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추성훈’이라는 격투기 선수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선수는 제일교포 4세로서 ‘아키야마 요시히로’라는 일본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1975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후 유도선수 출신의 아버지 영향으로 3살 때 유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유도 실력으로 유도명문 고등학교로 스카웃되어 많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한국국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태어났고 오랫동안 일본에서만 살았으면서도 일본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일본 유도계에서는 추성훈선수를 일본으로 귀화하라고 권유했습니다만, 그 때마다 아버지 추계이씨는 그에게 “할아버지 나라인 한국에서 태극기를 달고 한국인의 기상을 떨치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는 모든 운동선수가 그러하듯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싶었고, 자신의 조국인 한국의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가슴에 안고 1998년 4월 한국으로 건너오게 됩니다. 당시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본에서 살았지만 마음은 한국 사람이니까요. 한국 국가대표가 하고 싶다고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으니까 귀화 하지 않고 한국에 왔습니다.” 그는 부산시청 팀에 들어가 유도선수로 활동했습니다만, 이번에는 반대로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한국 유도계의 텃세와 파벌싸움에 따른 편파판정으로 번번이 판정패하게 됩니다. 낙담과 좌절이 되었지만, 어떠한 말도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판정’이 아닌 ‘한판승’으로만 승리를 따내자고 결심하고 훈련에 훈련을 거듭합니다.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어 2000년 코리아오픈 유도대회에서 준결승, 결승 모두 한판승을 거두면서 우승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열린 몽골 아시안 선수권 대회에서도 전경기를 한판승을 거두며 우승을 하게 됩니다. 그의 미래가 활짝 열린 것 같았습니다만, 아시안게임 출전을 위한 한국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다시 한 번 파벌의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특정대학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가대표에 떨어지고 맙니다. 결국 그는 더 이상 한국에서 활동할 수 없음을 깨닫고, 2001년 9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일본 국적을 취득합니다. 그리고 일본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당당히 우승을 하고, 이듬해에 있었던 아시안게임에 일본대표로써 출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그의 유도인생에 회의를 갖게 했던 바로 그 장소, 부산 아시안 게임에 일장기를 단 유니폼을 입고 출전하게 되었고, 하필이면 결승전에서 한국선수를 만납니다. 그리고 승리를 거두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됩니다. 그 때 당시 한국의 <스포츠조선> 1면에 이런 기사제목이 대문짝만하게 실렸습니다. "조국을 메쳤다." 그리고 그 밑에 ‘추성훈이 아키야마가 되어, 유도 금’이라고 부제를 달았습니다. 지금은 그가 격투기선수로 변신하여 활동하고 있지만, 당시를 회고하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전 일본에 살 때는 한국인이었는데, 한국에 살 때는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추성훈선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외국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로서의 아픔이 마음속에 아련히 느껴졌습니다. 그는 재일교포 4세였지만 일본에서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또한 한국에서는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은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추성훈선수 같은 어려움을 겪은 사람이 나옵니다. 다윗입니다. 다윗도 추성훈선수처럼, 조국인 이스라엘에서는 사울 왕의 견제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이민을 간 블레셋에서는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또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다윗은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죽이고 조국인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칭찬이 아니라, 시기였습니다. 그가 받은 것은 상이 아니라, 칼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해 도망을 다니다가, 더 이상 이스라엘 땅에서 살 수 없다고 생각한 끝에 블레셋 가드 지역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여러분, 블레셋이 어떤 나라입니까? 대대로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는 나라가 아닙니까? 다윗이 쓰러뜨렸던 골리앗 역시 블레셋 가드 출신입니다. 그러나 당시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해 10년째 피난생활을 했기 때문에 너무 지쳐 있었고, 더 이상 이스라엘 땅에서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부하 600명과 가족들을 데리고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해 원수의 나라인 블레셋의 아기스 왕에게 망명을 요청하였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블레셋으로 도망을 가면 사울 왕이 더 이상 쫓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윗은 블레셋의 아기스 왕으로부터 시글락이라는 성읍에서 살 수 있는 허락을 받게 되었고, 거기에 머무른 16개월 동안 사울 왕이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편안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시글락에 머무른 지 16개월이 되었을 때, 블레셋과 이스라엘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다윗은 자기에게 망명을 허락해 주며 호의를 베풀어준 아기스 왕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블레셋 나라를 위해 사울 왕이 이끄는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전쟁하기 직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불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들을 도와 이스라엘과 전쟁하는 도중에 오히려 자기들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했습니다. 결국 방백들의 충고를 들은 아기스 왕은 다윗과 그의 부하 600명을 시글락으로 돌려보냅니다. 그런데 다윗이 사흘 만에 시글락에 돌아와 보니 그가 없는 사이에 아멜렉이 침입하여 많은 물건들을 약탈해가고 아내들과 자녀들은 포로로 끌어가고 성은 불에 타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입장에서 볼 때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10년 동안 사울 왕을 피해 다니며 고생하다가 16개월 전에 이곳으로 어렵게 이사를 와서 터 잡고, 이제 좀 살만하다고 생각했는데,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되었으니까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4절에서,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울 기력이 없어질 만큼 소리 높여 통곡을 했습니다. 그런데 더 서글픈 것은 10년 이상 엄청나게 고생을 하면서도 자기를 따르던 부하들의 배신이었습니다. 6절을 보면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10년 동안 그를 따르던 부하들이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부하들은 다윗이 자기들을 블레셋 땅인 시글락으로 인도하였기 때문에 집과 가족을 잃은 것은 다윗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다윗을 원망하면서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그 동안 10년 이상 사울 왕의 추격에 오는데도 흔들리지 않았고, 블레셋 사람들이 의심을 해도 꿋꿋하게 인내했던 다윗이었습니다. 그런데 10년 이상 자기를 따르던 부하들이 돌로 치려고 할 때는 다윗도 흔들렸습니다. 한 번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10년 동안 믿었던 부하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 위험에 빠진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참담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