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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바둑대상]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는 [2014 바둑대상 시상식]을 개최합니다.
올해 바둑계를 되돌아보면서 두드러지게 활약한 프로 및 아마,
바둑 보급 및 발전에 공로가 큰 분들을 모셔
축하와 감사를 드리는 자리입니다.
아울러 바둑팬분들도 같이 초청하여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하오니 시상식에 참여하고자 하는 팬 분들께서는
참가 접수 페이지에 성함과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시 : 2014년 12월 29일(월) 오후 3시

* 가급적 단정한 옷차림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 행사 후에는 간단한 다과회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 원활한 행사 진행을 위해 20분 전에 도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교통이 혼잡하오니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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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계는 지금 ‘동문기원’ 뜬다
죽마고우 만나 ‘수담’ 나누고 ‘수다’도 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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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TV 방영물 가운데 시청률이 가장 높은 것은? ‘고교동문전’이라고 한다. 인터넷 서점 ‘YES24’가 후원하는 대회다. 뭐니 뭐니 해도 한-중 정상급 프로기사들의 열전보가 당연히 인기도 1등일 것 같은데, 의외다. 그러나 옛날에 고교야구가 누렸던 인기를 생각하면 실감이 난다. 내가 좋아하는 일류 프로들의 차원 높은 바둑을 감상하며 관전하는 것도 물론 큰 즐거움이지만, 내가 다닌 고등학교의 동창, 선후배들이 TV씩에나 등장해 바둑을 두면서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을 보노라면 배를 잡고 웃다가도 문득 추억 어린 학창 시절, 돌아갈 수 없는 내 젊은 날의 그 때가 너무 그리워 눈물이 난다. 프로야구든, 프로바둑이든, 고교동문전이든 응원의 대상이 있어야 구경하는 것이 신난다. 구경하는 것은 곧 응원하는 것이며, 그 중에서는 또 우리나라 선수, 우리 고장 선수보다 우리 학교 선수를 응원하는 것이 제일이다. ‘고교동문전’과 비슷한 것으로 ‘대학동문전’도 있다. 의류 수출 전문업체 ‘한세실업’이 후원하고 있다. ‘YES24’와 ‘한세실업’은 같은 계열의 회사다. 요즘 부쩍 각 고교-대학 재학생-졸업생의 바둑대회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상당 부분 동문전 열풍의 영향일 것이라고들 말한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예컨대 서울사대부고 같은 경우는 동문바둑대회에 300여 명이 참가할 정도로 성황이고, 경기고도 재작년부터는 좀 줄었지만, 그 전에는 200여 명이 넘어 웬만한 전국 규모 아마추어 대회를 방불케 하고 있다. 동문전 열풍은 또 기원 동네에 뭔가 새바람을 몰고 오는 것 같아 흥미롭다는 분석도 있다. 가령 이런 것―최근 전철5호선 개롱역 근처에 ‘70기원’이 문을 열었다. 경기고 70회 동기들이 주축이고, 건물주는 68회 동문이다. 김희중 전 9단을 지도사범으로 초빙했다. ‘YES24’와 ‘한세실업’의 김동녕 회장도 경기고 동문이다. 2-3호선 교대역 부근 ‘청조기원’과 3호선 양재역 뒤편에 있는 ‘명인기원’, 5호선 까치산역 바로 앞의 ‘샛별기원’ 등도 말하자면 각각 휘문고, 경북고, 대륜고의 ‘동문들의 기원’이다. “고교동문전의 자연스러운 연장인 것 같아요. 우리도 고교동문전에 출전하자. 모교의 명예를 높이고 소식 궁금한 동문들을 찾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닌가. 기왕 출전할 거면 이겨보자. 가능하면 자주 모여서 훈련도 하고, 동문 가운데 숨은 고수도 발굴하자. 바둑대회도 자꾸 열자. 나이 먹어 누릴 수 있는 낙이 뭐 그리 많은가. 죽마고우 만나서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을 서로서로 확인하는 것 이상 있겠는가. 