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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는 영화 ‘푸른 호수’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안보신 분들은 나중에 읽어 주세요~~
영화는 ‘자장 자장 우리아가 잘도 잔다’는 자장가, 젊은 여성이지만 조금은 투박한 한국어로 시작합니다. 순간 한국식 영화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화면은 곧바로 한국인처럼 보이는 미국인이 (당연히) 능숙한 영어로 구직 인터뷰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백인인 어린 소녀가 딸입니다. 그런데 취직은 실패합니다. 폭력전과는 아니지만 절도범죄 경력으로 거절을 당한 것이죠.
딸과 함께 구직 인터뷰를 한 것인데, 그가 새 일자리를 찾은 것은 지금 아내가 출산중이라 더 많은 돈이 필요해서이죠. 동양인이면서 백인 딸을 데리고 취직 자리를 알아보고, 임신중인 아내가 있는 정체가 모호한 사람은 한국인도 아닌 미국인도 아닌 안토니오 르블랑이라는 입양아 출신 미국인입니다.
르블랑은 1988년 미국 가정에 입양된 한국출신 미국인입니다. 미국에서 미국인 부모 밑에서 자라 30여 년을 살았으니 의심할 바 없는 영락없는 미국인이죠. 그의 직업은 타투이스트로 가난하지만 성실합니다. 전남편의 무관심과 방치로 이혼한 캐시와 의붓딸인 제시를 진정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지만 출산을 앞두고 일자리를 찾는 중에 캐시의 전남편인 경찰관과 그의 동료에게 시비가 붙어 체포를 당하고 신원조회 중 미국국적이 없는 날벼락 같은 상황에 직면합니다. 당연히 미국인이라고 생각한 르블랑, 알고보니 입양한 부모가 국적취득을 하지 않았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르블랑이 글을 모르는 문맹(文盲)이라는 것이죠. 추방 위기 앞에서 캐시와 제시, 그리고 새로 태어날 아기를 위해 필사적인 고군분투가 펼쳐집니다.
절박한 상황, 그 와중에 르블랑의 삶을 볼 수 있는 두가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는 아내가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받던 날, 르블랑과 비슷한 동양인을 만납니다. 환자 면회카드 조차 잘 못쓰는 르블랑은 스스럼없이 글을 모른다고 하면서 씨익 웃고 갑니다.
다른 하나는 아내의 초음파 검사를 보고, 새로운 생명에 감동, 눈물을 흘린 르블랑을 보고 제시는 이제 (의붓)아빠의 사랑을 잃을지 모른다고 시무룩해 합니다. 학교에 가기 보다는 아빠와 (마지막으로) 신나게 놀고싶다는 제시의 억지에 르블랑은 자신만의 비밀의 장소인 ‘푸른 호수’로 데려가고 태어나는 아기 못지않게 제시도 사랑한다고 약속합니다. 제시도 환한 미소를 짓습니다.
르블랑의 데려간 곳은 ‘푸른 호수’, 자그마한 연못입니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푸른 호수’는 사실은 르블랑의 출생의 비밀, 혹은 비극을 의미합니다. 르블랑을 낳은 한국의 친모는 르블랑을 키우지 못하고 물에 빠뜨려 죽일려 하다가 차마 못하고 3살 때 미국에 입양 보냈죠. ‘푸른 호수’는 얼굴도 모르는 친어머니와 르블랑을 연결해주는 곳이기도 하죠.
이민국에 의해 추방될 위기, 르블랑은 캐시 어머니의 도움으로 보석금을 내고 나오지만, 변호사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 예전 친구하고 오토바이 절도에 나섭니다. 그 일을 캐시 전남편을 통해 알게된 캐시, 실망해서 친정으로 돌아갑니다.
한푼이 아쉬운 르블랑, 길거리에서 ‘타투하세요’ 하며 호객하지만 아무도 반응을 안보이는데 병원에서 만난 동양여인, 베트남 출신의 파커가 타투를 하겠다고 합니다. 오토바이에 태워 타투하는 곳 까지 이동하는데 헬멧을 쓰려는 순간 가발을 벗고 빡빡 깍은 머리를 보여줍니다. 암투병중임을 알 수 있었죠.
파커는 손목에 ‘플뢰르 드 리스’(백합) 문양 타투를 원합니다. 그러자 르블랑이 말합니다. 뉴올리안스에서 ‘플뢰르 드 리스’는 너무 흔하다고... 파커는 조금이라도 도와줄려고 했지만, 르블랑은 그녀가 내논 타투비를 받지 않습니다. 대신 파커는 저녁식사에 가족들과 함께 오라고 초청합니다.
