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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카네기 도서관
출처 한국경제 :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102409581
1840년대 스코틀랜드 동부 던필립의 식료품 가게. 엄마를 따라온 한 소년이 체리 상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체리 파는 할아버지가 “한 줌 집어 먹어도 된다”고 했지만 소년은 그저 할아버지만 쳐다봤다. 엄마도 허락했지만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체리를 한 움큼 집어 건네자 그제야 고맙다며 받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왜 할아버지가 집어주기 전까지 가만있었냐고 묻자 소년의 답은 이랬다. “할아버지 손이 저보다 훨씬 크니까요.”
이 영리한 소년이 훗날 ‘철강왕’이 된 앤드루 카네기다. 1919년 세상을 뜬 카네기의 만년 개인 재산은 4억7500만달러를 넘었다. 당시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0.6% 수준이다. 현 30조달러대인 미국 GDP와 단순 비교해도 1800억달러 가치의 돈이다. ‘기부왕’으로도 유명한 그는 자선단체, 공익재단, 대학 등에 3억5000만달러를 기부했다.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내놨다. 그는 자서전 <부의 복음(Gospel of Wealth)>에서 “부자로 죽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카네기의 사회 공헌 활동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무료 공공도서관 건립이다. 미국 1681곳을 비롯해 세계 2811개 공공도서관 건립을 후원했다. 카네기재단이 내년 미국 건국 250주년을 기념해 카네기가 설립한 도서관 전체에 1만달러씩을 기부하기로 했다고 한다. 카네기 사후 10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1280여 곳이 운영 중이라고 한다. 도서관 운영에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적 후원을 의무화한 ‘카네기 공식(Carnegie formula)’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돈을 기부하는 데도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카네기가 도서관에 그렇게 가치를 둔 것은 어린 시절 소중한 경험 덕이다. 정규교육을 4년밖에 못 받은 그는 동네 유지인 퇴역 대령 제임스 앤더슨의 개인 서재에서 토요일마다 책을 빌려 읽으며 세상을 깨쳤다. 그에게 앤더슨의 서재는 “감옥 벽 열린 창문 틈으로 흘러 들어오는 지식의 빛”이었다. 그 빛은 지금도 세상을 비추고 있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주도하는 게이츠 재단 등 미국 5만6000여 자선재단이 그 빛의 후손들이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빛명상
지금 내 영혼의 등불은 어디에 있는 걸까?
영어 등 5개 국어 번역, `아마존 베스트셀러’ 에 오른 『행복을 나눠주는 남자』
영혼의 등불
님의 속삭임은
영혼의 빛VIIT이 되고
심장의 고동은
그리움으로 채워집니다
님의 향기로움은
영혼의 별빛 되고
마음의 달빛 되어
영롱한 빛무지개 승화합니다
님의 소리 없는 빛VIIT의 언어는
어두운 영혼의 등불이 되어
영원무궁한 당신의 나라로
이르는 길을 밝혀줍니다
출처 : 甲辰年 그림찻방3
빛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3
2024년 6월 22일 초판 1쇄 P. 314~315
사단법인 건강과 행복을 위한 빛명상
명상보다 더 좋은 빛명상
행복을 나눠주는 남자 개정판
태평양을 건너온 증언자
<행복을 나눠주는 남자 개정판 2쇄>
가끔 사람들이 대체 언제부터 그리고 어떻게 빛VIIT을 전해주게 되었냐며 궁금해 한다. 사길 그 답은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여러 가지 일들과 정황을 미루어 볼 때 언제부터인가 나와 맞닿은 힘이 서서히 드러나 지금처럼 뚜렸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래 전 미국으로 이민을 가신 후 몇 십 년 간 소식이 끊어졌던 이모님과 만났을 때에도 이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몇 해 전 어머니의 사촌 여동생으로 나에게는 이종 이모뻘이 되는 분을 근 사십년 만에 만나게 되었다. 이모님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미국으로 건너가셨고 이후 소식이 거의 끊어지다시피 했었다. 그런 이모님이 내 근황을 알리 만무했는데 놀랍게도 그 분의 손에 낯익은 책 한 권이 들려있었다. 내가 쓴 여러 권의 책 중 가장 널리 인기를 얻었던 1996년도 판 『행복을 나눠주는 남자』였다. 이모님은 버지니아 주 한인회에서 만난 분을 통해 그 책을 알게 되었다고 하셨다.
“어떤 분이 주립 도서관에서 아주 감명 깊게 읽은 책을 한 권 읽었다며 나에게도 건네주더구나, 그런데 한 장, 두 장 읽어가다 보니 이 놀라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단다.” 그러면서 이모님은 당신이 굳이 멀리 한국에까지 나오신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다고 했다.
“너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란다. 40년 넘게 지난 일이지만 내 기억 속에는 너무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일이 있다. 지금껏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너에게만은 꼭 말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이모님 이야기는 40여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날로 거슬러 올라갔다.
