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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구필합 합구필분(分久必合 合久必分)
나뉜 지 오래되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친 지 오래되면 반드시 나뉘게 된다는 뜻으로, 중국 역사를 표현하는 말인 동시 자연의 섭리를 일컫는 말이다.
分 : 나눌 분(刀/2)
久 : 오랠 구(丿/2)
必 : 반드시 필(心/1)
合 : 합할 합(口/3)
合 : 합할 합(口/3)
久 : 오랠 구(丿/2)
必 : 반드시 필(心/1)
分 : 나눌 분(刀/2)
출전 : 삼국지연(三國志演義) 第1回
나눠진 지가 오래되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진 지가 오래되면 반드시 나눠진다는 뜻으로, 중국 정치 역사상 수 많은 왕조가 생겼다가 다시 합쳐지고 다시 나눠졌던 사실을 일컫는 말이다.
이 성어는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맨 처음에 나오는 말로, 역대 중국 왕조의 변화를 요약한 경구이다. 황석영의 삼국지를 보자.
예로부터 이르기를 천하대세란 나누어진 지 오래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진 지 오래면 또 반드시 나누어지는 법이라 했으니, 주(周)나라 말년에 일곱 나라로 나뉘어 다투다가 진(秦)나라로 통일되고, 진나라가 멸망한 뒤에 초(楚)나라와 한(漢)나라가 다투다가 다시 한(漢)로 통일되었다.
話說天下大勢, 分久必合, 合久必分. 周末七國分爭, 併入於秦, 及秦滅之後, 楚漢分爭, 又併入於漢.
한고조(劉邦)이 흰뱀(진나라)을 베어 죽이고 의(義)를 일으켜 천하를 통일한 뒤 광무제(光武帝) 때에 크게 일어났다가 헌제(獻帝)에 이르러 세 나라로 분열되었다.
漢朝自高祖斬白蛇而起義, 一統天下, 後來光武中興, 傳至獻帝, 遂分為三國.
(三國演義/第001回)
또 한 삼국지 끝부분은 이렇게 말한다.
이로써 삼국이 진제 사마염(晉帝司馬炎)에게 돌아가 천하가 통일 되었다. 이른바 '천하대세란 합쳐진지 오래면 반드시 나뉘며, 나뉜 지 오래면 반드시 합쳐진다'는 대로다.
自此三國歸於晉帝司馬炎, 為一統之基矣. 此所謂, 天下大勢, 合久必分, 分久必合者也.
(三國演義/第120回)
분구필합 합구필분(分久必合 合久必分)의 순환론
천하 대세는 '분열된 지 오래면 반드시 통일되고, 통일된 지 오래면 반드시 분열된다(分久必合 合久必分).'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연의(三國演義)'는 이렇게 역사순환론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반면 모종강(毛宗崗)의 '삼국연의'는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物)라는 3가지 키 워드를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표현은 서로 달라도 왕조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다루는 점에서는 일치하고 있다.
정치학자 최명(崔明) 교수의 표현을 빌려 논리를 전개해 보면, 주(周)나라 말년에 일곱 나라가 서로 분열돼 다투다가 진(秦)으로 통일되고, 진나라 멸망 후 초(楚)와 한(漢)이 다투다가 다시 한나라로 통일되었다.
한고조 유방(劉邦)이 천하를 통일하고 4백년이 지난 뒤, 천하는 다시 어지러워 졌고, 그 혼란은 마침내 위, 촉, 오 삼국의 분열을 가져왔다. 이것이 '삼국연의'의 배경이자 무대이다.
삼국은 다시 사마의(司馬懿) 일족의 진(晉)나라로 통일 되었고, 주나라 이후 삼천년의 중국 역사는 대체로 분열과 통일이 반복되어 왔다고 할 수있다.
최근의 역사를 보더라도 청나라가 망한 뒤의 군벌(軍閥) 할거(割據), 그리고 국민당과 공산당의 분열을 거쳐서 모택동의 중화인민 공화국으로 통일된 것도 그러한 역사 법칙의 예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순환 원리는 중국인 역사인식의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분열과 통일의 순환 패턴은 결코 중국만의 예외는 아니었다. 중세 유럽 대륙은 수백개 심지어 1천개가 넘는 작은 부분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이를 샤를르 마뉴제국(帝國)ㅡ프랑크 왕국이 통일을 이루었고, 샤를르대제(大帝) 개인의 수명(742-814) 만큼 유지했다.
일본(日本)도 7-8세기경 고대 통일왕국이 성립되었으나 점차 분열이 진행되어 12세기 말 가마쿠라(鎌倉) 막부가 세워졌고 1467년 역사적 사건인 '오닌(應仁)의 난(亂)' 이후 막부의 통제력은 또 다시 무너졌다.
