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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불공평 합니다! 라고 외쳤어야 했다. 오늘 오후에 실장에게 보여줬던 세일러문의 정의를 새로온 윤시우 팀장에게도 보란 듯이 내비췄어야 했다. 그래야 얕보지 않을 것이다. 새로 발령난 주제에 3년의 정으로 똘똘 뭉친 가족 같은 RTT 직원들을 간보려 하다니, 용서 할 수 없을 일인 것만 같았다. 그가 팀장이 아니었다면 응당 그러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도경은 낮에 보였던 용기는 이미 세련과 앉았던 벤치에 두고 온 듯, 저 인간이 무어라 씨부리는든간에 무조건 해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두 번 말하지만, 다시 찾은 직장 아닌가!
“이건 말도 안 돼”
맥주 한 캔을 이미 다 마신 후, 다음 캔을 톡- 소리 나게 따며 세련이 말했다. 세련의 말대로 이건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전 직원 봉급 10% 삭감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당장의 통장에 입금되는 액수가 다른데- 게다가 MP3를 질러서 생활비도 쪼개고 쪼개서 쓰던 참이었다. 그리고 나는 혼자 먹고 사는 자취생이 아니지 않는가. 고아도 아니고, 집에 가면 내가 먹여 살려야 하는 조카가 둘, 몸 불편한 언니와 늙은 아빠가 있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조금 이기적이기는 하지만, 나만은 제외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오픈 시간의 RTT가 시끌시끌해서 진정한 삶을 사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면 직원들이 퇴근한 RTT의 매력은 형언할 수 없는 편안함이었다. 오랫동안 집에 가지 않아도 집에 온 듯 한 포근함이 있었다. 세련과 일부러 다른 호프집을 찾지 않아도 분위기 좋은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퇴근 후, 울적한 기분이 들 때면 어김없이 세련과 맥주 한 캔을 부딪치는 곳이기도 했다.
“새로 온 팀장, 좀 괜찮더라?”
“그래도 결국 이쁜 여자한테 가는 게 남자야.”
그렇다. 지금까지 만나왔던 모든 남자는, 아무리 매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잘빠진 몸매가 착한 것이고 예쁜 얼굴이 매력적인 것이다. 순간 스무 살 나에게 아픔만을 안겨주었던 녀석이 생각났다.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 나를 팔아넘겨가며 여자 꼬시는 것에 일조했던 간덩이 부은 자식이었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에 들지 않다, 어떤 부분을 고쳤으면 좋겠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배신감은 컸었다. 결국 그 여자와는 오래 가지 못했더라는 소문만 들려올 뿐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른다.
“아, 뭔가 변화가 필요해”
“팀장 바뀐 걸로 아주 큰 변화 같다, 난.”
디저트로 나가는 조각 케익이 남아 안주로 먹고 있는 도경과 세련이 잔을 부딪쳤다. ‘딸랑-’그 순간 그들의 사이에서 나지 않았던 익숙하지 않은 소리에 도경과 세련의 신경이 곤두섰다. 재료를 보관하는 냉장고 냉각기가 돌아가는 소리, 조용한 실내에 장식으로 달아 놓은 시계의 초침소리 이외에 다른 소리가 들리자 들어가고 있는 맥주를 입에서 뗐다. 소리의 정체는 입구에 달아 놓은 작은 종의 소리였다. 이어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도경과 세련은 어두운 RTT의 편안함이 공포로 바뀌는 순간을 함께해야 했다.
“뭡니까?”
주위가 환해지고, 두 손을 꼭 잡고 있는 도경과 세련이 보였다. 도경과 세련은 밝은 빛 사이로 들어오는 윤시우를 발견했다. 여전히 건방진 태도의 모습과 ‘정말 할 짓 없는 사람들이로군’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을 것만 같은 눈빛, 더 말하지 않아도 도경과 세련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세련은 무의식적으로 맥주캔을 뒤로 숨겼고, 도경은 공포에서 다시 편안함으로 바뀐 RTT에 한숨 돌리고 있었다. 윤시우는 그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그냥, ㅁ...뭐.”
도경의 바보 같은 말더듬이 시작되고, 해맑게 웃어보였지만 윤시우의 표정은 돌아선 실장의 표정보다도 더 굳어져 있었다. 이제 죽었구나 싶은 도경은 민망함에 자신의 단발머리를 긁적였다. 민망함의 표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윤시우의 표정은 더욱 일그러졌다. ‘아마 나를 불결하다고 생각했겠지?’ 라는 생각이 도경의 뇌리를 스치고 지났다. 일순간 긁적이던 손도 뒤로 숨기게 된다. 아- 고등학교 학생주임 선생님의 용의검사 이후 이렇게 떨려본 적은 없었다고 장담한다.
