정음 창제에 기여한 과정을 설명하고, "성삼문은 단순한 문신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한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행사 마지막 부분에서는 '우리 창' 공연과 함께 떡 케이크 절단식이 진행되어 내빈들과 외빈들이 함께 성삼문 선생의 업적을 축하하며 기념 촬영을 하였다.
성심문의 한글 창제 공헌도, 成삼문은 민본을 역설하는 세종의 뜻에 영향을 주고 申숙주는 기술적인 점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나 설마 한류의 핵심 요소임은 몰랐을 것이다. 원세개가 한글을 중국어를 대체할 소리로 했으니 만일 그랬으면 중국은 진정한 세계의 패권국으로 갔을 것이다. 슬기롭고 옹골차게 쇠로 만든 길을 가는가? 사진 권오철
"정의와 불의가 뒤엉키면서 쌓아온 역사, 당대에 역적의 누명을 쓰고 처형당한 그대들은 생을 마친 후에 사육신, 죽은 여섯 신하라 불리우며 230년 후에는 충신의 명예를 되찾게 된다." 이 구절은 KBS2 TV 남북합작 드라마 '사육신'의 마지막 회에서 울려 퍼진 내레이션으로, 성삼문과 그의 동료들이 겪은 비극적인 운명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불의에 맞서 싸우다 희생되었으나, 결국 역사 속에서 그들의 충절은 재조명받게 되었다.
성삼문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세종대왕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에 기여한 인물이다. 그의 문학적 재능은 단순히 시문에 국한되지 않고, 민족 문화의 기초를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새로운 문자의 사상과 철학을 담고 있으며, 성삼문을 포함한 공저자들은 그 사상을 명확히 풀어내어 같은 사상의 반열에 올랐다. 이들은 훈민정음이 단순한 문자 체계가 아니라,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위한 의사소통 도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과학 보편주의, 철학 보편주의, 음악 보편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모든 소리를 정확하게 적을 수 있는 정음 문자관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융합 문자 사상은 하층민 중심의 민본주의와 교육 중심의 교화 문자관을 아우르며, 그 중심에는 성삼문이 자리잡고 있다. 그의 업적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정의와 진리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성씨 한류는 이렇듯 지난 역사를 되돌아 보고 전통을 전승하여 교훈으로 삼고 이것이 잘못된 것의 반복을 줄이고 전보하는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글 권오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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