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미륵대원지(미륵사지)는 월악산 자락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52-2에 위치하고 있다.
예전의 논, 밭, 집이 있던 곳을 1976년 절터를 옮기는 과정에서 미륵대원지의 과거를 알 수
있는 터(址)를 발견하였다.
발굴 당시 석등과 미륵상의 일부만 보일 분, 대부분 땅에 묻혀 있었다고 하며 1977년에
발굴 작업을 실시하였고, 발굴 작업에서 "명창 3년 대원사 주지 승원명" 이라는 기와가
발견되었는데 이 문구로 보아 이곳의 사찰 이름이 "대원사"라는 것이 밝혀졌다.
충주 미륵대원지(忠州 彌勒大院址 : 사적 제 317호)는 하늘재(寒喧嶺), 계립재(鷄立嶺),
새재(鳥嶺)에 둘러싸인 험준한 산골짜기 북쪽 기슭에 북향하여 조성된 석굴을 주불전으로
하는 절터이다.
창건 연대나 내력, 사원의 정확한 명칭은 알 수 없으나,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짐작된다.
석굴은 거대한 돌을 쌓은 위로 목조로 세운 자취가 있으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발굴 당시
미륵당초라고 새겨진 기와가 나와,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의 사원으로 추정된다. 현재,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보물, 1963년 지정),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석등 당간지주 등 중요한 석조 문화재들이 남아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가 망한 것을 슬퍼하며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누이인 덕주공주가 월악산에 덕주사를 지어 남쪽을 바라보는 마애불을 만들자 태자는
북향의 석굴을 지어 덕주사를 바라보게 하였다고 한다.
미륵대원지는 1977년 1차 발굴조사 당시, 明昌三年金堂改蓋瓦(명창삼년금당개개와), 彌勒堂
(미륵당), 彌勒堂寺(미륵당사), 院主(원주) 등의 명문와(銘文瓦)가 출토되어 미륵을 모시는 절집
이자 원(院)을 겸하는 사찰이며, 1192년(고려 명종 22) 금당의 기와를 새로 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석굴과 전실의 목구조가 소실된 것은 13세기이며, 이후 곧 복원되었고 조선 초기에 크게
수리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다시 소실되었고 18세기에 들어 수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언제 폐사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1936년 발생한 큰 수해로 법등(法燈)이 끊어진 것으로 여겨
지고 있다. 2011년 7월 중원 미륵리사지에서 충주 미륵대원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해발 378m의 고지대에 위치한 미륵대원지에는 길이 9.8m, 너비 10.75m, 높이 6m의 인공으로
쌓은 석굴 형식의 불전이 있다. 석굴 중앙에는 대좌를 두어 석불입상을 봉안하고, 측면과 후면
석벽의 중앙은 감실(龕室)처럼 만들어 작은 불상들이 부조되었다. 석굴 상부는 목조 건물로 지어
천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절터에는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 삼층석탑, 석등, 귀부(龜趺),
당간지주, 불상대좌 등의 석조 문화재가 있다. 양식적으로 보면 고려 초인 10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형이 북쪽으로 갈수록 낮아져 사원은 북향을 하고 있으며, 사원 전체가 계단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1977, 1978, 1982년 3차례에 걸쳐 시행된 발굴조사 당시 출토된 여러 명문 기와와 건물지
발굴을 통해 사찰의 성격이 밝혀졌다. 특히 미륵대원이라고 한 것은 동쪽에 역원(驛院)이 있었기
때문인데, 말을 묶어 둔 마방시설, 여행자 숙소 등 역원의 건물터도 함께 발굴되어 사찰과 역원의
기능을 합친 고려 초기의 중요 유적지로 평가되고 있다.
미륵대원의 존폐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시기인 고려 충렬왕대
까지는 존속되고 있었던 듯 하다.
미륵대원지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북쪽을 바라보는 특이한 구조를 가진 절터(址)이자, 석조와
목구조를 결합한 석굴을 금당으로 삼은 유일한 유적이며 토함산 석굴암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시대의 유일한 석조, 목조 구조의 반축조(半築造) 석굴사원으로 평가된다.
