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2월에 발행한 중국의 바둑잡지 [위기천지(圍棋天地)] 3~4월 통권호는 지난해 세계대회를 우승한 6명을 '신육초(新六超)'란 제목으로 한권을 통째 특집기사로 꾸몄다. 2014년은 퉈자시 9단까지 가세(LG배 우승)하여 중국은 7명의 세계챔피언을 동시에 보유하게 됐다. |
'식당쌀밥맛죽'은 '십년대계'의 결실
중국은 지난 세기 80년대 일본바둑의 초일류고수 6명을 '육초(六超)'라 통칭했다. 조치훈, 고바야시 고이치, 다케미야 마사키, 가토 마사오, 오다케 히데오, 린하이펑이 바로 이들이 말한 '육초'. 지난해 중국의 6명이 세계대회를 휩쓸자 열광한 중국언론은 '신육초(新六超)'가 등장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식당쌀밥맛죽(食堂米饭陈粥)'이란 용어도 이즈음 나왔다. '食堂米饭陈粥'를 중국어로 발음하면 '스탕미판천저우'. 2013년 중국의 세계대회 우승자 스웨, 탕웨이싱, 미위팅, 판팅위, 천야오예, 저우루이양의 앞 자를 따서 재치있게 조합했다. 중국의 한 누리꾼이 착상한 이 문구는 이제 중국신문 바둑란에서도 가끔 볼 수 있다.
지난해 삼성화재배에서 탕웨이싱이 이세돌을 꺾고 세계대회 6연승을 달성하자 중국은 '일 년에 각각 다른 여섯 사람이 우승한 기록이 무섭다. 더 무서운 건 이 여섯 중 최연장자가 24살이라는 것이다. 더더욱 무서운 건 이들과 대등한 승부를 하는 어린 기사가 중국에 최소 20명은 된다는 사실이다.'라며 신육초와 함께 중국바둑의 성장을 과시했다.
중국바둑은 어떻게 이토록 무섭게(?) 또 빠르게 성장했을까? 중국기원 지도부는 바로 갑조리그를 주축으로 한 중국리그가 그 성장동력이었다고 여긴다. 실제로 중국리그는 지난 15년 동안 중국바둑 스타 탄생의 산실이었다. 이젠 갑ㆍ을ㆍ병조로 세분화되어 젊은 유망주들이 수준에 맞게 참가해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키울 수 있다. 중국대륙을 대표하는 각 성이나 대도시를 연고지로 했기에 지역 기업이 아끼지 않고 팀을 지원한다. 중국기원의 바둑 '십년대계(十年大計)'는 바로 갑조리그였다.
지난 4월 25일 2014 갑조리그 개막식이 중국기원에서 열렸다. 이날 개막식에서 류스밍 원장은 "갑조리그는 매년 빠르게 발전해왔다. 최근 중국기사들은 연이어 세계대회를 휩쓸었다. 이런 성적은 갑조리그의 기틀 위에 세워진 것이다."라면서 "더 나아가 새로운 번영의 역사를 쓰려면 갑조리그도 변화가 필요하다."라면서 개혁의사까지 밝혔다.
▲ 2014 갑조리그 개막식 중국바둑의 성장 이끈 '갑조키드'
현대중국바둑 역사는 두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중국바둑계가 황무지와 같았던 시절엔 중일 슈퍼대항전(1984년~1996년)이 1차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총 11번의 대결에서 중국은 당시 바둑최강국으로 군림하던 일본팀에게 7승 4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특히 최초 3년은 '철의 수문장' 녜웨이핑의 활약이 대단했고, 즉각 대륙의 영웅으로 부상했다. 중국기원은 이 때 생긴 바둑인구가 2천만 명에 달한다고 추산한다.
순항하던 '중국 바둑호'는 90년대 한국이라는 암초에 부딪혔다. 팬들의 기대는 늘어났는데 세계대회 성적은 참담했다. 물론 당시는 중국 일류기사의 수가 부족하기도 했지만, 마침 불세출의 천재 이창호 9단이 세계를 주름잡던 시절인 탓도 있다.
매년 세계대회 우승에 아쉽게(?) 실패하면서 각종 매체에서 비판이 이어졌다. 곤혹스러웠던 중국기원은 30여 명의 기자를 불러 대책 마련을 위해 '중국바둑의 수준 향상'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가질 정도였다. 이런 고심속에 갑조리그가 탄생했다. 1회 대회는 1999년 열렸다.