도경이 예언했던 7월 초사흗날 술시, 병세가 악화되신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상복을 갈아입고 나자 퍼뜩 도경께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늘 그분이 계시던 선교사집 담벼락으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그러나 그 분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발인이 있던 날,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식구들은 내가 사흘 밤 낯으로 잠도 자지 않고 빈소를 지키느라 힘이 들어서 그런 줄 알고 나만 남겨 둔 채 모두 장지로 떠났다. 그렇게 한참을 지났을 무렵 누군가 나를 심하게 흔들어 깨우기에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영태 형님이었다.
“왜 니만 여기 이러고 있노?”
영태 형님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리곤 자신 역시 장지로 향한다는 것이 어쩌다보니 길을 잘못 들어 이리로 왔다면서 하관이 끝나기 전 얼른 올라가자며 나를 채촉했다. 그렇게 뒤늦게 헐레벌떡 장지에 오른 끝에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겨우 지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모님은 그 날 매우 특이한 경험을 하셨다고 한다.
“네가 하도 오지를 않아 무척 마음을 졸였었다. 이제나 저네나 하며 산 아래를 굽어보는데 마침 저 멀리 누군가 올라오더구나. 광호 너인가 싶어 반가운 마음에 눈을 더 크게 뜨고 바라보았지. 그런데 말이다. 그건 네 모습이 아니었어, 커다란 아주 커다란 빛VIIT이었던 거야.”
이모님은 그것이 마치 커다란 럭비공 모양의 빛VIIT 덩어리였다고 말씀하셨다.
“너무 놀라 그 모습을 바라보았지. 그러니 그 빛VIIT 덩어리가 계속해서 이쪽으로 다가오더구나. 그렇게 조금 시간이 지나니 그 모습이 길쭉한 막대를 짚은 사람 모습으로 변했어. 그런데 그 형체가 어느 순간 네 모습으로 변하는 게 아니겠니? 도저히 내 눈을 믿을 수 없어 몇 번이고 너와 산 아래를 번갈아 살펴보았지.
지난 40년간 그 날의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단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게 뻔했으니까. 그런데 문득 그 책을 읽다가 사람들에게 ‘빛VIIT’을 전해준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오래전 그 일이 다시금 생생하게 떠오르더구나. 그리고 직감적으로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날 너의 모습이 그렇게 환한 빛VIIT으로 보였던 이유 또한 비로소 이해 할 수 있었지.”
나는 이 빛VIIT이 우주근원에서 오는 에너지이지 결코 내 개인의 힘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요즘도 가끔 내 모습이 큰 빛VIIT으로 보였다거나 순간적으로 손에서 환한 빛VIIT이 뿜어져 나가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어떻게 이 힘을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지를 말로 설명 할 수 없듯 그러한 일들이 어떻게 가능한지 나 역시 설명하기 힘들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나와 맞닿아 있는 빛VIIT의 힘을 통해 그와 같은 신비로운 현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이며 그 모두가 내 개인의 능력이 아닌 우주의 섭리에 의해 가능하다는 점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빛VIIT을 나누어주는 가운데 큰 보람과 함께 무척 힘들고 어려운 시기도 지나갔다. 만약 내 개인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고자 했다면 수 백 번도 더 그만두고 조용히 혼자만의 삶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내 의지를 넘어서서 존재하는 무언가가 있기에 지금의 이 길을 걷게 되었고 또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출처 : 행복을 나눠주는 남자 초판 1쇄 1996년 11월25일
개정판 2쇄 발행 2009년 12월 21일 p. 38-44
● 한 점 부끄러움 없는 당당함에 최고의 운이 담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훗날 정오의 태양이 하늘 한가운데서 떠올라 따사로운 햇살을 가득 담아 풍요로움으로 일굴 수 있는 공명정대한 바른 마음, 그것이야말로 큰 운을 불러들이는 진정한 내면의 마음가짐인 것이다. 그러나 고통스럽고 다소 힘든 일이 있더라도 3.1목의 풍요로운 운을 불러들이는 환한 빛마음으로 현실에 최선을 다하고 볼 일이다.
어떤 일에 있어 모든 것을 환하고 명명백백하게 밝히고자 할 때 반응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뉠 것이다. 부끄러울 것 없이 떳떳하다면 환영할 일이고, 그 반대의 경우라면 조금이라도 덮어서 숨기기에 급급해진다. 그래서 한역팔목의 3.1목은 언뜻 보면 크게 좋은 듯 하면서도 도리어 크게 잃을 수도 있는 양면성을 지녔다. 아주 중요한 대운大運 정오의 태양처럼 강렬하게 대지를 내리쬔다. 평소 거리낄 것 없이 명쾌하게 그 운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이라면 전레없이 큰 성공을 거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운이 주어져도 무언가 뒤에 감추고 싶은 것이 있고 부정한 일을 숨기고 있다면 역으로 큰 화를 입게 된다.
