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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의 참뜻을 지키지 않았기에…
구조상으로 볼 때 근정전은 경복궁 건물의 '심장'에 자리 잡고 있어요. 근정전을 중심으로 북쪽에 나랏일을 보는 편전(便殿)인 사정전을 뒀고, 그 뒤로 왕과 왕비의 침전인 강녕전과 교태전을 둬서 남북 일직선상에 정연하게 배치한 겁니다.
근정전에서는 임금의 즉위식과 문무백관의 조회를 비롯한 국가의 중요한 의식이 거행됐어요. 외국 사신을 접견하는 행사도 이곳에서 이뤄졌죠. 2대 정종, 4대 세종, 6대 단종, 7대 세조, 9대 성종, 11대 중종, 13대 명종 같은 조선 전기의 여러 임금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했습니다.
하지만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경복궁 건물과 함께 근정전은 불타버리고 말았어요. 실록에는 선조 임금이 피란을 가자 분노한 백성이 불을 놓았다고 적혀 있습니다. '근정'의 참뜻을 임금이 지키지 않은 탓에 근정전이 불탄 셈이죠.
지금의 건물은 이로부터 275년 뒤인 1867년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재건됐어요. 이때 궁전 앞 섬돌인 월대(月臺)를 새로 만드는 등 여러 변화가 있었다고 해요. 이후 2000년부터 2003년까지 72억원을 들인 보수 공사 끝에 지금의 근정전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웅장한 외관, 장엄한 내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은 고려 중기인 12~13세기에 세워진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에요. 가장 큰 목조 건축물은 바로 높이 22m에 이르는 근정전입니다. 시공간을 수호하는 십이지신과 사신상으로 장식한 높은 월대 위에 세운 건물이라 위엄이 느껴집니다.
정면 5칸, 측면 5칸의 건물로 겉으로는 중층으로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위아래가 탁 트여 실내 규모 또한 웅장합니다. 뒷면 가운데 어좌(임금의 의자)를 두고 그 뒤에는 해와 달, 다섯 산봉우리가 등장하는 '일월오악도' 병풍을 쳤지요. 천장 가운데는 구름무늬를 새기고 발톱이 7개인 칠조룡 한 쌍을 조각해 장엄한 분위기를 더합니다. 그런 분위기를 이제 직접 들어가 눈으로 볼 수 있겠지요?
[앞뜰에 깔아놓은 얇은 돌은 북악산·인왕산과 조화 이뤄]
근정전 넓은 앞뜰에는 얇고 넓은 돌인 '박석'이 깔려 있어요. 반듯반듯하게 만들어진 근정전 건물과 달리 마치 조각보처럼 불규칙하게 이어붙인 형상입니다. '왜 이렇게 무질서하게 만들었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학자는 이것을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의 훌륭한 조화"라고 보고 있어요.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박석의 자연스럽게 흐트러진 선이 월대의 수직·수평선, 근정전 처마의 가녀린 곡선, 북악산·인왕산의 능선과 환상적으로 어울린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