그렇다면 아예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어보자. 돈 있는 친구는 돈을 좀 대고 바둑 잘 두는 친구는 하수들 지도도 좀 해 주자. 그런 게 시쳇말로 재능기부 아닌가. 기원이란 게 요즘 종로3가 일대, 교대역 중심 반경 500미터, 양재역 주변은 그런대로 활황(?)이라고 하지만, 대개는 집세 내고 한 사람 인건비 정도 나오면 다행이라는데, 동문끼리 십시일반으로 도우면 최소한 운영하는데 부담은 덜할 것 아닌가 ―이런 맥락 아니겠어요.” 명인기원은 원래 있던 것을 작년에 경북고 47회가 인수해 신장개업한 케이스다. 분당기우회장-분당기우회장배 시니어 바둑대회-내셔널리그 ‘전북알룩스’ 팀의 후원사 대표 등으로 바둑계에는 널리 알려진 ㈜알룩스의 백정훈 회장이 재정을 지원했고, 대기업 임원으로 정년퇴직해 노후 걱정이 없는 이태준 동문이 원장을 맡았다. 경북고 OB 바둑모임인 ‘경맥기우회’와 ‘경맥기우회’ 회원 중에서 아마 고단자들이 또 따로 결성한 ‘경맥고수회’가 모이며 매달 바둑대회가 열린다. ![]() ▲ 동문 기원인 부산의 부전 기원과 양재동 명인기원. 샛별기원? 대륜고의 상징이 샛별이란다. 청조기원이나 명인기원처럼 그 자리에 있던 기원을 인수한 것이 아니고 새로 문을 연 기원인데, 장소와 집기 대부분을 동문들이 후원했고, 바둑과는 무슨 전생의 인연이 있는 것인지, 대학 졸업 후 직장 다니고 사업하고 하다가도 본인 말에 따르면 “3년을 주기로 바둑으로 돌아와 기원을 차리곤 했던”, 바둑 실력도 세고 기원 운영에 풍부한 노하우를 갖고 있는 이용범 동문이 원장이다. 아무튼 ‘동문들의 기원’은 현재로서는 괜찮게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통 기원들처럼 일반 애기가만 바라본다면 자리 잡는 데까지 적어도 반년은 걸린다는 것이지만, 그에 비해 동문들의 직간접 도움으로 출발부터도 운영에 허덕이거나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고교동문전’ 열풍 말고도 고령화 시대에 은퇴 후 모임의 장소로 기원만한 것이 쉽지 않기에 앞으로 ‘동문들의 기원’은 계속 늘어날 것이며, 이들이 자리를 잡는다면 가속이 붙을 것이고 어쩌면 협동조합 형태로 나아갈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있다. “기원의 새로운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동문들의 기원’은 아니지만, 그 비슷하게 색다른 기원도 있다. 양재동 ‘쉼터’ 기원(고려대 동문 노위래 원장)은 2004년 무렵에 생기자마자 건물의 3-4-5층을 사용해 북적북적하면서 이름을 날렸고, 장소를 조금 옆으로 이전한 지금도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올해 초 강북 전철4호선 수유역 부근에 새로 생긴 ‘서울기원’은 서울법대 출신 현역 김철우 변호사의 작품이다. 80평이었던 법무법인 사무실을 개조해 70평을 기원으로 만들었다. “서울의 3대 기원으로 키우겠다”는 것이 김 변호사-원장의 포부다. 부산 서면역 인근 시장통 안에 있는 부전기원은 평일 70여 명, 주말 100~120명으로 자타공인 부산에서 손님이 제일 많은 기원이다. 비결은 진주고 연세대를 나온 강창현 원장이 부산-마산의 고교동문 기우회 모임들을 대거 유치한 것. 2000년 전후한 무렵, 서울 강남에 ‘카페 기원’이 선보인 적이 있다. 음료-다과를 먹고 마시며 바둑을 둘 수 있어 신선했으나 오래 가지는 못했는데, ‘동문들의 기원’이 또 좀 더 발전한다면 바로 ‘카페 기원’의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는 사람도 있다. 그것도 해답의 하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럽의 기원은 예외 없이 ‘카페 기원’이다. 고양시 일산의 대화역 나오자마자 있는 ‘대화기원’이 지금 그 비슷한 모습이다. 이것 역시 그 자리에 있던 기원을 ‘고양시기우회’의 회원 몇 사람이 인수-운영하고 있는데, 매일 저녁 7시쯤 되면 손수 음식을 장만해 자체 파티를 벌인다. 회원들 사이에 인기가 좋아 “바둑 두러가 아니라 파티에 동참하러 온다”고 말하는 회원이 한둘이 아니다. 바둑TV는 많은 기전을 속기화해 우리 바둑을 경조부박케 한다는 비난을 듣기도 하지만, 그런 반면에 ‘고교동문전’ ‘대학동문전’ 같은 아이디어는 참신했다. ‘고교동문전’ 열풍이 과연 어떻게 기원 문화 일신에 기여하게 될지. [출처] 일요신문 -이광구 객원기자 클릭☞ 기사원문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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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인도네시아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 편입될까?