한국은 88년 조훈현 9단의 1회 응창기배 우승과 이창호 9단의 세계 제패를 배경으로 어린 천재들이 속속 바둑계로 들어왔다. 이런 흐름에서 이세돌이란 절정고수도 등장하며 한국바둑은 90년대에 이어 2000년을 넘어서도 탄탄대로를 걸었다.
이창호에 이어 '이창호 키드'에게도 뜨거운 맛을 보던 중국기원엔 이 기간이 어둠의 터널과 같았겠지만, 구리, 뤄시허, 창하오 등이 간간히 실적(?)을 올리며 갑조리그를 꾸준히 가꿔나갔다.
초창기 갑조리그는 한국기사에게도 인기였다. 2001년부터 용병제를 도입한 갑조리그에는 박승철(구이저우), 목진석(충칭), 김영환(푸첸)이 터를 닦았고, 2002년 조훈현(선전), 이창호(저장) 사제와 유창혁, 서봉수 등 한국바둑의 스타가 총 출동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세돌(구이저우)은 2004년부터 출전했다. 이런 한국의 최강자와 손을 섞던 중국의 신예들은 자신감을 배양하며 급성장했고, 중국바둑의 2차 성장을 주도했다. 갑조리그가 키운 스웨, 미위팅, 천야오예 등은 이미 세계정상에 올라 효과를 입증했다.
최근 LG배 세계기왕전 통합예선을 최연소(2000년생)로 통과한 '리웨이칭'이라는 소년기사가 있다. 본선 진출 인터뷰에서 존경하는 기사를 묻는 의례적인 질문을 던졌는데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한국에는 존경하는 기사가 없다는 것이다. 리창하오(이창호), 리스스(이세돌)에도 반응이 없었고, 심지어 우칭위안(오청원)이라는 미끼를 던져도 순진해 보이는 웃음과 함께 고개만 저었다. 이유를 물으니 "잘 모른다."라고 말한다. 쫓아가고 싶은 목표라고 묻자 간신히 '스웨'라고 답했다. 이제 중국 신예들은 이창호, 이세돌을 바라보지 않는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창호, 이세돌조차 잘 모른다.
▲ 리웨이칭 초단. 중국 국가소년대에서 유일한 2000년생 기사다. LG배 통합예선 결승에선 한태희를 이겨 본선 최연소 진출자가 되었다. 올해 상해건교학원팀 4장으로 2014 을조리그에 출전했었다. 달라지는 분위기
최근 2년 동안 중국기사의 세계대회 우승이 이어지며 갑조리그에서 한국용병을 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 일단 중국기사와 다른 보수 및 계약조건이 문제였다. 사실 이런 불만은 이전부터 있었으나 최근 들어 아주 구체화된 양상이다.
2013년 녜웨이핑 9단이 자신의 블러그에 갑조리그 용병의 보수문제를 언급한 적이 있다. 녜웨이핑은 "어떤 한국 용병은 중국리그에서 져도 2만 위안(한화 약 330만 원)을 받는다. 한국바둑리그 승자 대국료가 겨우 1만 2천 위안 정도. 이건 무슨 일인가?(有些韩国外援在中国联赛输棋也要2万元,在韩国联赛赢了才1.2万,这算什么事?)"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중국 시나바둑에선 녜웨이핑의 논평을 보도하며 '사실 녜 9단이 말한 용병은 박영훈 9단이다. 당시 광저우팀은 을조에서 갑조리그로 올라온 신생팀으로 국내 일류기사를 수급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박영훈의 가혹한 조건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无奈只能答应朴永训“苛刻”的条件)'라고 썼다. 또 광저우 일보는 이에 대해 "현재 갑조리그 체제는 구속이 너무 심하다. 기사들의 자유로운 팀 이동이 어려워 전체 시장의 발전을 저해하고, 이것이 한국용병에 대한 보수의 상승을 주도한다."라고 비평했다.
최근 류스밍 중국기원 원장은 "활기넘치는 리그를 위해서 기사들의 팀변경에 대한 제도를 개혁하겠다. 또 잠시 외국 용병의 중국리그 진입을 막아 국내 기사와 그들의 보수가 비슷해지도록 유도하겠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에 장단을 맞춘 중국언론은 '한국은 최근의 아픔을 되새기며 바뀌어나가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한국은 단 하나의 세계대회 우승이 없었다. 그래서 올해부터 한국바둑리그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팀이 선수 2명은 묶어 둘 수 있는 규정을 풀었다. 제한시간도 크게 늘이고, 승자대국료도 획기적으로 올렸다. 중국기원이 가만히 앉아 그들의 성장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라면서 류스밍의 갑조리그 개혁의견을 지지했다. 더 나아가 갑조리그의 확대와 발전을 위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모아 토론과 연구를 거듭할 것까지 촉구했다.
