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봉건 사회 때부터 장인(匠人) 제도가 발달하기 시작한 독일은 기술
자들에게 마이스터라는 칭호와 자격증을 부여한다. 독일의 주식은 감자라
고 할 수 있지만, 200가지가 넘는 부어스트 또한 대표적인 독일 음식이
다. 우리로 치면 순대나 소시지라고 할 수 있는 부어스트의 제조나 판매
도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한 사람의 식육 전문인이 길러지려면 적어도 7∼8년이라는 세월
이 필요하다. 15∼16세 때에 초·중등 교육을 마치고 3년 과정의 직업학교
를 졸업한 뒤, 마이스터 밑에서 4∼5년 간 현업 수련을 하는 도제 기간
을 거친다.
그리고, 마이스터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별도의 준비 과정의 보수 교
육을 받아 소정의 시험에 합격하여야 하는 것이다. 일본 전통국수 소바
의 국물맛을 내는 것은 가업이지만, 독일은 철저하게 무형 문화재급의 선
별과 대우를 하면서 존중한다. 한 사람의 마이스터는 꾸준한 정진과 기다
림으로 탄생한 최고의 기술자이기 때문이다.
1923년부터 정식으로 임명된 독일 대표팀 감독은 지금의 루디 푈러까지
겨우 여덟 명에 불과하다. 다섯 번째 감독이었던 프란쯔 베켄바워까지는
평균적으로 13년을 수행했다. 그러나, 여섯 번째 감독인 베어티 포그츠에
서 독일은 잠시 자신들의 미덕을 잊게 된다.
두 번의 월드컵에서 연속 4강 탈락하면서 포크츠 감독은 자신감을 잃은
듯 했다. '98 월드컵 직후, 발레타에서 있었던 몰타와의 평가전이 문제였
다. 독일은 간신히 2:1로 이기긴 했으나, 내용에 대한 시비가 불거졌다.
1:1로 비겼던 강호 루마니아와의 평가전도 마찬가지였다. 시종 일관 무기
력한 플레이로 시청자들을 미쳐버리게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사흘 뒤, 귀국한 포크츠 감독은 "독일 축구사에 기록될 감독으로
남고 싶었지만 최근 나에게 쏟아지는 비난 여론은 견디기 힘들었다"면
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용퇴키로 결심했다"고 성명을 발표했
다. 선수로 `74 월드컵과 감독으로 유로96을 우승시킨 영웅을, 기분만 내
세우는 여론이 매장한 것이었다. 그리고 독일축구연맹은 "충격적인 일이
기는 하지만 에기디우스 브라운 회장은 사표 수리가 최선이라고 판단했
다"는 회견을 냈다.
그리고 독일은 새 사령탑 인선에 나선다. 당초 레알 마드리드를 이끌던
유프 하인케스가 거론되었지만, 그는 아내가 두 차례나 수술을 받아 몸
이 좋지 않아 감독직을 맡기 어렵다면서 거절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독일축구협회는 포크츠 감독 밑에서 코치를 지 낸 라이너 본호
프와 협회 소속 지도자 울리 슈틸리케를 후임 감독으로 고려하게 된다.
이 때 여론은, 동독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던 에두아르트 가이어 현 에
네르기 코트부스 감독을 공식 추천하며 가뜩이나 어수선한 하마평에 끓
는 기름을 붇는다.
그렇게 대표팀 감독을 공석으로 둔 지 달포 뒤, 연맹은 61세의 전형적인
독일 신사 에리히 리벡을 감독으로 선임한다. 그는 건조하고 보수적인 논
조에 중도 우파 성향의 유력한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짜이퉁
이 'Sir Erich'라 표현할 정도의 인물이었다.
리벡은 31살에 최연소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한 뒤, 30년 동안 롯-바이스
에센과 아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카이저슐라우테른, 보루시아 도르트문
트, 바이어 레버쿠젠, 바이에른 뮌헨을 거치면서 감독과 코치직을 수행해
왔다. 당시엔 함부르크 구단 경영에 참여하면서 자동차 회사 오펠의 스포
츠마케팅 중역이었다.
