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무덤 중에서, 1526~1533년, 대리석, 전체 크기 630×420㎝, 피렌체 산 로렌초 성당 소재.
서양 미술사를 잘 몰라도 이 남자의 이름은 알 것이다. 곱슬머리에 계란형 얼굴을 가진 전형적 '조각 미남'인 이 남자는 흔히 '줄리앙'이라고 불린다. 프랑스 이름이지만, 사실 그는 이탈리아인이다. 16세기 초 잠시 피렌체의 군주가 되었다가 30대에 요절한 '줄리아노 데 메디치'가 그의 진짜 이름이다.
1520년 줄리아노의 형이자 당시 교황이던 레오 10세가 요절한 동생과 역시 20대에 급사한 조카 로렌초의 무덤 건축을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1475~1654)에게 맡겼다.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의 산 로렌초 성당 내부의 메디치 가문 예배당에 건축과 조각을 결합한 웅장한 무덤을 기획했다.
그 중 줄리아노의 석관 위에는 각각 밤과 낮을 상징하는 여성과 남성의 누드상이 나른한 듯 비스듬히 누워 있고, 줄리아노는 갑옷을 입은 채 그 위의 권좌에 자연스레 앉아 고개를 돌려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밤과 낮이 영원히 교차하는 시간의 흐름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지만, 구원받은 영혼이 죽음 뒤에 도달하는 세계는 이처럼 고요하고 평온할 것 같다.
그런데 왜 우리는 '줄리아노'를 '줄리앙'이라고 부르는 걸까. 줄리앙은 비너스, 아그리파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20세기 초반부터 최근까지 미대 입시의 필수 관문이던 석고 데생의 모델이었다.
이처럼 고전 조각의 석고상을 모사하는 건 19세기 말까지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의 전통적인 교육 방식이었고, 따라서 석고 두상 또한 프랑스에서 주로 제작했다.
이것이 20세기 초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파된 이래 큰 변화 없이 유지됐던 것. 그러니 이미 500년 전에 세상을 뜬 남의 나라 사람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줄리앙'을 '줄리아노'라고 불러주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