그후 일본 전국이 분열된 상태로 1백여년 간(1467-1568) 싸움이 끊이지 않는 전국시대(戰國)가 계속된다.
1582년이 되어서야 오와리(尾張; 지금의 나고야)에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라는 인물이 등장해 전국을 평정해 나갔고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해 전국이 통일 되었다가 마침내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 의해 260여년 간 평화가 지속된 도쿠가와 막부 통일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러면 나관중의 '삼국연의'가 내세우고 있는 分久必合, 合久必分의 역사 가설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도 좋은 것인가?
여기서 중국인들의 역사인식을 들여다 보면, 역사가 변천한다는 것, 혹은 시대가 변화하는 것을 중국인들은 순환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역사의 진행 법칙에 관하여 일정한 원리가 존재하며 그것이 왕조의 교체에 있음을 인식하였고, 순환론에서 그 원리를 찾았다. 옛날부터 중국 사람들은 역사 지식과 역사 기록을 매우 중시했다.
풍부하게 집적된 역사적 경험의 기록을 통하여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필요한 조건이자 메인 팩터인 천시, 지리, 인화의 요소가 중시 되었고 모종강의 삼국연의는 이것을 바탕으로 스토리가 전개되어 간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 진행 법칙의 두 축(軸)인 순환론과 천시, 지리, 인물(인화)론을 동시에 굴리면서, 삼국연의를 나름대로 해석해 보며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고 본다.
덧붙여 한가지 더 소개해 드리고 싶은 것은, 바로 맹자의 '일치일란(一治一亂)' 설이다.
순환론과 맥을 같이하고 있으나, 단순히 치란(治亂)의 순환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거기에는 일정한 주기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오백년 주기설'이다. '오백 년에는 반드시 왕도를 행하는 자가 나오는 것이니, 그 사이에 반드시 세상에 이름있는 자가 생길 것이다.' 소위 '오백세왕자흥설(五百歲王者興說)'이 그것이며, 그 전에는 없었던 맹자의 창작물이다.
나관중 선생이 '삼국연의' 서두에서 명제한 '분구필합 합구필분'이 이천여 년 동안 반복된 중국 치란(治亂)의 현상이라고 하면 그것은 반드시 중국에 국한된 현상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의 진정한 의미는 천하 대세도, 국가도, 사회도 끊임없이 변한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하늘의 뜻은 , 즉 객관적 추세와 시대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다.
천하 대세를 포함하여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은 역사의 이치이다. 나관중은 '삼국지연의'에서 그것을 '분구필합(分久必合) 합구필분(合久必分)'이라고 표현했을 뿐이다.
天下大勢 分久必合 合久必分
역사란 분열과 통합의 연속
大一統
중국과 대만간의 통일 문제를 놓고 양안(兩岸) 간의 논쟁이 뜨겁다. 우리는 통일(統一)이라고 하지만 중국인들은 일통(一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서로가 통일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대만인들은 국가 대 국가로서 서로 대등한 관계 속에서의 연합론(聯合論)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하나의 중국'을 외치는 대륙 사람들에게 이 같은 주장은 결코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인 듯하다.
이런 대륙 사람들의 태도를 놓고 대만인들은 대륙에 아직도 공자(孔子)의 망령(妄靈)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비아냥 거리기도 한다.
맹자(孟子) 만장(萬章) 장구(章句)에 맹자가 '하늘에는 두 개의 해가 없고, 백성에게는 두 임금이 있을 수 없다(天無二日, 民無二王)'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는 대목이 보이는데, 고집스럽게 '하나의 중국'만을 외치는 중국인들의 사고는 아직도 이와 같은 전제주의(專制主義) 시대의 망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지난 역사를 보면, 이 같은 공자의 사상이 심각하고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행사해 왔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오천여 년의 중국 역사는 수 없이 많은 분열의 경험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고착화(固着化)되지 않고 다시 통합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데에는 이 같은 공자의 사상이 그 밑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주(周)나라 말기에 일곱 나라가 서로 패권을 다투다가 마침내 진(秦)에 의해 통일이 이루어졌고, 진이 망한 후에는 다시 초(楚)와 한(漢)으로 나뉘어 세력을 다투다가 결국 한(漢)에 의한 통일이 이룩되었으며, 한말(漢末) 헌제(獻帝)에 이르러 다시 천하는 삼국으로 분열되었다.
삼국연의 제 1회는 중국의 역사가 이처럼 끝없는 분열과 통합의 연속이었음을 말하는 '分久必合 合久必分'이라는 말로서 시작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말이 오늘날 중국의 '대통일(大一統) 논쟁'에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륙에서는 이 말을 들어 분열이 오래 되었으니 이제 통합을 이루는 것이 역사적인 순리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이에 반해 대만에서는 통일이 이루어지면 다시 분열이 일어날텐데 분열을 전제로 한 통일이 어째서 필요한가를 물으며, 이 같은 순환론(循環論)적인 역사관은 전제주의 시대에나 통용될 수 있는 낡은 이론이라고 반박한다.
