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를 찾아
최 순 태
화창한 가을날이었다. 지구상 최대의 역병인 코로나19 창궐로 우리들은 심신은 지쳐만 가고 무기력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이를 헤쳐 나가기 위해 일종의 돌파구가 필요하였다. 이즈음 곡창지대인 의성 안계 출신의 문우가 문화 및 문학 탐방을 제안하였다.
흔쾌히 동참을 약속한 문우들은 집합장소로 약속시간에 맞추어 서둘러 도착하였다. 그곳에는 우리들을 태우고 가기 위해 대여한 봉고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자동차에 올라 오늘의 운전사 겸 해설자로 변신한 K박사가 일정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하였다.
당대 유명한 시인, 묵객들의 한시 작품 편액을 사방에 배치한 관수루(觀水樓)로부터 오늘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고려조 이규보와 조선시대의 퇴계 이황, 점필재 김종직, 그의 제자 김일손 등의 주옥같은 명문들이 사방에 걸려 있었다.
퇴계 이황은 한시 작품에서 이 부근의 아름다운 경치를 다 돌아보며 마음의 안정도 찾고, 감상도 하면서 머물다 가고 싶으나, 공무(公務)에 바빠 할 수 없이 떠나야 하는 안타까움을 토로하였다. 공무수행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마음이었다.
때마침 점심시간이 되어 이 지방 출신인 회장님이 본인의 고향 방문에 고마워하며 맛있는 민물고기 매운탕 식당으로 안내하였다. 식당에서 드넓은 낙동강을 바라보며 밥을 먹으니 마음도 상쾌하고 날아가는 듯 했다. 외국에 다녀온 문우가 귀한 술을 가져와 반주로 들이켰다.
식사 후 다음 장소로 이동 중 차창가로 보이는 누렇게 익은 벼가 가득한 논은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 화사하다. 익어가는 사과와 감도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하였다. 저절로 눈이 정화가 되고, 시적인 감흥에 젖어들었다.
일행은 유서 깊은 삼수정의 회화나무에 이르렀다. 문화재인 수령 3백년인 회나무의 자태가 아름답다. 한 아름이 넘는 나무를 돌아보고 삼수정에 들어서니 방이 건물의 중앙에 위치한 특이한 구조이다. 우리나라에 이러한 건물이 여러 채 있다고 동행한 선배가 이야기 하였다. 이 회나무 인근에서 많은 정승들이 배출되었다고 전한다.
이어서 우리들은 낙동강 선착장으로 이동하였다. 의성군 관광사업인 청년통신사선 율정호를 타기 위해서이다. 낙단보(좌안) 선착장에서 출발하여 중동교를 돌아오는 여정인데 11km의 거리를 45분에 다녀올 수 있다.
율정호는 조선전기 문신 박서생이 일본에 통신사로 갈 때 타던 배를 재현한 것이다. 선착장 주변에 코스모스와 핑크뮬리가 흐드러지게 피어 아름다웠다. 구명조끼를 입고 승선하여 해설사로부터 관광안내를 받으며 시원한 바람을 온몸에 쐬고,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였다.
상주 지방으로 들어서서 서애 류성룡 선생의 3째 아들인 수암 류진의 후손들이 자리 잡은 수암 종택을 방문하였다. 그 당시 초가이었으나, 류진의 7대손인 낙파 류후조 대감에 의해 현재 형태의 종택이 세워졌단다.
정문을 들어서면 사랑채와 녹사청(祿使廳)이 있고, 중문을 거치면 안채이고, 안채 왼쪽에 사당이 위치하고 있다. 안채 마당에는 비가 와서 땅이 질척해지면 사람들이 걸어 다니기 쉽게 징검다리 모양의 돌을 일직선으로 깔아놓은 모습이 이채로웠다. 녹사청은 녹봉을 지고 오는 관리들을 대접하는 곳이며, 조그만 현판에 일삭 3전(一朔 三錢)이라 표기되어 있었다. 즉, 한 달에 3전을 받는다는 뜻이다.