“그..그냥, ㅁ...뭐., ……뭐요?”
윤시우는 바보 말더듬을 따라하는 듯, 도경의 해맑은 웃음도 따라하고 나서 얼굴의 모든 표정을 없앴다. 정색했다는 소리다. 그래, 윤시우 팀장은 ‘왜 이시간에 RTT에 있었는지, 집에 안가고 뭐하는 건지, 첩자는 아닌지’를 묻고 싶었을 것이다. 도경은 첫 만남에서 윤시우를 보고 들었던 생각을 다시 끄집어 올렸다. 스물여섯이라는 소리를 듣고 과감히 포기했던 생각이었다. 도경은 마음속으로 이미 윤시우의 인중을 피나게 긁어내고 있었다.
“퇴근 후에, 맥주 한 잔 하고 있었어요. 저희가 오늘 마무리라서.”
세련의 논리 정연한 대답을 들은 윤시우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 그랬군요’라는 등의 친절한 반응은 처음부터 없었던 듯, 자신의 짙은 눈썹을 들썩였다. 도경은 아마 ‘아, 그래?’라는 정도의 의미일꺼야 생각 하고 받아들였다. 잠깐 호감이다 싶었더니, 바로 비호감으로 바뀌어 주시는 카멜레온 같은 팀장님이 와서 어찌나 고마운지.
“그 술”
윤시우의 시선이 바닥에 찌그러져 있는 맥주캔으로 향했다. 혹시, 우리가 가게에서 훔쳐 먹었을까봐? 3년간 일 하면서 가게 물건 손댄 적 없거든! 도경은 괜히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쉽사리 입을 열 수는 없었다. 또 당황한 자신을 따라하며 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도경의 마음이라도 읽었는지 논리 정연하고 바른 사나이, 아니 바른 소녀, 아니 바른 아가씨 세련이 대신 대답했다.
“아, 걱정 마세요. 저희가 마트에서 사왔…”
“아니요. 그 술하고 같이 먹은 저 케익.”
세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시우 팀장은 세련의 말을 끊었다. 아, 케익. 도경은 뭔가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니 RTT에서는 와인이나 고급스러운 외국의 병맥주를 팔았지만 캔맥주는 팔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디저트로 남은 케잌은 어차피 버릴 것이었다. 하루 만든 케잌은 다음 날 팔지 않는 것이 RTT의 원칙이었다. 전혀 꿀릴 것 없었다.
“이건, 오늘 하고 남은거라”
이번엔 도경이 당당하게 말했다. 당당하게 말했지만 뭔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처럼 보였다. 윤시우는 여전히 변화하지 않는 표정으로 도경을 바라봤다. 도경은 배째라는 듯 눈을 한번 느리게 깜빡였다. 그 때, 윤시우 팀장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것을 도경이 발견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윤시우 팀장의 건방진 막말.
“거집니까?”
“에?”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라 당황한 도경과 세련의 표정이 멍해졌다. 도경의 당황함은 곧 황당함으로 이어졌다. 직원에게, 그것도 3년간 우수한 모범 직원으로 꼽힌 도경과 세련에게 ―도경은 고객이 뽑은 친절한 RTT에 6회 뽑힌 경력도 있다― 거지라니. 아무리 그래도 인간 대 인간으로 ‘거지’라는 말을 하다니. 지나가다 정말 ‘거지님’께서 들으면 어쩌시려고. 정말 듣는 거지 기분 나쁘게!! 윤시우는 늦은 시간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인식하게 하려고 팔목에 붙어있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힐끔 보더니 말을 이었다.
“새로 만들어 먹지, 왜 남은 걸 먹어요.”
Restaurant, Tip Top
“요리 하는 남자 처음 봐요?”
아니요. 절대 아니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싶었지만 도경과 세련은 빠른 시간에 멋진 까르보나라와 셀러드를 만들어 내는 윤시우 팀장의 새로운 면은 발견한 것이 놀라워 두 눈을 크게 뜨고 윤시우 팀장의 발걸음마다 종종 따라다녔다. 윤시우 팀장은 ‘새로 만들어 먹지, 왜 남은 걸 먹어요.’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팔을 걷고 주방으로 들어가 앞치마를 두른 후, 도경과 세련의 앞에 음식을 만들어 내 왔다. 도경은 혼란스러웠다. ‘거지’라는 단어를 직원에게 함부로 쓰는 사람이 1분도 지나지 않아 전혀 다른 모습을 내비추다니. 이 사람 다중인격자가 아닌가 싶은 착각도 해본다.