어쨌거나 이 같은 순환론적 역사관은 중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고, 그 연원(淵源) 또한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속담에도 '물극필반(物極必返)' 이라는 말이 있는데, 달도 차면 기울듯이 모든 것은 그 정점에 이르면 다시 반대 방향으로 기울게 되어 있는 것이 자연의 순리요 도리라는 셈이다.
노자(老子) 40章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반복하고 순환하는 것은 도(道)의 운동이며, 유약(柔弱)하고, 겸하(謙下)한 것은 도(道)의 작용이다. 천하만물은 유(有)에서 생겨나지만, 유(有)는 무(無)에서 생겨난다.'
춘추시대의 대 사상가인 노자(老子)는 우주간의 일체 현상은 모두 상반적이며 대립적인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선악(善惡), 미추(美醜), 흥망(興亡), 성쇠(盛衰), 강약(强弱), 장단(長短), 고저(高低) 등이 그것으로, 이러한 대립체들은 서로 상보적(相補的) 관계를 유지하면서 변화하는데, 그 변화란 곧 끊임없는 반복과 순환의 되풀이를 말한다.
이와 같은 반복과 순환의 모태가 되는 것을 노자는 '도(道)'라고 불렀다. 역사 발전의 방향 또한 이러한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인식이다.
기껏해야 백 년, 영원한 건 없다
시간(時間)!
과연, 시간이란 뭘까? 시간이 우리에게 던지는 본질은 무엇일까? 시간(時間)을 파자(破子)하면, 時는 '日'과 '寺'의 합(合)이고, 間은 '門'과 '日'의 합(合)이다. 해(日)가 절(寺)의 문(門)을 통해 들어갔다가 터벅터벅 나오는 형상이다.
해(日)는 곧, 우주의 상징이다. 우리는 모두 나만의 우주를 지어놓고, 그 우주 안에서 살아간다. 내 마음이 우주요, 우주가 곧 마음이다. 당연한 귀결로 해는 '나(我)'의 다름 아니다.
절(寺)은 세속의 대척점에서 딸깍발이(淸貧; 성품이 깨끗하고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어 가난함을 빗대어 이르는 말) 처럼 꼿꼿이 서 있는 공간이다.
세속은 대개 돈, 아니면 권력, 그도 아니면 명예로 이루어진다. 혹은 돈과 권력과 명예의 조합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절이란 장소는 돈과 권력과 명예를 버린 채, 고결한 마음가짐으로 '속(俗)됨'을 모두 태우고, 한 발 한 발 겨우 디뎌 들어가는 소실(燒失)의 공간이다.
결국 시간이란, 우주의 중심인 '내'가 세속의 비루함을 모두 태워버리고, 오롯이 '자아(自我)'만을 앞세우며 홀로 서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가장 희소한 자원은 단연코 시간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일찍이 '월든'을 통해 최소한의 소비와 그에 따른 최소한의 노동을 인류의 지향점으로 강조했다. 그래야만 가장 소중한 '나'를 들여다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
21세기의 지구인은 역사상 유래 없이 풍족한 음식과 자원을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다. 먹고, 마시고, 타고, 보고, 입고, 싼다. 자본은 소비의 향연을 연달아 몰아치며 우리를 압박한다.
나는 충분히 먹고 마시고 쌌는데, 누가 옆에서 더 먹고, 더 마시고, 더 싸면, 나도 모르게 휩쓸려 더 먹고, 더 마시고, 더 싸야 한다고 착각한다.
나를 태워 쓰러질 때까지 채찍질 해서라도, 더 먹고 더 마시고 더 싼다. 뼈와 살이 튀는 이 아수라도(阿修羅道)에서 오직 내면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일 수 있는 용기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유발 하라리 역시 '사피엔스'를 통해 '현대인이 농경민보다 행복하고, 농경민이 수렵채취를 하던 인류보다 행복하다'는 우리의 편견을 통렬하게 부숴버린다.
수렵과 채취로 삶을 이어가던 조상들은 먹고 싶을 때 먹고, 쉬고 싶을 때 쉬었다. 그들에겐 오직 현재, 오직 오늘만이 중요했다는 말이다. '카르페 디엠'을 몸으로 실천한 셈이다.
농경으로 먹을 게 늘어나 생활이 여유롭다고 느낀 바로 그 순간, 농경민들은 곡식보다 무섭게 증가하는 자식들 때문에 발목이 잡힌다.