이민국 추방명령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미국에 도움이 되는 시민이 돼야 하는데 절도전과자인 르블랑은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변호사는 양부모 중 살아있는 양모를 만나 신원보증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르블랑은 양부모가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하면서, 양모 조차도 안만나겠다고 합니다. 희망의 끈이 사라지는 순간, 캐시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양모를 만나야 한다고 하지만, 결국 입양 당시 양부모, 특히 양부의 학대, 무관심했던 양모를 증오한 르블랑의 어두운 과거와 만남, 결국 르블랑은 양모를 찾아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때 한국의 친어머니가 서툰 영어로 편지를 보냈고, 양부가 보라고 햇지만 안보겠다고면서도 나중에 찾아 읽은 것을 캐시에게 털어 놓습니다.
같은 정서의 동양인, 베트남인 파커의 식사모임에 르블랑은 가족과 함께 참석합니다. 영어를 못하는 아버지와 함께 사는 파커, 그런데 가족이 반밖에 없습니다. 1975년 베트남이 공산화되면서 파커 가족은 보트피플로 미국에 망명햇는데 파커 아버지는 가족을 반반으로 나눠 보트에 타게했고, 그 결과 아버지와 파커만 살아서 미국에 온 것이죠. 어머니와 오빠는 다른 보트에 타고 있었던 것이죠.
르블랑은 파커의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살면서 후회한 적이 없냐고? 파커의 아버지는 단호하게 ‘Never’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운명이 정해져있다거나 운명에 순응하는(karma) 동양적 사고방식인 것이기도 하죠. 그러면서 한국과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유사함이 많다는 말과 함께...
르블랑에게 마지막 타투를 부탁하고, 병세가 위중하더니 결국 병원에서 숨을 거둡니다. 그 순간 캐시는 출산을 합니다. 하나의 생명이 가고, 다른 하나의 생명이 오는 것, 동양적인 구도이지만, 삶과 죽음이 아닌 새로운 희망을 암시하는 메타포가 아닌가 합니다.
르블랑이 추방을 면하기 위해서는 이민국에 정식 이의제기, 재판을 하는 것이지만 이 경우 패소할 경우 다시는 미국 땅에 발을 들이지 못하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래도 가족과 떨어질 수 없어 재판을 걸었지만, 재판 당일 르블랑은 캐시의 전남편 경찰 동료 일당에 끌려가 폭행을 당하고 결국 재판에 참석 못해 추방됩니다. 재판장에는 출석 여부를 알리지 않았던 르블랑의 양모까지 참석했지만, 폭행을 당한 르블랑은 재판에 참석할 수 없었고, 간신히 몸을 추슬러 캐시를 찾지만 사정을 모르는 캐시는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이제 미국에서 추방, 한국으로 떠나야 할 르블랑, (파커에게 유산으로 받은 돈 같은) 제법 많은 돈을 캐시에게 ‘깨끗한 돈’이라며 한푼도 남기지 않고 전하고 이민국으로 떠납니다. 이민국 직원이자 친구가 호의를 베풀어 공항으로 가는 길에 ‘푸른 호수’를 들리게 하고 여기서 도망가도 쫒아가지 않을테니 도망을 가라고 넌지시 권해도 르블랑은 공항으로 가자고 합니다.
뒤늦게 르블랑이 재판에 참가하지 못한 것을 안 캐시는 제시와 갓 태어난 딸을 안고 공항으로 달려가 르블랑을 만나 어디든 따라가겟다고 합니다. 르블랑도 감동 함께 떠나자며 같이 갑니다. 그 순간 캐시의 전남편이 공항까지 달려와 제시 작별인사를 나눕니다. 이를 바라 본 르블랑, 생각을 바꿔 캐시와 제시에게 남으라고 하면서 갓난애기를 힘께 안았다고 다시 캐시에게 맡기고 떠나는 순간, 제시가 르블랑에게 떠나지 말아달라고 애원합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르블랑, 이 정도 고생했으면, 진정한 사랑을 보여줬으면 해피엔딩도 무방하겠는데 영화는 새드엔딩입니다. 같이 떠나겠다는 캐시와 제시를 말리고 미국에 남을라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민국 직원이 도망가라고 해도 도망가지 않았던 르블랑, 캐시와 제시 등 가족이 함께 떠나자고 햇을 때 잠시 흔들렸지만, 전남편이 공항까지 달려와 제시와 작별인사를 나누는 것을 본 르블랑은 버림받거나 상처 받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의 자신보다는 미국땅에서 캐시와 제시,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 태어난 아기가 살 환경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닌지요? 사랑하고 아끼기에 그들이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환경과 미래를 더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영화에서 캐시의 전남편은 가족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혼 당했습니다. 르블랑은 그런 캐시와 제시를 받아들이고 진정 사랑하면서 살아가지만, 어느날 캐시에게 제시를 사랑하는 아버지로 전남편의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캐시 전남편이 착한 남자로 변한 것이 영화에서는 개연성이 좀 떨어지지만, 이런 진정성이 연결됐기에 캐시의 전남편도 르블랑에게 적대적이지 않고 우호적으로 바뀐 것이 아닌가 합니다.
