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논평] 입시 경쟁 자체가 불공정하고 부당하다
- 한참 잘못 짚은 윤석열 대통령의 수능 문제 발언
윤석열 대통령의 입에서부터 시작된 수능 시험 문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주 윤 대통령은 언어 영역의 특정 문제 유형을 가리켜 “아주 불공정하고 부당하다”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고, 그 파문은 이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물러나는 데까지 왔다.
그러나 과연 특정한 유형의 문제를 출제하지 않는다고, 수능의 난도를 낮춘다고 입시 교육 체제의 불공정성과 부당성이 사라질 것인가? 사교육의 필요성 및 부담이 줄어들 것인가? 입시의 불평등과 불공정, 학생들의 불안과 불행은 경쟁과 서열화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더구나 정작 고교 서열화의 주범이자 입시 과정의 불평등·불공정을 더욱 확대시킨 자사고, 외고, 국제고 등은 존치하겠다면서 시험 문제만을 거론하는 것은 그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대통령이 관심 가져야 할 것은 무슨 ‘교과서 외 지문’이니 ‘융합형 문제’이니가 아니라, 학교 서열 등 차별을 낳는 교육 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방법이다.
사실 지금껏 수능 시험은 쉬우면 쉬운 대로,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문제였다. 수능의 난이도에 따라 각각 다른 유형의 사교육이 유발되었고, 또 수능의 변별력이 작으면 내신이나 논술·면접 등이 중시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학생들을 ‘변별’해야 하는, 즉 촘촘하게 서열화해야 하는 입시 경쟁 자체가 문제의 원인이다.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몰고 불공정·불평등을 키우는 것은 사람을 줄 세우는 입시, 어느 대학에 입학했는지로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이다. 따라서 교육 개혁 역시 서열화·경쟁식 입시와 대학 서열을 건드려야 한다. 그러지 않고 입시의 세부 방식을 개편하려는 시도들은 부작용을 낳았고 피로도만 높였을 뿐이었다. 하물며 특정 유형의 문제를 출제하고 말고 하는 이야기는 그저 말장난이나 임시방편에 그칠 것이 뻔하다.
학생들의 교육권을 진정 보장하는 교육, 학생들이 감당 가능한 교육, 평등하고 공정한 교육을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의 결과가 사회적 차별로 연결돼선 안 된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대로 지나치게 경쟁적인 교육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수능 시험의 목적이 바뀌어 정말로 고등교육 참여 준비 여부를 판단하는 자격고사가 되어야 할 것이며, 대학 평준화와 학력·학벌 차별 금지 같은 개혁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개혁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정부 또는 대통령의 책임이 막중하다. 교육의 목적에 대해 사람들과 폭넓은 논의를 만들고, 개혁의 방향과 대안을 설득해나가야 그나마 가능성이 보일 것이다. 이런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채, 시험 문제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참으로 한가로워 보인다.
그러나 대통령이 던진 한마디에 혼란과 스트레스를 겪어야 할 학생들의 삶은 결코 한가롭지 못하다. 한국의 교육 제도도, 학생들도 대통령의 생각과 말에 쉽사리 좌우되는 장난감이 아님을 명심하라. 대통령의 말에 교육부 장관이 쩔쩔 매고 평가원장이 물러나는 상황은 현 정부 내에서 민주주의나 합리적 결정과정이 실종되었음을 드러내며,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자주성·전문성 등 헌법에 보장된 가치도 정면으로 위배하는 듯 보이기에 더욱 우려스럽다. 지금 한국의 교육에 필요한 논의는 학생들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능력주의적 경쟁과 차별의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꿔나갈 사회적 합의를 만들고 개혁의 경로를 모색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주도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역할이자 진정한 정치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단견과 아집을 앞세운 '왕놀음'을 그만두고, 교육을 개혁하기 위한 제대로 된 정치에 나서야 할 것이다.
2023년 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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