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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리뷰시
권온의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근원이자 모든 것으로서의 마음 ―김형식의 시 세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근원이자 모든 것으로서의 마음
―김형식의 시 세계
권온 문학평론가
모든 인간의 삶은 나름의 개성과 굴곡이 있을 테지만, 김형식 역시 매우 독특하고 개성적인 행로를 걸어왔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공부하고 수련하며 스스로를 단련해온 인물이다. 김형식의 삶을 지탱하는 하나의 축은 불교이고, 다른 하나의 축은 시 또는 문학이다. 시집 질문은 그의 7번째 시집으로서 ‘불교’와 ‘문학’이라는 2개의 축이 극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보기 드문 수작(秀作)이다. 이 글은 이번 시집에서 14편의 시를 엄선하여 시인의 시 세계를 탐색하려는 시도이다. 독자들로서는 김형식의 시를 읽으며 성철 스님과 한하운 시인의 영향력을 찾아보는 일도 귀한 경험으로서 자리할 것이다.
아직도 풀지 못했어?
전생의 업 그리 두터운가
심장의 붉은 피는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돌고 도는데
무엇이 그리 꼬여
얼굴을 돌리고 살아가고 있는가
녹여 내야지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다
그 응어리 녹여 내고
우리 마주 보고 곱게 피자
—「화해」 부분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긴요하면서도 쉽게 풀 수 없는 난해한 문제 중 하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관계’ 또는 ‘대인 관계’라는 표현으로서 언급되는 이와 같은 관계는, 많은 경우에 가족이나 친구 또는 동료 등 매우 긴밀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사이에 적용된다. 우리는 삶을 영위하면서 대립이나 갈등 또는 상처 등을 남들과 주고받는다. 타인에게서 대립, 갈등, 상처 등을 받기를 원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지만, 안타깝게도 그러한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대립, 갈등, 상처를 최소화하고, 이미 벌어진 부정적인 상황을 해소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김형식은 서로 “얼굴을 돌리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독자들에게 “화해”를 권유한다. 그는 우리에게 “전생의 업”을 풀고, 꼬인 마음을 풀며, “응어리 녹여” 낼 것을 제안한다. 시인은 사람들에게 무엇보다도 서로 “마주 보고” 해결할 것을 제안한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눈과 눈을 마주치며, 서로의 오해를 풀어 보자는 그의 따뜻한 제안을 잘 새겨들을 일이다.
새벽 직업소개소 앞마당
모닥불이 겨울을 녹이고 있다
해는 중천으로 기어오르고
허기진 배속에는 라면이 끓고 있다
라면 하나에 사랑과
서러움이 끓는다
사업 실패로 거리를 떠도는 아비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라면을 끓이고 있다
병석에 누워계신 아버지
고등학생 막내딸
친구 집 식당 주방에서 식기를 닦고 있는 아내
밤을 지새워 우는 칼바람은
이 무능한 아비가 봄을 찾는 까닭이다
내일도 이 아비는
라면을 끓일 것이다
봄을 찾아서
—「봄을 찾아서」 전문
우리는 앞의 시에서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다”라는 김형식의 진술을 목도하였다. 거기에는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그득하게 담겨 있었다. ‘봄’을 향한 그의 지향성은 이번 시에서도 지속된다. 앞의 시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해’를 강조하며 ‘봄’을 그리워했던 김형식은 이번 시에서 “아비”의 마음을 내세우며 “봄을 찾”고 있다. “모닥불”에 의지하여 “겨울”, “새벽”을 견딘 “아비는”, “사업 실패로 거리를 떠도는” 중이다. 아비는 스스로를 “무능한 아비”로 규정하는데, 그는 이를 타개하는 계기로서 “라면”을 선택한다. ‘라면’을 끓이는 행위는 “서러움”을 돋우는 일인 동시에 “사랑”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시인에 의하면 오늘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라면을 끓이고 있”는 아비는 “내일도”, “라면을 끓일 것”임을 선언한다. 사랑의 실천으로서의 라면 끓이기가 봄을 앞당기고, 그 길의 끝에서 가족과의 눈물겨운 해후가 장엄하게 펼쳐지기를 독자들은 바라고 또 바란다.