“오..와. 예술이다.”
“정말 맛있어요, 팀장님.”
요리왕 비룡이라는 만화에 보면, 볶음밥 하나를 만들 때 계란 물이 쌀 알 하나하나에 골고루 입혀지는 모습을 그려놓았다. 비룡의 표현 효과를 빌리자면 앞마당에서 직접 키운 야채들의 싱싱함이 도경의 이가 부딪치며 상큼하게 튕기는 것이 느껴지고, 메인인 까르보나라의 크림소스는 세련의 입 안에 또 한번 스르르 녹는 듯 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첫 포크질을 했을 때, 윤시우 팀장은 와인을 꺼내 도경과 세련의 잔에 따라주었다. 도경과 세련은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지, 3년 RTT 생활에 호화를 누린다며 좋아했다.
“그런데, 이 시간에 팀장님은 무슨 일이세요?”
“그쪽들 만나려고 그랬나 보다고 해두죠.”
어느 새, 12시를 조금 넘긴 저녁. 객관적으로 잘생긴 남자가 해주는 요리를 먹고 있는 두 여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니 어떤 생각을 해야 맞는 것일까. 게다가 종잡을 수 없는 성격에 호기심도 생긴다. 도경은 입 안으로 들어가는 파스타와 함께 윤시우 팀장의 입꼬리를 확인한다. 잠시 올라갔던 입꼬리는 매력적이었지만, 비웃음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나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스물여섯의 능력있는 남자의 비웃음,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었다. 이렇게 내면은 다정한 사람이었구나라고 깨달을 무렵, 입 안의 파스타가 녹아 없어졌다.
“늦었는데 먼저 가서 어쩌죠.”
“괜찮아요. 저희가 정리하고 갈께요, 감사했어요!!!!”
과연 저 사람이 도경의 바보 같은 표정을 비웃으며 따라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정하게 변해버린 윤팀장에게 도경과 세련 모두 홀려 있었다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멍해진 표정은 남자들이 예쁜 여자의 다리를 훔쳐볼 때와 같았다. 윤시우 팀장은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감사했다는 도경과 세련의 해맑은 표정에 건방진 짙은 눈썹만 까딱하고 RTT를 나갔다. 오늘 밤, 왠지 도경의 기분이 묘하고 짜릿하다. 너그러이 용서해주는 실장님이나, 뛰쳐나온 후 다시 얻은 RTT에서의 행복이나,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으니 새로운 사랑도 곧 찾아올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도경과 세련은 윤시우 팀장과 가까워지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예쁜 여직원 중심으로 돌아가던 RTT에게도 드디어 새로운 바람이 부는구나 싶은 마음에 들뜨기도 했다.
Restaurant, Tip Top
“도경씨, 이게 뭐지?”
카운터 정산 담당 준희씨가 도경에게 다가갔다. 준희의 손에는 계산서가 들려있었다. 아침 시간 런치 타임 준비를 위해 카운터를 정리하던 준희의 눈에 빌지가 발견 된 것이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테이블 번호가 없었고 내용을 손으로 끄적인 계산서였다. 그래서 어젯밤 마무리 담당인 도경에게 물어 보려는 것이었다.
“뭐가요?”
도경은 준희가 넘겨주는 계산서를 확인했다. ‘파스타, 셀러드, 와인’이라고 손글씨로 적혀있는 계산서를 받아 든 도경은 어제의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누군가 장난치는 것이겠지 생각하고 준희에게 어젯밤 마지막 손님을 마지막으로 손님을 받지 않았으며, 컴퓨터로 찍히지 않는 계산서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준희 역시 정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므로 도경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준희가 카운터에 서자 윤시우 팀장이 위풍당당하게 들어왔다. 분주한 아침시간 RTT를 훑어보더니 테이블 정리를 하고 있는 도경과 눈이 마주쳤다.
“팀장님, 오셨어요?”