정착하는 삶은 더 많은 섹스를 낳았고, 더 안정적인 섹스는 더 많은 자식들을 잉태했다. 그렇게 무섭게 늘어난 자식들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그들은 매일매일 걱정을 하게 되었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창궐하는 순간, 인류는 오늘을 살지 못하고, '내일을 사는' 불행하고 가련한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월든'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이런 상황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제때의 바늘 한 땀이 나중에 아홉 바늘 꿰매게 될 수고를 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 천 바늘씩을 꿰매느라 허리조차 펴지 못하고 있다.'
'한가하다'는 의미의 ‘한(閒)’은 문 틈새로 달을 쳐다보는 형상이다. 수렵에서 벗어나 농경을 하게 되면, 평화로움이 찾아오고 문 틈새로 실컷 달구경이나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농경이 시작되니 달구경은 커녕 새벽별만 구경하는 신세로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싯타르타는 아들을 낳고 '라훌라'라고 이름 지었다. 라훌라는 '발목을 잡는 자'란 뜻이다. 어쩌면 싯타르타는 농경이 불러 일으킨 우리 삶의 족쇄를 일찍이도 깨달은 건 아닐까.
탱탱하고 싱싱한 새우를 그저 하루 먹을 만큼만 잡던 인류는 어느덧 저장을 고민하게 된다. 새우를 잡아 싱싱한 채로 먹지도 못하고 젓갈로 담근다.
싱그러운 현재를 애써 버리고 안온한 미래를 위해 소금으로 짜디짜게 절여버린 시간. 그곳에 늪처럼 빠져든 우리들은 퀴퀴하게 곰삭은 불행의 젓갈을 맛보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소설가 이승우의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다'라는 문장을 빌려 표현하자면, 농경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시간의 숙주'가 되어버렸다. 불행하게도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의 주인공들을 분석한다. 그토록 품위 있는 인격과 높은 지위에 있음에도, 그들이 시련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하마르티아'에서 찾는다.
하마르티아를 우리말로 옮기면 '잘못' 혹은 '죄(罪)'다. 그 잘못 가운데 으뜸은 단연 휴브리스다. 휴브리스는 오만(傲慢)이란 뜻인데, 여기서의 오만은 '신(神)에 대한 오만'을 의미한다.
이는 앞서 정의한 시간의 파자적 해석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태도다. 세(世)와 속(俗)을 버리고 오롯이 자아만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세와 속을 탐닉하는 자아가 휴브리스의 우(愚)를 범하게 된다.
'시학'에 등장하는 비극의 주인공들은 오직 제 잘난 맛에 산다. 그들은 종종 세(世)와 속(俗)은 물론이요, 동시에 시간까지 틀어쥐려는 인간의 오만방자 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언 속 '이기는 것만 알고 지는 것을 모르면, 그 피해는 너에게 돌아간다'는 문장은 바로 이 비극의 주인공들을 준열하게 꾸짖는 말이다.
그렇다면 권력, 돈, 명예 같은 세속적인 가치를 죽는 그날까지 추구했으면서도, '세속적 가치를 지나치게 탐하면 벌을 받는다'는 모순된 유언을 남긴 '세속의 화신(化身)'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심리는 과연 무엇일까?
'시끄러우니까 제발, 소리 좀 지르지 마!'라고 고래고래 외치는 인간처럼 혹은 '제발, 지폐를 훼손하지 마시오!'라고 만원 지폐에 휘갈겨 낙서한 사람처럼 모순 덩어리인 그의 심리를 해부해 보면, 결국 그의 마음속 깊은 울림은 '후회'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후회(後悔)란 먼 훗날(後) 마음으로(心) 하는 것인데, 안 타깝게도 매일(每)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어 '매일같이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후회다.
'나를 이기고자 하는' 공자의 실천 방안은 그래서 역설(逆說)이고 동시에 진리다. 왜 역설이자 동시에 진리인지 이해하려면 공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의 공기를 느껴봐야 한다.
먼저 철기의 보급으로 농업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수렵채취에서 농경으로 정착했을 때보다, 청동기에서 철기로 변화할 때 농업 생산력은 극적으로 증대된다.
당연하게도 그에 비례해 인구가 늘게 되고 생산력 증가에 따른 여유 시간은 철학을 잉태하게 된다. 이 시기에 제자백가 사상이 나타나 중국 철학사의 근간을 이룬 게,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렇게 오늘만 살던 세상에서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세상으로 또 한 단계 진화했다. 물론 이 전진이 과연 행복인지 불행인지는 평가를 유보하겠다.
껑충 뛴 경제력을 바탕으로 춘추전국시대 의 인간은 '예(禮)가 아닌데도 매일 말하고, 예가 아닌데도 매일 듣고, 예가 아닌 것만 유독 찾아보게 되는 인류'로 바뀌게 된다.
순리를 거스르는 인간.
오늘의 자아에 집중하지 못하는 인간.
내일만 걱정하고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
공자는 그 시점에 탄생한 신인류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자기를 극복하고 결국 오늘을 제대로 사는 인간이 될 것을 강력하게 주문한 셈이다.
