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 그 마지막 역사는 흔히 기원전 108년 위만조선의 멸망과 한사군 설치로 귀결된다고 알려져 왔다.
조법종 교수의 『위만조선-한 전쟁과 항한제후의 고조선 부흥활동』은 위만조선의 최후와 이후의 역사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조명한다.
기존의 인식, 즉 고조선이 한나라의 침공에 무력하게 무너졌다는 통설에 깊은 의문을 제기하며, 문헌적·고고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다.
이 연구는 위만조선 붕괴의 시점부터 짚는다.
흔히 기원전 108년으로 알려진 위만조선 멸망의 해는 왕험성(왕검성)이 함락된 기원전 107년으로 정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곧 낙랑군과 왕험성의 위치가 별개라는 필자의 기존 주장을 뒷받침하며, 최근 고고학계에서도 낙랑은 평양, 왕험성은 요동반도로 보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음을 확인한다.
나아가 저자는 위만조선과 한의 전쟁 양상에도 주목한다.
무려 3년에 걸친 이 전쟁은 겉으로 한의 승리로 보였으나, 실제로는 한나라 참전 장수들이 모두 처벌받거나 죽임을 당했다는 점에서 한이 사실상 패배한 전쟁이었다고 분석한다.
이는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직접 지배하려기보다는 조공-책봉 관계를 통한 공존을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호 불신으로 화의가 결렬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화의 과정에서 1만여 병사가 무기를 지니고 패수를 건너려 했던 상황을 통해 패수가 걸어서 건널 수 있을 만큼 수심이 얕은 강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패수 위치 비정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 논문의 가장 핵심적인 통찰은 바로 위만조선 멸망 이후의 상황이다.
단순히 국가가 붕괴한 것이 아니라, 고조선의 부흥을 위한 처절한 ‘부흥 전쟁’이 전개되었다는 점을 밝힌다.
한에 투항했던 위만조선의 왕자 장각이 기원전 105년에 ‘조선으로 하여금 모반하게’ 했고, 니계상 참이 기원전 99년까지 ‘조선 망로’를 숨겨주다 죽임을 당했다는 기록은 고조선 세력이 결코 무너지지 않고 끊임없이 저항했음을 증명한다.
이 시기 한나라 기록에 나타나는 동방의 ‘도적’ 또한 이러한 저항 세력을 포함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저항은 단순히 위만조선 지도부의 잔존 세력이 아닌, 고조선을 구성했던 예맥, 구려 등의 세력, 특히 고구려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한군현을 축출하는 과정으로 이어졌음을 강조한다.
이는 단기간에 진번군과 임둔군이 폐지되고, 현도군이 이동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이 연구는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던 고조선 역사의 마지막 장을 능동적인 저항과 계승의 역사로 새롭게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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