눈이 마주친 윤시우 팀장의 외모는 어제보다 더 우월해 보였다. 모든 감정 표현을 눈썹으로 할 것 같은 건강의 상징 짙은 눈썹, 쌍커풀 없는 눈과 오똑한 코, 그리고 도경이 주위 깊게 보는 입꼬리를 이어주는 선명한 입술 선과, 모든 것을 우월하게 빛내주는 뽀오얀 사골 국물 같은 피부는 아침에 더욱 빛을 발했다. 도경은 어젯 밤의 친근함을 이지율에게 내보이고 싶은 마음에, 아니 어쩌면 전 직원에게 뽐내고 싶은 마음에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웃어보였다. 그 마음에는 전 직원 10% 감봉, 나만은 제발! 이라는 속내도 없지는 않았다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잠깐의 다정한 눈빛이라도―어제의 요리할 때의 다정함이 조금이라도 들어있는― 돌아오길 바랐다. 그러나 보기 좋게 도경의 옆을 지나쳐갔다. 저 멀리서 유리창을 닦고 있는 이지율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오늘부터 불시에 특별 손님이 있을겁니다.”
“이 아침부터요?”
실장님은 듣지 못했던 예약 상황에 당황 한 듯 보였다. 실장은 자신보다 젊은 팀장이 오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듯, 무슨 일거리를 가져오냐는 듯 한 반응을 보였다. 자신보다 젊은 팀장을 모시는 일 또한 잘난 실장에게는 썩 내키지 않는 일 일수도 있었다. 윤시우팀장은 실장의 표정을 주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전 직원이 팀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언제 올지 모르는 분들이죠.”
도경은 직감적으로 미스터리 쇼퍼를 떠올렸다. 일반 고객으로 가장하여 매장을 방문하여 물건을 사면서 점원의 친절도, 외모, 판매기술, 사업장의 분위기 등을 평가하여 개선점을 제안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미스터리 쇼퍼’였다. 이들을 내부모니터요원이라고도 하는데 상품의 질과 더불어 서비스의 질에 대한 소비자의 평가에 따라 기업의 매출이 큰 영향을 받게 되면서 생겨난 새로운 직업 가운데 하나였다. 이들의 눈매는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매의 눈과 같았다.
“미스터리…… 쇼퍼!”
도경이 자신있게 팀장을 향해 소리쳤다. 직원들의 시선이 도경에게 향했다. 윤팀장 역시 도경의 말에 눈썹을 들썩였다. 도경은 윤시우 팀장의 눈빛에서 제법인데? 라는 말을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3년간 미스터리 쇼퍼가 RTT에 왔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직원들을 힘들게 한다던지, 곤란하게 하는 특이한 손님들도 없었다. 그것 또한 의문이었다. 나름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RTT에게 한번쯤은 올 법도 했었다. 늦게나마 오는 것인가? 어쩌면 미리 다녀갔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도경은 괜한 긴장이 되었다. 이들은 직접적으로 소비자의 평가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기업을 대신하여 소비자의 반응을 평가해서 매장을 방문하기 전에 해당 매장의 위치, 환경, 직원수, 판매제품 등에 대한 정보를 파악했다. 그런 다음 직접 매장을 방문하여 상품에 대하여 물어보고, 구매를 하고, 환불을 요구하는 등 실제 고객이 하는 행동을 한다. 그러면서 매장 직원들의 반응과 서비스, 상품에 대한 지식, 청결상태, 발생한 상황의 전말이나 개인적으로 느낀 점들에 대해 평가표를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한다. 가끔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RTT를 다녀와서 입소문을 내주는데,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런데 오늘부터라뇨?”
“신경 쓰세요.”
고맙게 나의 말을 씹어주시는 감사한 윤시우 팀장님 덕분에 한번 더 웃음 거리가 되었다. 오늘부터? 미스터리 쇼퍼 중에 아는 사람이 온다는 연락을 했나?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옆을 지나는 세련에게서 향긋한 향기가 났다. 무언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집애. 향수 샀나?
“야, 너 향수?”
세련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다대며 나의 입을 막았다. 가장 기본중의 기본인 매너를 지키지 않았다. 요식업(restaurant business)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향수를 뿌리면 안 된다. 정말 향수라도 샀다는 말인가? 도경은 세련의 몸에 코를 가져다 대고 강아지처럼 킁킁거렸다. 후각에 민감한 도경은 세련이 맛있는 음식이라도 된 냥 둘러가며 향을 맡았다. 싱그러운 향이었다. 이 향수, 이름이 뭐였더라.
“향수 아니야, 그냥 향수 비누야”
아- 순간 바보가 된 듯 한 기분이었다. 향수 이름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던 내가 바보스러워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향수비누? 그런데 이렇게 좋은 향이 난단 말인가? 이어 향이 짙냐며 나에게 물어보는 세련. 오늘 뭔가 이상하다.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라도 생긴 것인가? 내 짐작이 맞다면…….