지구가 이상하다
도처에 물난리다
지진이 일어나고
화산이 폭발하고
빙하가 녹아내리고
지구가 불타고 있다
살아 있는 생명체,
지구가 병이 들어
복원력을 잃고 펄펄 끓고 있다
그래도 살아나야 한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 몸부림치고 있다
악성 종양을 제거하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지구는 잘 알고 있다
우리 인간이 지구를 죽이는 암세포라니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다
—「병든 지구의 눈물」 전문
이 시는 김형식의 시 세계가 좁은 영역에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시인은 여기에서 전 지구적인 상상력을 역동적인 방식으로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의 “지구”는 지금 “병이 들어”, “눈물”을 흘리는 중이다. ‘지구’의 ‘눈물’은 “물난리”, “지진”, “화산”, “빙하”의 “녹아내”림 등으로 구체화한다. 김형식은 “복원력을 잃고 펄펄 끓고 있”는 “이상”한 지구의 원인으로서 “인간”을 지목한다. ‘인간’이 “지구를 죽이는 암세포”이자 “악성 종양”이라는 그의 판단은 우리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아픈 진실일 테다. 마지막 연에 제시된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다”라는 진술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를 연상시킨다. 이 작품은 생태학적 연구의 관점에서 충분히 숙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시로 판단된다.
선거 때가 되면
나를 버리고
우니 좌니
동이니 서니 이익만을 쫓아 기웃거리며 부화뇌동
썩은 생선을 제사상에 올리는 일은
이제는,
다시는 없어야 한다
대통령 선거는 큰 제사다
눈 밝은 선비들이
회초리 들고 일어서야 한다
남명 조식 선생이
매천 황현 선생이 울고 있다
백 년 앞을 내다 보자
목욕재계하고
정신 바짝 차리고
젯상을 차려야 한다
썩은 생선은 안 된다
—「제물(祭物)」 전문
좋은 시가 갖는 미덕 중 하나는 독자들에게 복합적인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 시는 한편으로는 “제사”나 “제물” 또는 “젯상” 등을 다루고 다른 한편으로는 “선거” 또는 “대통령 선거”를 다룬다. 이 작품은 ‘제사’와 ‘선거’를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복합적인 가능성을 갖춘 좋은 시에 해당한다. 김형식은 ‘대통령 선거’를 ‘큰 제사’로서 파악한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생각한 “백 년 앞을 내다 보”는 선거를 치르지 못하였다. 그 결과 “나를 버리고 우니 좌니 동이니 서니 이익만을 쫓아 기웃거리며 부화뇌동”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시인은 선거를 잘 치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목욕재계하고 정신 바짝 차리고” 진행해야 할 신성한 의식인 제사에 “썩은 생선”을 ‘제물’로 올린 상황에 비유한다. 김형식은 독자들에게 “남명 조식 선생”이나 “매천 황현 선생”과 같은 “눈 밝은 선비들”이 되어 줄 것을 제안한다. 제사를 잘 치르고, 선거도 잘 치러서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의 앞날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조성해야겠다는 시인의 바람이 더할 나위 없이 곡진하다.
사랑에도 암수가 있다
들어오는 사랑은 수컷
밖으로 나간 사랑은 암컷
암수의 사랑이
사랑을 낳고
그 사랑이 커서
세상을 지배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사랑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전문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원리는 무엇일까? 김형식이 제안하는 해답은 “사랑”이다. 그가 바라보는 사랑은 “암수의 사랑”이다. ‘암수’는 ‘암컷’과 ‘수컷’을 포괄하는 단어인데, 시인은 암컷의 사랑을 “밖으로 나간 사랑”으로 규정하고 수컷의 사랑을 “들어오는 사랑”으로 규정한다. 암컷 또는 여성의 사랑은 ‘밖으로 나간 사랑’이자 ‘항구의 사랑’일 수 있고, 수컷 또는 남성의 사랑은 ‘들어오는 사랑’이자 ‘배의 사랑’일 수 있다. 암컷의 사랑이 수컷의 사랑과 만나서 더 큰 사랑을 낳는다. 여성의 사랑이 남성의 사랑과 만나서 더 위대한 사랑을 생산한다. “그 사랑이 커서 세상을 지배한다”라는 김형식의 진단은 냉정하고 각박하며 엄혹한 현대 사회를 밝히는 한 줄기 희망으로서 사랑의 가치를 환기한다.
