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에서 메밀 묵 세 덩이를 사 왔다
한 없이 부풀어 오르는
그 놈의 뱃살을 어떻게 좀 .. 가라 앉혀 볼 까 싶어
저녁을 안 먹겠다는 아들에게 살 덜 찌는 묵사발이라도 해줄까 해서다
멸치 육수에
양념간장
숭덩숭덩 칼질한 묵 채를 말아 주면 씹을 새 없이 넘어가는
묵사발
요기나 하고 더 이상 먹지 말라고 줬지만
남긴 국물에 찬밥까지 말아 먹고 있는 아들을 보니
저래서야 뭔 살이 빠질까 한 숨이 나온다
메밀을 많이 심는 강원도
감자 옥수수에 절대 밀리지 않던 곡식
구황식물 중 젤 쉽게 거둬 들이는 메밀
요즘 덜 심고 있다 농사짓는 사람이 없는 판에 메밀까지 (묵밭에 그냥 자라긴 하지만 )
손이 미칠 수 없어서다
이젠
옆 동네 봉평 메밀 축제에서나 그 명맥을 이어갈 뿐이다
5~60년대
하얀 밀가루가 귀하던 산골에선
국수, 수제비, 만두, 전, 등 모든 것을 메밀로 해 먹었던 기억이 있다
10살 무렵 처음 먹어 본 메밀만두
시컴튀튀한 색깔에 찰기 없이 툭툭 베어지던 투박한 맛
국수도 젓가락 필요 없이
수저로 퍼 먹어야 입까지 온전히 옮겨 갈 수 있을 정도로
매가리 없고 투박한 식감
백석 시인의
산중 시 중.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스므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마치 고향에 돌아 온양
메밀국수를 입에 물고 감탄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시 이다
북쪽 사람들은 별미로 메밀을 먹고
간간히 호사를 부려 국수 위에 도야지 고깃점을 올려 후룩후룩 들이 마시며
살아서 그런 가
객지살이 설음이 치솟을 적엔 으레 동치미에 말은 메밀국수의
찡한 맛을 노래하며 눈물과 함께 글로 남기곤 했다
메밀의 첫 맛에 실망했던 나는 백석의 글과 북쪽 여러 시인들의
시 속에 살아 댕기는 메밀의 향수를 함께 공감하기는 어렵다
뭐든
먹는 거라면 환장해서 달려들던 내가 ..
전분이 들지 않은 것이 오히려
투박하고 편한 맛이라는데
이미 전분의 쫄깃한 맛에 익숙한 내 입 맛
내 살았던 시대를 탓 할 수밖에
백석은
메밀의 정갈한 향을 부처의 향이라 고 까지 했다
내 나이 사십 초반께
잠깐 알고 지냈던 사내가 있었는데
지역에서 방귀깨나 뀌고 살며
은근 알부자라는 소문을 들었기에
당시 지지리도 가난한 과부 였던 내가 속으로 은근히
사내가 나를 위해 자신의 곳간을 덜어 내는 은총과 축복을 행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다가 갔었다
결과적으로
사내가 베풀어준 축복 없는 은총이란 건 내게 턱없이 작았고
탐욕으로 눈을 빛냈던 나의 실망감은
그 불만의 표시로 엉덩이를 십리쯤 후진시키고 있던 참에
이도 저도 눈치 없던 사내는 걸핏하면 저가 좋아 하는 냉면 먹자 막국수 먹자 하며
나를 귀찮게 불러 내 곤했다
냉면이고 막국수고 간에
함께 먹어 주는 일이 무에 어렵겠냐 마는
문제는
사내 자신이 지역에서 위치가 있다는 핑계로
국수 한 그릇 먹으러 두 시간 거리 산골로 기어든다는 고단함이다
막국수 두 그릇 먹으러 속초까지 가고
냉면 두 그릇 먹으러 양양을 가고
그도 모자라
오가는 중에 양양 산골짜기 골골마다
박혀있던 막국수 집은 어찌 그리도 잘 알고 찾아 들던지 ...
원래부터 썩 맘에 없던 음식이라
그때 확실히! 질려서 지금도 막국수는 찾지 않는다
사랑을 가장해 물욕을 엿본 당시 나의 힘든 처지가
지겹고도 싫던 참에
투덥하게 생긴 면이 시커멓게 둘둘 말려서는
붉은 양념 모자를 쓰고 나온 막국수라는 음식
툭툭 끊어지고 , 투박하고 멋없고, 요령 없는 맛까지 못난 나를 닮은 양 같아
대강 대강 건져 먹다 말다 했던 기억이 난다
동해 북평 장에 가면
묵 파는 골목이 있다
무생채와 열무김치를 올려 육수에 담아주는 묵사발
젊은 이 들도 사 먹고
소화 장애가 있는 할머니들도 사 드시느라 장날 마다 묵 좌판은 부산하다
주렸던 어린 시절
추운 겨울 저녁무렵
삭정이 쌓아둔 헛간 앞에서 받아 들었던
뜨끈한 멸치 육수에 말은 묵 한 사발
허기진 뱃속에
설탕처럼 녹아들던 그 맛은. 언제나 잊히지 않고 있다 향수 따윈 전혀 없이 ...
