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전태일문학상 / 강성남
방아쇠수지증후군 / 강성남
오른쪽 엄지가 말을 듣지 않는다
일자로 굳어 구부러지지 않거나, 기역 자로 구부러진 채
펴지지 않기를 반복한다
억울한 맘이 들었는지 자다가도 심통을 부린다
손가락 하나를 지나치게 부려먹었다
힘줄이 부어 마디와 마디 소통이 안 된다
물건을 집는 것은 물론 매듭을 풀거나
팬을 잡는 일, 문 여는 일조차 힘겹다
힘줄 몇 가닥이 손목과 어깨, 생활 전체에 통증을 준다
주사를 맞고, 레이저 시술 10분, 파라핀 요법 20분
탈니플루메이트 정, 에렉신 정, 아르티스 정
약 부작용이 있다하니 페니라민 정까지 처방해 준다
낫으로 무를 자르다가 검지를 잘랐던 어머니
국문과에 가고 싶다는 내게, 동생들은 어떻게 하냐고
내 꿈을 단칼에 자르셨다
나는 떨어진 지골이 되어 팔딱팔딱 뛰며 울었다
손에 화농이 잘 드는 큰 동생, 어머니의 첫 번째 손가락이다
이혼 후 새 가정을 꾸린 둘째
다니던 직장 나와 뒤늦게 자격증 준비하는 막내
모두 어머니의 아픈 손가락이다
오해의 톱날에, 가난 때문에
한순간의 실수로 잘려 나간 손가락들을 생각한다
왼손 정맥혈을 과도로 자른 적이 있다
솟구치는 피를 백지로 받았는데 동백이, 해당화가 피었다
누군가의 꽃이 되기도 했다
손가락 하나에는 X-ray로도 초음파로도 알 수 없는 비밀이 있다
온몸의 통점이 모여 있는 손가락 때문에
목숨의 방어벽이 무너지기도 한다
폐암 말기인 아버지는 손을 다쳐 손을 쓸 수 없어,
옷에 이불에 똥칠을 하셨다
다음날로 요양원에 보내야 했다
손은 짝을 잘 만나야한다. 손가락에도 눈과 귀와 감정이 있다
자신만의 주관과 고집이 있다
사랑했지만 그런 줄 몰랐던, 아꼈지만 가장 소홀히 했던
그는 내 오른쪽 엄지였다
노동해방, 인간해방을 부르짖으면서 스스로를 불살랐던 전태일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1988년 제정된 ‘전태일문학상’이 올해로 26회째를 맞았다. 이보다 13년 뒤에 제정된 ‘전태일청소년문학상’은 이번이 13회째이다.
올해 전태일문학상 응모작은 시, 소설, 생활·기록문 세 부문에 각각 750편(응모자 173명), 106편(87명), 104편(83명)이었으며, 예심과 본심을 거쳐 세 부문에서 각각 당선작이 선정되었다. 시 부문에는 이번 수상작품집의 표제작으로 게재된 강성남의 「방아쇠수지증후군」 외 2편이, 소설 부문에는 권행백의 「악어」, 생활·기록문 부문에는 일곱째별의 「유성기업 이야기」가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전체적으로 작품의 형식이며 어휘의 사용이며 주제의식이 젊어졌다는 인상을 준 시 부문 응모작 중 당선작 「방아쇠수지증후군」 외 2편은 “평면적인 구성과 산문체의 문장이 언뜻언뜻 보여 긴장감이 부족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체험을 구체적으로 담아 작품에 힘이 있고, 비유와 상상력의 사용으로 작품의 건조함을 극복했으며, 세계를 끌어안는 인식으로 휴머니즘의 가치를 심화시킨” 작품이라는 심사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