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편린들
동천 딜레마
강 문 석
흡사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빌딩 숲에 발 디딘 것 같기도 하고 뉴욕 항을 마주보고 선 것 같기도 한 풍경이 펼쳐졌다. 때마침 파란 하늘의 하얀 뭉게구름까지 하천 수면에 투영되어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낸 부산 동천이다. 하천 주변에 63층짜리 부산국제금융센터와 같은 초고층 빌딩들이 스카이라인을 이루어 더욱 더 뉴욕 월스트리트와 같은 느낌을 안겨주고 있었다. 지난봄까지만 해도 하천을 살리느라 바닥을 파헤쳐놓아 악취까지 풍기던 하천이 불과 서너 달 사이에 천지개벽하듯 바뀐 게 놀라웠다.
동천을 처음 만난 건 나라가 그때까지만 해도 세계 최빈국 수준으로 허덕이던 1960년대였다. 암울하기만 했던 그때 대한민국에 신의 돌보심이라도 있었던지 목숨을 걸고 감행한 군사혁명은 성공했고 새로 들어선 혁명정부는 강력한 계획경제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흔히 회자되는 5천 년 묵은 가난을 씻어내기 시작하면서 산업화를 이룩하던 한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번영기였다. 세상사 모두는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다고 했던가. 경기호황을 타고 생산 공장들이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폐수와 궁색함을 겨우 떨치기 시작한 가가호호에서 배출하는 생활하수가 하천으로 무방비로 흘려들었으니 하천생태계는 어찌 되었겠는가.
삼사십 대 20여년을 새로 태어난 두 아이를 키우며 하천 인근 주택과 아파트에 살았던 사람도 동천 오염엔 자유롭지 못한 입장이라 무한책임을 느끼게 된다. 동천은 부산 당감동 선암사 계곡 뒤 백양산에서 발원하여 동구 범일동 부산만으로 이어지는 9킬로미터 가까운 하천이다. 흐르는 방향이 부산진성의 동쪽이라 동천이란 이름이 붙었다. 동천은 초읍동 백양산에서 발원하여 서면 영광도서 앞을 지나 합류하는 부전천과 금용산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흐르면서 연지동과 범전동을 지나 광무교 부근에서 합류하는 전포천까지 아우른다.
뿐만 아니라 엄광산에서 발원하여 도시철도 부암역 인근에서 합류하는 가야천과 동구 범일동 안창마을 위에서 발원해 현대백화점 뒤편으로 흘러내리는 호계천까지 합류한다. 현재 동천 상류와 4개 지류의 대부분 구간은 복개되어 원래의 하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오랜 세월 햇볕이 들지 않고 바람까지 잘 통하지 않는 복개 밑은 시궁창으로 변해 악취가 진동을 한다. 당감천과 부전천 합류지점인 광무교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3킬로미터만 하천으로 남았지만 복개한 상류 지천들에서 흘러드는 오폐수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대전 시내 한복판을 흐르는 대전천을 복개했다가 걷어낸 것이나 관광명소로 거듭난 서울 청계천도 동천과 같은 과정을 거친 후 다시 태어났다. 수원천은 환경단체가 나서서 기존 복개구간을 걷어내고 추가복개를 막은 성공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부산 동천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할 대목이 아닐 수 없겠다. 1960년대는 그때까지만 해도 부산 서면은 전포동 쪽에 논밭까지 남아있을 정도로 낙후지역이었다. 몸담은 직장에서도 기존 시내 쪽 사옥에서 볼 때 군부대 막사처럼 함석으로 만든 퀀셋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서면영업장 가까이에는 육군교도소가 일부 남아있었고 그 주변의 쓰러져가는 집들은 당시 10만원이면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서면지역은 도시의 변방이었는데도 유달리 공장시설이 밀집하게 된 건 아마도 사통팔달로 이어지는 교통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그때부터 공장들이 동천을 서서히 죽이기 시작하는 건 모르지 않았겠지만 그 누구도 환경문제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럭키화학 동성화학 건설화학 삼화고무 보생고무 국제고무 태화고무 동양고무 럭키유지 동산유지 동명목재 흥아타이어 원풍산업 제일제당 부전시장 부산진시장 남문시장 자유시장 평화시장 … 수도 없이 많은 산업체와 판매업소들이 모두 동천으로 폐수를 쏟아냈지만 하나같이 손을 놓고 방관하고 있었다.