서대원 AGF 회장 자카르타 AG조직위원장 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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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원 아시아바둑연맹(AGF) 회장이 2018년 인도네시아에서 개최되는 제18회 아시안게임에 바둑을 정식 종목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본격 행보를 시작했다.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자카르타를 방문한 서대원 회장은 리타 수보보(Rita Subowo) 인도네시아 올림픽위원회(NOC) 위원장 겸 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을 면담하며 바둑의 정식 종목 포함을 요청했다. 이날 면담에서 서회장은 영문 바둑 동영상을 상영하며 바둑을 소개했고, 리타 위원장은 OCA의 최종승인이 필요하겠지만 바둑 종목의 채택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NOC 회의실에서 4일 열린 면담은 조태영 주 인도네시아 대사가 주선했으며, 김달수 AGF 사무총장, 김석기 인도네시아 문화원 원장, 현지에서 바둑 보급 중인 은퇴 프로기사 김동명 사범, 캐서린(Katherine Isabella Manasseh) 인도네시아 바둑협회 부회장 등이 배석했다. 서회장은 인도네시아 청소년체육부 가토(Gatot S. Dewa Broto) 차관보도 별도로 만나 리타 위원장과의 면담 내용을 설명한 후 인도네시아 바둑협회의 공식 스포츠단체 인정을 요청했고, 가토 차관보는 긍정적 검토 및 협조 의사를 밝혔다. 한편 6일에는 제1회 한국대사배 인도네시아 바둑 챔피언십이 열렸다. 인도네시아 선수 40명과 한국 교민 10명 등 50여 명이 참가한 이번 대회는 기력에 따라 A~C조로 나뉘어 열렸고 소정의 상금도 수여됐다. 한국대사배 바둑대회를 처음 개최한 조태영 인도네시아 대사는 2018년 아시안게임의 바둑 종목 채택과 인도네시아 바둑 활성화를 위해 대사관 및 교민회의 적극 지원은 물론 한인 기우회 결성, 김동명 사범에 대한 후원 등을 약속했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바둑 인구는 약 1천여 명으로 추산되며 수도 자카르타에만 그 중 절반 가량이 거주하고 있다. [기사제공ㅣ한국기원] ▲ 6일열린 제1회 한국대사배 인도네시아 바둑 챔피언십에선 인도네시아 선수 40명과 한국 교민 10명 등 50여 명이 참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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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 아마국수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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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선전 전경. ![]() ▲ 예선이 펼쳐지고 있다. ![]() ▲ 4강전 전경. ![]() ▲ 결승전이 막 끝난 시점. ![]() ▲ 준우승한 홍무진은 입단포인트 90점을 확보하고 있는(100점이면 입단) 강자다. ![]() ▲ 연구생인 송지훈은 현재 연구생 랭킹3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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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결(柯潔) 인터뷰 :"승리 후의 쾌감을 즐긴다" (新浪체육)바둑 2014/11/17 12:58
柯潔(가결) 인터뷰 :승리 후의 쾌감을 즐긴다
출처 :새파도체육(新浪체육) 2014.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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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강해지는 가결
들어가는 말 :偶像(우상)이 없다고, 가결은 말한다. 대부분의 90後들로 말하자면, 그들 자신이야말로 진실로 자기들 자신의 대변인이기 때문이다. 바둑판 위 가장 광채로운 순간을 우리가 예측 불가능함과 마찬가지로, 또한 가결 개인의 결정적 장면을 우리가 설계할 순 없다. 바둑 안에서든 바둑 밖에서든, 다 그러하다.
