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교에 채 입학하기 전이다.
난 그때 차범근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잘 몰랐다.
어쩌다가 보는 대표팀의 경기에서 무지하게 큰 등치의 선수가 옆줄을 질풍처럼 치고 달리는 장면을 보며 "와~" 라고만 했었다.
그 선수가 차범근이었다. 그 선수는 우리또래 모든 아이들의 우상이었다.
공하나면 하루종일 놀수있는 운동이 축구이다보니 시골 촌동네 아이들에게도 차범근은 영웅이었다.
당시 동네에서 같이 축구를 하던 나보다 한두살 나이가 많던 형들이 있었다.
그 형들은 언제나 축구시합을 하기전에 학교 운동장을 맨발로 한바퀴씩 뛰었다.
그 이유를 그 형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차범근이 '맨발의 명수'라고... ㅡㅡㅋ
그래서 우리도 맨발로 뛰는 연습을 해야 그런 훌륭한 선수가 될수 있다고... ㅡㅡㅋ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에서 학교운동장에 잔디깔린 운동장이 있던가? 거의 자갈밭이다.
아무 것도 몰랐던 나는 형들을 따라 해보려고 했지만 발바닥이 너무 아파 반바퀴도 못돌았다.
그 형들은 아무리 발바닥이 아파도 한바퀴는 꼭 돌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우리보다 형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키려고 했던것같다.
난 생각했다... 아... 저 형들은 차범근 같은 훌륭한 선수가 되겠구나... ㅡㅡㅋ
나중에 알고보니 당시 차범근의 별명은 '맨발'이 아닌 '왼발'의 명수였던 것이다.
초딩 1-2 학년이던 형들에겐 '왼발'이 '맨발'로 들렸던가 보다.
왼발을 맨발로 알고 맨발로 뛰었다는 얘길 들으신 부모님은 정말 뒤로 넘어지실 정도로 웃으셨던 기억이 난다... ㅡㅡㅋ
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노장이던 차범근을 대표로 뽑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반대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래도 차범근 만한 실력과 경험을 갖춘 선수가 없었다.
상대는 불가리아. 이길만 하다고 언론에서는 떠들고 있었고 우리도 또한 그렇게 믿었다.
첫골을 먹고 김종부의 만회골로 동점 상황.
경기는 끝나가고 있었다.
당시 체력에서 열세를 보이던 한국팀은 후반에 전원 수비에 차범근 만이 전방에서 공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지 기억은 안나지만 공을 뺏자마자 앞으로 냅다 질러 버린다.
중앙선 근처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던 차범근은 혼신의 힘을 다해 전력질주를 한다.
불가리아는 전원공격을 하고 있었기에 차범근을 따라붙은 수비수는 단 한명.
공만 잡는다면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이 될수 있었다.
하지만 빗속에 치러진 경기 후미에 노장은 더이상 공을 따라갈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한동안을 전력질주를 하던 차범근은 넘어질듯하다 공을 포기하고 제자리에 서고 만다.
그때 화면에 비친 차범근의 얼굴은 한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공을 따라가지 못한 자신이 미웠을지도 모른다...
그 거친 독일에서 수비수 한두명쯤은 가뿐히 제치고 돌파했던 갈색폭격기가 그 공하나를 따라가지 못하다니... 콧등이 시큰하고 눈물이 났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어느때보다 16강 가능성이 높다고 떠들던 한국이 멕시코에 1-3, 네덜란드에 0-5로 박살이났다.
한국대표 감독, 지금까지 최고의 감독이라고 부추기던 언론들이 하루아침에 적으로 돌변했다.
선수기용이 잘못됐네, 지도력이 문제가 있었네... 정말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회기간중 경질과 소환...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축구를 잘했기에...
차감독이 들어오는 공항에서 한 방송사의 풋내기 기자가 먼 햇소리를 한것같다.
차 감독은 먼말을 하려다 꾹눌러참고 그 기자를 한동안 쏘아봤다.
그리고는 이내 '난 내 할일을 했을뿐...' 이라며 영웅은 고개를 숙였다.
차 감독의 눈빛에서는 '니가 축구를 얼마나 알아?'라고 말을 하는것 같았다...
난 차라리 차감독이 그 기자 멱살을 잡고 그 말을 해주길 바랬다.
2002 한국 월드컵.
차범근의 아들이 선수로 뛰고있다.
해설가로 변신한 영웅은 아들이 나오면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우리도 손에 땀이나며 경기를 보는데 아들이 뛰는 경기를 보는 아버지야 오죽할까...
그는 어느새 자칫 자신의 이름으로 인해 아들의 축구인생에 누가 될까 걱정하는 아버지가 되어있다.
지금의 차두리를 보면 한참때의 아버지를 너무도 빼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빠른 스피드며, 굵은 다리며, 넓은 어깨며... 차두리의 체격조건을 보면 정말 축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요즘 차두리에 관해 많은 논란이 있는것 같다.
하지만 너무 현재의 성적만을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개인적으로 현재 우리 대표팀중에 대성할 선수로 차두리를 뽑고싶다.
첫째, 한국축구를 단시간에 이렇게까지 변화시킨 히딩크의 눈을 의심하지 않는다.
둘째, 뛰어난 신체조건.
셋째, 피는 못속일것이다...
차두리가 아버지가 했던것만큼 유럽에서 날개를 활짝 펼날을 기대해 본다.
-----------------------
전 차두리 믿어요^-^
꼭 훌륭한 선수 될꺼라고..
카페 게시글
유쾌방
차범근과 차두리
『초코파이情』
추천 0
조회 1,632
02.06.13 10:27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