과연 '갑조개혁'이 쉽게 이뤄질지는 이후 추이를 지켜봐야하지만, 이런 말이 나오는 자체가 중국에서 한국바둑의 위상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방증이다.
2014 개막전은 '5월 9일'
일단 올해 열리는 2014 갑조리그는 변함이 없다. 한국기사들은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조건으로 각자의 소속팀과 계약을 맺었다. 개막전인 1라운드는 5월 9일 열리고, 한 달에 3~5라운드를 벌여 11월 25일까지 6개월(8월은 휴식) 동안 총 22라운드가 펼쳐진다. 1라운드 대국장소는 베이징, 시안, 다롄, 청두, 안순(구이저우성), 샤오산(항저우)이다.
한국기사는 8명이 나간다. 참가기사는 박정환, 김지석, 이세돌, 최철한, 조한승, 나현, 신진서, 이동훈이다. 숫자는 지난해와 같지만, 박영훈, 변상일이 빠지고 신진서, 이동훈이 들어간 구성이다. 작년 갑조리그 멤버였던 박영훈과 변상일은 올해 을조리그에서 활약했다.
팀별로 보면 나현이 항저우에서 상하이팀으로 이동했고, 조한승은 랴오닝에서 후베이팀으로 옮겼다. 박정환(다롄), 김지석(저장), 이세돌(광시), 최철한(시안)은 작년과 같다. 신진서는 작년 변상일이 활약했던 산둥팀으로, 이동훈은 새로 갑조리그에 진출한 청두팀에 자리를 잡았다. 한국용병을 쓰지 않는 팀은 충칭, 구이저우, 베이징, 랴오닝 4개 팀으로 주로 인적자원이 풍부한 대도시에 연고를 둔 팀이다.
갑조리그가 개막식을 하고, 각 팀이 선수를 발표하자 이동훈이 속한 청두팀이 중국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청두싱예은행(成都兴业银行)이 후원하는 청두팀 구성원은 구링이(91), 당이페이(94), 마오루이룽(90), 마이차오(98), 천위눙(98), 이동훈(98)으로 모두 90년생 기사. 갑조리그 역사상 가장 젊은(아니면 어린) 팀이 만들어진 것이다. 만 23세의 구링이가 팀에서 가장 연장자다.
청두팀 관계자는 " 이들은 모두 천부적인 자질을 가졌고, 노력도 쉬지 않는 기사다. 갑조리그에서 단련해 빠른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올해 팀의 목표는 갑조리그를 유지뿐이다. 이 목표만 이룬다면 내년은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연소팀 구성이 을조추락보다 인재양성을 중요시하는 중국적 승부근성인지, 아니면 고착화한 갑조리그의 구조적 모순에서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지켜보는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하나의 관전포인트로 삼으면 그만이다.
바둑팬들의 온갖 비판에 직면했을 때 중국기원은 갑조리그를 만들었다. 한국기원도 최근 바둑리그 제도를 정비하고, 국가대표 상비군체제를 새로이 했다. 연구생제도가 대대적인 개편이 있을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이런 변화를 바탕으로 다시 한국바둑의 위상이 높아졌으면 한다. 그래서 몇 년 후의 한국 바둑뉴스에서도 '스탕미판천저우'처럼 자신감 넘치고 재미있는 조어를 볼 수 있길 기대한다.
▲ 작년 2013 갑조리그 마지막 라운드, 최철한과 스웨의 대국장면. 최철한(시안팀)은 작년 갑조리그에 열 여덟번 나가 15승 3패라는 대단한 성적을 거뒀다. 전기대회는 구리가 속한 충침팀이 우승해 갑조리그 통한 9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11, 12위를 차지한 항저우, 광저우팀이 을조로 강등되었고, 올해는 청두, 허베이팀이 새로 들어왔다.
[기사참조] 중국시나바둑 http://sports.sina.com.cn/go/2014-04-26/00147136432.shtml http://sports.sina.com.cn/go/2014-04-28/05407139538.shtml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soobake
[사진협조] 시나바둑, 위기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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