가결, 1997년 절강(浙江) 려수(麗水) 출생. 2003년 바둑 배우기 시작. 현재 프로 四단.
2007년 전국아동바둑선수권 우승, 2008년 응씨배세계청소년바둑선수권 소년부 우승, 2011년 응씨배세계청소년바둑선수권 청년부 우승.
2013년, 가결은 갑조리그에서 21전 15승의 전적으로 ‘갑조리그 신예상’을 획득한다. 2014년 갑조리그는 지금 진행 중인데 이 記事 작성 때까지 20차전 중에 19번 출전하여 놀랍게도 17승을 거뒀다.
2014년 9월 20일, 제2회백령배세계바둑공개대회 준결승에서, 가결은 강적 박정환을 2:0으로 격파하며 결승에 올랐다.
2014년 10월 24일 제16회 아함동산배 결승에서, 가결은 세계선수권자 당위성(唐韋星)에게 승리, 그의 프로 생애 첫 국내타이틀을 따냈다. 동시에 일본 아함동산배 우승자 이야마 유타(井山裕太)와 中日우승자 대항전을 벌일 자격을 획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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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결의 思考
“당신이 날 두고 신동이라 말할 수야 있겠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바둑을 잘 두는 아이라면 다들 매우 총명하다. 다만, 國手 행렬에 끼기 위해선 보통 이상의 굳은 의지와 끈기가 매우 중요하다.”
“(승리를 위해서) 별다른 비결은 없다. 단지 압박감을 최대한 피하고 긴장을 풀고, 그리고 기회를 기다린다. 마음을 반드시 잔잔하게 가다듬어야 한다. 무슨 생각이 있어선 안 된다.”
가결이 진하게 異彩(이채)를 띠는 지점은, 한 소년 棋士가 바둑 안 바둑 밖에서 풍기는 질감의 솔직함이다. 전통적 특징과는 거리가 멀다 느껴지는 가결, 솔직한 대화를 통해 하나 하나 초점을 모아보았을 때 그는 그야말로 딱 90後 소년의 이미지다. 다만 棋士는 결국 棋士, 이 지점에서 그는 보통의 소년들과 달라진다. “우리 세대 棋士 중의 NO.1이 되고야 말겠습니다.” 가결은 자기가 정해놓은 인생 理想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問 :듣기로 바둑 학습이 태교 시절부터 시작되었다던데? (역주 :가결 아버지는 엔지니어로서 바둑광. 어머니는 市운동회 바둑 부문 여성부 6등 경력자. 가결을 임신하고는 辭職(사직), 이 당시 남편이 바둑교실을 열었는데 아내는 대부분 시간을 바둑교실에서 보냈다. 그리하여 가결이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딱 딱 바둑돌 소리를 들었다더라... 어느 신문에 난 記事 중의 내용인데, 이게 소위 ‘가결이 바둑胎敎설’의 연원이다.)
가결 :넷상에서 말해지는 태교니 뭐니 하는 것은 사실 그렇지가 않았다. 과장된 것이다. 다만, 바둑을 배우기 위해 일치감치 북경살이를 시작하긴 했다. (역주 ;북경 호적이 없는 외지인이 이런 저런 사정으로 북경살이를 하는 경우를 일컬어, 北漂(북표). 의미는 ‘북경 떠돌뱅이’ 정도. 즉, ‘우리 집안이 저 때문에 일찌감치 北漂가 되었어요’ 라고 말하는 가결이다. 중국 프로棋士라면 아주 흔한 사례.)
최초엔 섭위평도장이었다. 당시 도장은 기숙사 체제였다. 아빠엄마는 날 집어넣어놓고 바로 가버렸다. 당시 난 어렸는데, 엄마가 한 달에 한 번씩 날 보러 왔다, 엄마는 떠날 때마다 한바탕 울었다.
問 :언제쯤 입단하게 되었나? 당시 무슨 특별한 소감은?
가결 :북경에 온 지 2,3년 후였다. 당시 나는 도장에서 전심전력으로 공부했고 바둑에 아주 미쳤었다. 또한 다른 사람을 격파하는 쾌감과 성취감을 특히 즐겼다. 이게 입단의 원동력이 되었다.
