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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실 왕을 고대하라!
성경 : 사 11:1~10
찬송 : 104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21204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사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사 11: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사 11: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사 11: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사 11: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사 11: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사 11: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사 11: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사 11: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사 11:10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왕이 될 아기가 탄생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전 세계 사람들이 축하했습니다. 돈이 많거나 적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상관없이 방방곡곡에서 많은 사람이 축하와 선물을 계속해서 보냈습니다. 왕이 될 아기가 태어나는 그 아름다운 순간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기대감은 높아져만 갔습니다.
이것은 고대 어느 왕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2013년 영국의 캠브리지 공작 부부인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왕세손비의 아들 조지 왕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당시 사람들의 기대가 너무나도 커서 ‘아기 왕자 열풍’(ROYAL BABY FEVER)이라는 말이 생겨나기까지 했습니다.
왕이 없는 나라까지도 영국의 왕좌에 앉게 될 아기의 탄생 소식에 열광하며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용감한 기사가 공주를 구출하고, 그녀와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는 동화를 떠올렸습니다.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은 미래에 관한 희망과 기쁨과 가능성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소망과 열망, 기대와 기쁨은 교회가 기념하는 성탄절의 핵심입니다. 그리스도의 성탄절을 기념할 때, 우리는 메시아를 고대했던 AD 1세기 유대인들의 마음이 됩니다. 우리는 이제 메시아의 재림, 즉 왕이 다시 오셔서 모든 것을 바로 잡으실 그때를 기대합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약 700년 전에 기록되었습니다. 그중에는 유대인들에게 장차 오실 왕에 관해 알려 주는 예언이었습니다. 이 의외의 왕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입니다. 그분은 성령 충만하시며 하나님의 정의와 구속을 세상에 가져오실 것입니다. 오실 왕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과 우리가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백성에 속하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혈통에서 나실 의외의 왕을 고대하라!
우리는 그리스도보다 약 700년 전에 살며 오실 왕에 관해 예언했던 이사야와 함께 이스라엘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성경 이야기의 흐름을 돌아볼 것입니다. 그리고 오실 메시아에 관해 그가 했던 예언의 의미를 살펴볼 것입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뜻밖의 왕에 관해 이사야가 예언했던 바로 그곳에서부터 시작해 봅시다.
사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 예언이 기록되었던 때, 즉 바벨론으로 잡혀가기 수년 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셨던 약속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소망을 포기한 채 살아갔습니다. 그들의 나라는 더 이상 다윗이 세웠던 막강한 왕국이 아니었습니다. 끔찍한 영적, 정치적 결정이 이스라엘을 둘로 나누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수많은 악한 왕들은 나라를 쇠약하게 만들었고, 남 유다의 왕들은 그보다 조금 나았다 해도 역시나 다윗의 모범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사야서에서는 ‘심판’에 대해 나무가 베임을 당하는 것으로 자주 묘사했습니다(6:13; 10:33~34). “이새의 줄기”라는 말은 다윗 혈통의 나무가 이미 잘려 나가긴 했지만 아직은 살아 있음을 나타냅니다. “싹”이 나는 것은 다윗의 혈통이 새롭게 살아날 것임을 보여 줍니다. 그것은 회복될 것이고, 다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 줄기가 다윗 대신에 이새와 연결된 것은 새로운 시작, 근원으로 돌아감, 후대의 부패한 유다 왕들과 구별됨을 보여 줍니다. 다윗의 혈통이 이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다윗과 맺으신 왕위의 언약에 기초합니다.