그는 무엇 때문인지 처음부터 언론에 '찍혀' 있었다. 그의 선임에 대해
당시 여론은 쌍심지를 켰다. 너무 늙었다느니, 세일즈맨이 어떻게 감독
을 하냐는 것들이었다. 게다가 리벡은 데뷔전이었던, 부르사에서의 유로
2000 지역예선 터키 원정 경기에서 하칸 수쿠르의 결승골로 0:1로 지고
돌아온다. 그를 기다리던 것은 여론의 무차별 집중포화였다.
이차저차해서 독일은 간신히 유로2000 본선에 참가하게 되지만, 그 유명
한 콘세이상의 해트트릭으로 독일은 0:3 대패를 당한다. 그리고 독일로
돌아온 리벡을 여론은 그냥 두지 않았다. 대표팀 유니폼을 벗으며 주장
마테우스는 패인을 선수들의 실력으로 진단했지만, 여론은 리벡의 선수
장악력과 감독으로서의 전술적 역량의 부족으로 매도했고 급기야 개인적
인 비방까지 불사한다.
포그츠 때처럼 말이다. 결국 포그츠처럼 인간적인 자존심까지 다친 리벡
은 사임하게 된다. 마이스터처럼, 완성된 자신과 팀을 만들 몇 년도 그에
겐 주어지지 않았다. 21개월 동안 10승 6무 7패를 기록하며 서서히 궤도
에 오르던 리벡 호를 완전히 침몰시킨 것은 콘세이상이 아니라, 바로 독
일의 냄비 언론과 여론이었던 것이다.
독일이 월드컵과 유로에서 각각 세 번씩이나 우승했지만, 쉽게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잉글랜드에게 2:13이나 0:10으로 지던 독일은, 한 세
기 동안 불구대천의 원수 네덜란드를 비롯한 숱한 강적들과 싸워야 했
고, 그에 따라 독일인들은 울고 웃었다. 그러나 그들은 꾸준한 정진과 기
다림이란 미덕 아래서 대표팀 감독들에게 시간과 용기를 주곤 했다.
단 한 번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한 뒤, 냄비 언론이나 여론 모두는 무책
임하게 피해버렸다. 그리고 그 해악으로 아직도 독일 축구를 헤매게 만들
고 있다. 우루과이에게 졌고, 최용수가 똥볼을 찼다. 그런데 그게 뭐 어
떻다는 말인가...
기다림의 미덕이 우리 사회엔 너무나 없다. 언제나처럼 나중엔 누구도 책
임지지 않으면서 입만 살아서 말이다. 코엘류 체제에 필요한 것은 그것이
다. 잠자코 기다리자, 제발...
출처...미디어다음
카페 게시글
축구 이야기
냄비여론의 희생양 에리히 리벡
박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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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162
03.06.12 12:55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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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음... 좋은 말 같아서 퍼왔습니다. 기다림의 미덕이라...
제발 기다리자...ㅡㅡ 정말 좋은글~
저도 다른 이유에서 성급히 판단내리시는 분들에 대해 불만을 갖는게 아닙니다... 사람들의 섣부른 의견은 여론으로 자라고 그 여론은 가능성이 있는 선수와 감독의 인생을 붙잡습니다... 자기 인생이 다른 이들의 섣부른 판단으로 쉽게 묻혀버리길 원하시는 분은 없을 겁니다...-_-
근데 최용수 같은경우엔..너무 기다리는게 아닐런지...최용수 리그에선 날아다닐지는 몰라도 큰무대에선..자꾸만 실수를 한다고 생각되어지는데요..
최용수 선수를 믿자는게 아니라 감독의 선택을 존중하는거죠. 다른 사람 밑에 있던 사람이 실수는 많지만 기량이 뛰어나다면 나도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겠죠. 그리고 정말 어쩔수 없는 큰무대공포증이라면 결국은 내쳐질겁니다. 지금은 시험기간이니까요 ^^
최용수 ㅡ.. 그대도 조금더 기다리면 잘할수도.. 진짜 어렷을때 나의 희망이엇고 우상이엇는데 왜 이렇게 되엇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