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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와트 소개 | |
앙코르 와트는 세계 최대의 석조건물로 지은 사원으로 이집트의 피라밋, 중국의 만리장성와
더불어 세계 7대 불가사의인 건축물입니다. 이 수많은 돌을 어떻게 우반하였는지 절로 감탄이
나오는 "앙코르 와트"가 세계에 알려진 것은 1980년 프랑스 탐험가 앙리 모어가 밀림속의
유적을 발견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앙코르와트는 1119-1150년 사이에 쇼바만2세에 의해
약 2만 5천의 인력을 동원 30년간 걸쳐 지은 850m-1,050m의 크기를 가진 인류최대의
사원입니다. 12-3세기에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번성했던 앙코를제국은 당시 인구
100만의 거대한 도시였습니다.
아래의 항공사진과 비교하기바람
1.5Km-1.3Km의 인공호수를 둘레로 사방 약 1Km에 걸쳐 축조된 인류 최의 석조 건물인
"앙코르 와트"는 500년 동안의 영화를 이제 유적으로 인류에게 남겨 놓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사원입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중 동남아시아에 있는 "앙코르 와트", 그 웅장하고 거대한
사원은 관광객의발을 묶어 놓기에 충분한 매력이 있는 곳입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구름의 색상 대자연의 변화 앞에
어둠속에서 고요한 적막을 깨고 울리는 대문명의 태동의
장엄한한 소리가 드리는가?
앙코르 와트에서의 일출 한 마디로 장관이다 이 일출장면을 보고 싶었지만 보지 못하고 돌아오는 마음은 이루 형언할 수 없다. 이 대서사시의 크메르왕국의 기를 받아와야 하는데,,,,, 못내 아쉽다 |
캄보디아말로 사원은 "와트"다. 그리고 캄보디아의 말은 형용사가 뒤에 붙기 때문에
"와트 앙코르"해야지 앙코르사원이 된다. 그러나 유일하게 앙코르와트만 이 순서가
바뀌어져 있습니다. 이 말은 앙코르와트가 단순하게 사원을 의미하는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앙코르는 "도시"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국가들이 대부분 도시국가의
형태를 띠었기 때문에 도시는 국가라는 말과 동일 시되었을 것입니다. "와트"는 사원이니까
앙코르와트는 도시사원이라고 해석이 된다. 즉 도시와 사원의 기능을 하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앙코르와트를 가는 길은 옛날 유적지를 찾아 가는 길처럼 자그마한 길이 아니다. 아마 밀림을
뚫고 길을 냈을 것입니다, 아름드리 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고 자로 잰 듯이 계획된
도로가 나 있습니다. 이 길을 따라 위풍당당한 왕이 지나갔을 것이며, 수많은 군사가
보무당당하게 진군을 했을 것입니다. 또 당시 동남아의 대부분 국가들이 조공을 싣을
수레를 줄이어 끌고 이 길을 지났을 것입니다. 밀림을 지나면 확 트이는 호수가 나오고
멀리 앙코르와트가 보인다. 이렇게 앙코르와트는 수백년을 숨겨져 있었고 또 은둔하고 있었다.
마치 신비의 신전처럼...
앙코르와트는 앙코르 유적지 중 가장 큰 사원이며 또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크메르 건축
예술의 극치를 이루는 역사적인 예술품으로, 사원의 구성, 균형, 설계 기술, 조각과 부조 등의
완벽함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앙코르 와트는 석조 건축물로
만들어진 우주의 축소판으로 지상에 있는 우주의 모형입니다. 사원의 정 중앙에 세워진
중앙 탑은 우주의 중심인 '메루'산을 상징하며 5개의 탑은 메루산의 5개의 큰 봉우리를 나타냅니다.
성벽은 세상 끝을 둘러 싼 산맥을 뜻하며 둘러싼 호수는 우주의 바다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앙코르와트가 지니는 건축적의미는 3층 중앙 탑들이 있는 곳은 천상계, 2층은 인간계,
그리고 1층은 축생계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로 이 사원은 Suryavarman II의 장례를
치르기 위한 사원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것은 해가 지고 죽음을 뜻하는 서쪽으로 출입구가
나 있기 때문입니다. 양각 부조 또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며 조각되어 있는데, 이것도
힌두교의 장례식의 절차에 쓰이는 법도이므로 이 설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죽고나서 내세도 자신이 신이 되어서 영원불멸의 대제국의
번성과 유지를 위해 자신이 신이되어 헌정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왜냐하면 무덤으로 쓰이기에는 규모가 너무 크고 외곽의
모습으로는 왕궁의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전부 다 소멸되어 버렸지만 주변에
산재해 있었을, 금색으로 빛나는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목조건물의 대열을 상상해 보면,
과연 이곳이 무덤의 기능만 할 곳으로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또한 내부에는 도서관과 같은
기능을하는 곳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단순히 문이 서쪽으로 나 있습니다는 것만을 가지고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뒤쪽에서 바라본 앙코릐 전경
캄보디아에서 왕이란 지상에서 신의 대신하여 신의 능력을 부여받아 국가를 보호하고 국민을
통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것은 '우주의 지배자인 왕'이라는 종교적 호칭에서 우리는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신앙이 데바라쟈교로 이 신앙은 쟈야바르만 2세에 의해 국교로
지정되었고 전후 힌두교나 불교가 들어 와서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기본적으로 캄보디아인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이 신앙의 뿌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신앙을 중심으로
크메르 민족이 뭉치고, 왕은 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점에서
왕궁과 신전의 관계를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중앙에 보이는 계단이 원래 천상계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경사 70도 원래는 이 계단을 사용했으나 워낙 사고가 많이 섕겨서 중잉 계단은 폐쇄하고 지금은 양여의 나무계단 통로를 이용하는 데도 난간을 잡지 않으면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아침6시에 기상 호텔에서 식사후 7시30분에 출발하기로한다.10분전에 로비에에
도착해 전날 사놓은 티겥을 검사하는데 아불싸 호텔에 두고 타는 바람에
오늘 점심 커피를 쏘는 것으로 당첨되다.