이 부조리하고 불공평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공평한게 하나 있다.
당신이 부자든 빈자든 공평한 것. 당신이 권력을 쥐고 있든 기층민중이든 공평한 것. 당신이 착하든 악랄하든 공평한 것. 당신이 똑똑하든 멍청하든 공평한 것.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몸에 억만금을 두른 자도 결국 죽는다. 온 세상을 통일해 쥐고 흔들던 권력자도 결국 죽는다. 기껏해야 백 년이다. 이 얼마나 공평한가. 영원한 건 절대 없다!
천하대세(天下大勢)
분구필합(分久必合)
합구필분(合久必分)
나관중이 '삼국지연의'의 첫 문장으로 선택한 말이다. '천하의 대세는 나누어지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지면 반드시 나누어진다.'
유일하게 평등한 것, 다시 말해 '시간'을 진솔하게 소비할 때에만, 비로소 우리가 평등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이 내뱉은 대사가 유독 살갑게 다가온다. '내일만 보고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난 오늘만 산다.' 나도 진정한 위너가 되고 싶다.
▶️ 分(나눌 분, 푼 푼)은 ❶회의문자로 푼의 뜻은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된다. 刀(도; 칼)와 八(팔; 나눔)의 합자(合字)로 물건을 나눔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分자는 '나누다'나 '베풀어 주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分자는 八(여덟 팔)자와 刀(칼 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八자는 사물이 반으로 갈린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렇게 사물이 나누어진 모습을 그린 八자에 刀자가 결합한 分자가 물건을 반으로 나누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分자는 사물을 반으로 나눈 모습에서 '나누어 주다'나 '베풀어 주다'라는 뜻을 갖게 됐지만, 물건이 나뉜 후에는 사물의 내부가 보인다는 의미에서 '구별하다'나 '명백하다'라는 뜻도 파생되어 있다. 그래서 分(분, 푼)은 (1)분세(分稅) (2)분수(分數) (3)십진(十進) 급수(級數)의 단위의 하나. 곧 하나를 열에 나눈 것의 하나. 1의 1/10. 시간(時間)의 단위. 한 시간을 60으로 나눈 그 하나 (4)각도(角度). 경위도 등의 1도를 60으로 나눈 단위의 하나 (5)길이의 단위 1치를 10으로 나눈 그 하나 (6)1돈을 10으로 나눈 그 하나 (7)1할(割)을 10으로 나눈 그 하나 (푼)으로 읽힐 때, ㊀옛날 엽전의 단위. 한돈의 1/10 ㊁무게의 단위. 한돈의 1/10 ㊂길이의 단위. 한 치의 1/10, 등의 뜻으로 ①나누다 ②나누어 주다, 베풀어 주다 ③나누어지다, 몇 개의 부분(部分)으로 갈라지다 ④구별(區別)하다, 명백(明白)하게 하다 ⑤헤어지다, 떨어져 나가다 ⑥구별(區別), 다름 ⑦나누어 맡은 것, 몫 ⑧분수(分數) ⑨운명(運命), 인연(因緣) ⑩신분(身分), 직분(職分) ⑪길이, 무게, 시간(時間), 각도(角度), 화폐(貨幣) 따위의 단위 ⑫24절기(節氣)의 하나,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을 때, 그리고 ⓐ푼(엽전의 단위)(푼)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구분할 구(區), 나눌 반(班), 나눌 배(配), 나눌 반(頒),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합할 합(合)이다. 용례로는 어떤 사물을 이루고 있는 각 성분이나 요소를 갈라냄을 분석(分析), 어떤 갈래에 달린 범위나 부문을 분야(分野), 틀림없이 또는 확실하게를 분명(分明), 나누어서 넘겨 줌을 분양(分讓), 서로 나뉘어서 떨어지거나 떨어지게 함을 분리(分離), 찢어져 갈라짐을 분열(分裂), 생산에 참가한 개개인이 생산물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나누는 일을 분배(分配), 일을 나누어서 맡음을 분담(分擔), 종류를 따라서 나눔을 분류(分類), 따로따로 흩어짐을 분산(分散), 서로 구별을 지어 가르는 것을 분별(分別), 분량이 적적하여 모자람이 없음을 충분(充分), 전체를 몇으로 나눈 것의 하나하나를 부분(部分), 처리하여 다룸을 처분(處分), 명목이 구별된 대로 그 사이에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나 분수를 명분(名分), 따로따로 갈라 나눔을 구분(區分), 개인의 사회적인 지위 또는 계급을 신분(身分), 몫몫이 나누어 줌을 배분(配分), 남에게 어질고 고마운 짓을 베푸는 일을 덕분(德分), 마음에 생기는 유쾌 불쾌 우울 따위의 주관적이고 단순한 감정 상태를 기분(氣分), 화합물을 조성하는 각 원소를 성분(成分), 자기에게 알맞은 신분 또는 의무로 마땅히 하여야 할 직분을 본분(本分), 영양이 되는 성분을 양분(養分), 서로 소매를 나누고 헤어짐이란 말로 이별을 뜻하는 말을 분수작별(分手作別), 분가함 또는 별거함을 일컫는 말을 분문이호(分門異戶), 얼마 안 되는 돈과 곡식을 일컫는 말을 분전승량(分錢升量), 사리를 분별하는 마음가짐을 일컫는 말을 분별사식(分別事識), 자기 분수에 만족하여 다른 데 마음을 두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안분지족(安分知足), 두 과부가 슬픔을 서로 나눈다는 뜻으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동정한다는 말을 양과분비(兩寡分悲), 한번 서로 인사를 한 정도로 아는 친분을 일컫는 말을 일면지분(一面之分),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중대한 의리와 명분을 일컫는 말을 대의명분(大義名分) 등에 쓰인다.
