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동 팽나무
엊그제 아침에 내렸던 비로써 올해 장마는 물러가는 즈음이다. 한 달여 장마치고는 비가 그렇게 지루하지 않아 간간이 더위를 식혀준 정도로 감질났다. 그동안 가뭄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는데 농작물의 물 부족은 해갈해도 장맛비는 곳곳에 바닥을 드러낸 저수지를 못다 채운 채 그쳤다. 칠월 끝자락 화요일은 중복으로 열흘 뒤 와야 할 말복은 올해가 월복이라 스무날 뒤에 오게 된다.
장맛비 틈새도 산행은 꾸준히 다녀 참나무가 삭은 그루터기에 붙은 영지버섯을 찾아내 베란다에 말리는 중이다. 중복을 넘겨 다음 달 광복절의 말복까지는 올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지 싶다. 앞으로 한여름에도 산행할 경우가 있긴 하겠으나 더위가 심한 날은 자제하려 한다. 폭염으로 산행은 무리라도 교외로 나갈 산책 정도는 동선을 멀게 잡든 가깝든 어디든지 다녀올 요량이다.
어제 인터넷판 중앙지와 지방지에 낯익은 사진과 함께 실린 기사를 봤다. 나는 텔레비전을 보질 않아 그 드라마에 대해 아는 바 없는데 며칠 전 우영우 변호사라는 제목이 붙은 드라마에 나왔다는 소덕동 팽나무 얘기였다. 창원 대산면 낙동강 강변 북부동 동부마을의 수령 500년을 헤아리는 당산나무가 배경이 된 드라마가 방영된 후 외진 마을에 방문객이 줄을 잇는다는 소식이었다.
소덕동 팽나무 기사가 아니더라도 올여름 그쪽으로 한번 나가볼 생각이었는데 강가로 길을 나섰다. 나는 그간 여러 차례 창원 대산에서 김해 한림 강둑길을 따라 걸었다. 화요일 이른 아침 집 앞에서 105번 버스로 동정동으로 나가 창원역을 출발해 오는 2번 마을버스를 탔다. 버스는 용강고개를 넘어 용잠삼거리에 동읍사무소 앞을 거쳐 주남저수지를 둘러 들녘을 지나니 가술이었다.
가술에서 모산을 지난 버스는 북부동으로 향했다. 창원 대산 들판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해 북부동인데 야트막한 산을 등지고 동부마을과 서부마을로 나뉘어 팽나무는 동부마을 당산나무였다. 버스에서 내려 마을 앞을 지나니 한 사내가 드론을 조종해서 벼가 무성히 자라는 논에 농약을 뿌리고 있었다. 마을 안길을 따라가니 저만치 강둑 언덕에 당산나무 팽나무가 우뚝하게 서 있었다.
언덕으로 오르니 이른 아침인데도 외지에서 찾아온 탐방객이 삼삼오오 보여 언론 보도 위력을 실감했다. 연인 사이거나 일가족인 듯한 이들이 팽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담거나 주변을 서성였다. 평소에 사람의 내왕이 전혀 없어 여름이면 풀이 무성했는데 당국에는 풀까지 말끔하게 잘라 놓았더랬다. 광주에서 왔다는 사진작가는 포신과 같은 무거운 카메라로 렌즈 초점을 맞추었다.
노거수 팽나무가 선 언덕에서 전방을 바라보니 4대강 사업으로 저전길 길이 뚫린 강변 둔치가 한눈에 다 들어왔다. 언덕을 내려서서 느티나무 가로수가 늘어선 옅은 안개가 낀 강둑을 따라 걸으니 둑 아래 연근을 캐려고 가꾸는 연 경작지는 홍련 봉오리가 꽃잎을 펼쳐 나왔다. 유청을 지나 유등으로 가니 강변에는 우거진 대숲이 나왔는데 달포 전 내가 죽순을 꺾어갔던 곳이기도 했다.
유등 배수장을 지난 강둑에는 노부부가 허리를 굽혀 무엇을 뜯고 있어 가까이 가 살피니 왕고들빼기였다. 전립선 기능을 개선 시켜 주는 약성이 있다고 알려진 왕고들빼기는 상추를 대신하는 쌈 채소로도 훌륭한데 청정지역에 싱싱하게 자란 산야초였다. 유등 배수장을 지난 강둑은 창원과 김해의 행정구역 경계이기도 했으며 둑길이 끝난 모롱이를 돌아가니 한림 가동마을이 나왔다.
술뫼 생태공원에 이르니 파크골프장에는 차를 몰아와 세워두고 필드를 누비는 골퍼들이 많았다. 시산마을 지인 농막을 찾아가니 지인은 부산 본가로 귀환했는지 기척이 없어 발길을 돌렸다. 강둑을 따라 한림배수장에서 시전을 돌아 한림정역으로 가려니 볕살이 퍼진 때라 시호에서 지름길로 갔다. 창원으로 가는 열차 시각이 일러 돼지국밥집으로 들어가 요기를 때우고 열차를 탔다. 22.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