삼하 7: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구속사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다윗 왕조는 스룹바벨과 같은 다윗의 후손들이 아니라(스 3장, 슥 4장)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주신 메시지는 소망이었습니다. 나라가 언젠가는 나무처럼 베일 것이지만, 하나님은 이새와 그 아들 다윗의 혈통에서 한 싹이 나게 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다윗을 왜 언급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잠시 그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시대를 보내면서 자신들도 이방 나라처럼 왕을 세우기를 원하였습니다. 왕을 원한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인간 왕을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국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셔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웠습니다. 사울은 잘생기고 힘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습니다. 그는 진실하지 못했고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의 왕위가 이스라엘에서 계속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사무엘은 이새의 집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고, 하나님이 거기서 새 왕을 택하셨습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들을 각각 살펴보았고, 마침내 목동이었던 다윗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을 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울을 이러 두 번째 왕이 된 다윗은 많은 정복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의 국경을 최대로 확장했습니다. 명실상부한 나라 경제, 군사적 패권을 쥔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다윗은 주님의 도우심에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건축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뜻을 거절하셨습니다. 그 대신 다윗의 왕조를 세워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의 후손 중에 한 사람을 통해 끝없이 이어질 영원한 왕국 말입니다.
이것이 이사야 11장 1절의 예언에 대한 배경입니다. 하나님은 이새의 아들 다윗 왕에게 주셨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기 위해, 죽은 것 같은 줄기에서 새로운 생명인 싹을 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절망적으로 보이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신실하실 것임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가장 위대한 선물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지 수백 년이 지난 후에야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어 다윗의 후손으로 나게 하셨습니다. 이 왕은 자신을 따르는 백성들을 인도하고 보호하고 돌보는 진정한 목자(쉐퍼드)가 되실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백성에게 필요한 것을 자신의 목숨보다 우선하고, 세상 죄를 위해 자기를 제물로 드림으로써 궁극적인 왕이 되실 것입니다.
아무도 왕이 될 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인물이 다윗이었습니다. 그가 왕이 된 일은 도무지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이외의 사건이었습니다. 장차 오실 왕이신 예수님의 탄생은 다윗 왕의 예상 밖의 등장과 닮았습니다. 예수님은 도무지 가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즉 이새의 줄기에서 난 싹처럼 오실 것입니다. 그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보잘것없는 가정에서 태어나시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 왕은 가난한 목수와 동정녀 사이에서 태어나셨습니다(마 1장). 궁전이 아니라 동물들 옆에서 태어나셨습니다(눅 2장). 오직 하나님만이 자기 영광을 위한 이 놀라운 계획을 세우실 수 있습니다. 다윗이 뜻밖의 인물이었듯, 예수님도 모든 사람의 예상을 뒤엎고 우리는 구원하는 왕이 되셨습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할 성령 충만하신 왕을 고대하라!
공의는 성경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사적으로든지 공적으로든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공의를 실현하러 이 세상에 오실 왕에 관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자세하게 살펴볼 것입니다.
사 11: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사 11: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사 11: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사 11: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앞에서 우리는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에 대해 어떻게 약속되었는지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본문을 계속 살펴봄에 따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가 지혜와 지식과 총명이 충만하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분은 지혜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메시아에 대한 이러한 묘사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이름을 알린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떠오르게 합니다.
솔로몬은 아버지를 이어 왕위를 계승할 때,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가 왕이 된 후에 기브온 산당에 가서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밤에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무엇을 줄꼬?”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대하 1:8 솔로몬이 하나님께 말하되 주께서 전에 큰 은혜를 내 아버지 다윗에게 베푸시고 내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니
대하 1:9 여호와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주는 내 아버지 다윗에게 허락하신 것을 이제 굳게 하옵소서 주께서 나를 땅의 티끌 같이 많은 백성의 왕으로 삼으셨사오니
대하 1:10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하니
솔로몬은 부귀영화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하나님은 그의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전무후무한 지혜의 왕이 된 것입니다.