문우들이 한꺼번에 집을 방문하자 문중대표인 후손이 황급히 나와 우리들에게 낙파 선생의 문집이나 교지 등을 보여주며 상세한 설명을 하였다. 명문가 후손의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툇마루에 늘어놓은 수확한 고구마가 정겨웠다. 후손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는 대구시의 공무원 선배였다. 이제가지 고택을 방문하여 후손을 만나볼 기회가 잘 없었는데 오늘 우리들은 행운이었다.
다음 일정 때문에 수암 고택에서 나와 차에 올랐다. 오늘의 안내자가 낙파 선생에 대한 일화를 전해 주었다. 어느 겨울 벼슬길에 나선 낙파 대감이 눈밭에서 신음 중인 산모를 발견하고 산후조리를 해 주고 자기 집에서 몇 달 동안 머물러 하였다는 일화를 전해주었다.
그의 인간성과 인품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이 산모는 매일 대감을 위해 기도를 하였다 한다. 이러한 품성 때문에 조선 고종 때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류대감을 좌의정으로 삼기도 하였다. 나는 여기서 자기가 남을 위해 베푼 만큼 보답을 받는다는 불변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예천에 이르러 천연기념물 400호인 또 하나의 회화나무를 둘러보았다. 누렇게 벼가 익은 논 한가운데 위치한 회화나무는 수령이 5백년이 넘어서 나무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 나무는 담세목(擔稅木)으로 토지대장이 되어 있어서 상당한 세금을 내고 있으며, 나무 부근에는 해마다 동제를 지내는 제단이 있었다. 나무 이름은 황목근(黃木根)이며, 오래된 나무인지라 고목이 되어감에 따라 2세목을 심었는데 2세목도 20년이 다 되어간다고 한다. 2세목은 황만수라고 부른다. 특이하게 사람 이름을 붙였다.
우리나라에는 세금을 내는 나무로 3곳이 있는데 이곳 예천에는 석송령과 황목근이 있고 다른 지방에 하나가 더 있다고 한다.
숨 바쁘게 이어온 일정이 끝나고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전국적으로 유명한 예천의 용궁순대 식당을 찾았다. 오랜만에 모임에 참석한 회원이 그동안 자주 참석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기꺼이 식사를 제공하였다. 맛있는 국밥을 먹으면서 이곳의 명품 막걸리(영탁막걸리)로 반주를 곁들이니 운치가 있었다.
여행 예정시간을 훨씬 넘겨 오늘의 일정이 끝났다. 여러 곳을 둘러 많은 장소를 구경하다 보니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오늘 모임은 상당히 뜻깊은 행사였다. 다만 총무인 내가 준비를 소홀히 하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회원들의 만족도가 상당한 가운데 밀양방면으로 제2차 문학탐방을 하자는 의견이 있어 추진될 것 같다. 이번 여행을 기획하고 해설과 운전을 맡아 수고해 준 문우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멋진 풍경을 담느라 정신없이 카메라의 셔트를 눌러대는 원로 회원들의 열정에 감동하였다. 일행 중 한 회원은 오늘 찍은 사진을 편집하여 멋진 노래를 곁들여 멋진 영상으로 만들어 카카오톡에 올렸다. 깊어가는 가을 곧 시행될 밀양 주변 문학답사가 기다려진다.
(2020.10.12)
첫댓글 모두들 답답하게 샇아가는 요즘, 그래도 뜻맞는 사람들과 함께 문학기행을 할 수 있음이 부럽습니다.
익어가는 가을 들판이 그림처럼 그려지고, 고택과 누마루가 의미를 더하는 그런 글이었습니다.
. 잘 읽었습니다.
의성, 상주, 예천을 두루 다니면서 선조들의 문학의 향기를 마음껏 보고 느낀 여행인 것 같아 부럽습니다. 누런 가을 들판을 보러 한 번쯤 나가보고도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좋은 곳을 다녀 오셨습니다. 코로나라는 역병으로 몸과 마음이 한껏 움추려 드는 요즘, 뜻있는 분들의 모임에서 문화 탐방겸 문학기행을 하시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기행중 보고 느끼신 바를 생생하게 그려주어 앉아서도 여행을 함께 하는 기분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