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재단 사람사는세상의 관문에서 묻고답하기 도우미 역할을 하시는
가을여자님께서 걸봉에 수고가 많다며 격려금을 보내주셨네요.
저 좋아서 하는 일인데도 남이 볼 때는 안쓰러운 면이 있나 봅니다.
회원님들의 격려로 제 마음은 이미 봉하에 있습니다.
가을여자님을 비롯해 순사모바보덕장님, 손에손잡고님, 들에핀꽃님
네 분의 아줌마 천사께 제 졸필을 바칩니다.
준비하는 과정도 결과에서도 길치에 대한 두려움이나 피해는 없었다. 강남구청역을 출발하여 이수(총신대)역으로 가 4호선 금정역으로, 거기에서 다시 세류역에 도착해 오늘의 도보행진을 시작했다. 물결과 가느다란 버드나무 가지들이 어우러지는 모습의 세류역(細柳驛) 벽화이다. 오늘 본 몇 안 되는 미술적 작품 중 하나이다.
골목길에 위치한 병점역이다. 일요일 이른 아침에 슈퍼에서 라면을 먹으면서 천진난만하게 떠들고 있는 몇 명의 청소년을 보았다. 아이들의 티없이 행복한 모습에서 힘을 얻는다.
아파트촌으로 들어서니 나타난 화성벌말초등학교의 건물벽. 다이빙대 스프링보드 위에 올라선 캥거루 같다. 여기에서 지도를 잘못 판단해 병점성당을 만나지 못 했다. 조금 더 지나 뒤돌아보니 지하도와 교차로가 뒤섞였을 때 우측으로 갔어야 했는데 명색이 좌파라고 왼쪽을 고집했다가 ... 그러나 남쪽으로 내려가기에는 아무 지장은 없었고.
세마역 가기 직전이다. 언젠가 한겨레 문화부 기자가 낸 주택 관련 책자에서 본 것 같은 12채의 집이 나타났다. 귀여운 바둑이 레고 모양인데 가운데 4집이 양 측면이 막혀 있어 갑갑한 느낌이다. 아파트 군락의 한가운데에 덩그마니 집 한 채 마련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10:24 세마역이 옆으로 보인다. 1시간 반을 걸었다. 도로에서 뚝 떨어져 있어 역 가까이는 가지 않았다. 세마역은 독산산성(禿山山城)의 "세마대"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산성은 이름 그대로 평야지대에 '대머리'처럼 돌출하여 주변을 내려다보며 지키기에 유리한 곳이었다. 그래서 오랜 옛날부터 군사 요충지로 쓰여왔지만 조금 가까운 세월에 들어 크게 빛을 보게 된 것은 임진왜란 때였다고 한다. 권율 장군이 왜적들이 잘 보이는 이 산의 꼭대기에다 말을 세우고는, 말 등에 흰쌀을 내리부어 물이 풍부한 것처럼 위장했다. 왜군들은 산 위에서 말을 물로 목욕시킬 정도로 물이 풍부하니 농성이 장기간 가겠구나 짐작하고 포위를 풀고 후퇴했다고.
잠시 쉬면서 삶은 계란 하나를 먹고 매실액을 탄 물로 목을 축였다. 어디에도 보행자는 없고 이 넓은 차도 위를 달리는 차도 신호등이 무색할 정도로 적다. 사방이 확 트여 있고 아파트와 공원이 들어서고 있지만 택지 조성만 된 채 비어 있는 공간도 많았다.
그래서 주택공사는 세마역 앞에 그럴듯한 건물을 세워 이렇게 위장해놨는지도 모른다.
2013년에 개관한 역 근처 유엔군 초전기념관이다. 초전박살 할 때의 그 初戰이다. 전쟁도 기념하자고 전쟁기념관을 세운 나라에서 유엔군의 초전을 기념하지 않으면 좀 뻘쭘하겠지. 우리는 동방예의지국.
세마역부터 오산대역까지 걸으면서 유난히 중고 특장차 매매업체가 많이 눈에 띄인다. 냉동차에서부터 특수영업트럭이나 지게차 등 다양한 종류의 중고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오산대역이다. 오산대는 찾지 못 했다. 아니 보이지 않았다. 탄탄대로에 들어서니 서서히 걷기 모드로 집중된다.
오산역. 유난히 대기하는 택시들이 많았다. 사진 좌측의 대로 건너에는 아직도 주택단지들이 개발되고 있었고 그 너머 주변에 아파트촌이 산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언뜻 눈에 들어오는 것들만으로도 신앙아파트, 우경싸이트빌, 주공아파트, 오산SJ오피스텔, 원동e편한세상 등등....