“너, 혹시 팀장님?”
대답 대신으로 알아도 되겠지? 너의 붉어진 얼굴. 세련이 관심을 보인 남자는 윤팀장이 처음이었다. 보수적인 세련의 얼굴을 붉게 만든 남자라. 도경은 윤시우 팀장의 매력을 가늠할 수 없었다. 카멜레온 같은 변화무쌍한 팀장이 세련도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에게 나는 향이 좋냐며 다그쳤다.
“짙어, 많이. 너 분명 한 소리 들을껄.”
나의 예감은 적중했다. 세련의 옆을 스치는 윤시우 팀장은 세련의 어깨를 잡고 자신의 앞에 세웠다. 세련은 순정 만화 속 여주인공의 심정으로 우수에 찬 눈빛을 윤시우 팀장에게 날려주었지만, 윤시우 팀장을 미간을 찌푸리며 긴 손가락을 뻗어 화장실을 가르켰다. 세련은 이유도 모른체 눈에 물음표를 가득 달고 다시 한번 윤시우 팀장을 바라보았다. 윤시우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면서 세련을 돌려세워 화장실 쪽으로 밀어 넣었다.
“권세련씨, 몇 년 일했죠?”
“2년 가까이…”
세련의 말에 윤시우는 기가 찬 듯 코웃음을 쳤다.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윤시우 팀장은 얼굴에 모든 표정을 없애고 세련을 다시 돌려 세웠다. 세련은 자신의 몸을 남자답게 다뤄주는 팀장이 어지간히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윤시우 팀장의 얼굴만을 향해 있었다. 윤시우 팀장은 그런 세련의 모습이 어이없는지 짙은 눈썹을 들썩이며 말했다.
“2년 가까이 일한 사람이 기본이 전혀 안되있네요”
“네?”
“지금 당장, 당신 몸에서 나는 냄새 씻어버리세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고 도경은 생각했다. 그런데, 향기도 아니고 세련이의 향수 비누를 냄새로 전락시키다니. 윤시우 당신도 참. 세련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어 들어간 도경은 세련의 울상 짓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게 그런 변화무쌍한 사람에게 그렇게 마구잡이로 들이대면 쓰나. 세련의 등을 토닥이는 도경. 왠지 윤시우 그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다. 남자로써 매력…… 있는데?
Restaurant, Tip Top
“어떻게 해…….”
런치가 끝나고 디너를 준비하기 전 직원들 식사시간에 준희가 아까부터 계속 정산이 늦어진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아무리 재료와 하루 계산서와 맞춰 봐도 12만 8천원이 빈다는 것이다. 아침까지 재료와 맞춰보기 전까지 계산이 맞았으니 재료에 문제가 있다며 주방을 오갔다. 오늘따라 울상인 사람이 많네? 준희는 첫 날부터 팀장님에게 혼날 것이라며 자신의 돈을 꺼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긴장한 모습이었다.
“최준희씨 왜, 무슨일?”
“실장님 저어, 그게.”
준희씨는 실장님에게 그동안의 일을 설명했다. 실장은 장난으로 월급에서 까야 된다며 준희를 놀렸다. 세련은 그런 모습 조차도 정이 없어보인다며 실장을 나무랐다. 세련의 몸에서는 더 이상 향수 비누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도경은 참 줏대 없는 여자라며 놀렸고, 세련은 안 짤리고 일 하려면 어쩔 수 없다며 토라졌다. 그리고 준희씨의 이야기는 윤시우 팀장에게까지 들어갔다.
“아, 그거. 최준희씨 걱정 안 해도 되요. 내가 아니까.”
윤시우 팀장의 말에 준희씨의 얼굴이 활짝 폈다. 죽을 고비에서 방금 살아난 사람같이 혈색이 좋아졌다. 준희씨는 이제야 퇴근 할 수 있게 됐다며 방방 뛰었다. 실장님도 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참, 외모지상주의만 아니면 나름 봐줄만 한 사람인데 말이지. 도경은 뜨끈한 콩나물 국을 한 숟가락 뜨고 입안에 넣는 순간 윤시우 팀장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뜨거운 콩나물 국에 입천장을 데일 때보다 더 뜨거운 윤시우 팀장의 시선을 애써 피해 밥으로 숟가락을 옮겼을 때,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드셨으면 계산하셔야죠?”
첫댓글 팀장이 치사하네요.... 다음편도 기대되요ㅋㅋ
감사합니다. 좋은하루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