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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이 두 정치인의 실험에 주목해야하는가? 이제 여성 정치인들이 남성주의 정치의 패권적이고 건조한 정치문화를 극복해야한다는 취지로만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과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에 당신이 주목한다면 이는 시대의 거대한 변화 추세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그제 6월민주포럼(대표 윤준하)이 주최한 이정희 대표와의 간담회에 패널로 참석하고 돌아오면서 불현듯 떠오른 단상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는 무조건적 ‘성과주의의 시대’에서 ‘진정성의 정치’(politics of authenticity)의 시대로 이동하였다. 전자는 과정이나 장기적 결과나 윤리는 제쳐두고 일단 무언가 실행이라도 하자는 시대정신으로 이명박과 부시 후보 당선의 일등공신이다. 이 시대정신의 키워드는 ‘실행’ 이나 ‘행동주의’ 이다. 후자는 국가나 서민을 위한 진심어린 마음을 발견하고 공감하고 싶어 하는 시대정신으로 노무현과 오바마 후보 당선의 일등공신이다. 이 시대정신의 키워드는 ‘진정성’이나 ‘공감’이다. 두 시대정신에 대한 나의 개념은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규범적 시선을 떠나 시대적 핵심 화두, 시민 다수의 열망을 그저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이 시대적 사이클을 예견하거나 부응하는 정치세력이 시대를 선도한다.
이명박 정부의 ‘맹활약’(!) 덕분에 단 몇 년 만에 다시 시대 사이클은 후자로 돌아왔다. 박근혜는 진정성의 정치의 보수적 버전이고 이정희는 진보적 버전이다. 전자는 구체적 사익이나 정치계산보다 추상적인 국가나 민족을 위한 혼과 진정성을 강조한다. 한국의 많은 극우 정치인들은 입만 열만 국가와 민족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국가에 대한 강렬한 애정이라기보다는 자신의 협소한 사익을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세상읽기 컬럼에서도 소개하였지만 미국의 멕케인 상원의원과 한국의 박근혜 의원은 국가에 대한 혼이 자신의 존재이유인 보수이다.
진정성 정치의 진보적 버전인 후자는 추상적 이념이나 정파보다 구체적인 서민과 약자, 그리고 그들 가족들을 위한 ‘진심의 정치’를 강조한다. 이정희 대표와 달리 한국의 좌파 정치인들 중에는 인간에 대한 따듯한 공감과 사랑이 대전제가 아니라 이념이 먼저인 이들도 있다. 그들과 이정희 대표의 차이를 알고 싶으면 과거 정운찬 총리에 대한 인사청문회나 쌍용 자동차 농성자 가족들을 위한 이정희 의원의 처절한 절규를 떠올려 보면 충분할 것이다. 당시 이의원은 무조건 상대를 당파적으로 공격하고 파괴하고자 혈안이 되기보다는 치열하지만 따듯한 비판으로 오히려 정총리 지명자를 가장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따듯한 느낌이 잊히질 않는다. 진정한 진보란 그런 것이다. 쌍용 자동차 사건에서 이정희 의원은 마치 21세기판 ‘난쏘공’(조세희 님의 소설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저자처럼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사회를 향해 절규한 바 있다.
이 두 정치인이 이후 대선에서 대결할지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이정희 의원은 물론 대선은커녕 아직 지역구 거물 정치인을 낙마시킬 기회조차 없었던 정치신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제목을 박근혜 대 이정희라고 붙인 것은 새로운 시대 정신을 두 정치인이 현 시점에서 상징적으로 표현한다는 의미이다. 어떤 인물간의 대결이 될지는 모르지만 2012년 대선이 진정성 정치의 보수 대 진보의 대결임은 분명하다. 최소한 대선의 차원에서는 이 진정성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는 정치인은 당분간 시대의 결이 자신의 편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진정성의 정치’는 당연하게도 가슴을 파고드는 시적 언어로 표현된다. 지금 현재 한국 정치에서 가장 흥미로운 언어의 마술사는 단연코 박근혜와 이정희이다. 마치 하이쿠(일본 시문학 특유의 짧은 시)를 보는 것 같은 박근혜 의원의 언어는 정치커뮤니케이션 학문의 연구대상이다. 어제 포럼 모두 발언과 뒷풀이에서 이정희 대표는 정치인 특유의 사교성도 화려한 입담도 없었지만 인기 대폭발이었다. 그것은 그저 스타 정치인에 대한 의례적 환호가 아니라 진심이 깊게 담긴 공감과 그녀가 크게 성장하였으면 하는 갈망이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언어에서는 여의도 특유의 칙칙함과 정치계산의 냄새 대신 인간적 깊이를 가진 김제동과 박수홍의 느낌이 뚝뚝 묻어나기 때문이다. 난 정치인 트위터는 별로 흥미가 없지만 두 사람은 ‘팔로잉’해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일어난다.
