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없다
10여 년이 넘도록 바쁜 생활의 연속이었다. 봄에 꽃을 보며 생명의 잉태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고,
가을 낙엽을 보면서 낭만에 들지도 못했다.
아마 독자님들은 ‘스님’이 왜 그렇게 바쁘게 살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원고 쓰는 일이 늘 나를 기다렸고, 강의가 적지 않았다는 점이 나의 변론이다. 아니 스스로 그런 바쁨을 자초했는지도 모르겠다.
올해 3월 말경, 전라도 김제 금산사에서 목련을 본 뒤에 고창 선운사에서 동백꽃을 보았다.
마침 만개한 꽃이 아니라 한창 봉오리로 여물어가고 있는 꽃이었다. 그 꽃봉오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움과 절정을 바라본 그 순간은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이라고...
한 순간이요, 한 번뿐이기 때문에 삶이 소중한 것이요, 인생이 값진 것이다.
혹 꽃봉오리를 보고 싶다면, 바로 오늘 봐야 한다.
내일이면, 땅에 떨어지든지 만개한 꽃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마음에 각인된 그 순간의 추억과 미래라는 느낌은 영원한 삶 속에 자리 잡는다.
흐르는 물은 항상 가득하지 않고, 맹렬한 불길도 계속 타는 것이 아니며, 해는 떴다가 어느 덧 지고,
보름달도 찼다 싶으면 금세 기운다.
꽃의 만개도 한 순간이다. 그러니 무엇에 집착해 머물러 있으며, 무엇을 탐하여 인생을 낭비해야 하는가?
당나라 때 운문 스님 (864-949)은 늘 사람들에게 ‘일일시호일’이라고 말했다.
불교신자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말로서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라는 뜻이다.
무엇이 좋은 날이라는 뜻인가?
바로 ‘매일 매일이 최상, 최고의 날’이며, ‘매일 매일이 둘도 없는 가장 소중한 하루’라는 것이다.
그 ‘날’이라고 하지만, 시시각각 순간이 담겨 있다.
그러니 아름다운 꽃을 보는 그 순간도 단 한 번이다. ‘내일 봐야지!’하면 벌써 늦는다.
그렇다면 그 순간을 소중하고 귀하여 여기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가?
‘날마다 좋은 날! (그 순간이 좋기 위해서)’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로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대학에서 강의 때마다 수업 시작할 때, 학생들에게 명상을 시키면서 ‘나는 행복하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감사하다’라는
메시지를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라고 한다.
바로 이 점을 말한다. 행복과 기쁨을 스스로 만끽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그 순간순간이 값진 것이요, 소중한 삶이다.
필자도 얼굴을 아는 한 연예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는 불행한 사람이다.‘라는 의미심장한 글을 올렸는데
기자가 이를 기사화해서 인터넷에 올라왔다.
그녀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성공한 아나운서라고 생각한다. 물론 필자가 말하는 ’성공‘이란 기준점이 모호하고, 그녀 나름대로 속사정이 있겠지만, 그녀의 사고 자체가 안타깝다. ’불행한 사람‘이라고 스스로에게 인지시키고 있다는 점이 안쓰러운 것이다.
스스로에게 긍정 메시지를 불어넣어야 한다.
‘이런 순간순간이 인생 최대의 행복이다’라고...
예수님도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매사에 감사하라”고 하였다.
날마다 좋은 날이 되어야 달마다 좋은 달이 될 것이요, 달마다 좋은 달이 되어야 해마다 좋은 해가 될 것이다.
출처 ; 정운 스님 / 살다보면 살아진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