간혹 괴기한 방향의 스키드 마크가 그려져 있지만 이런 길이 죽죽 뻗어있다. 보도가 있다는 게 고맙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갈 때 항상 보던 개 롯데그룹 공장지대이다. 거리 이름 자체가 아예 롯데제과삼거리다. 수원을 삼성시라고 개명하지 않은 용기가 가상타 할까.
떨칠 振, 위엄 威 진위역(振威驛)이다. 조금 거시기하다. 분발하시라 ~
13:25. 오늘도 아침 안 먹었잖아, 배가 묻는다. 송탄역을 향하는 길에서 더 이상 유명 맛집 찾기를 포기했다. 식당 앞마당을 메운 차들도 적어도 여기 본가장수촌은 밥값은 하는 집임을 알려준다. 원래 누릉지삼계탕을 염두에 두었는데 기본이 32,000원이란다. 혼자 먹을 수 있는 것은 막국수밖에 없었다.ㅜㅜ 대신 화장실에서 머리 좀 감았다. 오른발 발바닥에 물집이 잡힌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항상 우파가 문제.
진위역을 지날 때 오좌사거리를 염두에 두었다. 예행연습 때 거기에서 우측 탄현로를 타는 게 지름길이었으니. 하지만 생각 없이 길 따라 걷다보니 그냥 1번 경기대로만 타고 간다. 사실 평택까지는 이 대로만 타도 나오게 되어 있다. 지도상으로...
패션상설타운이란 곳을 만났다. 상가 분위기로는 상설할인매장의 거리였다. 조금이라도 국내에서 알려진 외국 브랜드가 총집결해 있었다. 그러나 내 맘에 드는 상품은 하나도 없었다...가 아니라 있긴 있었는데 이미 비슷한 것을 갖추고 있는 물건들이었다. 냉철한 자제력을 자축하며 오늘 도보행진의 마지막 도전에 집중한다.
송탄교차로다. 예습 때 무척 걱정했다. 판교-상갈 3차 도보 때 8차선 대로를 종주하던 끔직한 기억이 생생했고 Daum 지도에서 보행로를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자전거길이 있었다. 마지막 7번 코스가 도전이 될 수 있었지만 차량이 거의 없었다. 다리야, 힘내고!
근처 지역에 풀이 무성하다 해서 지제역(芝制驛). 부역명은 한국복지대학으로, 인근에 한국재활복지대학이 있다. 30일 동안 광야에서 도를 닦으셨던 예수님을 기리느라 이런 벌판에 대학을 세우셨을까..
16:35. 평택시의 요지경 속 교통체계를 경험했다.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평택역을 향해 계속 도심을 걷다보니 짜증이 생겨서 그런가? 1. 갑자기 덩치 하나가 떡 허니 앞을 막아선다. 오른쪽은 전혀 틈이 없어 옆 차도로 들어섰다. 2. 그러나 저 앞에 보이는 주유소 간판은 여기 보행도로도 접수되었다고 경고한다. 어쩔 수 없이 뒤에서 달려오는 차들에게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바치며 허겁지겁 조그만한 삼거리에 도착했는데... 3. 울성길 3거리다. 오산과 천안으로 갈라지는 길에 보행자는 뒷전이다. 차님은 비 맞지 마시라 터널입구에 지붕까지 씌워놓고 사람은 뺑뺑 돌아가게 만들어 놓았다. 그나마 차량 통행이 적으니 안심. 4. 조금 더 올라가니 이제는 이 널븐 도로에 신호등이 없다. 5. 조금 더 내려가니 이제 승용차 한 대 지나갈 폭의 도로에 신호등이 있다. 6. 졌다, 평택.
평택역도 그렇다. 이 커다란 건물에서 정작 역 공간은 좌측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고 그 나머지 전체가 쇼핑공간이다. 평택시장의 무개념 행정에 꽁해서 귀가 하는 전철에서는 단정하게 머리를 빗질한 노숙녀가 옆에 앉아 자꾸 말을 건낸다. 그 아줌마는 대체 어디에서 나와 동질감을 느끼셨을까 ^^b
30킬로미터를 넘었다고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얼마만에 걸어보는 아스팔트 길 위의 도보행군인가. 약 10년 전 무박 3일로 서울-강릉을 주파했던 기억이 새롭다. 마지막 날 몸 자체가 분해되는 듯 느껴졌던 고통이 아직도 생생하고. 두 번째 구룡마을-판교 나들이부터 양말을 두 켤레나 신으며 조심을 했는데도 그렇다. 양말 바닥에 비누칠을 할 때가 되었나 아니면 조금 거리를 줄여야 하나.
누적: 31.5km/77.2km 비공식 누적: 31.5km/82.3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