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바다 덮음 같이(합 1:13)
오랜 시간에 걸쳐 동화는 ‘권선징악’, 즉 선을 권하고 악을 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빌런(악역)을 물리친 주인공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고 마무리를 하고 있지만 우리는 동화 혹은 영화와는 다르게 진행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직면하게 됩니다. 오히려 악인이 성공하는, 악인이라 하지 않아도 거짓과 권모술수로 성공시대를 열어가는 불의가 충분히 허용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퇴락하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도덕적 죄악을 직시하며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는(1:4) 이스라엘을 고발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이스라엘의 죄악은 악인이 흥왕하고 불의가 성공하는 시대로 이끌었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정의가 사라진 이스라엘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불의가 만연한 이스라엘을 방치하고 악인이 의인을 삼키는데도(13절) 잠잠하시는 하나님께 악인을, 불의를 심판하기를 간구합니다. 그러나 악을 멀리하시고 악을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악인과 불의를 심판해야 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와 선이 선포되는 권선징악의 시대를 살아야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하박국의 이스라엘과 다르지 않습니다.
국가 혹은 사회가 위기에 내몰리게 되면 진짜 고통에 직면하는 이들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위기 가운데서도 앞가림하는 기득권(?)을 가진 자들과는 다르게 간신히 살아가는 이들은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지도자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하여 정책을 만들고 수고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불의한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정의와는 전혀 관련 없습니다. 오히려 낚시도 모두 낚으며 그물로 잡으며 투망으로 모으는(15절) 자신들만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스스로 만족에 빠져 있습니다. 하박국의 간구처럼 하나님의 정의를 간구하는 공허한 메아리로 남아 있습니다. 번성하는 악인들만이 초라한 믿음의 의인들을 무자비하게 바다의 고기처럼, 다스리는 자 없는 벌레(14절)처럼 대하며 세대가 되었습니다.
악인을 고발하고 불의를 심판하기 위해 하나님의 정의를 간구했지만 하나님은 전혀 응답이 없는 듯 했습니다. 권선징악의 극적인 반전으로 악인이 멸망하고 의인이 일어나는 변화는 없습니다. 우리 역시 간절히 하나님의 정의를 기도하지만 악인이 패망하고, 의인이 성공하는 새로운 시대는 요원하고 여전히 악인은 흥왕하는 듯 합니다. 그럼에도 하박국의 마직만 찬양은 열매와 소출이 그치고, 양과 소가 없을지라도 구원의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다(3:18)입니다. 하나님은 하박국에게 어떻게 응답을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도록 판에 명백하게 기록하여 그것을 묵상하며 정한 때(2:3)를 기다리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악인의 심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몫입니다. 매순간 즉각적인 심판으로 죄악을 심판한다면 세상에는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죄와 타협하는 실수를 하는 심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2:4)’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박국은 마침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2:14)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원수를 향한 저주의 기도가 입 밖으로 나오면 저주가 되지만 하나님께 기도로 드리면 탄원이 됩니다(옥한흠 목사). 우리의 간구에도 악인은 여전히 흥왕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판에 깊이 새기고 묵상하며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되는 때를 믿음으로 바라는 바다교회 가족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