2000년 8월 어느 날이었다. 미국 아칸소 주정부가 당시 문희갑 대구 시장을 통해 나를 공식 초청하고 싶다는 공문을 보내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당시 이 공문을 받고 대구시는 다소 당황했다고 한다. 정작 자신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빛VIIT명상을 미국에서 어떻게 알고 공식 초청장까지 보냈느냐는 것이다.
인연의 발로는 책 한 권이었다. 그들이 나를 알게 된 것은 미국 워싱턴의 한 국립도서관에 꽂혀있던 책, 『행복을 나눠주는 남자』를 통해서였다. 누가 그 책을 그 먼 곳까지 가져다 놓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 책을 본 한인교포 변호사 엘리자베스Elizabeth가 당시 죽음을 앞두고 있던 미국 태권도협회American Taekwondo Association 의 이행웅 회장을 살릴 방도로 빛VIIT명상을 제안한 것이다.
이행웅 회장은 한국전쟁 직후 맨손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인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이후 아칸소를 거점으로 미국 전역에 태도도를 알린 장본인이다. 그는 태권도를 현지화하여 생활스포츠로 자리 잡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노력으로 아칸소주는 태권도의 주가 되었다. 매년 열리는 태권도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미국에서 하위권에 뒤쳐져 있던 아칸소 주 지역경제도 크게 살아났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되기 전 아칸소 주지사로 재직하던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이행웅 회장을 특별히 모셔 태권도를 배울 정도였다고 하니 이분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 할 만도 하다.
그런 태권도 영웅도 말년이 되자 현대의학으로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어 의식을 잃고 죽음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하지만 측근들은 대체의학에서 어떤 희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그 방법을 백방으로 수소문하였고, 결국 빛VIIT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경비가 전혀 필요 없는 것은 물론 대구시를 통한 외교적 공식 초청이었기에 명예로운 자리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이행웅 회장의 상태가 위중한 만큼 무게와 책임도 함께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결정을 내리 전 먼저 한역팔목에 답을 구해보았다. 고요히 빛VIIT명상을 한 후 어느 쪽으로도 마음이 치우치지 않도록 평온한 마음이 되었을 때 목을 두 차례 뽑았다. 3.1목, 큰 기회임과 동시에 위기 일 수도 있는 오묘한 목, 하지만 공명정대하게 온 천하에 드러나면 전례없이 큰 풍요로움이 함께 하는 정직하고 진솔한 목이였다. 결심이 섰다.
며칠 후, 이행웅 씨가 있는 아칸소 주 리틀락 시에 밤 비행기로 내렸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숙소도 들르지 않고 곧장 이행웅 씨가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병실로 향했다. 현지 의료진은 물론 모든 가족들과 측근들이 기대 반 의심 반 표정으로 내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는 가운데 이행웅 씨에게 빛VIIT을 주었다.
그리고 물을 가져오라 하여 그 물에 빛VIIT을 봉입해 초광력超光力수를 만들었다. 의식이 없는 까닭에 이행웅 씨의 목이 마치 거미줄을 친 듯 꽉 막혀 있었다. 이를 깨끗이 정화하기 위해 초광력수를 이행웅 씨의 입속으로 흘려 넣어주었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북한에서 가져온 500년 된 산삼을 달인 물도 못 마시던 분이….’ 하며 놀라워했다.
이 모든 것을 하기까지 불과 십여 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이 전부였다. 빛VIIT은 어차피 마음과 마음으로 전달되므로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최선을 다했으니 추이를 지켜보며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이제 최선을 다 했으니 추이를 지켜보며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다음 날 이른 새벽, 사람들이 방문을 두드렸다. 이행웅 씨가 깨어났다는 것이다.
이행웅 씨는 이후 몇 차례 빛VIIT을 더 받는 과정에서 일어나 앉을 수 있을 정도로 기력을 회복했다. 이를 보고 누구보다도 놀란 것은 현지 의료진들이었다. 자신들로서는 큰 특이점을 발견할 수 없는데 빛VIIT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받고 하루 밤 만에 깨어나다니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하지만 빛VIIT은 모든 자연의 순리를 거슬러 기적만을 일으키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닌 까닭에 이행웅 씨에게 남은 시간 동안 편안하게 떠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그렇게 이행웅 씨는 뜻밖에 맞이하는 고통스러운 죽음이 아닌 빛VIIT과 함께하는 편안한 죽음, 웰다잉(well-dying)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 일을 지켜본 아칸소 주정부는 나를 종신 명예대사와 리틀락 시의 명예시민으로 추대했다. 그리고 현지의 미국인들에게도 빛VIIT과 빛VIIT명상을 전할 수 있는 소종한 기회를 마련 할 수 있었다. 또한 신비로운 인연의 이끌림으로 네이티브 아메리칸 최후의 추장, 하워드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 선조들의 정신이 담긴 원광석元光石도 얻게 되었다.
