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종 선생은 40살 즈음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이미 부자였던 그는 자기의 소유를 가난한 이웃들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재산 얼마를 면사무소에 가져다주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달라고 했는데, 그게 여의치 않은 것을 알고 자신이 직접 나누어주기도 했습니다. 친척들에게 땅을 주고 집을 지어주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이발 도구를 사주어 자립의 길을 열어주기도 했습니다. 나들이를 할 적에는 반드시 ‘나눔 돈’(구제비)을 챙기고 다녔습니다. 그는 불쌍한 거지를 만날 때마다 얼마의 돈을 주었으며, 자기 옷을 거지 옷과 바꿔 입기도 했습니다. 사경회에 참석 차 광주에 들른 그는 광주천변에 움막을 치고 있는 거지들에게, 그가 가져갔던 2-3일의 먹을거리를 몽땅 주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사경회 내내 굶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나눔살이는 선생에게는 죽을 때까지 일상사(日常事)였습니다. 선생은 말했습니다. “자기가 쓸 돈에서 떼어내어 구제해야 참구제이다. 먹을 것 다 먹고 입을 것 다 입고 쓸 것을 다 쓴 다음에 구제하는 것은 값없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그의 재산을 광주노회에 몽땅 바쳤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남은 것은 바가지 세 개뿐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살다보니까, 그는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일부러 가난하게 살았고, ‘청빈하게’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