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림욕과 더불어
칠월 셋째 목요일 아침나절은 장맛비 영향으로 소나기성 빗줄기가 흩날렸다. 이제 그렇게 세차지도 지루하지도 않던 장마는 끝물이 되려는가 보다. 그간 우리 지역 장맛비 강수량은 예년에 비해 많은 편 아니다. 지난해 가을 이후 겨울을 거쳐 봄을 지나 여름이 오도록 가뭄이 혹심해 곳곳의 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냈다. 대지의 열기를 식혀주는 빗줄기는 간간이 더 내려도 좋을 듯하다.
간밤은 20여 년 전 근무지 동료들과 모처럼 저녁 술자리를 가지려 한때 서울 강남에 못지않은 유흥가로 알려진 상남동으로 진출했다. 집에서부터 그곳까지 가는 길에 두 가지 일을 함께 해결했다. 용지호수 어울림 작은 도서관에서 빌려본 책을 반납하고 성산 아트홀의 전국 단위 미술 공모전 시상식과 전시 작품을 둘러봤다. 예전 근무지 동료가 출품해 수상한 작품들도 잘 감상했다.
코로나가 오기 전에 한 해 한 번 꼴로 만났던 예전 근무지 동료들이었다. 당시 교장이었던 분은 나와는 띠동갑 급이라 나이의 차가 큰 편이다. 이후 차례로 퇴직한 분들 가운데는 교장이 셋이고 교감이 한 분이다. 그새 연전에 내 나이 또래가 평교사로 명예퇴직한 이후 교사로서 정년까지 재직한 이는 내가 유일했는데 지난 이월에 교단에서 내려오니 현직에는 두 분이 남아 있다.
날이 밝아온 아침은 비가 흩날려 집안에서 느긋하게 보내다 이른 점심을 들고 길을 나섰다. 101번 시내버스로 대방 성당 근처로 가 성주동 아파트단지를 돌아갔다. 한낮이라 햇볕이 따가웠지만 바람이 불어와 무더운 줄을 몰랐다. 아침에 비가 왔던 관계로 지표면 복사열이 식혀져 보행에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용제봉으로 드는 등산로로 향하니 산행을 마치고 나오는 이들도 있었다.
올여름에 들어 벌써 서너 차례 찾아간 용제봉 산기슭으로 그때마다 영지버섯을 채집하고 있다. 많고 많은 사람이 용제봉을 찾지만 나처럼 배낭에 영지버섯을 따 나간 이는 없었을 테다. 이번 산행도 영지버섯을 찾아 나선 길이라 농바위와 평바위를 지난 상점령 갈림길에서 오솔길로 들었다. 창원터널로 드나드는 자동차 바퀴 구르는 소리는 멀어지고 계곡의 물소리가 가깝게 들렸다.
남향 산자락은 양지바른 곳이기에 소나무가 많은 편이고 오래전부터 살았던 불모산동 원주민들의 선산이 차지하고 있었다. 영지버섯을 만나려면 일단 기본적인 생태 환경이 활엽수림이어야 한다. 무덤과 소나무 숲을 지나니 활엽수림이 나와 그 가운데는 참나무가 보여 절로 삭은 고사목 그루터기를 살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면 참나무는 죽으면 영지버섯을 자라게 했다.
숲으로 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숟가락 만한 영지버섯을 두 개 찾았다. 모든 버섯이 그렇듯 영지도 포자에 의해 번식하기에 주변에 더 있을 개연성이 다분해 집중적으로 수색했더니 예상은 적중해 갓을 크게 펼친 영지버섯을 찾아낸 성과를 거두었다. 후손들이 벌초와 성묘를 위해 다녀갔을 희미한 길을 따라 해발고도를 점차 높여가면서 영지버섯을 찾았더니 기대만큼 딸 수 있었다.
꽤 높은 산자락까지 자손이 다녀가는 무덤이 있었는데 그들은 무성한 수풀에 성묫길 방향을 잃지 않으려고 막걸리를 비운 플라스틱병을 길섶의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았더랬다. 영지버섯을 찾느라 인적이 없는 산자락을 누벼 산등선을 달리해 비탈을 내려가니 전망이 탁 트인 개활지는 김해 김 씨 선산이 나왔다. 멀리 불모산 정상부 송신소가 아스라했는데 구름이 살짝 걸쳐 있었다.
산자락을 내려서면서도 영지버섯을 몇 개 찾아내 계곡에 이르니 맑은 물이 흘러 얼굴과 손을 씻고 물을 받아 마셨더니 아주 시원했다. 두세 시간 숲속을 누비며 삼림욕을 거뜬히 하고 영지버섯까지 제법 채집했으니 유의미한 산행이었다. 숲을 빠져나가 지정된 등산로에는 아까 지나친 상점령 갈림길이 나왔다. 이정표를 뒤로 하고 성주동 아파트단지로 나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22.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