단순히 빛VIIT이 몇몇 사람들의 오해나 의심처럼 눈속임이나 가벼운 트릭 정도였다면 이와 같이 큰 기회가 왔을 때 결과가 명쾌하지 못했을 것이다. 도경께서 어린 시절 나를 처음 보시고 바로 이 3.1의 목을 얻고는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 오더라도 잘 이겨내고 지나가면 환한 빛VIIT의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격려하신 적이 있다.
돌이켜 보건데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새삼 가슴 깊이 되새기게 된다. 무릇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큰 운, 좋은 운이란 그저 아무런 대가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비록 눈앞에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훗날 정오의 태양이 하늘 한가운데에 떠올라 따사로운 햇살을 가득 담아 풍요로움으로 일굴 수 있는 공명정대한 바른 마음, 그것이야말로 큰 운을 불러들이는 진정한 내면의 마음가짐인 것이다. 그러니 고통스럽고 다소 힘든 일이 있더라도 3.1목의 풍요로운 운을 불러들이는 환한 빛VIIT마음으로 현실에 최선을 다하고 볼 일이다.
출처 : 행복예보 생활한역 정광호 著 2015/03/12 초판 1쇄 P. 111 ~ 115
한역팔목은 단순히 눈앞에 닥친 소소한 개인사 정도를 물어 답을 구하는 차원을 넘어 인류의 앞날과 미래가 걸린 중대하고 위급한 선택의 순간에 보다 지혜롭고 현명한 방향으로 캄캄한 앞날을 열어갈 수 있는 등불이다.
그랜드 마스터를 깨우다
<나도 기적이 필요해>
전 미태권도협회(ATA)의 이행웅 회장은 한국전쟁 직후 맨손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전역에 태권도를 퍼뜨린 대부이며 클린턴 전 미대통령이 아칸소 주지사 시절 그의 태권도 사부였다. 그는 미국 전역에 태권도 도장을 세우고, 미국인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며 공장을 지어 태권도 관련 물품을 보급하는 등 태권도를 널리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태권도를 현지화하여 생활스포츠로 자리 잡도록 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노력으로 아칸소 주는 태권도의 주가 되었다. 매년 열리는 태권도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미국에서 하위권에 뒤처져 있던 아칸소 주 지역경제도 크게 살아났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되기 전 아칸소 주지사로 재직하던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이행웅 회장에게 태권도를 배웠으며, 대통령이 된 후에는 특별히 그에게 태권도 교관을 맡길 만큼 위상이 대단했다.
이처럼 코리안 드림의 새 역사를 쓰며 태권도를 미국 전역에 알리고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안타깝게도 암이라는 무서운 복병이 찾아왔다. 그것도 이미 말기에 접어들어 절망적인 상태였다.
미 정부는 물론 측근들은 갖가지 수단을 동원해서 그를 살리고자 애썼다. 하지만 그의 암세포들은 이미 폐와 간을 중심으로 전신에 퍼져 있어서 최첨단 치료는 물론 한방, 민간요법, 대체의학이며 세계적인 명의들을 초빙하여 치료를 받게 했지만 되레 그는 가물가물 의식을 잃어가며 목구멍까지 막혀갔다.
그는 죽음만 기다리는 상태로 500년 묵은 북한산 산삼까지 다려 먹이려 했으나 그것마저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이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고 했던가? 그 무렵 기적처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한국인 2세인 엘리자베스 변호사가 우연히 워싱턴의 한 주립 도서관에서 내가 쓴 『행복을 나눠주는 남자』를 읽었다.
'그래, 이 분이다!'
책을 읽자마자 번개처럼 나를 떠올린 그는 당장 당시 빛명상본부가 있는 대구 상아맨션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혹시 빛명상본부 정광호 선생님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그는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간단한 설명과 함께 다짜고짜 당장 내일 미국으로 날아와 달라며 간청하였다. 나는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다급함과 간절함, 빛VIIT에 대한 확신에 찬 그를 보며 저절로 마음이 움직였다. 그러곤 당치 않은 제안을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대구시 문희갑 시장을 통해서 초청해달라고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모든 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다급한 그는 미 아칸소 주지사를 통해 나를 초청한다는 공문을 청와대와 대구시에 보내왔다.
마이크 허커비 아칸소 주지사가 대구시 문희갑 시장에게 보낸 공문
나는 공문을 받은 후에도 미국행을 결정하기 전에 늘 지니고 다니는 괘를 뽑았다.
'음 1번이 나왔구나. 그럼 됐다!'
나는 그들을 따라가도 좋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받자 마음이 놓였다.
마침내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니 "Welcome to Jung Kwang-Ho, Grand Master'이라고 쓴 현수막을 붙인 초호화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버스는 낯선 이국땅을 달리고 달려 곧장 아칸소 주 리틀록(little rock) 시에 ATA회장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리로 들어오십시오."
눈이 빠지게 나를 기다리던 수행원을 따라 이행웅 회장이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위에는 한눈에도 거의 시체나 다름없어 보이는 그가 보였다. 그 옆에는 주치의를 비롯하여 관계자 2, 30여 명이 죽 늘어서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행웅 회장 옆으로 다가갔다.