잠시후에 크메르제국의 대문화 앙코르왓에 도착,
입구에서 대제국의 문명 앞에서 오늘의 관람 포인트.왜 이 1km에 달하는 홰자가 있는가?
궁금정은 금방 풀리다. 신이 통하는 대 신전을 건설하려면 신성함은 유지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1km에 달하는 연못에 해당하는 땅을 파서 그땅으로 대신전의 지주가 되고 그것을 유지하기위해
5-7m에 달하는 연못에 물을 가두어 그것으로 인한 수압을 유지해서 대 신전을 붕괴를 막았다는
사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1000년전의 건축술로 그것이 가능했을까?,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왕도
수호신 나가
수호신 사자상
왕도는 왕만이 통과하는 길이고,일반백성은 왕도옆의 선착장을 이용해서 배로 이동했다.
모든 신전 앞에는 사자상과 뱀의 형상을 하고 있는 나가가 수호신이다.
이때까지는 그렇고 그렇다는 생각으로 왕도를 걸어서 드디어 제1층의 탑문에 들어서는 순간
완전히 소름끼도록 아름다운 대신전의 웅장함에 할말을 잊었다. 어떻게 이런 대문명을
2시간으로 끝낼수 있나?. 언젠가 다시 오리다, 그때는 10일이고 20일도 좋다,완전히 당신의
매력이 어디까지 인지 완전히 뿌리 뽑고,구석구석 당신의 흔적을 그대로 생동감있게 뺏어갈게.
앙코르문화의 대표작 산물인 돌창살
벽면의 섬세한 조각부조
밝고 다니지 않는 모든 돌에는 조각이 되어 있다
제1탑문 통로에서 만나는 창조의 신 브라마
오랜 역사의 무게인가 왼팔이 떨어져 나가고 없네
그옆에 현재의 신,번영과 유지
8개의 팔을 가지고 있다,수리야바르만2세는 얼마나 많은
부귀영화를 꿈꾸고 사후에도 지배하기위해 이 비쉬누신에게
이사원을 헌정했을까?
비슈누 신이 팔에 지니고 있는 것
1. 왼쪽위의 손 : 원반(짜끄라)로 비슈누의 가장 중요한 무기이며 상징물 짜끄라는
고대인도에서 실제로 사용된 테두리가 칼과 같이 날카로운 무기. 이 원반을 태양에 비유하기도 함.
2. 왼쪽아래의 손 : 장식화된 곤봉, 곤봉은 가장 원시적인 무기이며, 비슈누의
곤봉은 힘과 권력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3. 오른쪽 위의 손 : 법라패, 종교적심볼로써, 신화에는 이 법라패가 바다에 사는 “반짜쟈나”라는
악마였는데, 크리슈나가 퇴치했따고 한다. 따라서비슈누가 이 법라패를 불면,
신들은 기운이 솟고, 악마들은 두려워 몸을 떤다고 한다.
4. 오른쪽 아래의 손 : 연꽃, 연꽃은 인도의 종교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꽃이 의미는 대지와 생명과,재생,창조의 의미를 나타낸다.
시비신의 동상이 왼쪽에 있었으나 파괴의 신이라서 대접을 못받고 있다.
현관 뒷면의 압살라 조각상
초기의 유적지에서와는 판이하게 다르다,아주 섬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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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관문을 통과해서 다시 신도를 걸어가면 양옆에( 장서각,건축의 자료를 보관해 놓은곳,도서관).
장서각을 지나면 연못속에서 앙코르왓의 대건축물의 신전을 지상과 수중에서
대칭장소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기록을(연못,가장 배경사진을 많이 찍는 곳) 남기고 코코넛
음료한잔하고 1층회랑으로 들어선다
잠시 열대과일로 목을 축이고
창조의 신 브라마,현재의 번영과 유지의 신 뷔쉬뉴, 마지막으로 파괴의 신 시바
, 필자는 여기서 창조와 번영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문명의 이기 지나치는
순간 파괴하고 새로운 창조를 위해여 나타나는 시바를 생각해 본다. 그대가 진정한 신이다.
대한민국의 장래 위해 이 시바신에게 헌정하고 정리하고픈 무리들이 있는데 시바신에게
묵념하고 술 한잔 정성껏 마음으로 올리면고 , 이 자리를 뜨고 싶다.
그대 시바신이여 흠향하소서!
첫댓글
그 자존심 센
프랑스인들이 앙코르와트를 보고는
오줌을 지렸다더라...
앙코르와트를 다녀온 사람들 대부분
다음에 꼭 다시 오마...라고 다짐을 한단다.
앙코르와트 1주일 출입 입장료는
정가의 40%란다...
앙코르와트 7일간의 탐방에
나도 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