▶️ 久(오랠 구)는 ❶지사문자로 乆(구)의 본자(本字)이다. 사람 인(人)에 파임 불(乀)을 합친 글자로서, 사람의 뒤 또는 엉덩이에 붙어 잡아 끄는 모양이며 잡아 끌고 오랫동안 놓지 않는다는 데서 오래다를 뜻한다. ❷지사문자로 久자는 '오래다'나 '길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久자는 측면으로 누워있는 사람의 등과 뜸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久자는 본래 ‘뜸질’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뜸은 약물을 몸의 특정 부위에서 태우거나 김을 쐐 자극을 주는 치료방법을 말한다. 뜸을 놓은 이후에는 약효가 스며들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해서 久자는 후에 '오래다'나 '길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火(불 화)자를 더한 灸(뜸 구)자가 '뜸질'이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久(구)는 사람을 만류하다, 거기에 머물게 하여두다, 길다, 오래되다, 등의 뜻으로 ①오래다, 길다 ②오래 기다리다 ③오래 머무르다 ④가리다 ⑤막다 ⑥변(變)하지 아니하다 ⑦오랫동안 ⑧오래된, 옛날의 ⑨시간(時間), 기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미륵 미(彌), 멀 유(悠), 길 영(永), 멀 하(遐), 멀 원(遠), 길 장(長)이다. 용례로는 오래도록 평안함을 구안(久安), 일을 오래 맡김을 구임(久任), 기간이 긺을 구구(久久), 오래 끎을 구연(久延), 어떤 일에 오랫동안 힘써 옴을 구근(久勤), 오래 사귐을 구교(久交), 오랜 해를 구년(久年), 오랫동안 머무름을 구류(久留), 앓은 지 오래되어 고치기 어려운 병을 구병(久病), 끝없이 오램을 영구(永久), 연대가 길고 오램을 유구(悠久), 길고 오램을 장구(長久), 변하지 아니하고 오래 감을 항구(恒久), 꽤 오래나 한참 지남을 양구(良久), 여러 해가 지나 꽤 오래됨을 연구(年久), 그 동안이 그리 오래지 아니함을 미구(未久), 오랫동안 버티어 견딤을 지구(持久), 매우 오래를 허구(許久), 오래 견딤을 내구(耐久), 오래 걸림을 적구(積久), 앞으로 올 때가 오래지 아니함을 불구(不久), 오랜 세월을 겪어 옴을 역구(歷久), 완전하여 오래 견딜만 함을 완구(完久), 어떤 일을 오래 해낼 수 있는 힘을 지구력(持久力), 영구히 변하지 아니할 만한을 항구적(恒久的), 영구히 변하지 아니할 만한을 영구적(永久的), 오래 견디는 성질을 내구성(耐久性), 젖니가 빠진 뒤에 다시 나는 이를 영구치(永久齒), 오랫동안 서로 보지 못함을 구불견(久不見), 오래도록 공경함을 일컫는 말을 구이경지(久而敬之), 오래도록 소식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구무소식(久無消息),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를 일컫는 말을 구한감우(久旱甘雨), 세월을 헛되이 오랫동안 보낸다는 뜻으로 긴 세월을 보내고 나니 헛되이 세월만 지났다는 말 또는 그냥 긴 시간을 보냈다는 말을 광일지구(曠日持久), 하늘과 땅이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물이 오래오래 계속됨을 이르는 말을 천장지구(天長地久),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무언가 바라는 마음이 세월이 갈수록 더해짐을 이르는 말을 일구월심(日久月深), 규칙이나 약속 따위를 오래오래 지키어 나감을 이르는 말을 영구준행(永久遵行), 물건이 오래 묵으면 조화를 부린다는 말을 물구즉신(物久則神), 완전하여서 영구하게 변하지 아니할 계교를 일컫는 말을 완구지계(完久之計), 사업의 오랜 계속을 도모하는 계획을 일컫는 말을 장구지계(長久之計), 좋은 법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 폐단이 생김을 일컫는 말을 법구폐생(法久弊生), 궁하면 변하게 되고 변하게 되면 두루두루 통해서 오래간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궁변통구(窮變通久) 등에 쓰인다.