진정성의 정치답게 두 사람에게는 초당적 정치의 기풍이 존재한다. 박근혜 의원은 세종시 이슈를 통해 당을 넘어 초당적 약속에 헌신하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에 성공하였다. 이정희 대표는 그간 의정활동과 최근 야권연대를 통해 민주노동당도 농성과 자기주장만 하는 당이 아니라 단 한 보의 진전을 위해서도 초당적 협력과 희생을 할 줄 아는 당임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사실 당파성과 초당성은 서로 양립이 가능하다. 지혜로운 정치인이라면 때로는 당의 비전을 위해 치열하게 당파적으로 싸우면서도 때로는 초당적 협력을 통해 단 한 보의 진전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정희 대표는 그제 포럼에서 지금 시점은 한 보의 진전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을 통해 이 양자와의 관계를 잘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두 의원 앞에는 험난한 장벽이 놓여있다. 개인 박근혜와 당의 브랜드 사이에는 큰 격차가 존재한다. 박근혜의 좌선회는 당심의 반발의 대상이다. 개인 이정희와 당의 브랜드 사이에는 더 큰 격차가 존재한다. 개인 이정희의 유연한 진보관은 당심과 온도가 다르다. 난 어제 뒷풀이 자리에서 팬클럽에 가입하겠다고 그만 약속을 해버렸지만 나의 고정관념 속에 있는 칙칙하고 거친 이미지의 민주노동당엔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다. 아직 일반 시민들에게 있어 민주노동당은 전투적 활동가들의 당이다. 과연 그녀가 협소한 당 활동가의 장벽을 넘어 대중의 바다 속에서 ‘시민정치’의 대담한 실험을 할지 아직은 의문이 든다.
차라리 나 같으면 당 외곽에서 다른 진보적 정당과 시민들과 함께 다양한 ‘위키’적 실험을 해보겠다. 즉 거대한 시민들과 함께 공동의 정책과 이슈, 문화적 활동 들을 구성해나가겠다. 이런 개론 수준의 이야기를 해야 되는 것이 안타깝지만 일부 칙칙한 활동가들끼리 모여 정당 통합을 이야기하거나 혹은 공동투쟁을 이야기하고나서 시민들에게 동참하자고 설득하는 것은 20세기 초기에나 하는 일이다. 활동 방식에서 모든 기성 정당들과 심지어 21세기적 기업들이 경탄하며 벤치마킹하게 강제해나가지도 못하는 정당은 절대로 진보 정당이 아니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진정한 진보정당은 스티브 잡스 같은 자유주의자가 보았을 때도 경탄하면서 베끼려고 혈안이 되게 만드는 콘텐츠와 활동방식을 가진 정당이다. 결국 잡스는 급진주의자 기질의 워즈니악을 애플 공동 창업자로 끌어들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자유주의나 진보 정치세력에는 스티브 잡스도 워즈니악도 존재하질 않는다.