이런 저런 메밀의 기억이다
첫댓글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이 엿보입니다.
묵에 얽힌 젊은 날의 추억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묵이 간만에 그리웠을까요? ㅎ
경북영주순흥면에 가면 묵집이 하나 있는데
정말 잘해요.
함 댕겨오실레유? ㅎ
영주묵밥집이야 알아주는 집이지요 가면 꼭들렸으니요 ㅎ
마음의 흐름을 어찌도 그리 섬세하게 표현하실 수 있는지
경외심마저 듭니다.
모든 마음을 열고 훌 훌 털어버리듯 마음속 깊은 내면의 흐름까지 물흐르듯
묘사할 수 있는 마음 비울 수 있음이 너무도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존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 행복하게 머물다 갑니다.
사랑해요 무진장
없던 입맛도
돌게 하시는 운선님 글은
진짜루 맛깔스럽답니다.ㅎ
육수가 을메나 맛있었슴
밥 까지 말아서 먹었을라구요.
그니깐 쫌 맛없게 해서
주셔야지요..ㅋ
그래야 뱃살이 드가든지
그라지요...^^
저녁 식사는 맛나게
드셨나요?
옆집 사는 동네주민
동생이 친정집서 보내왔다고
씨알이 굵은 햇밤 주길래
집에서 식사 같이 했어요.
돼지고기 숭덩숭덩
썰어넣은 김치찌개 만들어서..
운선님,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랄게요.^^
긴 겨울밤 메밀묵에 막걸리 마시면서 지난
추억들을 가족들과 도란도란 얘기하는
즐거움이 그립네요.
여름내내 자주 찾았던 무등산 자락 초야
산행 뒤에 순백 메밀국수 한그릇 호르르
시간나시면 산행도 하시고 부드러운 맛을
마음것 누려보소서 후회는 하지 않을 것 입니다
ㅁ운선님의 진솔한 글을 대하고,잠시 여러가지 생각을 했네요.
좋은 밤 되셔요.
맛깔난 글이 술술술 묵사발 넘어가듯
재미난 표현 미끄러집니다~^^
참좋아하는 묵이며 메밀이며 계절없이 먹던
여기 강능막국수 집이우리동네로 이사를 와서 ㅎㅎ
메밀로 만든 음식 잘 접해보지
않은 이들에겐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별미일텐데
강원도 살던 이들에겐
고생하며 어렵던 시절이 마음에
남아 있나봅니다
그러고보니
몇년전 정선오일장에서
메밀 모듬 음식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메밀하고 모밀하고 같은건가요?
암튼
난 여자사귀고 첫 식사를 막국수로 해서
두고 두고 지청구를 들었을만큼 막국수를
좋아 합니다. ㅎ
올 추석연휴를
강원도로 여행
이효석 문학관을 들른다고
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
봉평메밀축제기간이더군요
명절 한산함은 커녕
넘치는 인파에 메밀국수 한그릇
전쟁치르듯 먹었네요
저도 그닥 좋아하지않지만
거기갔으니 먹어봐야지하는
차라리 전병이 낫네요
묵사발..
어릴적 할머니가 사 주셨던 묵사발이 어찌그리 맛있던지...ㅎ
올라오는 글 어영부영 읽어보고
그냥저냥 인사치레 댓글 한두번 다는게 습관이 되었던 터라
오늘 글에서는 움찔하게 됩니다.
이 느낌이 백석시인이 슴슴하다 했던 그런 맛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엄지 처어억
메밀에 대한 추억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우리 어릴적 미국이 원조해준 480밀가루가 연상되네요.
운선님글 오랫만에 만나네요
저도 메밀로 만든 요리 엄청좋아해요
메밀국수 환장하구요
메밀전은 집에서도 종종
김치 부꾸미도 그렇고
값자기 봉평메밀국수 먹고싶어요
환절기 건강조심요
오랜만입니다.
운선님...
닉만으로도 반가운 맘.
얼마전에 봉평 메밀축제가 끝나
아쉬움에 마음을 접었지만
지금도 메밀묵 한 사발 사서 먹곤 합니다.
마주 앉아 함께 후루룩할 언제 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