다만 내가 단증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아서였다. 강력한 바둑운이 그때 갑자기 폭발했다. 노력이 중요함은 당연한 거고, 다만 당시 나의 棋力은 확실히 부족했다. 입단대회 전에 어느 프로 선생님과 두었다, 날 두 점을 깔게 했는데, 내가 졌다. 입단대회 후에도 그는 나를 두 점을 접었다. 두 점이란 치수는 매우 큰 차이이다.
問 :입단하고선 뭘 했나?
가결 :입단 이후에도 여러 도장을 돌아다녔다. 이런 경험이야말로 내 전진 행로 상의 불가결한 단련이다. 어느 프로棋士가 나에게 한 말을 기억한다 :‘아마추어 때는 네가 보석일 것이다. 그러나 프로로 들어선 후엔 넌 한 포기 풀이다.’ 프로의 난이도가 아마추어보다 크기 때문에, 아마추어 정상급 棋士가 프로 중에 맨 밑바닥 棋士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봉황 꼬리보다는 닭대가리, 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입단하고 프로바둑계에 들어가서 내 성적은 그저 그랬다. 다들 내 실력을 안된다고 보았다. 난 승복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게 뭐 나쁘지만은 않았다. 반대로 나에게 자극을 주었으니까. 입단대회를 마친 후 원래는 진학을 할 생각이었는데, 명예를 바로세우기 위해 생각을 바꾸었다. 반드시 정상을 정복하여 이 분을 풀겠다고. 그렇다고 무슨 앙심을 가진 것이 아님은 당연하다. 단, 실력이 남보다 떨어지면 확실히 무시당한다. 성공하면 王이고 실패하면 도적이라고, 바둑이 바로 그렇다. 만약 네 실력이 떨어진다면, 아무리 잘 생겨도, 그 어떤 재주가 있어도, 안된다.
問 :바둑을 배우는 사람은 많은데 지속해나가는 사람은 적다.
가결 :‘將帥(장수) 하나 출세 뒤엔 白骨이 일만’이라고, 바둑이 딱 그렇다. 배우는 사람이 많은데 대부분 중도에 포기한다. 사실 나 또한 그런 매우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입단대회 이후 도장의 교습비는 디게 비싸고 내가 뭐 재벌2세도 아니고. 집안이 극심한 경제적 압박을 견뎌야 했다. 훈련비에 집세까지, 지출이 아주 컸다. 당시에 심지어 지하방에 산 적도 있다. 힘들었지만 이겨내긴 한 셈이다.
젊다, 겁이 없게 마련이고, 어리다, 까불게 마련이다. 난 중도포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되돌아가 진학하는 건 내 못남을 증명하는 꼴일 뿐. 당시 난, 나는 반드시 된다, 반드시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해야만, 영예롭게 해내는 자기증명만이 후회 없는 청춘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사실 바둑의 길은 高地를 향한 쉼 없는 등반의 과정으로서, 두려움 없는 용기와 굳센 의지를 필요로 한다. 당신은 아마추어부터 시작하여 우선 프로라는 업계로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당신은 또 그 路程(노정) 도중 대다수 경쟁자를 뛰어넘어야 한다. 이건 일종의 피라미드와 같다. 꼭짓점에 서야만 군웅들을 내리 깔아볼 수 있다.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길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아무리 험하더라도,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야 한다.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 난 나다, 난 반드시 王이 될 수 있다. 과정은 매우 무미건조하며 또한 매우 잔혹하다.
問 :바둑 공부하는 사람에게 국가팀이란 간단히 넘기 어려운 장벽이다. 너는 어떻게 뛰어넘었나?
가결 :맨 처음 참가한 국가팀 선발전에선 뒤에서 몇 번째인 성적으로 미끄러졌다. 이후 이,삼 년의 노력 끝에 마침내 일등인 성적으로 국가팀에 뽑혔다. 그러나 진입 이후 몇 년 동안은 좀 흐리멍덩하게 보냈다. 대략 적응과정이랄 수 있겠는데, 이런 과정 또한 자기 단련 과정이다.
問 :국가팀 훈련과 도장 훈련은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나?
