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데까르트에 따르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명백한 증거는 우리가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며, 동시에 살아있냐는 하는 것은 이 기억 때문에 증명된다는 것이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 당신이 살아 있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몇 번씩이고 시간의 여유를 느낄 때, 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 난 지금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은 허무함과 동시에 정해진 정답이 없이 무의미하게 보내버리고 만다. 정말 내가 무엇 때문에 사는가? 내가 살아있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정확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지금 모든 생활과 시간을 버리고 나를 찾아서 떠나 본다는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어려운 일이 아니라 단지 내 자신의 존재에 대한 핑계일수도 있다. 내가 존재한다는 이유에 아직 정해진 것이 없고 정의가 내려지지 않는 그런 두려움에 의해서 일수도 있다. 10대 때에 이런 질문에 대해서 여행을 떠나 해답을 찾고자 했지만, 막상 그런 용기가 없어서 실행을 못한 거 같다.
이번 과제로 짧은 시간이나마 생각해 보았다. 내가 존재 한다는 것.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수 있다. 한번은 내가 과거에 얽매여서 존재 하는가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과거에 얽매여서 보낸 시간도 꽤나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것들은 오래 가질 못했다. 과거는 과거 일뿐 앞으로의 미래가 더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지금의 나는 계속 숨을 쉬고 있다. 어쩌면 숨 쉬는 자체가 내가 존재하는 이유일수도 있다. 하지만 단지 숨을 쉰다는 이유로 내 존재를 평하기에는 너무 내 자신의 존재가 아까울 수가 있다. 갑갑하다. 근본적의 나의 존재는 무엇일까? ......
한가지 떠오르는게 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나는 감정에 의해서 희노애락을 느끼며 살아온거 같다. 내가 존재 한다는 것 희노애락을 매일 매일 느끼면서 그런 감정을 충족하기 위해서 사는 것 같다.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을 위대해 하면서 말이다.
어찌 보면 너무 감정이란 따위에 나의 존재를 느낀다면, 무척이나 싱겁고, 생각이 없이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이 이러한 감정들이 나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도 이런 희노애락에 많이 좌우된다고 생각이 된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이런 감정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고, 누군가의 아픔을 같이 느끼기에 슬퍼할 줄 알고,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그 무엇에 매달리고 증진하고 사랑을 느끼기 위해서 사랑을 배 풀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충족조건을 얻기 위해 노력을 하며 얻었을 때의 기쁨과 희열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생각을 한다.
고로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이러한 희노애락의 감정을 갖고 충족하기에 살아있고 거기에서 나의 존재감을 느끼는데 있다고 본다.
2. 세상 어느 것도 일방적이지 않다. 이것인가 하면 저것이고, 저것인가 하면 이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저것이라 하고, 저것을 이것이라 해도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아니,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이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왜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이면 안 되는가?
왜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이면 안되는가? 이건 너무나 확실한 답이 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1+1=2 인것 처럼 정해진 인생의 정답이다.
확실히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모르겠다. 단지 부모님에 의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고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 일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숨을 쉬는 단순한 육체 외에도 머리와 가슴에 있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있다.
단지 숨을 쉬고 살아 있는 것과 숨을 안 쉬어 죽어 있다는 것은 별반 차이가 없을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따뜻한 가슴과 이상과 희망을 품고 사는 존재이다.
이러기에 단지 살고 죽고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감정을 갖고 있으므로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이라는 문제 자체를 갖는 건 안되는것 같다. 쉽게 쉽게 생각해서 나란 존재를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이라는 존재 자체로 인식을 하면 안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자신이 아닌 타인이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고, 자신만이 영위해 나 갈수 있는 인간이 가진 특별한 삶이다. 그러하기에 자신의 존재를 쉽게 봐선 안될 것이며 나아가 자신의 삶이 죽어도 그만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갖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살고 죽고의 경계를 나눌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어떻게 사는가를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할것이다.
3. 당신은 무엇인가?(What are You?)
나는 무엇인가? 나는 나이 26살의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의 남자인 이수재이다. 이름이 수재라는 부분에 자부심을 갖고 있고, 수재가 되려고 노력한다. 나는 타인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나라는 자아를 갖고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 이다.
또 다른 나는 내가 꿈꾸는 이상과 지금보다는 더 낳은 미래를 위해서 틀에 잡힌 기준 속에서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는 존재이다. 세상과의 타협을 통해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려고 한다. 이러한 상황 속 에서 나는 내 자아를 확실히 구별하고 정확히 정의를 내려 살아갈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내가 무엇인가라는 대답을 정확히 할 수 없다. 나이가 더들고 내 삶의 끝이 오면 그때 생각하면 정답을 얻을 수 있겠는가? 아니 어쩌면 죽어서도 내가 무엇인가라는 해답을 얻지 못할 것 같다. 단지 지금의 내가 그리고 미래의 내 자신은 끊임없이 나의 존재감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그 해답을 찾으려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의미가 정답일 것 같다. 당장 내가 자신을 찾았다고 정의 내리고 머릿속에 뿌리 내려도 10년, 20년 뒤에는 그런 한 생각에 대해 다른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단지 나란 존재는 지금 현실에 충실하고 내가 펼칠 수 있는 능력을 펼치고,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아가고, 위에서 언급한 희노애락을 느끼면서 삶에서 작은 기쁨을 느끼기 위해 사는 이 세상에서 보잘 것 없는 영물 중에 하나 일 것이다.
이다음에 나이가 들어 뒤를 돌아볼 과거와 후회를 느낄 때쯤에 그때 다시 나의 존재는 무엇이 였는가 생각해 볼 것이고 평생을 내가 무엇인가라는 과제를 풀면서 살아 갈 것이다.
첫댓글 [4]충실히 잘 쓰신것 같네요 수고하셨습니다 ^^
[3]평범함 속에서 찾는 특별함이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3+2+2] 가슴의 희망은 너무 빤한 캐치프레이즈처럼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그럴 때조차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