솔로몬의 지혜와 정의감이 감탄스러울지라도, 이사야의 예언에 나오는 오실 왕과는 비견될 수 없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나오는 싹, 그분의 성령 충만한 지혜를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분 위에 여호와의 영이 강림하실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지혜와 총명의 영이 그분의 것입니다.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그분의 것입니다. 이 모두가 솔로몬이 잠언에 기록했던 왕에게 필요한 자질입니다. 이것들은 참된 분별력으로 통치할 왕에게 꼭 있어야 할 것들입니다. 요즘 정치인들이 흔히 말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무지, 무능, 무경험” 이렇게 되면 어떻게 나라를 통치하겠습니까?
지혜가 무엇입니까? 지식을 실제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며, 삶의 여러 어려운 상황들을 성공적으로 타개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총명이 무엇입니까? 분별력을 갖고 최선의 것을 선택하는 능력이며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능력입니다.
모략이 무엇입니까? 다른 이들에게 지혜를 전하는 능력입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난 싹은 지혜롭고, 담대하며, 자기 백성을 인도할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그는 자기 백성의 더 큰 유익을 위해 가장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왕이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계십니다. 그는 이전 모든 왕과 다를 뿐만 아니라 어떤 왕도 그분을 절대 따라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을 즐거움으로 삼을 것이며”(3절)을 보십시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은 감미롭고 향긋한 향기처럼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단 한 가지 소원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분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고 제대로 정확하게 심판할 분별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면에서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그분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재판관이십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많은 사람의 이야기들은 그들의 영적 상황을 평가하시는 예수님을 보여 줍니다. 성령님을 따라 평가하시기에 거짓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수가성 여인과의 대화가 나옵니다. 그분은 그녀의 성별과 문화 당시 상황을 문제 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다른 사람들의 말로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경제적 형편도 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공의를 완성하는 의로운 왕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을 때, 하나님의 공의가 완성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중보 하셨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모든 진노를 감당하셨습니다. 십자가야말로 하나님의 공의가 완벽하게 충족되는 곳이었습니다. 우리 죄는 심판을 받아야만 했고,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공의와 은혜를 동시에 보여 주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형벌을 받으심으로써,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의롭게 되었고, 그로 인해 죄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구속하시고 백성을 세우실 왕을 고대하라!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 예언에서 하나님이 왕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고 자기 백성을 세우시면 우리 삶의 모습이 어떻게 될지 보여 줍니다.
사 11: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사 11: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사 11: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사 11: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사 11:10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동물의 왕국>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먹이를 쫓는 포식 동물을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야생에서 동물들은 종종 전쟁을 치르곤 합니다. 1등만이 살아남습니다.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 새끼들을 돌보기 위해 먹이와 보금자리를 놓고 서로 싸웁니다. 우리는 자연에서 쉽게 포식자와 먹이의 관계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은 동물들이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리와 양, 표범과 염소, 암소와 사자, 아이와 독사가 조화롭게 어울려 삽니다. 먹이나 자원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지 않고 삶과 자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자연은 잔인할 수 있고, 인간 또한 야만적인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죄로 인해 피조 세계가 겪게 된 불행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이사야의 예언이 보여 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인간은 평화롭게 살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11장 9절은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서는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약속된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광경입니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 백성을 세우십니다.
딛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속량하시어 곁에 두시고,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게 하심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그분의 소유이며 그분의 백성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자기 소유로 주장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사야 11장에 묘사된 평화로운 세상은 그리스도의 미래 통치에 관한 예언입니다. 10절은 열방이 주님을 찾을 것이며, 주님이 거하시는 곳이 영화로울 것임을 알려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처음부터 나라를 세워오셨고, 그 나라는 복음을 통해 온전히 실현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과 부활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오실 왕과 그 나라에 관한 소식을 가서 전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성탄절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바치신 때의 초림 예수님을 돌아봅니다.
둘째, 하나님의 구속과 공의를 이룰 왕으로 다시 오실 재림의 주를 고대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구세주의 복음을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그분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사람들의 삶과 마음속에 성령님을 통해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시다. 그리스도께서 그들 삶에 찾아와 구원을 베풀어 주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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