"빛VIIT의 힘, 초광력超光力을 받고 당장 깨어나시오!"
나는 온 마음을 모아 큰소리로 외쳤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그뿐이었다. 무슨 푸닥거리처럼 요란한 의식이라도 벌일 줄 알고 잔뜩 기대했던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 길로 숙소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이윽고 이미 시간이 새벽 2시경 인데다 시차 때문에 피곤하여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만큼 곤한 잠에 곯아떨어졌다.
그런데 새벽 한 서너 시쯤 되었을까?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지며 사람들 발소리가 온 층을 다급하게 쿵쿵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에, 이 회장님이 깨어나셨다! 깨어나셨어!“
"다 죽은 사람이 저렇게 살아나다니!"
잠결에 들으니 감격에 겨워 울먹이는 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벌떡 일어나 이 회장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아니 사람들이 하도 그 방을 에워싼 채 요란을 떠는 바람에 떠밀리다시피 그 앞으로 가야만 할 정도였다.
이 회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의식을 되찾은 채 안색마저 발그스레하게 돌아오고 있었다.
"정신이 드십니까?"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 제가······."
이 회장은 눈물을 글썽이며 무슨 말인가 하려 했지만 무언가 목에 걸린 듯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가만히 보니 입안에 가득 백태처럼 낀 곰팡이가 보였다.
"물을 가져오시오!"
나는 가져온 물에다 빛VIIT을 봉입해 초광력超光力수를 만들었다. 의식이 없는 탓에 이행웅 씨의 목이 마치 거미줄을 친 듯 꽉 막혀 있었다. 이를 깨끗이 정화하기 위해 초광력超光力수를 그의 입속으로 세 숟가락 흘려 넣어주었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북한에서 가져온 500년 된 산삼을 달인 물도 못 마시던 분이······.' 하며 놀라워하였다. 특히 이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의료진들은 빛VIIT이라고 하는 신비로운 힘과 이 힘이 봉입된 초광력超光力수에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었다.
내가 이 회장에게 초광력超光力수를 흘려 넣어주는 등 이 모든 것을 하기까지 불과 십여 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이 전부였다.
빛VIIT은 어차피 마음과 마음으로 전달되므로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날이 환하게 밝아올 무렵 놀라운 일이 또 벌어졌다. 목 안에 잔뜩 끼어있던 거미줄 같은 곰팡이가 다 사라지고 이 회장의 말문이 트였다.
"제가 터널처럼 깜깜한 동굴 속에 있었는데······ 갑자기 그 앞이 훤해지면서 선생님 얼굴이 보였습니다. ······그리곤 제 얼굴을 짚으며 깨어나라 외치셨습니다. ······꿈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생시일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당신이 나를 살려주셨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이 회장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내 손을 잡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하, 이 회장이 살아난 건 제힘이 아닌 생명(마음, 영혼)의 주인이신 빛VIIT의 힘 때문이오!"
나는 그에게 다시 빛VIIT을 주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행웅 회장은 그 후 몇 차례 빛VIIT을 더 받는 과정에서 일어나 앉을 수 있을 정도로 기력을 회복했다. 이를 보고 누구보다 놀란 건 현지 의료인들이었다.
"이거야 원, 우리는 그 어떤 특이점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빛VIIT이라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힘을 받고 하룻밤 만에 기적처럼 깨어나다니!"
누군가가 신음소리처럼 내뱉었다. 그야말로 이 회장을 통해 현지 의료진들은 빛VIIT(초광력; 超光力, UCS)이라고 하는 신비로운 힘과 이 힘이 봉입된 초광력超光力수에 지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이처럼 초광력超光力수는 심신을 정화하고 치유하는 힘이 있으며 그 어떤 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특성과 효력이 있다. 항간에 심층수, 해저수, 빙하수 등등 다양한 종류의 고급 물이 나와 있지만 초광력超光力수에는 일반 물들이 흉내 내지 못하는 고유의 특성, 즉 모든 생명을 창조한 우주 원천에서 오는 무형 에너지가 담겨있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결국 이 일을 계기로 미 아칸소 주 정부는 나를 종신 명예대사와 주도(主都)인 리틀록 시의 명예시민으로 추대하였다. 그리고 현지의 미국인들에게도 빛VIIT과 빛명상을 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주었으니 이 일은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의 명예이기보다는 빛VIIT이 과학을 초월하는 대안의 힘, 혹은 대체의학의 힘(Top Energy)으로 국제적 차원에서 공식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출처 : 나도 기적이 필요해
2017년 5월 3일 초판 3쇄 P. 211~217
<행복을 나눠 주는 남자>가 행운을 주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적을 행하시는 정광호 선생님, 저는 10년 전 이곳 미국으로 이민 와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김동수라고 합니다. 