▶️ 必(반드시 필)은 ❶회의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八(팔; 나눔, 필)과 주살익(弋; 줄 달린 화살)部의 합자(合字)이다. 땅을 나눌 때 말뚝을 세워 경계를 분명히 하여 나눈다는 데서 반드시의 뜻으로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必자는 '반드시'나 '틀림없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必자는 心(마음 심)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심장'이나 '마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必자는 물을 퍼 담는 바가지를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갑골문에 나온 必자를 보면 바가지 주위로 물이 튄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必자는 바가지나 두레박을 뜻했었다. 하지만 후에 '반드시'나 '틀림없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木(나무 목)자를 더한 柲(자루 비)자가 뜻을 대신하고 있다. 참고로 必자는 心자에서 유래한 글자가 아니므로 글자를 쓰는 획의 순서도 다르다. 그래서 必(필)은 ①반드시, 틀림없이, 꼭 ②오로지 ③가벼이, 소홀히 ④기필하다, 이루어 내다 ⑤오로지, 전일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없어서는 아니 됨을 필요(必要), 그리 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음을 필연(必然), 반드시 없으면 안 됨을 필수(必需), 꼭 이김이나 반드시 이김을 필승(必勝), 필연이나 반드시를 필시(必是), 반드시 패함을 필패(必敗), 반드시 읽어야 함을 필독(必讀), 장차 반드시 이름이나 필연적으로 그렇게 됨을 필지(必至), 반드시 죽임 또는 그런 마음가짐을 필살(必殺), 꼭 얻음 또는 꼭 자기의 물건이 됨을 필득(必得), 필요하게 씀을 필용(必用), 반드시나 틀림없이 꼭을 필위(必爲), 꼭 그리 됨을 필정(必定), 반드시 명중함을 필중(必中), 반드시 앎을 필지(必知), 우편물 따위가 정해진 기일까지 틀림없이 도착함을 필착(必着), 꼭 이루기를 기약함을 기필(期必), 다른 방도를 취하지 아니하고 어찌 꼭 또는 어찌하여 반드시를 하필(何必), 필요가 없음을 불필(不必), 생각하건대 반드시를 상필(想必), 다른 방도를 취하지 아니하고 어찌 꼭을 해필(奚必),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다는 뜻으로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임전훈을 일컫는 말을 필사즉생(必死則生),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뜻으로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임전훈을 일컫는 말을 필생즉사(必生則死),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음을 이르는 말을 필유사단(必有事端), 틀림 없이 꼭 망하고야 맒이나 패멸을 면할 길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필망내이(必亡乃已),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음을 이르는 말을 필유곡절(必有曲折), 품은 원망을 반드시 풀어 없애고자 애씀을 일컫는 말을 필욕감심(必欲甘心), 결코 이러할 이치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필무시리(必無是理), 아내는 반드시 남편의 뜻을 좇아야 한다는 말을 여필종부(女必從夫),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게 마련이라는 뜻으로 불교에서 세상만사가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생자필멸(生者必滅), 처음에는 시비 곡직을 가리지 못하여 그릇되더라도 모든 일은 결국에 가서는 반드시 정리로 돌아감을 일컫는 말을 사필귀정(事必歸正), 헤어진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돌아오게 된다는 말을 거자필반(去者必返), 덕이 있으면 따르는 사람이 있어 외롭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덕필유린(德必有隣), 누구나 허물이 있는 것이니 허물을 알면 즉시 고쳐야 함을 이르는 말을 지과필개(知過必改), 세상일은 무상하여 한번 성한 것은 반드시 쇠하게 마련이라는 말을 성자필쇠(盛者必衰), 어찌 꼭 이익만을 말하는가 라는 뜻으로 오직 인의에 입각해서 일을 하면 이익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이익이 돌아온다는 말을 하필왈이(何必曰利), 황하가 수없이 꺾여 흘러가도 결국은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뜻으로 결국은 본뜻대로 됨을 이르는 말 또는 충신의 절개는 꺾을 수 없다는 말을 만절필동(萬折必東) 등에 쓰인다.
