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최복희 | 날짜 : 09-08-12 07:36 조회 : 1816 |
| | | 태종대 돌밭
추억의 편린들은 때때로 지병이 도지듯 아름다운 열병을 앓게 한다. 작열하는 8월의 태양 아래 연일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이맘때면 태종대 돌밭으로 달려가고 싶고 자갈들의 노래가 환청으로 들려온다. 어느 해 여름, 동해안 일주에 나섰다가 부산 태종대까지 갔었다. 이글거리던 해가 빨간 숯덩이로 스러져 바닷물에 잠길 무렵 도착해, 숙소를 정해 놓고 태종대 돌밭으로 나갔다. 반달 모양의 좁다란 만(灣)이 나그네를 아늑하게 품어 안았다. 찰랑대는 물가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동글동글한 오석(烏石) 위에 갈색 돌 하나가 눈에 번쩍 띄었다.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도 모르게 그 돌을 주워서 잠바 주머니에 쏙 넣었다. 그리고는 돌밭에 앉아 어둠이 짙게 깔리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원초적인 편안함을 느꼈다. 파도가 밀려왔다가 뒷걸음칠 때마다 처얼썩! 차르르 차르르! 자갈들의 노래가 경쾌하게 들렸다. 바다 위에 뜬 초승달은 내게 윙크를 하며 오른쪽 산모롱이 뒤로 숨어버리고, 초저녁별이 여물어 가며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그 정경은 내가 고개를 치켜들지 않고도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눈앞에 펼쳐졌다. 아름다운 자연의 섭리에 가슴 떨리는 시정(詩情)으로 신열이 났다. 신비롭고 경외스러운 풍경을 혼자 보기 아까워 핸드폰을 열어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 바닷가의 전경을 말해주고 자갈들의 노랫소리도 들려주었다. 그곳은 군사보호 지역이여서 늦은 밤까지 머물 수가 없었다. 아쉬움을 달래며 돌밭을 거의 다 나왔을 때, 주머니의 돌을 꺼내 상점을 밝히는 불빛에 비춰보았다. 조개껍질처럼 고운 무늬가 새겨진 예쁜 돌이다. 난 갖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돌아서 오석 자갈 위에 살며시 내려놓으며 다시 너를 보러오겠다고 약속 했다. 아직도 그 돌이 제 자리에 있을까. 이렇게 여행은 인생의 손꼽히는 즐거움이다. 떠날 때는 낯 선 체험에 설레며 감탄하고 돌아와선 두고두고 아름다운 추억에 젖어 삶의 활력을 준다. 내 마음의 새겨진 그 돌이 또다시 나를 유혹하는 계절이다. “처얼썩! 차르르 차르르!” 자갈들의 노래와 함께. |
| 임재문 | 09-08-12 08:34 | | 저같으면 덥석 품에 안고 돌아와 나무좌대에 앉혀 놓고 두고 두고 볼 것인데, 거기 그렇게 다소곳이 추억의 편린을 모셔두고 오신 최복희 이사님의 그 마음 알 것만 같습니다. 이제 그 추억을 찾아 가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자리에 그대로 있어도 좋고 아니면 멀리 떠났더라도 마음속에 간직한 추억은 영원히 살아남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
| | 최복희 | 09-08-12 12:11 | | 네! 빨리 다시 가보고 싶은데 일상을 떠나기가 그리 쉽지않네요. 마음만 바빠집니다.ㅋ 또 추억을 씹으며 오늘도 마음은 그곳으로 향합니다. 고맙습니다. 읽어주셔서. 사진은 얼마 전에 해변시인학교가 열린 '대천욕장'입니다. 태종대 갔을 때는 사진 한 장 못 찍어와 더욱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 |
| | 이희순 | 09-08-12 09:32 | | 나는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고행의 방랑자처럼 하늘에 비낀 노을 바라보며 시인의 마을에 밤이 오는 소릴 들을 테요
선생님의 글월 대하고보니 제가 좋아하는 정태춘의 '시인의 마을'이 떠오릅니다. 선생님은 그 바닷가에서 기어이 밤이 오는 소리도, 별들이 우슥우슥 여물어가는 소리도 들으셨군요. | |
| | 최복희 | 09-08-12 12:14 | | 역시 마음이 통하시는군요. 초록은 동색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글 한 줄로도 정이 오가고 있다고 봅니다. 선생님의 좋은 글 읽게 해 주십시오. | |
| | 임병식 | 09-08-12 09:45 | | 낙조 드리워진 태종대 바닷가에서 사색에 잠긴 모습이 그려집니다.
