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낙타 친구 에카필라에게
(작성자 : 김 ㅅ ㅎ 11세/여)
에카필라야. 너는 엄청 커. 처음 봤을 때 너는 모래바닥에 웅크리고 엎드려 있었는데, 마치 우리집 냉장고만큼이나 컸지. 낙타 모는 아저씨가 에카필라가 제일 순하다며 나에게 추천했어. 500킬로짜리 검은깨처럼 생긴 낙타. 아저씨는 순하다고 했지만 내 눈에는 순해 보이지는 않았어. 왜냐면 머리카락이 삐쭉삐쭉하고 덩치도 엄청 컸으니까.
옆으로 다리를 걸쳐서 의자에 앉는 것처럼 올라탔더니, 네가 앞으로 삐그덕, 뒤로 삐거덕거리면서 일어서서 몸을 부르르 흔들었어. 그때 나는 좀 무서워서 눈을 꼭 감았어. 눈을 떠보니 내가 아빠 키만큼 높이 올라 와있는 거야. 신기하고 재밌었어.
에카필라는 엄청 푸석푸석한 털로 덮여있고, 등은 구부정하고, 발은 연꽃잎처럼 생겼는데, 콧구멍은 벌름벌름거렸지. 속눈썹이 무려 7cm나 되고, 눈동자는 블랙홀 같아서 보고 있으면 빠져 들어. 눈이 어쩌면 그렇게 이쁘지? 닮은 아이돌이 있는데 세븐틴의 에스쿱스라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돌이야. 그런데 너한테 소개해 줄 생각까지는 없어. 우리 세븐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포토카드, 응원봉, 앨범 같은 게 비싸져서 곤란해.
아마 에카펠라가 한국말을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했을 거야.
“어린애라서 가벼울 줄 알았는데 보기보다 무거워.”
그리고 내가 내리막길에서 걱정해줬을 때 에카펠라가 좋은 감정이 들어서 이렇게 말했겠지.
“친절한 인간이네.”
우리 에카필라가 진짜 좋은 게 뭐냐면, 사람 말을 알아듣더라. 내가 손잡이를 조금 뒤로 하면 뒤로 움직이고, 손잡이를 이리저리 움직이니까 방향 지시도 알아들었어. ‘너 이쪽으로 더 가면 옆에 사람이 싫어할 거야’하고 말하면 너는 그걸 알아듣더라. 너는 순수해서 나의 말을 알아들었지. 에카필라도 내가 좀 마음에 들었는가 봐. 그걸 어떻게 아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나도 에카필라를 좋아하게 됐어.
이전에는 한 번도 내 말을 알아듣는 동물을 만난 적이 없었어. 우리집 개, 감자는 어느 정도는 말을 알아듣는데, 나를 만나면 좋다고 마구 달려들어서 조금 부담스러워. 그리고 우리집 고양이 쿠키는 나하고 성격이 안 맞아. 말을 알아들으면서도 완전 자기 멋대로만 해. 반대로 행동하는 병이 있는지 나가라면 들어와 있고, 들어가라면 계속 나가 있을라하고 사회생활을 못해. 그러다 집에서 쫓겨나서 다른 사람들한테 츄르라도 얻어 먹으려면 잘해야 할텐데 츄르 얻어먹기는 글렀어. 그런데 낙타인 에카필라는 99.9% 마음이 통했어. 에카필라는 귀엽고 착하고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모로코의 좋은 친구야.
낙타 모는 아저씨가 내 핸드폰을 주면 너를 데려가게 해준다 했을 때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너를 비행기에 태워서 올 수가 없었어. 같이 비행기 타고 올 수만 있었다면 당장 핸드폰과 바꿨을 거야. 반려 에카를 생각하면, 집안이 더러워질 거 같은 걱정도 들어. 내 손가락만한 똥을 엄청 많이 싸더라고. 그래도 좋아. 너는 참 순수하고 귀여우니까. 귀여운 건 외관상으로 확인된 거고, 순수한 건 너를 타면서 알게 된 사실이야.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지만 너는 확실히 순수했어.
모로코 가서 가장 좋았던 건, 너랑 있을 수 있었던 거야. 낙타 중에서 네가 제일 순하고 네가 제일 귀엽고 네가 제일 크고 멋졌어. 에카필라야. 네가 참 착해서 우리를 잘 이끌어 줄 수 있었던 거 같아. 안전 운행해 줘서 고마워.
보고싶어. 그치만 아쉬운 건 없어. 다 좋았으니까. 그냥 에카펠라한테 좀 미안했어. 너한테 올라탈 줄 알았으면 살을 좀 뺄걸. 그래도 낙타 중에 네가 제일 컸으니까 조금 덜 미안해도 되려나? 에카필라야. 앞으로 가벼운 것만 싣기로 해줘.
2025년 1월 19일
ㅅㅎ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