남편이 잠들어 있다
심하게 코를 고신다
바위 구르는 소리
피리 부는 소리
풀무질 하는 소리
꿈속에서도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무거운 짐 짊어지고
구름 속을 헤매고 계신
우리 집 태양
애들 아빠
나의 남편
—「나의 남편」 전문
시적 화자 ‘나’가 주목하는 대상은 “남편”이다. 그러니까 ‘나’는 ‘남편’에게는 ‘아내’가 된다. 아내는 남편의 잠들어 있는 모습을 관찰한다. 아내는 심하게 코를 골고 있는 남편을 존중한다. 아내가 남편의 코 고는 소리를 “바위 구르는 소리”, “피리 부는 소리”, “풀무질 하는 소리” 등 시끄러운 소리에 비유하면서도 남편을 향한 존중 또는 존경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남편이 “애들 아빠”이자 “나의 남편”이며 우리 가정을 이끄는 “가장”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남편이 “꿈속에서도”, 가족을 위해 “무거운 짐 짊어지고”, “구름 속을 헤매고” 있음을 믿는다. 시인은 ‘심하게 코를 곤다’가 아닌 “심하게 코를 고신다”를 선택하였고, ‘구름 속을 헤매고 있는’이 아닌 “구름 속을 헤매고 계신”을 선택하였다. 이와 같은 디테일의 차이는 남편을 향한 아내의 신뢰와 사랑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여섯 살 손녀 손을 잡고
섬강 길을 걷고 있다
“할아버지 이것이 뭐에요?”
“갈대라고 하지”
“그럼 올대는 어디 있어?”
올때?
손녀는 올때가 알고 싶다
나는 갈때에 흔들린다
가을이면 좋겠다
—「가을이면 좋겠다」 전문
시는 예술이자 문학이며 언어이다. 이 작품은 시가 언어를 활용한 첨단의 예술임을 입증하는 적절한 사례가 된다. 여기에는 순수하고 천진한 어린 아이의 마음이 가득하다. 시인은 어린 아이의 마음을 성인이 된 이후에도 간직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가령 이 시의 “할아버지” 또는 시적 화자 ‘나’와 같은 사람이 시인의 마음, 어린 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다. ‘할아버지’의 “갈대”라는 말에 “여섯 살 손녀”는 “올대”를 찾는다. 할아버지는 손녀가 ‘갈대’를 ‘갈 때’로 이해한 후 ‘올 때’를 찾고 있음을 파악한다. 할아버지의 “올때?”는 ‘올 때’를 의미하는 셈이다. 어른들의 고정된 눈은 ‘갈대’를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여섯 살의 자유로운 눈은 ‘갈 때’, ‘올 때’, ‘갈때’, ‘올때’, ‘올대’ 등을 폭넓게 볼 수 있다. 특히 김형식이 제안하는 “나는 갈때에 흔들린다”라는 진술은 이 시를 언어유희의 진수로 드높인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신의
뜻이고,
이 세상에서 죽어가는 것도 신의 뜻이다
두 발 딛고
일어서는 것도 신의 뜻이고
누구를 사랑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신의 뜻이라니
내 자의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
생각하는 것조차도 신의 뜻이다?
신의 숨통을 끊어 놓아야 한다
그리하여 신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나야 한다
—「신을 죽여야 산다」 전문
어떤 경우에 누구나 예상 가능한 길을 그대로 따르는 일은 현명한 선택이 아닐 수 있다. 때로 매력적인 예술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반전, 전환, 변주 등이 필요하다. 인용한 시에는 이와 같은 반전이나 전환 또는 변주가 발생한다. 5개 연으로 구성된 이 시에서 1연~3연은 “신의 뜻”에 강하게 경도되어 있다. “태어난 것도”, “죽어가는 것도”, “일어서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모두 ‘신의 뜻’에 연결된다. 곧 “내 자의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셈이다. 변화의 조짐은 4연에서 엿보인다. “생각하는 것조차도 신의 뜻이다?”라는 진술에서 우리는 ‘물음표’에 주목하게 된다. 물음표는 ‘신의 뜻’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이 흔들리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어지는 5연의 진술은 다소 충격적이다. “신의 숨통을 끊어 놓아야 한다”라거나 “신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나야 한다”라는 식의 단언은 매우 급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이 작품의 제목 “신을 죽여야 산다”라는 진술에서 독일의 철학자 니체(Nietzsche)를 떠올릴 수도 있다. 김형식의 제안을 존중하여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 또는 의지에 따라서 행동하고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야겠다.