이 둘이 없으면 애플은 탄생하지 않았다. 혹은 더 나아가 애플보다 급진주의적 기업도 생겨나기 어렵다. 하지만 한국에는 탁월한 정치기획가나 정치가가 없다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거대한 플랫폼을 만들다 보면 그런 가능성을 가진 이들도 훈련되거나 생겨난다. 그리고 대중적 힘과 지혜를 통해 합의된 정책과 아젠다도 만들어지고 당내 구조들도 정파구조가 아니라 21세기 시스템으로 바뀌는 압박의 계기가 된다. 더 나아가 2012년 이전이나 대선 직후 통합된 진보 정당이 탄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의 진보 정당은 지금과 같은 활동가 진보정당이 아니라 ‘대중적’ 진보 정당이라는 점에서 질적으로 차원이 다를 것이고 이후 보다 안정적 거버넌스가 가능한 토대이다. 만약 한국의 진보 정치세력들이 대담한 미래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지금 가장 주력해야 할 일이 바로 이러한 미래의 주춧돌을 놓는 일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플랫폼이나 혹은 진정성의 정치가 자동으로 컨텐츠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미국 학계 일각에서는 ‘진정성의 정치’가 때로는 ‘진정성이 있는 척’ 하는 이미지 정치로 귀결되는 위험을 자주 지적한다. 앞으로 박근혜 의원은 자신의 복지 화두의 구체적 실행 프로그램을 제시하여 보수와 진보의 가치 논쟁을 생산적으로 전개할 책임이 있다. 이정희 대표는 그제 포럼에서 향후 건강보험 이슈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표현했다. 앞으로 두 의원은 건강보험과 교육, 남북관계, 기후변화 같은 이슈에서 한국사회의 가치 대논쟁과 실행 프로그램 경쟁을 주도했으면 한다. 향후 한국 정치의 2년은 일상적 정치의 시기와 달리 무척 흥미롭고 역동적인 시기가 될 것이다. 박근혜와 이정희. 이 두 단어는 앞으로 2년의 한국정치의 변화를 읽어내는 키워드이다.
* 이 컬럼은 한겨례 7월 23일자 세상읽기에 실린 글을 약간 수정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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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토마 펌
한겨례 컬럼에서 아사리개판정치의 현실탈출구를 모색하는 뜻있는 글을 읽었다. 일전 본인도 분재속 화초와 비바람들꽃이라는 글로 두 사람의 정치에서 民生을 공감 할 수있는 부분이 있다고 나름 판단하여 글을 올린적있지만 정치란 백성의 피부에 와닿는 진정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다시한번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나름 판단해보았다. 한겨례는 박근혜의 진정성있는 보수버전을 그리고 이정희의 진보버전을 언급하며 상생의 전치를 희망하였다. 촛불이 아른거린 도심에서 전경에 끌려가며 절규하던 생소한 정치인이였던 이정희 가 어엿한 黨대표가 되었다. 불상식과 불의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양심을 대변하며 언제나 들꽃처럼 생생한 그 현장가운데 모습을 비추었던 젊은 이정희의원의 정치적 입지가 커짐에 주목하면서 희망을 꿈궈본다. 그의 정치신념이 무엇이든 (보수든 ,진보든 간에) 이념과 사상의 칼끝으로 예리하게 해부 할 필요는 없을것 같다. 우리사회의 弱者를 지키고 보호하려는 곧고 굳은 양심을 보건대 모두를 이롭게 할 바른人性을 지닌 정치인들이라고 나름 판단했기때문이다. 이념보다는 복지와 분배를 언급하는 보수정치인 박근혜의 실사구시가 진보적 성향의 이정희의원과 어울린다면 좋은 정치가 꽃피우지 않을까? 정치입문에의 태생적 어울림은 전무하지만 두사람의 정치觀은 색다른 어울림의 조화가 있을것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두사람의 정치언행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 大義적으로 공유,공감 할 수있는 "배려있는 정치"가 느껴진다는 점에서 말이다. 미래의 대통령 박근혜와 제일야당대표 이정희의 애국과 국민사랑의 정치쟁점이 조화롭게 어울리며 두사람의 정치버전이 화합과 상생의 발전적인 대한민국 정계를 이끌어 주었으면하고 상상해본다. ㅡ어줍잖은 정치골통들의 탁상공론으로 정쟁도구화된 사상과 이념의 선입관으로 두 사람을 보지말고 대한민국사회의 화합과 공존의 상생관으로 널리 이해한다면 가능하기도 한 미래의 대한민국 정치세계가 아닐까 나름 희망하면서.. 비가 오십니다. 조떠마의 모든분 들 "아침에 coffee" 한 잔씩 하셈^
朴근혜와 이정희의 진정성"있는 정치 [2]
첫댓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글이지만 정치 초년생과 차기 대통령의 비교는 난신난해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됨. 이정희를 당 대표로 밀어준 당원들의 뜻은 모를 것이나 투쟁적인 인물의 이정희는 노동당의 이미지를 국민들이 다르게 인식 하도록 하기위한 수단에 불과 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정일이 중대라는 별칭을 희석 시킬 정책이라고도 생각되며 노동당을 지지하는 국민은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시킬 수가 있을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불만을 사회적이슈로 하기 위한 당이기 때문에 과격한 심리을 생각하는 지지자가 대부분이라고 생각 한다. 때문에 두 사람을 비교 한다는 것은 부처와 부처의 제자와의 비교라고 생각 한다.