제가 이처럼 펜을 든 것은 한 번도 선생님을 만나 뵌 적도 없고 선생님에 대해 잘 알지 못했음에도 선생님의 저서 <행복을 나눠 주는 남자>로 인해 선생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 얘기에 앞서 길게 느껴지시겠지만 먼저 제 이야기를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누추한 제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이유는 선생님의 초광력超光力을 통해 입은 은혜가 얼마나 제게 커다란 힘이 되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하여 저와 제 가족들에게 초광력超光力이 얼마나 큰 힘으로 서게 되었는지를 선생님께 꼭 말씀드려야 하겠기에 이렇게 염치 불구하고 펜을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넓은 마음으로 누추한 제 글을 읽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그저 그런 평범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특별할 것 없는 일상 가운데 그저 그런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입사하여 결혼하고 아들과 딸을 낳아 기르던 아주 평범한 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로 망하고 저는 몇 개월간 실직 상태로 있다가 친구의 소개로 작은 오퍼상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곳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1년여만에 실직하고 다시 다른 중소기업으로, 다시 오퍼상으로, 또다시 중소 무역회사로 너댓 번을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어느덧 나이는 마흔을 바라보고 아이들은 커 가는데 제 자신을 돌아보니 미래에 대한 비전은 보이지도 않고 드난꾼처럼 또 언제 직장을 옮겨야 할지 불안감이 앞서 착잡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결혼 12년 동안 죽도록 아끼고 줄였대도 모아 놓은 것이라고는 아이들의 교육부금 붓던 것과 폐차 직전의 중고차, 그리고 변두리에 위치한 서른 두 평형의 아파트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살다가는 도저히 희망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이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분의 소개로 이민을 오게 되었습니다. 물론 평범했지만 저희 집안은 난리가 났었지요. 명색이 장남이고 결혼까지 했지만 연로하신 부모님을 제대로 모시지도 못하던 형편에 아예 타국으로 이민을 간다고 하니 누구라 반기셨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막상 비행기가 이륙하자 제 심정은 말할 수 없이 착잡했습니다. 미국에 간다고 해도 정해진 일자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나를 반기어 도움 줄 일가친척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믿고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아내와 두 아이 뿐이었습니다.
희망이 없기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죽으나 사나 미국에서 다시 일어서야 했습니다. 그래야 기막혀 하시던 부모님을 다시 뵐 면목이 서기도 하는 일이었으니까요.
처음 미국에 도착하여 아내와 저는 밤낮을 바꿔가며 일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대형 슈퍼마켓 청소에서 접시 닦기, 햄버거 굽기 등 해 보지 않은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랭귀지 스쿨을 다니며 영어를 배웠지요. 미국에서 그나마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고 억울하게 봉변을 당하지 않으려면 영어를 잘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럭저럭 이민 4년 만에 작은 식당을 개업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식당을 하는 일도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번번이 걸리는 등급제 때문에 설움도 많이 받고 고생도 많이 했지요. 그러다가 아는 분이 하던 슈퍼마켓을 인수 받은 것이 4년 전입니다.
하지만 슈퍼마켓도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툭하면 몰려들어 어수선한 가운데 물건을 훔쳐 가는 불량한 아이들을 경계하는 일도,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총을 든 도둑들도 하루하루를 외줄타기처럼 힘들게 하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저를 위로하는 한 가지는 오로지 교회였습니다. 외롭고 힘든 이민 생활에서 누군가 절대자가 있다는 것은 엄청난 위안과 힘이 되었습니다. 저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러나 기적을 바라는 기도 같은 것든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우리 가족이 평안하고 효도 한 번 못한 제 한국의 부모님이 평안하시길 간절히 기도드렸을 뿐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아무리 이국땅에 정착했더라도 결코 한국인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일은 하지 말자, 더구나 양심을 팔면서 이익을 추구하지 않도록 힘을 주십사 하는 것이 기도의 전부였습니다.
그런 나날로 어느새 이민을 온 지도 10년을 맞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알고 지내던 분들과 교회가 마치는 시간을 틈타 저녁을 먹던 자리에서 저는 처음으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그분들도 선생님을 직접 만나 뵙지 못했기에 선생님의 저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한참 동안을 선생님을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이민 생활에 힘들고 외로운 우리들에게 선생님의 기적 같은 이야기들은 당연히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지요. 그중에는 정말 몸이 아파 병원 생활이 집에서의 생활보다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사람도 있었으니 모두에게 선생님의 이야기는 솔깃한 유혹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모두들 곧장 선생님의 책을 사야겠다는 의견으로 모아질 무렵, 마침 선생님의 책을 갖고 계시던 분이 저희 집과는 가까운 터라 염치 불구하고 저는 그 분께 책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사실 힘들고 외로운 이민 생활이었지만 가족 중 누가 특별히 아프거나 아이들이 속 썩이는 일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넉넉하지는 않지만 당장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도 아닌 저로서는 반신반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선생님의 책을 살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책을 빌린 다음 날부터 틈나는 대로 조금씩 선생님의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도 혹시 지나치게 과장을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도 들었습니다. 제 눈으로 확인한 일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가 뭔가를 실제로 느끼는 것도 없었으니 그런 의구심이 드는 것도 당연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매한 의구심이었지요.
