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8:8~22 / 물 없는 곳에서 자란 왕골
(욥 8:8) 청하건대 너는 옛 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조상들이 터득한 일을 배울지어다
(욥 8:9) (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 우리는 아는 것이 없으며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으니라)
(욥 8:10) 그들이 네게 가르쳐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마음에서 나오는 말을 하지 아니하겠느냐
(욥 8:11) 왕골이 진펄 아닌 데서 크게 자라겠으며 갈대가 물 없는 데서 크게 자라겠느냐
(욥 8:12) 이런 것은 새 순이 돋아 아직 뜯을 때가 되기 전에 다른 풀보다 일찍이 마르느니라
(욥 8:13)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 같고 저속한 자의 희망은 무너지리니
(욥 8:14) 그가 믿는 것이 끊어지고 그가 의지하는 것이 거미줄 같은즉
(욥 8:15) 그 집을 의지할지라도 집이 서지 못하고 굳게 붙잡아 주어도 집이 보존되지 못하리라
(욥 8:16) 그는 햇빛을 받고 물이 올라 그 가지가 동산에 뻗으며
(욥 8:17) 그 뿌리가 돌무더기에 서리어서 돌 가운데로 들어갔을지라도
(욥 8:18) 그 곳에서 뽑히면 그 자리도 모르는 체하고 이르기를 내가 너를 보지 못하였다 하리니
(욥 8:19) 그 길의 기쁨은 이와 같고 그 후에 다른 것이 흙에서 나리라
(욥 8:20)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시므로
(욥 8:21) 웃음을 네 입에, 즐거운 소리를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
(욥 8:22) 너를 미워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라 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리라
8~12 빌닷은 역사를 통해서 욥을 훈계합니다. 우리는 아는 것도 없고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역사 속에서 배우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옛 시대 사람들에게 묻고 조상들이 터득한 일을 통해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역사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는 것은 매우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정작 역사 속에서 배워야 할 존재는 욥이 아니라 바로 빌닷입니다.
왕골이나 갈대는 물이 있는 데서 자랍니다. 물이 없는 데서 자라는 것은 일찍 마를 뿐입니다. 여기서 왕골은 의인을 의미하고 물은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의인이 흥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의인은 영원한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합니다.
13~15 하나님을 모르는 모든 사람의 앞길은 물 없는 데서 자란 왕골 같습니다.
믿음을 저버린 사람의 소망도 물 없는 데서 자란 갈대와 같습니다. 물이 없는 왕골과 갈대와 같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의 믿는 것은 끊어질 줄에 지나지 않으며, 의지하는 것은 거미줄에 지나지 않습니다. 언젠가 줄이 끊어져 수치를 당합니다.
그가 기대어 살고 있는 집도 오래 서 있지 못하며, 굳게 잡고 있는 집도 버티고 서 있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과 같고 우리는 식물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는 물을 떠난 식물입니다. 그들은 무너지고 끊어집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는 결국은 망하게 됩니다.
빌닷은 욥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현재 욥의 재산 자녀 건강을 다 잃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가 망한다는 빌닷의 말은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는 시편 일편의 말씀과 같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시냇가의 심은 나무와 같이 번성합니다.
이 진리는 오랜 역사 속에서 검증된 진리입니다.
그러나 빌닷은 지금 욥의 현재 당장만을 보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얼마 후에 욥이 회복될 것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욥이 얼마나 존경받는 인물이 될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빌닷은 역사를 배웠지만 너무나 짧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만 판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배우되 우리는 긴 역사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물만 보는 것이 아니라 높은 산에 올라가서 긴 강물의 흐름 속에서 현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임신하였습니다. 사람들의 모욕과 멸시를 받고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당장은 저주받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만세에서 보면 마리아는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빌닷의 말은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는 시편 말씀을 연상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는 잠깐 햇빛을 받고 물이 올라 가지가 동산에 뻗습니다. 그 뿌리가 돌무더기에 서리어서 돌 가운데 들어갑니다. 악인은 아무리 번성해도 결국은 망합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뽑아서 그 자리도 없어지게 합니다. 악인의 길에 기쁨은 이와같이 일시적입니다.
빌닷은 욥을 악인으로 평가하지만, 욥은 악인이 아닙니다.
욥은 성경에 나오는 삼대 의인 중 하나입니다.
20~22 그러나 믿음으로 순전한 자는 버리지 않고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의인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주십니다. 악인의 장막은 끊어지나 의인은 번성합니다. 악인은 부끄러움을 당하고 없어지나 믿음으로 사는 의인은 영광을 얻고 영원히 번성합니다. 빌닷은 욥은 공의로 망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욥은 빌닷이 보는 것과 같이 악인이 아니라 의인입니다. 욥은 성경에 기록되어 영원히 번성하고 있습니다.
빌닷은 악인은 망하고 의인은 번성한다는 옳은 소리를 했지만 조금도 욥에게 위로를 주지 못합니다. 만약 빌닷이 욥에게 “너는 믿음으로 사는 순전한 사람이야, 그러니 하나님은 반드시 너에게 웃음과 기쁨을 주실 것이야, 그러니 잠시의 어려움을 참고 견디기 바라네, 나중은 심히 창대할 줄을 믿네,”라고 하였다면 얼마나 은혜롭습니까?
만세의 역사 속에서 욥은 복 받은 사람이야라고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빌닷은 이 현재 고난받는 것만 보고 악인이라고 말합니다. 빌닷이 의인도 잠시는 고난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면 그는 욥의 좋은 위로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공의로운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산다면 우리가 지금은 미약하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