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8:1~7 / 심히 창대하리라
(욥 8:1)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욥 8:2)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거센 바람과 같겠는가
(욥 8:3) 하나님이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욥 8:4)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나니
(욥 8:5)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욥 8:6)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욥 8: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빌닷의 욥에 대한 첫 번째 변론입니다. 그는 공의로운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벌하시고 의인에게 복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 짧은 시간에서 공의의 하나님을 적용하는 오류를 범하였습니다.
우리는 좀 더 긴 시간 속에서 우리를 보아야 합니다. 공의는 영원 속에서 성취됩니다.
빌닷은 욥이 회개하면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다고 합니다. 회개해야 한다는 말은 잘 못 되었지만, 욥이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비전은 옳은 말입니다.
1~2 친구들은 욥의 말을 귀담아 들어 주어야 하고 그의 고통을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그가 잠을 못 자고 침을 삼킬 순간조차 괴로워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연단이라는 말에 공감을 해주어야 합니다. 친구들은 그 연단이 하나님이 사랑해서 연단하는 것이므로 그 연단 후에 하나님이 크게 쓰신다고 소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수아 사람 빌닷은 욥의 말을 듣고 오히려 욥을 책망하였습니다.
언제까지 네가 그런 투로 말을 계속할 테냐? 네 입에서 나오는 말 거센 바람과도 같아서 걷잡을 수 없다고 합니다. 욥의 말을 제어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3~6 욥은 하나님이 죄 없는 자신을 단련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빌닷은 하나님께서 잘못 판단하실 것 같으냐고 묻습니다. 전능자께서 실수라도 하실 것 같으냐고 묻습니다. 욥의 자녀들이 죄를 지은 것이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죄 값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하나님을 찾고, 전능자에게 자비를 구하라고 합니다.
만일 욥이 회개하여 깨끗하고 정직하다면, 하나님이 욥을 도와주실 것이락고 합니다.
빌닷은 죄 없는 사람은 단련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죄 없는 사람을 단련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의인이 고난받는 것은 죄로 인하여 정의를 굽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빌닷은 욥의 자식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벌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빌닷은 욥의 자녀들과 욥이 죄를 지어서 주께서 죽음의 환난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이미 죽었지만 살아 있는 욥이 회개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욥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간구하고 청결하고 정직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돌보실 것이라고 합니다. 주께서는 그의 경건한 가정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빌닷은 욥의 자녀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릅니다. 다만 욥의 자녀들이 죽는 재앙이 일어난 결과를 보고 그의 자녀들이 죄를 지었다고 단정합니다. 욥이 거짓되게 그 죄를 숨기고 회개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빌닷의 견해와 달리 죄 없는 사람도 단련하십니다.
그들의 믿음이 하나님의 수준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더 큰 고난을 주어서 단련하십니다.
겸손과 믿음의 훈련을 위해서 단련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이 죄가 없어도 단련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단련하는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를 단련합니다.
죄 없는 사람을 단련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를 깨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는 자에게 더 큰 믿음을 주시고자 하는 것은 공의로운 것입니다.
7절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우리가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지금 욥은 미약합니다. 그러나 빌닷은 욥이 회개하면 그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이 심히 창대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빌닷의 말은 매우 은혜로운 말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니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말씀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서 액자에 써놓고 있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바로 빌닷의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이 작은 씨로 시작되었으나 나중에는 큰 나무가 되고 새들이 깃들입니다. 복음 역사는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심히 창대해집니다. 말구유에서 시작된 예수님의 역사가 세계를 정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빌닷은 욥이 죄를 지어서 욥의 가정이 창대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욥이 하나님을 찾지 않고 정직하지 않아서 창대하지 않다고 합니다. 빌닷은 짧은 시간 안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의인을 나중에 심히 창대하게 하신다는 것은 영원한 역사 속에서 맞습니다. 순간순간을 보면 의인은 창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아도 고난이 올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죄인도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먼 역사 속에서 보면 의인이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게 됩니다.
우리는 긴 역사적인 안목에서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영원한 역사 속에서 사람을 전체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늘나라의 완성 속에서 현실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의인은 잠시 고난은 당할지라도 반드시 창대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나중은 창대하게 될 것을 믿고, 현재의 고난을 감당해야 합니다.
욥도 전체적으로 보면 심히 창대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빌닷은 너무 짧은 시간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근시안적인 눈으로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좀 더 넓은 안목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믿지 않고 잘된 그들은 하늘나라에서 불과 유황으로 들어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