그런데 제 아내에게는 오랜된 지병이 있었습니다. 이민을 오면서부터 생긴 병인데, 노이로제 같은 것이었지요. 특별한 계기도 없이 아내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밤잠을 잘 못 자곤 했습니다.
결혼 후 두 아이를 낳고 집안에서 살림에 재미를 붙이면서 아내는 45킬로그램의 몸무게에서 무려 60킬로그램까지 불었었습니다. 아내는 걱정을 했지만 마른 것보다는 넉넉해 보여 오히려 몸이 불은 아내가 보기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민을 온 후부터 아내는 하루가 다르게 살이 빠졌습니다. 심할 때에는 무려 39킬로그램까지 빠졌으니까요.
처음에는 큰 병인 줄 알고 온갖 검사를 다 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고작 노이로제였습니다. 불안증과 노이로제 때문에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것이었죠. 지금은 계속되는 치료와 교회 일을 맡으면서 44킬로그램까지 불기는 했지만, 아일 둘을 낳은 주부로서는 지나치게 마른 체구임은 분명했습니다. 게다가 아내는 그때까지도 심한 불면증으로 병원에서 처방하는 안정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초저녁부터 약을 먹었나보다 생각하고 그냥 두었는데, 아내는 밤새도록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잠에 빠져 있더군요. 문득 걱정이 된 저는 지나치게 약을 많이 복용한 것은 아닌지, 자꾸만 아내의 입가에 귀를 대 보며 숨을 쉬는지 확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숨소리는 고르고 평온했으며 몸 한 번 뒤척이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내의 잠든 모습은 이민 온 후 단 한 번도 본 적 없이 평온해 보였습니다.
다음 날, 아내는 제게 호들갑스럽게 선생님의 책을 내밀었습니다.
“이 책 정말 기적을 주는 책이에요. 당신도 읽어 보세요. 당신이 바라는 일이 이루어진다니까요.”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어제, 저 자는 것 못 보셨어요? 저는 지금 날아갈 것만 같다구요. 이젠 병원 약 같은 것은 필요 없어요. 병원에 다니지도 않을 거라구요.”
뜨악한 얼굴로 아내를 바라보는 내게 아내는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 때문에 슈퍼마켓에 나오던 일도 그만두었던 아내가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간절히 자신의 문제를 빌었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스르르 몸이 노곤해지면서 잠이 쏟아지더라는 것이죠. 열 시간이 넘도록 잠을 자고 일어난 아내는 단 한 번의 꿈도 없이 아주 깊고 평온한 잠을 잤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믿어지지 않았지만 아내가 굳이 손에 들려주는 선생님의 책을 들고 슈퍼마켓으로 나왔습니다.
그 동안 읽었던 부분부터 다시 읽으려다가 다시 처음부터 그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아내가 진정 이 책 때문에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면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찬찬히 잘 읽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오후 시간이 되자 저는 점점 책의 내용에 빠져 헤어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책이나 읽을 요량으로 퇴근을 서둘렀지요. 하루쯤 일찍 문을 닫는다고 굶어 죽을 정도의 형편은 아니었으므로 저는 서둘러 슈퍼마켓의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셔터를 반쯤 내렸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흑인 네 명이 나를 밀치며 슈퍼마켓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들에 의해 카운터로 밀려갔습니다. 퍼뜩 강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제 마음은 오히려 편안했습니다. 제 스스로도 이상할 만큼 떨리거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강도가 들었다면 돈은 물론 목숨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지요. 그저 저는 선생님의 책을 가슴에 안은 채 멍하니 그들이 끊임없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만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 중 두엇은 슈퍼마켓을 돌며 물건들을 마구 주머니에 쑤셔 넣고 두엇은 제게 돈을 내 놓으라고 총구를 들이대며 협박했습니다.
“선생님 도와 주실 거죠?”
저도 모르게 선생님의 책을 가슴에 안은 채 그렇게 외쳤습니다. 돈을 내놓으라고 소리치던 흑인 두 명은 내 알 수 없는 소리에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총구를 들이대며 돈을 내놓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와장창!
반쯤 열린 셔터문을 부수며 트럭 한 대가 질주해 들어왔습니다. 저를 협박하던 강도 둘이 그 트럭에 부딪혀 진열대로 쓰러지고 물건을 훔치던 두 명은 달려 나오다가 쓰러지는 진열대에 깔렸습니다.
정말 단 몇 분 동안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상하리만치 그 일을 찬찬히 아주 자세하게 지켜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치 슬로비디오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경찰이 들이닥치고 트럭 운전사와 강도들이 잡혔습니다. 트럭 운전사는 끊임없이 외쳤습니다.
“결코 졸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이 지점에서 핸들이 이쪽으로 꺾였다.”