질문하고 질문하라
당신도 질의 문에서 나왔다
질문은 생명의 문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이곳에서 나왔다
태양도 지구도
석가도 예수도
철학도 예술도
질문에서 나왔다
질문에는 세 가지 갈증이 있다
그 하나는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는 것이요
그 둘은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고
그 셋은 지혜를 구하는 것이다
질문을 던져라
인간의 심장을 뜨겁게 하라
질문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몸이다
질문만이 위대하고, 또, 위대하다
질문하고 질문하라
질의 문은 당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질문」 전문
이 시에는 언어에 민감한 시인의 역량이 잘 녹아 있고, 이것과 저것을 아우르는 복합적인 가능성이 내재한다. 김형식은 “질문”과 “질의 문(질문)”을 제시한다. 전자의 ‘질문(質問)’은 알기 위해서 묻는 행위를 뜻하고, 후자의 ‘질문’은 ‘질(膣)의 문’ 곧 여성의 생식 통로를 의미한다. 시인은 앎을 추구하며 물음을 던지는 행위와 “살아 있는 것”이 “생명의 문”으로서의 ‘질’을 열고 나오는 행위를 겹쳐서 바라본다. 그가 포착한 ‘질문’에는 “태양”이나 “지구”와 같은 자연이나 우주가 있고, “석가”나 “예수”와 같은 인간이 있으며, “철학”이나 “예술”과 같은 학문이나 문화가 있다. 곧 김형식이 제안하는 질문은 이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포괄한다. 그에 의하면 “질문하지 않는 사람은”, 진실로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모르는 것을 알고”,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며, “지혜를 구하”게 되는 것일까? 시인의 바람처럼 질문을 실천함으로써 “존재를 증명”하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사랑을 연기하다
배우가 되었다
부부로 살아가는 것
무대 위에 사는 것
이 모두가 세상을 배우는 일이다
만남은 이별을 배우고
이별은 만남을 배운다
유상은 무상을 배우고
무상은 유상을 배운다
삶은 죽음을 배우고
죽음은 삶을 배운다
인생사 모두가 연기다
배우며 사는 세상
우리 모두가 배우다
—「배우」 전문
김형식이 이 시에서 집중하는 영역은 “세상”이자 “인생사”이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가 주목하는 대상은 “부부”로 대표되는 인간의 “삶”과 “죽음”이다. 특이한 점은 시인이 도입한 렌즈로서의 어휘이다. 그것은 “배우”, “무대”, “연기” 등으로 구체화된다. 사람은 때로는 “사랑을 연기하”고, 때로는 미움을 연기한다. “부부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대 위에 서는 것”이고 “세상을 배우는 일이다” ‘사랑’과 ‘미움’이 하나이고, “만남”과 “이별”이 하나이며, “유상”과 “무상”이 하나이다. “우리 모두”는 “삶”과 “죽음”이 하나이고, “인생사 모두가 연기”임을 평생 “배우며” 살아간다. 인간은 누구나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로서의 운명을 살아간다. 인간의 인생은 결국 ‘배움’의 연속이자 ‘연기’의 연쇄라는 김형식의 값진 인식이 더없이 소중하다.
새벽 찬물에
얼굴을 씻고 나니
들리는 것은
모두가 부처님 법문이다
새소리
바람 소리
개울 물소리 건너
보니
부처 아닌 게 없다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
어제도
내일도 오늘
부처님 오시는 날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아 미 타 불
—「부처님 오신 날」 전문
‘불교’와 관련된 일련의 정황은 김형식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인용한 시에는 불교와 관련된 다채로운 요소들이 그득하다. 독자들로서는 우선 “부처”, “부처님”,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등 직접적으로 연결된 어휘에 주목하게 된다. 이 시에서 보다 중요한 측면은 간접적이고 내재화된 불교적인 요소이다. 우리는 2연의 “들리는 것은 모두가 부처님 법문이다”, 4연의 “보니 부처 아닌 게 없다” 그리고 6연의 “어제도 내일도 오늘” 9연의 "아미타불 "등에 주목할 수 있다. 이 시를 읽는 이들은 모든 곳에서 ‘부처님 법문’이 들리고, 모든 곳에서 ‘부처’를 만나며, 모든 날이 “부처님 오신 날”이 되고 자신도부처가 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겪는다. 시인은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부처가 되어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육안으로 바라볼 때는
보이지 않던 안갯길도
마음의 눈으로
살펴보면 길이 보인다
아들아
인생길도 그렇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는
서두르지 말고
마음의 눈으로 살펴 보거라
가만히 들여다보면
길이 보인다
—「아들에게」 전문
