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선비의 고장, 영주에도 커피전문점이 날로 늘고 있습니다.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있다는데도, 가흥택지에도 골목 모퉁이가 전부 커피전문점을 내고 있으니
기이한 현상임에는 분명합니다.
오늘은 커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896년 2월11일 새벽, 고종 황제와 태자는 궁녀의 교자를 타고 덕수궁을 빠져나와
인근 정동에 위치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고,
그 후 1년 동안 베베르 공사의 보호 아래 있으면서 커피를 처음 접했다는 것이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커피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아관파천(俄館播遷) 이전에도 궁중에서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884년부터 3년간 어의(御醫)를 지낸 호러스 알렌이 1908년 남긴 저서
《Things Korean(한국 풍물)》에 의하면,
왕을 알현하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궁중의 시종들은 잎담배·샴페인·사탕뿐만 아니라
홍차와 커피도 내왔다고 하니까요.
아름다운 돌담길로 유명한 덕수궁에는 빼어난 서양식 근대 건축물인 근정전을 비롯해
정관헌이라는 서양식 정자가 있는데, 정관헌에 대한 기록물을 보면,
고종이 대신들과 그곳에서 커피와 다과를 즐겼다고 돼 있는데, 이 역시 사실이 아닙니다.
조선왕조실록뿐 아니라 그 어떤 과거 문헌에도
정관헌에서 고종이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은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정관헌은 고종이 커피를 마신 공간이 아니라
역대 왕의 어진(御眞·사진과 그림)을 모시고 제례를 지낸 신성한 곳이었습니다.
1898년 9월12일, 고종과 태자는 평소 좋아하는 커피 때문에 죽음의 고비를 겪습니다.
그 유명한 ‘김홍륙 독다(毒茶) 사건’인데요.
당시 김홍륙은 러시아어가 능통해 통역관으로 활동하며 출세의 길을 걷다가
아관파천 이후 득세해 권력을 남용하여 관직에서 물러났음에도
같은 해 8월에는 러시아와의 교섭에서 사익을 취했다는 죄목으로 전남 흑산도로 유배됐습니다.
이에 앙심을 품은 김홍륙은 고종의 생일날 공홍식을 시켜,
황제와 태자가 마시는 커피에 아편을 넣게 했는데,
고종은 커피 냄새가 평소와 다른 것을 이상히 여겨 마시지 않았으나,
태자는 마시다가 토하고 쓰러졌다고 합니다.
결국 이 일을 공모한 김홍륙·공홍식·김종화가 사형을 당하는 것으로 사건은 종결됐습니다.
조선인 최초로 다방을 연 인물은 영화감독 이경손이라고 하며,
1927년 안국동 네거리에 ‘카카듀’라는 간판을 걸고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커피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하나는 천재 시인 이상이 아닌가 합니다.
그는 1933년 ‘제비’를 시작으로 ‘쯔루’ ‘식스나인’이란 독특한 이름의 다방을 열었습니다.
금홍이와의 연애에만 몰두하고 친구들에게 공짜 커피를 주는 등 다방 운영에 재주가 없었는지
여는 족족 금세 망하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카페로 성공하기란 쉽지 않았나봅니다.
당시 다방은 18~19세기 유럽의 카페와 마찬가지로
문학·미술·음악·사상에 대한 나눔의 장이었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정지용·이효석·김기림 등 유명한 예술인들이
그 시대 다방에 모여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나라와 민족이 처한 시대의 아픔과 예술적 고뇌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당시 다방의 커피는 원두만 넣은 것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시커먼 커피색과 쓴맛을 내기 위해 잎담배를 넣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귀한 설탕을 듬뿍 넣어 달달한 맛으로 커피를 마셨다고 합니다.
해방 후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군에 의해 국내에 인스턴트커피가 소개됐습니다.
미군이 전쟁 물자로 가져온 것을 수완이 좋은 장사치들이 몰래 빼내 암시장에서 거래하곤 했다지요.
인스턴트커피는 1901년 일본계 미국인 화학자인 사토리 가토가 발명했는데,
그 후 전쟁 물자로 쓰기 시작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1950년 이전만 해도 인스턴트커피는 원두 50%와 전분 50% 비율이었으나,
6·25 때부터 미국 제너럴푸드가 개발한 100% 인스턴트커피가 등장했고요.
한국전쟁이 인스턴트커피사에 한 획을 그은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1960대 말 설립된 동서식품은 정부의 지원과 자사의 노력에 힘입어
지금의 세계적인 인스턴트커피 제조기술을 확보했다네요.
50이 넘은 중년 남성이라면, ‘레지’라는 단어를 기억할 것입니다.
요즘은 중소 도시가 아니면 찾아보기 힘든데,
다방에서 커피를 서빙하는 여직원을 의미하는 말이지요.
꼬불꼬불한 파마머리에 붉은색 립스틱을 짙게 바른 아가씨가 손님의 옆자리에 앉아
커피에 달걀노른자를 동동 띄운 쌍화차는,
모처럼 기분을 내고 싶을 때나 주문하는 고급 음료였습니다.
여기에 한껏 폼을 잡고 싶으면 “김양아, 너도 한 잔 해라” 말하며,
아가씨 커피도 한 잔 더 시키는 것이었지요.
이렇듯 본전.청탑.장미·맹물·청자 등 이름만으로도 정감 있는 동네 다방은
당시 서민들 만남의 장소였고, 휴식처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커피전문점에 밀리고,
일부 퇴폐적인 인식 때문에 그 자취와 의미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1980년께 민주화 세력인 ‘전국민주학생연맹’이
민주화운동을 모색하기 위한 첫 모임을 학림다방에서 가졌다는 이유로,
나중에 학생운동을 하던 이들을 경찰이 검거한 후 그 사건을 ‘학림사건’으로 명명했습니다.
학림다방은 동시대 예술인들의 아지트이기도 했는데,
이청준·김승옥·김지하 등 문인의 단골집으로 알려져 유명세를 탔고,
음악·미술·연극·문학 등 예술계 인사들의 사랑방으로 애용됐습니다.
수필가 전혜린은 죽기 전 이곳에 들러 메모를 남기고 다음 날 자살했대서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시대의 풍파와 아련한 추억을 간직한 학림다방이지만,
현대적인 시설과 편리함으로 무장한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의 공세에 지금은 고전 중이라네요.
세상에서 가장 간편한 커피는 자판기 커피입니다.
가격 차이는 있지만, 100원짜리 동전만 가지면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습니다.
맛은 원두커피에 못 미쳤지만, 특유의 편리함 때문에 지금까지도 국민의 사랑을 받습니다.
1978년 등장 이후 커피의 대중화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마시는 자판기 커피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마시는 커피는
달달한 휴식이었습니다.
커피를 다 마신 빈 종이컵은 공처럼 뭉갠 후 제기처럼 차면서 놀기도 했고,
어떤 시인은 보관하기 좋은 적바림용으로 쓰기도 합니다.
커피전문점에서는 수많은 커피 이름이 죽 적혀있으며 가격도 천차만별입니다.
하루 한두 잔은 기본이고 어떤 이는 대여섯 잔까지도 마신다고 하는데
이러다가 우리나라가 커피공화국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말123^*^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