어쨌든 강도도 당하지 않았고 슈퍼마켓도 보험에 들어 있었기에 오히려 깨끗하게 새 단장을 다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보상 문제다 진술이다 바쁜 와중에도 선생님의 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꼭 가지고 다녔지요. 그것은 분명 도움을 청하는 제게 선생님께서 응답을 주신 것이었으니까요. 이것은 어쩌면 하늘의 은혜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선생님과 선생님의 초광력超光力의 은혜라고 확신합니다. 그날의 사건과 제 자신의 변화를 깊이 생각해 보면 선생님의 은혜와 기적이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듯한 표정들이 되곤 합니다. 하긴 제 자신도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생각도 못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일이 기적이 아니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겠기에 곰곰 생각한 결과 선생님의 초광력超光力의 힘이란 걸 알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나를 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라는 존재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당신의 저서 한 권 달랑 들고 있었던 우리 가족에게 이런 기적을 행사하시는 선생님에 대한 감사함과 놀라움은 점점 커져 갑니다.
과연 이런 일들이 가능은 한 것일까? 그러나 이젠 그런 우문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제 선생님과 선생님의 초광력超光力만을 믿고 의지하며 남은 생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 후로 우리 가정에는 따뜻한 안정감이 감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도 부부간의 갈등이나 아이들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팍팍한 이민 생활은 우리 가족들에게 늘 바쁜 하루하루를 강요하고 그로 인해 집안에는 늘 삭막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요즘 아주 편안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생활합니다. 물론 아내도 틈틈이 슈퍼마켓에 나와 일을 도와 줄 정도로 대인 공포증도 없어졌구요. 아이들도 예전보다 훨씬 활기차게 학교생활을 합니다.
저희 가족은 잠들기 30분 전이면 조명을 낮추고 마음을 비운 후 선생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의 평안과 양심을 팔면서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자존심 있는 한국인으로 살기를 그렇게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요즘 저희 부부는 작은 병에 지폐를 조금씩 모으고 있습니다. 선생님을 만나 뵈로 한국으로 갈 비용을 모으는 것이지요.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비용을 모으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 나가려면 우선 아이들 학교 문제도 있고, 슈퍼마켓을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가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기간이 필요한데, 그 기간이나마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외출 후, 혹은 퇴근 후에 귀가하면 주머니에 있던 지폐를 그 병에 넣기로 한 것이지요. 그냥 선생님과 선생님의 초광력超光力에 대한 저희 부부만의 예의와 믿음에 대한 약속 같은 겁니다.
곧 선생님을 찾아뵙겠지만, 이렇게 편지를 먼저 드려서 저를 알려 두는 것이 선생님을 직접 만나 뵈었을 때 훨씬 좋겠다는 생각에서 저희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작성한 편지입니다. 워낙 글 쓰는 재주가 없는 터라 두서도 없고 그저 제 기쁨과 감사를 표현하기에 급급해 산만하더라고 이해해 주십시오.
그럼 그 동안 평안하시고 다음에는 한국에서 선생님을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LA에서 김동수 드림
출처 : 행복을 찾는 사람들에게
2000.07.07. 초판 P. 144~153
첫댓글 행복을 찾은 사람들,
영혼의 등불 빛과함께 할수 있음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빛VIIT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축복된 삶
감사합니다.
카네기재단 25주년 .
어린 시절에 개인 서재의 책을 빌려 읽으며 자라나 사후 100년이 된 지금 1280여곳 도서관 운영중
돈을 기부하는 데도 .지혜르운사람.
이모님이 보신 빛.
이행웅님의 빛이야기
감사합니다.
부를 일구고 그 부를 사회에 환원하여 아름다운 결과를 이룬 카네기, 감사합니다.
마음의 부를 나누어주시고, 빛VIIT을 행사하시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행복으로 인도하시는 학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귀한 글 가슴에 새기며 빛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빛과함께 할수있음에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감사와공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카네기의 꿈이 저랑 같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태평양을 건너온 증언자...빛책속의 귀한글 감사합니다^&^
귀한 빛글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빛과함께 한 귀한 빛역사 이야기 감사합니다
마음에 잘 담습니다.
빛과 함께 할 수 있음에 우주마음님과 학회장님께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학회장님의 모습이 커다란 빛VIIT덩어리임을 목격하신 학회장님의 이모님~
빛VIIT을 받고 깨어나신 이행웅회장님의 빛만남이야기~
미국에서 수퍼마켓을 하시는 이동수님의 빛의 보호로 위기를 넘기셨다는 편지~
진귀하고 기적같은 경이로움으로 가득한 빛역사이야기 읽으며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감사와 공경의 마음 가득 차오릅니다~
귀한 빛글 감사합니다~
귀한 빛 의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감사와 감동입니다
빛VIIT 덩어리
이동수님의
기적과 행복
감사합니다
행복을 찻는 사람들에게 글 감동입니다.감사 합니다.
빛의 책, 빛역사 이야기
무한이시고 순수이신 근원의 빛VIIT과 학회장님께
공경과 감사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