▶️ 合(합할 합/쪽문 합, 홉 홉)은 ❶회의문자로 閤(합)의 간자(簡字)이다. 세가지 기원이 있는데, ㉮口部(그릇의 몸통 부분)와 亼(집; 뚜껑을 의미)의 합자(合字)로 뚜껑과 몸을 맞추는 일, 후세의 盒(합)과 같음. ㉯亼(집)이 集(집)과 같고 口(구)는 사람의 입으로 소리를 합하다, 대답하다로 쓰인다. 후세의 答(답)과 같다. ㉰亼(집)은 集(집), 口(구)는 물건을 나타내어 물건을 모으다, 합하다로 쓰인다. 그 어느 것이나, 모으다, 모이다, 합하다, 맞다의 뜻이 공통된다. ❷회의문자로 合자는 '합하다'나 '모으다', '적합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合자는 亼(삼합 집)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合자는 口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입'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 合자의 갑골문을 보면 뚜껑이 있는 찬합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合자는 이렇게 뚜껑과 그릇이 함께 결합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합하다' 라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合(합)은 (1)여럿을 한데 모음 또는 모은 그 수, 화(和), (2)내합(內合), 외합(外合) (3)인도(印度) 논리학(論理學) 곧 인명(因明)의 술어(術語). 삼단 논법의 소전제(小前提)에 해당함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합(合)하다 ②모으다 ③맞다 ④대답(對答)하다 ⑤만나다 ⑥싸우다 ⑦적합(適合)하다 ⑧짝 ⑨합(그릇) ⑩홉(양을 되는 단위) ⑪쪽문 ⑫협문(夾門: 대문이나 정문 옆에 있는 작은 문) ⑬마을 ⑭대궐(大闕) 그리고 ⓐ홉(양을 되는 단위)(홉)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겹칠 답(沓), 합할 흡(翕),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나눌 분(分), 떠날 리/이(離)이다. 용례로는 서로 뜻이 맞음을 합의(合意), 둘 이상의 국가나 기관 등 사물을 하나로 합침을 합병(合倂), 두 사람 이상이 모여 서로 의논함을 합의(合議), 시험이나 조건에 맞아서 뽑힘을 합격(合格), 두 가지 이상이 합하여 한 가지 상태를 이룸을 합성(合成), 서로 맞음을 합치(合致), 여럿이 어울려서 하나를 이룸을 합동(合同), 많은 사람이 소리를 맞추어서 노래를 부름을 합창(合唱),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 일을 합헌(合憲), 법령 또는 법식에 맞음을 합법(合法), 한데 합하여 흐르는 것을 합류(合流), 여러 사람이 마음을 한데 모음을 합심(合心), 둘 이상의 글자를 모아서 만든 글자를 합자(合字), 딱 알맞음을 합당(合當), 합하여 셈함을 합산(合算), 힘을 합하여 만듦을 합작(合作), 모두 합쳐서 하나로 모음을 통합(統合), 개개 별별의 것을 한데 모아 합함을 종합(綜合), 일정한 테두리 안에서 공동 목적으로 둘 이상의 개별적인 단체나 조직체가 아울러서 하나를 이룸을 연합(聯合), 틀림없이 서로 꼭 들어맞음을 부합(符合), 한 곳으로 모음 또는 한 곳으로 모임을 집합(集合), 둘 이상이 서로 관계를 맺고 합치어 하나가 됨을 결합(結合), 화목하여 잘 합하여 짐을 화합(和合), 꼭 합당함을 적합(適合), 모여서 합침 또는 한데 모아 합침을 취합(聚合), 녹아서 하나로 합침을 융합(融合), 남의 마음에 들도록 힘씀을 영합(迎合), 두 가지 이상이 거듭하여 합침을 복합(複合), 뒤섞어서 한데 합함을 혼합(混合), 전국시대에 행해졌던 외교 방식으로 합종책과 연횡책을 일컫는 말을 합종연횡(合從連衡), 합포에 구슬이 다시 돌아왔다는 뜻으로 지방 장관이 선정을 베풂을 이르는 말을 합포주환(合浦珠還), 밑천을 한 데 모아서 이익을 도모함을 일컫는 말을 합본취리(合本取利), 두 손바닥을 마주 대고 절하는 예禮를 일컫는 말을 합장배례(合掌拜禮), 이상하게 결합하는 인연이란 뜻으로 부부가 되는 인연을 가리키는 말을 합연기연(合緣奇緣), 까마귀가 모인 것 같은 무리라는 뜻으로 질서 없이 어중이떠중이가 모인 군중 또는 제각기 보잘것없는 수많은 사람을 일컫는 말을 오합지졸(烏合之卒), 자기의 주견이 없이 남의 말에 아부하며 동조함을 일컫는 말을 아부영합(阿附迎合), 참 지식은 반드시 실행이 따라야 한다는 말을 지행합일(知行合一), 구름처럼 합하고 안개처럼 모인다는 뜻으로 어느 때든지 많이 모임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운합무집(雲合霧集), 부절을 맞추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꼭 들어맞아 조금도 틀리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약합부절(若合符節), 가난한 두 사람이 함께 모인다는 뜻으로 일이 잘 되지 않음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양궁상합(兩窮相合)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