가결 :국가팀은 도장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棋士들이 죄다 모여 있기 때문에, 이전에는 보기 쉽지 않다고 여겼던 高手들을 늘 보게 된다. 예를 들어 고력(古力) 상호(常昊) 이런 최일선 高手들이다. 또한 棋士들 간 교류할 기회도 많고 국제대회 참가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점들이 棋士에겐 매우 중요하다. 대다수 棋士들은 競技(경기)를 통해서만 자신이 쓸 만한지 아닌지, 자기가 둔 바둑이 잘 둔 바둑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프로 진입 이후의 棋力 향상은 기본적으로 자기에게 달렸다. 어느 정도 경험이 누적된 이후라면, 각 棋士는 각기 자기 棋風(기풍)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바둑에 대한 자기 고유의 이해가 있어야 한다. 타인이란 내게 어떤 일깨움을 줄 수 있을 뿐, 타인의 방식을 판 내내 답습할 순 없다. 棋力을 제고할 생각이라면 역시 자기 깨달음에 의해야 하고 스스로가 탐색해가야 한다.
問 :정체기가 있었나?
가결 :입단 전후로 몇 년 동안 계속 정체기였다. 눈곱만큼의 그럴 듯한 성적도 없었다. 내 실력 폭발은 딱 요 2년 기간 동안이다, 이전에는 어떻게 두어도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실력도 안 됐고 운 또한 없었다. 몇몇 대회에선 첫 판에 나가떨어지곤 했다...... 내 바둑이 이렇게 엉망이라니, 당시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거기다 심적으로도 미숙하여 바둑 둘 때 늘 긴장을 했다. 때문에 남들이 날더러 천재라 말을 해도 나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問 :상대하기 어려운 棋士가 있는지?
가결 :전부 다 어렵다. 현재는 다들 강하고 특별히 앞서가는 강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시대적 원인이다. 현재는 정보가 발달했고 대회는 완전히 공개되고 경쟁은 공평하다. 두각을 드러내는 棋士가 많을 수밖에 없다.
棋士들이 다들 일인자가 되고자 함은 당연하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단, 일인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바둑이 강해서 남들보다 한 차원 뛰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일인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問 :바둑에서 가장 널 끌어당기는 지점은 무엇인가?
가결 :그것의 승부적 측면이다. 내가 남보다 강함을 증명할 수 있다는 그 점이다. 때문에 남자애가 바둑을 더 좋아할 것이다. 또한 다른 일련의 무엇을 바둑에서 배울 수 있음은 당연하다. 예를 들어 흉금이 너무 좁아지지 않게 된다. 그러나 바둑에서 나를 가장 끌어당기는 부분은 역시 이긴 후의 쾌감과 승리자로서의 허영심이다. (역주 ;원저자가 굵게 하였음)
나는 가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생각이 이거면 말도 이거다. 만약 누군가 자기가 하루 종일 바둑을 두었다 말한다 치자. 나는 그런 말을 그다지 믿지 않는다. 얼마나 따분하겠나. 다만, 바둑은 생계수단이기도 하니까, 일단 시작했으면 벗어날 수가 없다. 왜냐면 다른 걸 한다 해도 결국 안될 테니까. 좀 할 줄 아는 건 이거뿐이니까. 棋士 역시 하나의 직업이다. 직업으로서, 처음엔 좋아할 것이고 나중엔 결국 염증을 느낄 것이고 단조롭기 그지없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혹시 다른 사람은 안 그럴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다.
나는 소위 '일생에 걸친 열정'이란 걸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어쩌면, 바둑계 내에서 보통에 매우 근접한 ‘별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問 :우수한 棋士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소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가결 :강심장이 매우 중요하다. 먼저 심리적 타격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하고 그런 다음에 바둑이 강해야 한다. 매우 간단한 이치이다. 바둑이 안된다면 다른 부분이 아무리 좋아도 소용없다.
바둑이 강해지고 싶다면, 내 생각에 20%는 타고난 재능이고 80%는 노력이다. 재능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부모들에게 말하고 싶은데, 만약 아이가 바둑을 제대로 못 배운다면 억지로 계속하지 말길 바란다. 분명히 재능과 큰 관계가 있다. 하물며 프로로 들어가는 길은 외나무다리처럼 좁아서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이다.
問 :너의 취미에 대해 얘기해 본다면?