바가 온다 오는비는 올지라도 오래간만에 들어 보는구나 "" 비가 온다 ""
거기에 COFFEE 한잔 하셈 너무나 좋삼 분위기 도 짱되삼
너무 그렇게만 생각하지마삼 / 그런데 의리와 신뢰는 있어야하삼
좋은글 이라고 생각되삼 / 투쟁가 이게 문제인데 인물됨은 앞으로 앞으로 시간이 필요하삼
공감하는 글입니다.당차한 모습을 가진 초년생 이 정희의원이 근혜님과 비교한 것은 아직 하늘과 땅 차이라 할까요?
누가 하늘이지요~~근혜님이 하늘이라 좋습니다
그럼 이정희는 땅인가요?
둘다 사랑이지요 ..사람과 사람 커뮤니케이션,
백성을 사랑하는 자 누구일꼬 ?
,정치인들은 전부 백성의 피를 삼키는 자들 아닌가요?
나라를 사랑하는 자들은 경제인들이지요~~
수출 많이 하시는 자가 애국자들이랍니다~~
부자만들기 경제인들이 이나라 백성들 먹여 살리고 있어요~~
너무나도 할일이 없어 만든 글입니다 감히 박근혜vs이정희 라고 비유할 인물과 상대성과 견줄만할 인간을 그려 놓아야지 평가를 할텐데 이것은 아닙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친북성향이 있는자들은 거짖말 달인들입니다
한마디로 근혜님 위상을 깍아내리는 글이니 만큼 아무리 내용이 좋다고 해서 이렇게 해서는 안되는것입니다
그간 이 두분의 업적과 우리가 따르는 분과 상대편의 사람을 비교한다기 보다는 진보와 보수 혹은 진정성의 측면에서 비교하시면 공감이 가실 것입니다. 좋은 글입니다.
공감합니다. 이정희 의원의 진심에 박수를 보냅니다.
헐~~기가 막힙니다.박근혜와 이정희를 같은 반열에 놓고 비교를 하다니요.이정희가 국가관이 있나,애국심이 있나,,,깽판국회에서 공중부양하던 강기갑이 하고 의좋은 남매로 엮으면 딱이겠구만.
나도 기가 막힙니다 지금 우리가 이런사회에서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정희가 떠야 박근혜에게 유리해진다..민주당원내 대변인 전현희도 함께 떠라....덕볼 사람은 박근혜고...이정희와전현희는 차순으로..둘다 변호사로...멋진 승부가 될것이다...여기에..이혜훈이 가세하면...게임은 절정에 이를것이고..
사랑을 할 때 순간으로 짧은 세월에서 선택한 것들이 이별의 폭이 크다.
대한민국을 대표할 인물들을 1년 2년 짧은 세월속에서 선택하여 맡기는 것은
위험한 모험일 것이다 ... 그 누구이든 !!!
나라를 짊어질 본인들도 엄청난 장단점에 시련과 황당할 때를 대비 얼마나
해쳐나갈 능력이 되는가를 느끼며 공부하며 연구가 돼있어야 할 것이다.
몇명밖에 안되는 가정 부모 역활도 어렵고 때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데 ~~~
가지각색의 국민들을 돌봐야 할 책임과 의무 & 국가 수호까지의 국태민안을
행복하게 하려면 쉽게 판단이나 이야기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극우 정치인들은 입만 열만 국가와 민족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국가에 대한 강렬한 애정이라기보다는 자신의 협소한 사익을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 ㅎ 여기에 한표! ㅎㅎㅎ 멋진 휴일이 되시길요~
한겨례신문... 참 나쁜 신문이네요. 그럴싸한 말로 치장해서 이정희 띄울려고 우리 박근혜님과 비교하다니...비교 대상을 비교해야지...
제 개인 생각이지만 민주노동당은 말로는 노동자,농민,서민을 위한척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이용해서 북한체재를 동조하고
남한의 사회를 혼란에 빠드리려는 당으로 밖에 여겨 지지 않습니다.
격이 맞지도 않는 것을 한겨레가 갔다 붙어보지만, 아직은 초딩 수준의 이정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