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고 바르게 자랐으면
손주를 키운다는 게 한편으로는 힘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다. 제 부모 대신 키우며 나름대로 온갖 정성을 쏟아왔다. 때로는 크고 작은 사고가 불가피했던가 하면 사소한 병고에 시달리기도 하며 자질구레한 사달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큰 흐름의 틀에서 볼 때 탈 없이 곧고 바르게 성장해 줘서 무척 고맙고 뿌듯했다. 그러나 방심하지 말라는 묵시적 경고일까. 그렇지 않으면 6학년으로 진급해 사춘기에 접어들며 나대다가 지나쳐 돌출된 불상사였을까.
매주 수요일은 학교에서 1시간 일찍 마치고 귀가하는 날이다. 그런 까닭에 어제(4월 3일)는 수요일이기 때문에 평소보다 빨리 귀가하여 수학학원(다빈치)에 가려면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친구 K의 아파트에서 몇몇이 놀 것이라며 서둘러 나갔다. 그렇게 친구 K의 아파트 거실에서 3명이 어울려 대충 40분 정도 장난감과 휴대폰을 가지고 낄낄대며 놀았다는 얘기였다. 그 중에 한 명인 J군은 수학학원을 함께 다닌 지 한 달째로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탈 없이 어우러져 노는 과정에서 유진이가 휴대전화 앱(app)으로 J군을 놀리는 두 가지 합성음을 만든 뒤에 그가 싫다는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듣게 하는 짓궂은 장난을 했었다고 한다. 게다가 마가 끼었던가. 휴대폰이 심드렁해 장난감 놀이로 바꿨다고 했다. 그 장난감 놀이를 하다가 재미가 없어 시들하던 무렵에 J군 옆에 장난감을 수납하는 플라스틱 바구니가 두 개 놓여 있는 게 눈에 띄더란다. 그래서 가지고 놀던 플라스틱 장난감 하나를 그 바구니에 넣을 요량에서 던졌던가보다. 그런데 재수에 옴에 붙었던지 장난감이 빗나가 하필이면 J군의 중요한 부위 쪽에 맞았다는 것이다. 그 순간 J군이 “아야!”라고 소리를 질러 엄청 미안하고 당황해 꽤나 허둥대며 사과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파서 쩔쩔매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상황 없이 조용하게 지나갔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수학학원에 함께 가서 공부를 하고 헤어져 마음에 부담이 아예 없었다는 얘기였다,
J군은 유진이와 같은 학교에 재학해도 6년 동안 같은 반을 했던 적이 없어 서로에게 친숙하지 않은 관계라고 했다. 그런데 어제 함께 자기 집 거실을 놀이 장소로 제공했던 K군을 중심으로 유진이와 J군이 함께 엮여 어울렸던가보다. 뚜렷한 계기가 없이 수학학원을 오갈 때 스치고 지나며 알아가는 정도로서 친구들을 매개로 조심스럽게 마음을 열어가던 과정으로 추측된다. 띄엄띄엄 스치며 어울리는 과정에서 유진이의 언행이 J군의 맘에 들지 않기도 했지 싶다. 어제 사과를 위해 찾아 갔을 때 J군의 토로이다. “어떤 때는 유진이가 잘해 주다가 어떤 때는 서운하게 했다”는 진솔한 얘기가 그 깊은 속내를 더덜이 없이 나타냈던 게 아닐까.
지난해까지도 우리 집에 유진이 친구가 거의 매일 몇 명씩 떼지어 와서 놀다갔다. 그럴 때면 서로 붙들고 밀치는가 하면 툭툭 치거나 장난감을 예사로 던지면서 놀아 싸움으로 번지지 않을까 조바심하며 조심하라고 참견해도 쇠귀에 경 읽기였다. 그렇게 위태위태한 상태에 이르렀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어울려 놀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유진이와 J군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신뢰가 쌓이지 않은 때문이었을 게다. 어찌되었든 둘 사이에는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지혜와 신뢰할 믿음이 부족한 어정쩡한 인간관계에서 사달이 발생한 게 분명하다.
서로의 신뢰나 앎이 얕고 좁았던 때문일까. 낮에 친구 집에서 놀 때 자기를 놀리던 게 서운했었던가. 아니면 유진이가 수납 바구니에 넣기 위해 던졌던 장난감은 고의였을 뿐 아니라 매우 아팠고 억울했다고 느꼈던가? 저녁 때 퇴근한 자기 부모님께 유진이한테 당했던 내용을 말씀드렸던 것 같다. 어느 부모가 그런 상황에서 화가 나지 않을까! 그 어머니가 수학학원에 전화로 유진이에 대해서 묻더란다. 놀란 수학학원 선생님이 그 사실을 아내에게 알려 주었다. 전화를 받은 아내와 나는 유진이와 함께 J군이 사는 아파트로 한걸음에 달려가서 백배 사죄하고 용서를 구했다. 그 시각이 대충 반 10시 무렵이었다. 다행히 그 부모님이 좋은 분들이라서 너그럽게 이해해 주어 고맙기 이를 데 없었다.
문제를 숨기거나 묻으려다 되레 화를 부를지 모른다는 견지에 그 밤에 곧바로 유진이 담임선생님께도 문자 메시지로 알려 드리도록 일렀다. 유진이 아비를 통해 사건의 경위를 낱낱이 알리며 사과의 말씀을 드리면서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찾아뵙고 상담을 받겠다는 약속까지 했다고 한다. 한편, J군의 부모님께도 같은 마음을 전하며 용서를 구했단다. 일련의 상황 전개를 감안할 때 오늘의 일은 유진이 행동이 부적절했다. 그렇지만 의견 대립으로 심하게 다투거나 치고받는 주먹다짐이 오가는 싸움질이 없었던 것만으로도 불행 중 다행으로 여겨져 한편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한편 이 문제에 대해서 유진이 아비가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했다는 전언이다. 당사자들을 불러 자초지종을 들어왔더니 별 문제가 없어 “사이좋게 지내라고 타일렀다”고.
어제 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유진이를 거세게 몰아치며 잘못을 반성케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조곤조곤 타이고 또 타일렀다. 얼마나 정신없이 몰아쳤는지 어제 자정 무렵엔 숨을 쉬지 못한 채 정신을 잃으려고 버둥대서 큰일을 겪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간담이 서늘했다. 하지만 언행이 반듯하고 어진 품성은 어떤 혹독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반드시 갖춰야 할 필요충족조건이 아니던가. 자랑할 바는 아닐지라도 이번의 뼈저린 경험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나침반이자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도 긍정적인 약이 되리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사달이기에 더더욱 절실한 심정이다.
2019년 4월 4일 목요일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딸 아이들 보다 사내아이를 키우는것이 어려울듯 합니다, 잘 마무리 되었다니 디행입니다
유진이의 행동이 고의적인 것이 아니니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앞으로 유진이와 J군은
더 가깝게 지낼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