돌멩이 하나라도 마음대로 가져오지 않는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초승달을 본 지가 참 오래됐습니다. | |
| | 최복희 | 09-08-12 12:18 | | 이 무더위에 어찌 지내세요. 여수는 바다가 근접해 있어 회장님은 바다의 정취를 자주 느끼실 수 있겠지요. 초승달 보기가 쉽지 않더군요. 늘 관심가져 주시고 격려말씀 감사합니다. | |
| | 윤행원 | 09-08-12 11:26 | | -조개껍질처럼 고운 무늬가 새겨진 예쁜 돌이다. 난 갖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돌아서 오석 자갈 위에 살며시 내려놓으며 다시 너를 보러오겠다고 약속 했다. 아직도 그 돌이 제 자리에 있을까.- 그 아까운 돌을 그대로 놓고오는 자연사랑에 감탄을 합니다. 돌채집하는 사람들, 침 꼴깍 삼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ㅎㅎ..아름다운 심성이 맑은 바닷물처럼 전해옵니다. 부산은 어디를 가도 괜찮은 동내입니다. 골목골목 내 추억이 알알이 배인 곳입니다. 나는 부산을 사랑합니다. 최복희 선생님, 부산소식 감사합니다.. | |
| | 최복희 | 09-08-12 12:24 | | 윤선생님은 언제나 자유롭게 유랑하실 수 있는 여유가 있으신 분 같아요. 늘 좋게만 봐주시는 윤선생님 덕분에 기가 살지요.ㅎㅎ 항상 호탕한 웃음이 곧 터져나올 듯한 선생님의 얼굴을 뵈올 때는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고맙습니다. | |
| | 양순태 | 09-08-12 18:22 | | 푸른바다 끝없는 수평선 하얀파도 끼륵끼륵 갈메기 비릿한 바다내음... 태종대의 밤 바다를 추억 하시는 최복희 선생님의 글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봅니다. 그 예쁜 돌과의 인연이 다시 이루어지는 날, 재회의 기쁨에서 태어날 태종대 돌밭 제 2탄을 기대해 봅니다. 시원한 파도소리 들으며 최선생님 모습만큼이나 고운글 감상에 즐거웠습니다. | |
| | 최복희 | 09-08-12 20:45 | | 꼭 그렇게 되었으면 해요. 다시 그 돌을 만날 수 있다면 행운이겠지요?ㅎㅎ 함께했던 시간들 즐거웠어요. 댓글 고맙습니다. | |
| | 정진철 | 09-08-12 18:30 | | 최선생님 바다는 어머니의 눈물이랍니다 . 새끼를 험한 세상에 내놓고 안쓰러워서 흘리는 눈물이랍니다, 그러나 슬픔의 눈물은 아니고 보살피는 마음이랍니다. 그래서 바다를 보변 초근해지고 아늑하고 안기고 싶고 그렇게 되는것 같습니다 | |
| | 최복희 | 09-08-12 20:48 | | 네! 맞는 말씀이예요. 바다는 하루 종일 바라다봐도 싫증이 나질 않는 것 같아요. 잠시도 머물지 않고 생동하면서도 세상 모든 것을 다 포용할 것 같은 깊고 넓은 품이지요. 감사합니다. | |
| | 이진화 | 09-08-13 01:13 | | 최복희 선생님,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가슴이 출렁댑니다. 그렇게 풍성한 감성으로 바다를 만나시니 새들이 찾아오는 집까지 바다내음이 따라올 것 같습니다. 아프시던 목을 좀 나으셨는지요. 남은 여름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빕니다. | |
| | 최복희 | 09-08-13 20:49 | | 이진화 선생님! 몸은 늙어도 감성은 언제까지나 변치 않았으면 좋겠어요. 늘 저를 좋게 봐주시는 이선생님 마음에 온정을 느낍니다. 월당 조경희 선생님 추모극에 함께 하지 못해 참 아쉬워요. 극의 주요 부분을 맡으신 이선생님 기대가 됩니다. 아주 잘 하실거예요. 목은 좀 나았습니다. 요즘 한약을 먹으며 달래고 있습니다. ㅋ 이선생님도 건강 조심하세요.!!!! | |
| | 박영보 | 09-08-13 02:49 | | 장미나무를 도둑질 하기 위해 사전에 치밀한 작전계획까지 짜기도 했던 전과자인 제가 지금 언도 공판정의 판사앞에서 재판을 받고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저는 지금 선생님께서 도로 놔두고 오셨던 바로 그 자리로 달려가고 싶은 도심이 발동할 것만 같아 마음을 추스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설령 그곳에 가서 돌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날름 집어올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선생님의 이 글과 얼굴이 떠 오를 것 같아서요. 그 정도까지의 파렴치범까지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일말의 양심에서일까요. | |
| | 최복희 | 09-08-13 21:17 | | ㅎㅎㅎㅎ박선생님! 개구쟁이 소년 같은 기분이 듭니다. 손주 보신다더니 마음도 글도 순진무구하십니다. 주제가 있는 굳은 심지만 빼 놓으면요. 선생님의 수필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를 읽었기에 친근감이 들지요. 가끔 사모님의 동문서답에 자지러지고, 요절복통하신다는 것만봐도 정 많고 소탈하시고 재미있는 분 같아요.ㅎ 이역 만리 타향에 계시는 분과 이렇게 정담을 나눌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자체에 가끔 놀라고 국민소득 100불도 안 될 때 어린 시절을 보낸 생각하면 행복의 극치를 느끼기도 합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쓰십시오. | |
| | 일만성철용 | 09-08-20 00:47 | | 가져 가지 말라는 로키산맥의 무늬가 있는 둥근 돌, 사하라 흑사막의 구릿빛 돌, 반출을 금지하는 제줏돌 등을 자연을 탐내는 것은 불심이라고 가져다 놓고 보는 ilman 같은 사람에게는 거시기가 되는 글이네요. 최 작가의 글은 갈수록 무르익어 가는 과일과 같이 멋있습니다. | |
| | 최복희 | 09-08-20 07:44 | | 일만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선 그 돌들을 귀하게 잘 보관하시지만 전 사실 그럴 재주가 없거든요.ㅎㅎ
세월이 흘러도 여전하신 모습에 존경합니다. | |
| | 김창식 | 09-09-02 16:46 | | 예쁜 돌을 그 자리에 놓고 오셨군요, 최 선생님. 바닷물에 씻기어 더욱 반짝이리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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