개인적으로 ‘푸른 호수’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베트남 출신으로 암투병중인 파커의 존재입니다. 같은 동양인으로 가족과 생이별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동질감 속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면서 보이지 않게 르블랑을 도와주는 역할은 르블랑의 처절한 노력이 자칫 캐시와 가족간 신파극으로 단조로울 수 있는 것을 막아주고, 르블랑의 진정성을 더 돋보이게 해주지 않았나 합니다. 그리고 이런 행위가 개인의 선의가 아닌 같은 동양인, 같은 비극을 겪은 사람들간의 연대의식으로 승화되었기에 더 아름다웠지 않나 합니다.
영화 속 배경은 뉴올리안스입니다. 르블랑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푸른 호수’이지만, 가족들과 함께 행복을 나누는 장소는 다리 밑입니다. 뉴올리안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영화에서는 주로 노을이 지거나 어두운 장면일 때 이 다리에서 르블랑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이 많이 나옵니다. 영화에서 다리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다리는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거지만, 어쩌면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과거에서 미래로 연결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르블랑(과 가족)이 다리를 좋아한 것은 어두웠던 과거의 공간에서 행복한, 밝은 새로운 공간으로의 이동을 의미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영화의 압권은 뭐니뭐니 해도 마지막 공항에서 르블랑과 캐시, 제시, 그리고 캐시의 전남편과 이별 장면입니다. 캐시가 어디든 함께 떠나자 했을 때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과 새로운 미래를 축복했지만, 제시와 친아빠 간의 헤어짐을 본 르블랑이 또다른 비극이 생기면 안된다는 생각에 캐시 가족을 남으라고 했을 때 슬프면서도 어쩔 수 없었던 르블랑의 선택이 이해가 됐습니다. 그러나 친아빠에게 무덤덤햇던 제시가 르블랑에게 떠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할때는 눈물 콧물이 펑펑 나올 뻔 하더군요. 옆에 앉아 관람하던 어느분은 손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너무 흐느껴서 낙화가 흐느낄 틈이 없었습니다...
* 영화 ‘푸른 호수’는 할 얘기가 너무 많아서 못다한 얘기는 2부에서 계속합니다.
* 매주 일요일마다 예술성(?) 높은 영화만을 엄선하고 이어 문화걷기를 진행하시는 피피사랑님에게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다만 이번에는 낙화가 흐느꼈다는 등의 가짜뉴스를 퍼뜨렸는데 진짜 울림과 감동, 긴 여운을 접할 수 있는 대박영화입니다. 관람을 추천드립니다.
* 영화의 OST라 할 린다 론스타트의 'Blue Bayou'입니다. 영화에서는 캐시 역의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파커의 저녁식사 모임에서 멋지게 불렀죠.
첫댓글 보고픈 마음에 세세히 읽지는 않았어요~
낙화님의 큰 눈에 그렁그렁했을 눈물만 상상했어요~ㅎ
보고 집에 온 후에도
시리도록 푸른 호수가 계속 맴돌았어요!
또한 영화의 배경인 뉴올리언스가 색감으로도 주인공의 삶의 터전을 몰입할 수 있었는대요
찾아보니 각각의 인물들에게도 컬러를 부여!
시각적인 이미지부터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를 다양하게 해석, 부각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해요
안토니오에게는 어린 아이, 햇살, 태양 동시에 빨리 더러워지고 쉽게 변색될 수 있는 노란색으로 표현
국가와 부모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채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 그럼에도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희망과 온기를 담았다고 해요
아내 캐시는 가난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를 상징하는 푸른색과 흰색으로 표현
또 이렇게 지정된 각각의 컬러는 인물들의 옷과 집, 커튼, 소품 등을 구성하는 지표로 활용됐다고 하니
눈여겨 보며 감상해 보세요~~~^^
아고~ 맘이 넘 무거워지는 영화네요ㅠㅜ
아무것도 아닌듯 했던 일상의 소중함을 크게 알아진 지금..
뉜가의 소중함을 쉽게 무심히도 툭!!
삶이란 이악물고 철봉에 매달리지않아두 이악물어야는 ..
여러각도에서 많은걸 던져주고 생각하게하네요
ㅣ박2일 쉬지않고 애기할ㅈ꺼리가 ..ㅎㅎ
푸른호수 품고 사는 우리 모두에게
응원합니다
나에게도 홧팅
첫번짼 정신없이 몰입했으니,
낙화님의 후기글과 피피님의 컬러에 관한..
한번더 보면서 더 깊게 눈여겨 봐야겠어요
영상미에도 홀딱 반해서 아직두 헤어나지 못하는 오늘입니다
낙화님 후기보니 영화 속
'시리도록 푸른 호수'만 보고싶네요...
눈물때문에 눈이 붓는건 시러요~
새드엔딩은 더더 싫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