김형식의 시를 읽는 독자는 다양한 인간사를 경험할 수 있다. 시인은 ‘아버지’의 입장에서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전언을 시로써 형상화한다. 김형식은 인간의 눈을 “육안”과 “마음의 눈”으로 구분한다. 그에 의하면 육체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던 “길”이 ‘마음의 눈’ 또는 심안(心眼)에는 보이는 경우가 있다. 마음의 눈으로 찾을 수 있는 ‘길’은 인생의 방향과 관련된 “인생길”일 수 있다. 인생을 진행하다 보면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생기기 마련이다. 답답하고 암울한 상황에 놓인 ‘아들’에게 시인은 “서두르지 말고 마음의 눈으로 살펴 보거라”, “가만히 들여다보면 길이 보인다”라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리는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생각하다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길’ 또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거기서 뭣하노
지나가는 바람 집적인다
물 위에 앉아있는 찌
고기야
물면 어떻고
안 물면 어쩌랴
내려놓고
앉아 있으니
이 자리가 천국인 것을
바람아 쉬어 가거라
저 강태공
성불하는 것 좀 보고 가자
—「낚시」 전문
복합적인 가능성을 발휘하는 시가 여기에 있다. 김형식은 여기에서 “강태공” 또는 낚시꾼의 “낚시”에 집중한다. 낚시의 일반적인 목적은 물고기를 낚는 데에 있을 터인데, 시인의 생각은 조금 색다르다. 물고기를 낚아도 되고, 낚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이다. “고기”가 “찌”를 “물면 어떻고 안 물면 어쩌랴”라는 진술이 이와 같은 심경을 대변한다. 김형식은 사람들에게 꼭 물고기를 낚아야 한다는 목표 지향적 사고를 “내려놓고 앉아 있”을 것을 제안한다. 그는 얽매임 없이 “지나가는 바람” 사이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이 자리”를 “천국”으로서 규정한다. 또한 그러한 낚시꾼의 낚시를 “성불”로서 이해한다. 이제부터 ‘일상’의 장소와 ‘종교’의 장소는 구별되지 않고, ‘세속’의 공간과 ‘신성’의 공간은 하나가 된다.
부딪쳐
돌고 돌며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모나지 않게
살아갑시다
내가 둥글면
이웃이 둥글어지고
세상도 둥글게 돌아갑니다
우리 모두
둥글게 둥글게 살아갑시다
—「몽돌」 전문
시인은 아마도 “몽돌”을 관찰했을 테다. 그는 모가 나지 않고 둥근 돌로서의 ‘몽돌’을 골똘히 보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을 게다. 김형식은 시적 화자 ‘나’에게 몽돌을 닮은 둥근 성격을 기대한다. 또한 ‘나’에게 주입된 몽돌의 둥근 특징이 “이웃”으로 연결되고, “세상”으로 확장되기를 바란다. 시인은 우리에게 몽돌의 가르침을 알려준다. 그가 몽돌에게서 배운 “부딪쳐 돌고 돌며 사는 법”은 “우리 모두”에게 “둥글게 둥글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한다.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은 세상살이에서 사용할 수 있는 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요컨대 세상 사람들이 모나지 않게, 둥글게 둥글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몽돌과 같은 삶을 영위할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테다.
김형식의 7번째 시집 질문을 함께 살피었다. 그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요소들 중에서 일차적으로 눈에 띄는 바로는 인간, 가족, 삶, 인생, 세상 등이 있다. 특히 시인은 부모, 자녀, 부부 등 가족과 관련된 시편을 매력적으로 형상화하였다. 시인은 국가, 민족, 사회, 지구, 신(神), 종교 등에 대해서도 깊은 탐구력을 보여준다. 매우 다채로운 요소들로 구성된 김형식의 시 세계를 종합하는 일은 지난한 과제가 될 수 있다. 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따뜻함과 넉넉함 그리고 자유로움을 경험하는 일에 가깝다. 시인의 시 세계의 토대를 이루는 기초 항목들 중에서 우리의 관심을 이끄는 것으로는 ‘부처’와 ‘마음’이 있다.
부처님(Buddha)께서는 마음과 관련하여 깊은 울림이 있는 일련의 말씀을 남겼다. 곧 “모든 상황에서 침착하도록 마음을 훈련하라.(Train your mind to be calm in every situation.)”, “마음은 모든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당신은 이루어질 것이다.(The mind is everything. What you think you become.)”, “마음을 가라앉히면 영혼이 말할 것이다.(Quiet the mind and the soul will speak.)”
김형식의 시에는 부처와 불교의 따뜻하고 넉넉하며 자유로운 가르침이 가득하다. 마음을 강조하는 시인의 밝은 눈에 깊이 공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테다. 마음의 평화는 영혼의 대화를 가능케 할 것이고, 마음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근원이자 모든 것이 된다. 앞으로 많은 독자들이 김형식이 제안하는 훌륭한 마음의 시를 지속적으로 읽는다면, 우리나라의 앞날은 더욱 밝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것임을 굳게 믿는다.
첫댓글 좋은 자료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동행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