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님!
아니 젖먹이 또는 유년을 키워 주셨으니 어머니입니다
시집살이 1년차때 시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 가시고
시 어머니는 그해 풍으로 쓰러 졌을 때
두 살 젖먹이 너무 늦은 늦둥이였던 저를 보시고 참으로 당황스럽고 난감 하셨겠지요
애물단지 저를 어찌 피 붙이처럼 살갑게 달래줄수 있었겠어요
칠남매중 홍일점 열두살 누나가
병석에 누워만 계시는 어머니 가슴에 매달려 눈물 콧물 범벅이되 칭얼대고 있으면
간신히 떼어내 대소변 걷어내고 귀저지 채워 주고 업어주고 달래고
어머니 역시 아버지 마중 가실 때 까지 4년 동안 돌보미 역할은 누나가 전담 했었지만
그 후로 누나는 출가 외인 이였고
형수님은 연한 쌀 뜨물을 정성스레 끓여 젖 대신 먹게끔 해 주셨고
그 귀했던 쌀로 미음을 끓여 허기진 저의 배를 채워 주셨지요
육이오 동란 발발 후 유년시절엔
당시 최고의 영양가 음식인 꿀꿀이 죽
미군부대서 흘러나온 음식쓰레기를 구입해
정갈하게 깨끗이 끓여 먹어 주시고
영양실조를 사전에 막아 주셨지요
부농의 무남독녀 외동딸로 금이야 옥이야 성장 하셨고 인형처럼 예뻣던 형수님은
우리 집안에서나 주변에서 가히 절세 미인 였다고 소문이 자자 했었지요
그런 형수님이 변고가 많았던 갓시집살이가 무척이나 갈등 했었겠지요
형수님!
해방전 고관대작의 비서겸 전용차 운전수로서 신분을 과시 했던 형님
해방후 부산서 제일 큰 자동차 정비 업체서 근무 하실때
손 재주 기술이 탁월해 신조어 맥가이버 칭호 였던 형님이
다꾸시(택시)를 손수 제작 하기 위해 몸체 포함 온갖 부품들을
하나 둘씩 꾸준히 구입해 집 마당에 비축 해 놓고
어느날 종친중의 양자로 입적 하기 위해 고향으로 귀향 하셨지요
왜 그때 귀향을 적극 만류 하지 않았셨는지 의문 이기도 하지만
형님의 가부장적 고집불통에 감당 못했었겠지요
당시 고향에 계실 때 정신장애 정신병 발병이
몰락의 시발점이 였고 온갖 가난의 연속이었지요
우리집안의 기둥이셨던 형님이 그리 되지 않았다면 애환이 없었겠지요
결국 오십삼세(53)의 젊은 연륜에 세상을 하직 하신 형님
저와 형수님 그리고 어린 조카들의 삶은 배고픔에 찌지리 가난의 연속 이었지요
숱한 흘러간 세월
어느새 중년,노년이 되어버린 조카들
그리고 가정을 이루고 있는 손자 손녀들을 보았을 때
감개무량 회포의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장손 조카를 위시해 울 아들녀석은 총무로 종친회를 이끄는
모양새는 한 없이 흐믓하고 행복 하기도 합니다
형수님!
짧은기간 약간의 치매증세는 구십오세(95)가 마지막 이었던 같습니다
한창나이에 못 다 살고 가신 형님의 몫까지 살았으니
구십오세 이시면 천수를 하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형수님!
먼저 가시니 형님을 보시거든 저의 안부도 말씀해 주십시오
이 늦둥이
아버지,어머니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에 숱한 눈물의 세월 이었고
일찍 저의 곁을 떠나신 형님을 원망도 많이 했었지만
저도 형님을 기쁘게 만날날이 멀지 않았다고...
(발인 9월30일 오전 8시30분 천주교 의식)
첫댓글 95세 천수를 다하신
형수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존경합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네~ 짧은기간 약간의 치매증세는 무엇보다 다행 이었고 비교적 건강하게 천수
하신것 같았습니다
감사 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네~고맙고 감사합니다
늘~건강 하십시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시대적으로 가난한 역사적 환경에서의 아픔은 어느정도 면죄부도 주어지는것 같아요.
근데
모든 세상 통틀어서 최대의 황금기와 물질적 도움에도 쓰러지는것들..
나약함일까요?
애초의 인간이 가장 강했다는 느낌..입니다..ㅎ
위로받는삶은 그리 훌륭하진 않는거 같아요.
왜냐하면 강해져야 하니까요..
