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봄날에 울지 마라
이땅에 봄기운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어제는 우리 절 매화를 들여다보니까 꽃망울이 한껏 부풀어 있었다.
저 남쪽 통도사에서 정진하는 벗이 그 곳의 활짝 핀 홍매를 사진으로 보내 왔는데 올해의 첫 화신이다.
반가운 봄소식은 남쪽에서 시작되어 이제 우리 고장까지 성큼 다가왔다.
우리 생애에서 또 한 번의 봄날을 맞이하고 있다 생각하니까 새삼 설레고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이렇게 온 대지의 약동하는 기운과 마주하고 있으니 내 몸에도 생명의 율동들이 되살아는 것 같다.
이럴 때가 되면 새삼 삶의 가치와 목적을 어디에 두고 살 것인가를 헤아려 보게 된다.
인간의 가장 은밀한 속뜰이라 할 수 있는 감성이 메말라 간다는 것을 살펴봐야 한다.
현대인들의 가슴은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삭막해서 생명의 싹이 움틀 여지가 없다는 소리다.
봄이 와도 봄을 받아들일 수 없는 감성이라면 그야말로 심각한 중명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이 땅에 펼쳐지는 봄 잔치에 흔쾌히 동참해야 할 것이다.
봄이라는 어원은 ‘보다’의 명사형 ‘봄’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까 봄날에는 자세히 보아야 생명의 신비와 마주할 수 있다.
따라서 봄이란 계절은 눈부신 꽃들로 인해 눈이 호강하는 시절인 셈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곷>이라는 시인데
내용이 좋아서 며칠 전에 작은 판자에 적어서 화단에 세워 두었다. 여린 꽃이라도 관심 있게 들여다보아야 그 아름다움과 만날 수 있다. 이와 같이 일상에서 무엇이든 자세히 오래 보아야 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많다.
우리 인생에서 집착하는 삶보다는 집중하는 태도가 무척 중요하다.
집착은 갈증과 괴로움의 원인이지만 집중은 충만함과 기쁨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집착하면 기다리는 그 시간이 무지 궁금하고 초조하지만, 남편에게 집중하면 기다리는 그 시간이 즐겁고 편안하다.
이와 같이 집착과 집중은 비슷한 것 같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다르다.
순수한 집중이야말로 본질로 나아갈 수 있는 지혜다. 집중은 그 물건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지만 집착은 그 물건에 대한 소유를 부여하는 일. 그래서 집중하는 일에는 미련이니 후회가 없지만 집착하는 일에는 아쉬움과 욕심이 동반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이 몰두하고 있는 삶의 자세가 집중인지, 집착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나 놀이를 할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싫은 일이나 재미 없은 놀이를 할 때는 십 분이 한 시간처럼 길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또한 아이들이 게임에 빠지면 밤을 지새우면서 몰두한다고 들었다.
어른들이 볼 때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흥미로우니까 시간의 개념을 잊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시간의 개념은 주관적이고 업식의 감정에 따라 달라지는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는 삶이 중요하다.
내 삶의 길이가 하루살이와 같이 하루의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면 그 하루는 대단히 소중하고 의미 있을 것이다.
한 번뿐인 하루를 통해 인생에서 가장 높은 행복의 가치를 찾는다면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에 대해 순수하게 집중하는 태도가 아닐 싶다.
인생이 단 한 번뿐이라면,,,, 이러한 명제를 정해 놓고 하루를 시작하면 그 하루는 전혀 다르게 다가올지 모른다.
세익스피어는 “과거는 서론이다”라고 했다는데 이 법문에 높이 점수를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과거가 서론이라면, 지금 이 시간을 살아가는 일이 본론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묻혀 방황하거나 후회할 필요는 없다.
또한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염려하거나 걱정할 필요도 없다.
오직 중요한 것은 지금이며, 지금의 내가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고 결정짓는 시점인 까닭이다.
최근에 법회 때마다 프랑스 출신의 유명한 사진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명언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그는 사진을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20세기 사진 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데
그가 남긴 말은 “인생의 모든 때가 결정적인 순간이다”라는 것이다.
사진작가의 입장에서 모든 장면이 결정적인 기회일 것이다.
어떤 풍경일지라도 정지 화면이 되어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흘러가는 것이므로
그 때를 포착해아 최상의 작품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스물네 시간 그때그때가 최고의 조건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오늘을 살아가는 지금이 그 결정적인 때일 뿐, 달리 다른 날이 없다.
매 순간순간 자신에게 부여된 시간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순간에서 영원으로 살아가는 삶의 지혜이다.
어느 글을 보면 연로하신 친정아버지가 울고 있는 딸의 어깨를 다독이며 이렇게 말한다.
이런 좋은 봄날에 울지 마라. 이렇게 우는 시간을 다른 데 쓰 거라.
이렇게 화창한 봄날에 울고 있는 것은 주어진 시간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울고 있는 그 시간을 다른 생명의 에너지로 활용하라는 것이 찬란한 봄날의 가르침이다.
봄날이 전하는 생명의 소리에 눈을 맞추고 귀를 이울려라.
출처 ; 현진 스님 / 좋은 봄날에 울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