스테파노는 미륵대원지 문화유산을 천천히 둘러보고 이미 서너 번 답사했던 월악산 덕주사를
향하여 애마의 고삐를 당긴다.
You Raise Me Up... ─┼ * Petruta Küpper *
미륵대원지 안내판...
미륵세계사로 가는 초입에 온달장군 공깃돌이 있다. 누가 가져다 올려놓고 그렇게 부르는지 웃음이 나온다.
충북 단양과 충주, 그리고 경북 문경으로 이어지는 곳곳에 온달장군 설화의 상징물이 있다.
정성스럽게 돌탑을 쌓아둔 곳에서 합장을 해 본다.
충주 미륵대원지 석등(충북 유형문화재 제19호)
충주 미륵대원지(사적 제317호)
미륵대원지의 상징 "석조여래입상"(보물 제96호)은 현재 그 주변을 복원 작업 중이다.
(2023년 11월 보수 작업 종료 예정임)
주변에 석축을 쌓아서 석굴암 형태로 지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그 원형이 궁금하다.
투박하고 서민적이며 인자한 모습의 여래입상인데, 머리에 갓을 쓰고 있는 점과 양감이 없는 원통형의
신체, 간결한 옷주름의 표현 등은 충청도 지방에서 제작된 고려시대의 석불 형식이다.
예를 들면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등의 양식과 공통된
특징이 드러나고 있다.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보물 제95호) 고려시대 양식이다.
충주미륵대원지 사각석등(충북 유형문화재 제315호) 전체적으로 8각을 이루는 통일신라 양식의
석등인데 일반적인 절집의 원형 석등과는 형상이 특이하다
오층석탑과 석등,석조여래입상이 일직선으로 배열되어 있다.
발굴 당시 석물의 일부
간단히 기도 공양할 수 있는 곳이 석조여래입상 가기 전 바로 앞에 있다.
신록의 월악산 줄기와 어우러지는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미륵세계사 절집은 미륵사지 옆에 지어져 있는 최근의 절집인 듯 하여 그냥 통과하였다.
충주미륵대원지 석조귀부(충북도 유형문화재 제269호) "미륵리 사지 귀부"(초대형 거북이)
미륵대원지 당간지주 : 원래 세워져 있어야 할 당간지주가 많이 훼손되어 세울 수가 없어서 이렇게 누워계시다.
당간지주는 깃발을 매다는 장대를 고정하기 위한 장치로 보통 사찰의 입구에 세워 신성한 지역임을 나타낸다.
고려시대 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미륵사지 관광 안내부스
미륵세계사를 지나 하늘재로 방면으로 오르면 우측으로 미륵리 원터가 자리를 하고 있다.
미륵대원지 옆에 커다란 잔디밭으로 보이는 공간이 있다. 울타리로 쳐져 있어 저곳이 미륵대원지 터(址)였나
싶었는데, 이곳은 역참(驛站)의 터였다고 한다. 역참 원(院)을 써서 미륵리 원터라고 안내문이 쓰여 있다.
역참(驛站)이라 하면 여관같은 곳, 말(馬)을 타고 가던 사람이 쉬어 갈 수 있는 곳을 말한다.
충주 미륵대원지의 절(寺) 옆에 큰 역참이 있다. 역참을 끼고 하늘재라는 큰 고개길로 들어서는 곳인데, 그 앞에 있는 원터(院址)이다.
미륵리 3층석탑(충북 유형문화재 제33호) 주변의 초록초록한 신록에 둘러싸여 아름답다.
미륵리 불두(충주시 향토유적 제9호) 일반적인 불상과는 색다른 느낌의 인상이다. 고려시대에 미완성으로
남겨놓은 거라고 하는데, 입과 입술이 좀 특이하다.
하늘재 고개로 들어서는 길 앞까지만 답사하고 다시 되돌아 주차장으로 향한다.
첫댓글 완전하게 복원이 아직인가봅니다,,
가슴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네 그렇습니다.
아직 현재진행형이었습니다.
일부는 울타리를 설치하여 꼼꼼한
문화재 관찰에는 실패하였습니다.
후일을 기약하며 미륵리 마을에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오~~!!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
감사합니다 ~~~ 참 좋은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 관세음보살 ()()()
건강하십시오.
관세음보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