가결 :대체로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편이다. 취미 또한 그런 쪽이다. 어떤 때는 나가서 돌아다니기도 한다. 영화를 좀 좋아하는 편이고, 게임은...... 할 줄 아는 게임이 상당히 있는데 잘 하지는 못한다. 한 가지를 오래 하면 지루해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쉽게 싫증을 내는 편이다.
問 :목표가 무엇인지?
가결 :목표란 보통 궁극적인 과제 같은 게 아닐까? 나의 목표라면~, 많은 타이틀을 따고 싶고, 그리하여 돈을 많이 벌고, 바둑계의 일인자가 되고 싶다. 끝
지난달 28일 중국 칭다오에서 열린 2014 삼성화재배 본선 32강전에서 스웨 9단(왼쪽)이 이창호 9단과 대국하고 있다. 스웨 9단이 불계승했다. [사진 한국기원]
최근 세계 바둑계를 흔드는 이름이 있다. 중국의 스웨(時越·23) 9단이다. 소위 ‘90후 세대’의 대표주자다. 1990년 이후 출생자를 가리키는 ‘90후’는 요즘 바둑계를 이끄는 힘이다. 지난해 세계대회 우승자 6명 중 5명을 배출했다.
스웨 9단은 90후 중에서도 발군이다. 지난해 LG배 세계대회 정상에 올랐고, 지난달 ‘2014 삼성화재배’ 32강전에서도 한국 랭킹 1위 박정환(23) 9단과 이창호(39) 9단을 꺾고 16강에 진출했다. 현재 중국 랭킹 1위다.
스웨는 ‘한국 킬러’로도 불린다. 2012년부터 올해까지 한국 정상급 기사들과 붙어 총 34승 11패를 기록했다. 이세돌(31) 9단은 “스웨는 싸움꾼이다. 한국 기사들이 가장 까다롭게 여긴다”라고 말했다. 스웨를 지난달 28일 중국 칭다오(靑島) 샹그릴랴 호텔에서 열린 삼성화재배 대회 현장에서 만났다.
-최근 중국 바둑의 힘이 거세다.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많은 인구와 국민의 높아진 인식이 첫째다. 하지만 전통의 힘이 그 못잖다. 바둑은 고대 중국에서 발생했다.”
-문화가 중요하다는 얘기인가. 그렇다면 반상에서 한·중 차이는.
“크게 보면 차이가 없지만 미세한 점에서는 다른 점이 있다. 시간을 예로 보자. 한국은 속기 지향적이지만 중국은 상대적으로 천천히 둔다.”
-당신은 문화를 강조했다. 바둑의 본질은 뭔가.
“『역경(易經)』의 논리가 바둑과 비슷하다. ‘변화’가 역경의 초점이자 바둑의 핵심이다. 『역경』은 중국 문화의 산물이다. 그 논리에 중국인이 익숙한 게 아닌가 싶다.”
-『역경』은 어려운 책이다. 마음에 남는 책은.
“『논어』와 『도덕경』이다.”
스웨는 이제 20대 초반. 인터뷰 도중 부끄러운 듯 볼에 홍조를 띠었다. 하지만 어조는 명료하고 답변은 간결했다. 그의 말에선 고전의 힘이 느껴졌다. 실력 1인자의 기풍과 인격은 공동체에 주는 영향이 크다. 이상훈(41) 9단이 “앞으로 계속해 성적을 낼 기사다. 중국 바둑계의 복”이라고 말할 정도다.
-스스로를 ‘싸움꾼’으로 묘사한 적이 있다. 반면에 평상심도 강조했는데.
“바둑에서 기술적으로 중요한 것은 형세판단인데, 그 밑바닥에는 평상심이 있다. 바둑은 싸움이라 마음이 격동되기 쉽다. 격동되면 집중력이 약해진다. 평상심 없이는 싸움도 없다.”
-바둑은 용어가 신랄하다. ‘두점머리 때리다’ ‘젖히다’ 등 용어를 볼 때 정적(靜的)인 놀이가 아니라 동적(動的)인 놀이다.
“하지만 흑백 돌은 병정(兵丁)이다. 대국자는 장군이고. 그래서 정적인 게임으로 본다. ‘군막(軍幕)을 나서지 않고 천리를 내다본다’는 말이 있잖은가.”
-평상심에 다다르는 방법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고 본다. 마음을 훈련하고 또 반복하는 것이다.”