산업체를 따라 사람들이 서면으로 몰리자 광복 남포동에서 흥행을 이어가던 극장과 유흥주점 호텔 사우나 심지어 요정 카바레까지 우후죽순처럼 서면에다 둥지를 틀었으니 당시 말 못하는 동천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뒤에 사상공단과 장림공단 신평공단 강서신호공단 창원공단 울산온산공단 양산유산공단 등이 생기면서 대부분 공장들은 떠났고 그 자리엔 아파트나 상업시설 빌딩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으니 폐수도 질만 약간 달라졌을는지 모르지만 분량은 오히려 늘어났을는지도 모른다.
흔히들 동천을 한국산업화의 태동이자 부산을 성장시킨 탯줄로 칭송하고 있다. 아마도 산업화의 희생양인 동천에 그만큼 연민의 정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다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을 앞두고부터는 썩은 동천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되자 본격적으로 동천 살리기에 나서게 되었다. 수질개선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유지용수 확보사업으로 해수를 부산항 입구에서 도수하여 서면 광무교 부근에서 방류하기 시작했다.
하루 5만 톤의 깨끗한 해수를 방류하자 동천의 수질이 5등급에서 3등급으로 개선되어 바다에서 숭어 떼가 찾아들었고 관할구청에서는 수질개선을 축하하는 숭어 낚시대회까지 열기도 했다. 하지만 바닷물을 흘려보내는 동천 살리기에 실효성 논란도 일었다. 수질개선을 위해 수십만 톤의 바닷물을 흘려보내더라도 수질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부산시는 2010년부터 하루 5만 톤에서 급기야는 25만 톤으로 늘이어 바닷물을 흘려 수질을 개선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수질 개선효과가 없어 20만 톤을 추가한다는 것이었다. 부산시는 공사가 마무리되면 유속이 약 4배가량 빨라져 오염물질을 씻어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하루 25만 톤의 바닷물을 흘려보낸다 해도 수질 개선에 큰 효과를 보기는 힘들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폭이 넓고 깊이도 4미터가 넘는 큰 하천이라 유속이 빨라져도 다시 오염물질이 쌓이게 될 것이란 우려에서였다. 하천 상부에 썩은 물이 유입되는 걸 손질할 생각을 않고 하부에만 매달려 혈세를 쏟아 붓고 있으니 기가 차는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부산광역시 전임 S시장은 선거공약으로 부전천 복원사업을 내걸었었다. 롯데백화점-광무교 간 750미터 복개를 걷어내고 옛 물길을 살려 운하처럼 만들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5백억 가까이 예산을 투입해서 벌이겠다는 사업이 5개월도 안 돼 백지화되고 말았다. 지역 상인들의 반발과 이해 당사자들의 앞잡이로 나선 환경단체들까지 복원사업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모처럼 전체 구간의 일부나마 근본적으로 되살려보려고 팔을 걷었다가 반대에 부딪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오늘도 관할 부산진구청이 만든 동천 쓰레기 수거용 작은 선박이 하천에 떠있다. 시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뜰채까지 갖추고 있는데 씁쓰레한 뒷맛을 남기게 한다. 근본적인 대책을 찾을 줄 모르고 이렇게 유치한 짓이나 일삼는 것이 오늘날 공복들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도 경제와 문화 그리고 정신가치까지 회복시켜 줄 미래로 부산이 급부상하고 있다고 장밋빛 진단을 내놓았다. 그러나 동천에 원래대로 숭어들이 떼 지어 노닐 수 있는 물이 먼저 흘러야 시민들도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왜 간과하고 있는지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복개 걷어낸 수원하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