가만...지금 내가 뭔말하는겨..ㅎ
형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
*
인생은~
삶은~
한권의 책 입니다
숱한 사연이 스쳐간 어둠속에서도
등대가 되었다가
하수구에 흘러 내리는
질펀한 삶도 되었다가...
어린 아해의 가슴 언저리에 시린
바람
무엇으로 녹였졌을까요?
어머니 보다 더 은혜로운
형수님 가시는 길에
얼마나 애통 하셨을지
미루워 짐작 해 봅니다
산자락님
가슴에 또 하나의 그리움을
새기며
아픈 글을 올리셨네요
사람만이 고닮픈 삶을 사는것은 아닌듯...
자연속에 물들어 가는 나뭇잎도
가을 태풍
비 바람에
찟긴 상처로
이 가을을 보내려나 봅니다
항상 형통한 삶이 되세요~^^
댓글 읽으면서 또 울컥 했습니다
세례명 데레사 신앙심 깊은 형수님은 근검절약 소식 하셨고
정신력이 강했습니다
노쇄 하셔서 하는수 없이 요양사 보호를 받을실때 짪은기간 약간의 치매증세는 무엇보다 다행 이었습니다
운구가 화로속으로 투입되는 장면을 보았을때 참았던 울음을주체 하지못해 조카들 면전에서
모양새가 안좋아 보이지 않는곳에서 울었습니다
위로의 댓글 고맙고 감사하며
늘~건강 하시길 기원 합니다^^
눈물 나올려고 합니다.
무남독녀 외동딸 형수님과
늦둥시동생님의 가족사랑
부모님은 일찍여의셨지만
참 복이 많으셔서
형수님을 잘 만나신듯 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슬프지만
훈훈한 삶을 느꼈습니다.
네~한 없이 고맙고 존경스럽고
어머니 못지지 않는 형수님의
은혜는 가이 없습니다
감사 합니다^^
당연히 전해주시겠지요.
그토록 고생하시며 훌륭하게 살아오신 형수님이 떠나셔서
얼마나 애통하실까요
하늘도 슬퍼서
비가 내리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장손 조카만 믿고
내 살기 바빠 자주 찾아 뵙지 못한것이 후회막급 입니다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더군다나 젊은시절에 일찍 가신
형님을 생각 하면 억수로 애통 하였어요 그러면서 정신적으로
의지 했었는데 막상 가시고 나니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 이랄까
슬픔을 억제 할수 없었어요
감사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영원한 안식에 드신 형수님..
어머니를 대신 하셨던
형수님께서는 천국에
드신 줄 믿습니다.
내리는 비와 함께
눈물지게 만드시네요.ㅠ
부모님 몫..형님 몫 까지
산자락께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자손들과
행복하게 지내시길 빕니다.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인형처럼 너무너무 예뻣던 형수님이셨는데 시집살이 초기부터 애물단지 저 때문에
많은 갈등을 껵었던 그때 그 시절 회상 하면 한없이 미안 하고 존경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 어머니같으셨던 형수님이 주님곁으로 가셨군요 95세 다행히 천수를 누리시고 감사합니다 형수님
네~그렇네요 비교적 건강하게 천수 하셨지요
그래도 막상 가시고나니
새삼 그리웁고 공허하고 허전 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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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의지하고 버팀목 이셨던 형수님이 안 계셨더라면
지금의 내가 존재 할수 없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형수님을 보내드렸네요
그리도 훌륭하셨던 부모님 몫을 다하셨던 형수님
천국에서 영원히 안식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부모님 같으신 형수님 ᆢ
명복을 빕니다ᆢ
너무 슬 픕 니다..
고운밤 되세요..
네~어머니 였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얼굴도 모르는 부모님 대신
가없는 사랑으로
막둥시동생 챙기신 형수님
깊은 사랑에 찡해지네요
정녕 쉽지않은 일이거늘
큰 언덕하나 무너진듯
하시겠어요
고인의 명복을 빌며
늦은 위로드립니다~^^
이뻐하는 정아님의 위로 댓글에
또 흐느꼈어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역시 이뻐하는 위로 댓글에 또
흐느꼈어요^^
자락님 마음 생각하니 슬퍼요
얼마나 .. 예전엔 형수가 시동생을 젖먹여 키웠다더군요
에유 우리 자락님 마음을 생각하니 형수님 좋은데 가셔서 자락님 건강히 오해 살게 해달라고 기도 했주세요 하고 청해봅니다
슬픔 공유 붙들고 울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