-명상을 말하는가.
“ 종교나 명상과 관계 없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되느냐, 그게 관건이다.”
-우칭위안(吳淸源·100) 선생도 수법에 앞서 마음을 먼저 닦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우 선생의 거울 비유가 있다. ‘거울의 표면을 닦지 말고 내면을 닦아라’라고 했다. 나는 그것을 잡념 없는 마음, 순수한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다.”
-마음에 새겨두는 글귀가 있나.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아니다. 고전은 읽을 때마다 뜻이 다르게 다가온다. 어느 하나를 붙잡아 말하지 못하겠다.”
스웨만이 아니다. 요즘 중국 젊은 기사들의 안목은 범상치 않다. 2013년 응씨배 우승자인 판팅위(范廷鈺·18) 9단은 응씨배 결승을 앞두고 “나는 관념의 창조를 원한다. 기술을 넘어서서 바둑이 함축하는 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바둑 이외의 지식과 경험에서 온다”고 말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앉는 게 일인 기사는 운동이 필요한데.
“평소 게으르다. 하지만 차를 타지 않고 주로 걸어다니는 편이다. 시간이 나면 영화는 좀 본다. 주로 ‘의미가 깊은 것’을 본다.”
-힘들 때는 없었나.
“왜 없겠나. 다행히 나는 빨리 잊는 스타일이다. 누구나 마음이 오래 상하면 좋지 않다.”
-이창호는 왜 요즘 바둑이 잘 안 되고 힘들까.
“가족이 생겨서 그런 것 같다. 관심사가 늘었다. 바둑의 집중과는 배치될 수 있다.”
-한국이 어떻게 하면 중국을 이겨낼까.
“(난처해 하다가 곧 웃으면서) 승패를 따지지 않는 게 좋다. 조급한 태도로 따지는 습관이 들면 ‘자기 자신’을 돌파할 수 없다.”
문용직 객원기자
스웨 9단=1991년 허난(河南)성 뤄양(洛陽) 출생. 2003년 입단. 2009년 신인왕전 우승. 2013년 창기배·LG배 세계대회 우승. 박정환 9단과 세계 1위를 다투고 있다. 배태일(한국기원 공식 랭킹시스템 창안자) 산정 비공식 세계랭킹을 보면 올 1월엔 스웨가, 7월엔 박 9단이 1위였다
우칭위안지난 100년 현대바둑을 이끈 단어가 있다. 바로 ‘조화(調和)’다. 바둑천재 우칭위안이 창안한 철학이다. 그 파급은 컸다. 조화라는 개념에서 세력과 실리가 균형을 잡았다. 두터움과 엷음이 비로소 깊이 이해됐다. 영향은 반상에만 그치지 않았다. 많은 기사가 승부 이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봤다.
기사들은 한마디 경구(警句)를 좌우명으로 삼곤 한다. 경구는 바둑을 이끄는 힘이다. 예로 다카가와 가쿠(高川格·1915~86) 9단은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을 즐겨 휘호했다. 그의 기풍은 말 그대로 유장(悠長)했고 본인방 9연패 위업을 쌓았다.
후지사와 슈코(藤澤秀行·1925~2009) 9단은 단 한 음절 ‘뢰(磊·돌무더기가 밀어닥치는 형상)’를 강조했다. 그의 기풍은 글자 그대로 두터웠고 스케일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성(誠·마음을 다함)을 즐겨 쓰는 이창호(39) 9단은 누구보다도 반상과 하나가 됐다.
평범한 말이라도 큰 승부사가 말하면 울림은 다르다. 조훈현(61) 9단은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게 승부”라고 했다. 평범하지만 깊은 승부 철학이었다. 많은 기사가 동감을 표시했고 위안을 얻었다. 때로는 파격도 있었다. 서봉수(61) 9단은 젊은 시절 바둑이 뭐냐고 질문 받았을 때 “나무 위에 돌 놓는 행위”라고 했다.
프로의 반상 철학엔 딜레마도 있다. 이광구(58) 바둑평론가는 “마음에 경구를 가지면 그 경구가 자충수(自充手·스스로를 얽어매는 수)가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며 “하지만 경구가 하나도 없다면, 지향점이 없기에 승부사로서는 의지가 부족해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문용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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