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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삼 시의 창작방법 특징 / 공광규(시인)
1. 들어가는 말
김종삼(1921~1984)은 황해도 은율 출생으로, 평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동아일보 평양지국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평양 광성 보통학교와 숭실중학교를 다니다가 중퇴를 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서 도요시마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동경문화원 문학과를 다니다가 중퇴하였다. 이후 동경에서 출판배급주식회사를 다녔다. 1945년 해방직후에 귀국하여 극단 극예술협회에서 연출부 음악효과를 담당하였고, 1953년 《신세계》에 「원정」을 발표하면서 공식적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57년에는 김광림, 전봉건과 3인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자유세계사)를 출간하였고, 1968년에는 김광림, 문덕수와 『본적지』(성문각)를 출간하였다. 1969년에 『십이음계』(삼애사)를 출간하고, 1971년에 「민간인」외 2편으로 제2회 현대시학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1977년에는 두 번째 개인시집 『시인학교』(신현실사)를, 1979년에는 시선집 『북치는 소년』(민음사)를 출간하고, 1982년에는 세 번째 개인 시집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민음사)를 출간하였다. 그리고 1984년에 시선집 『평화롭게』(고려원)를 출간하였다. 1988년에 『김종삼 전집』(청하)과 1989년에 선시집 『그리운 안니 로 리』(문학과비평사)가 나왔다. 그리고 2005년에 권명옥에 의해 김종삼 작품 활동의 전모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김종삼 전집』(나남)이 출간되었다.
권명옥이 편찬한『김종삼 전집』에 의하면 김종삼은 216편의 시와 짧은 산문글 5편, 신문 인터뷰 기사 4편을 남겼다. 최근 김화순이 펴낸 『김종삼 연구』(월인, 2011)에 의하며 김종삼에 대한 학위논문은 64편이고, 그중 석사학위 논문은 55편, 박사학위 논문은 9편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박사학위 논문 중 김종삼 단독 논문은 김화순을 포함하여 5편이다.
그는 「묵화」「민간인」「시인학교」「스와니강이랑 요단강이랑」등 명편을 남겼으나, 다른 시와는 편차가 커 보인다. 그럼에도 그의 시에 관심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의 시에 어떤 비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비밀이 무엇일까? 그래서 이 글의 목적은 김종삼 시의 의미를 파악하고 난해성을 해명하는 것보다는, 그가 어떤 방식으로 시를 써서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개성을 획득하고 있는지 창작방법 측면에서 살펴보는데 주안점을 두고자 한다.
2. 인유 : 예술가들의 인명과 작품
인유는 오래된 전통적 시 창작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김종삼도 이러한 시 창작방법을 주요한 방식으로 사용한다. 김종삼은“「고향」이란 글은 죽은 파운드랄까, 포레의 <레퀴엠>에서 얻은 넋두리이다”『(김종삼전집』302쪽)라고 하였듯이 주로 예술가의 인명이나 음악에서 창작 발상을 얻었다. 그의 시에 예술가들의 인명과 지명, 음악과 미술용어 등이 자주 출현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물론 김종삼이 좋아하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인명과 지명과 용어들일 것이다. 김종삼은《문학사상》 1973년 3월호에서 아래와 같이 쓴 적이 있다.
내가 시작(詩作)에 임할 때 뮤즈 구실을 해주는 데 네 요소가 있다.
명곡 <목신의 오후>의 작사자인 스테판 말라르메의 준엄한 채찍질, 화가 반 고흐의 광란어린 열정, 블란서의 건달 장 폴 사르트르의 풍자와 아이러니컬한 요설, 프랑스 악단의 세자르 프랑크의 고전적 체취-이들이 곧 나를 도취시키고, 고무하고, 채찍질하고, 시를 사랑하게하고, 쓰게 하는 힘이다『.( 김종삼전집』303쪽)
이처럼 김종삼의 시 창작에서 서정적 충동을 불러온 요체가 예술가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시에도 이들의 인명이 직접 인유되는데, 인유의 방식은 인유된 예술가를 통해 시 의미 파악의 풍부성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독자가 어휘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을 경우에는 의미파악이 어렵다는 한계를 갖는다. 특히 인유를 과대하게 활용하는 김종삼의 시에서는 더 그러하며, 이것이 그의 시의 난해성을 부추기는 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의 인유에는 특히 인명이 많다. 「왕십리」에서는“하루는/ 도드라진 전차길 옆으로 챠리 채플린씨와/ 나운규씨의 마라톤이 다가오고 있었다./ 김소월씨도 나와서 구경하고 있었다.”라며 이미 죽은 과거의 영화배우와 시인의 이름을 밀도 있게 인유한다. 「장편3」에서는 “작고한 심우명(心友名)/ 전봉래 시/ 김수영 시/ 임긍재 문학평론가/ 정규화가”라고 인유한다. 「꿈속의 나라」에서는 나도향, 한하운, 지그문트 프로이드, 구스타프 말러가 인유된다. 인명에는 외국인이나 한국인을 가리지 않는다.
공고
오늘 강사진
음악 부문
모리스 라벨
미술 부문
폴 세잔느
시 부문
에즈라 파운드
모두
결강.
김관식, 쌍놈의 새끼들이라고 소리지름. 지참한 막걸리 먹음
교실 내에 두터운 먼지가 다정스러움
김소월
김수영 휴학계
전봉래
김종삼 한 귀퉁이에 서서 조심스럽게 소주를 나눔. 블란덴브 르그 협주곡 제 5번을 기다리고 있음
교사.
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에 있음.
- 「시인학교」 전문
위 시는 시집 『시인학교』(1977)에 실린 것으로 김종삼의 시 가운데 인명이 가장 많이 쓰인 작품이다. 공고문 형태의 시가 과연 모더니스트답다. 여기에 올라온 ‘시인학교’ 강사진은 김종삼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최고의 예술가들일 것이다. 창작자는 이미 죽은 예술가들을 결강과 휴학계 처리를 해놓고, 살아있는 전봉래와 김종삼 자신을 현재 속에 있게 하는 기지를 보이고 있다. 시에 인용한 “모리스 라벨”은 대표적인 프랑스의 음악가로 관현악곡인 <볼레로>로 유명하다. 지금도 인터넷 동영상 검색에서 감상이 가능하다. 김종삼은 1955년 국방부 정훈국 방송과 음악담당으로 근무를 하고 1963~76년까지 동아방송에서 음악 담당프로를 할 정도로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시인이다. 또 김종삼은 “술과 음악”에 탐닉한 시인이었다. 그리고 음악은 서양 고전음악듣기였다. 김종삼은 일간스포츠 1979년 9월 27일 인터뷰에서 “나는 모짜르트와 바흐를, 그리고 드뷔시와 구스타프 말러의 곡을 좋아해요. 음악이 없으면 그나마 글 한 줄 못 썼을 겁니다.”『( 김종삼전집』312쪽)라고 하였다.
인유된 “폴 세잔느” 역시 프랑스의 대표적 미술가로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가 없었으면 피카소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현대 미술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화가이다. “에즈라 파운드”는 영국의 시인이다. 이러한 외국의 예술가들과 국내의 김관식, 김소월, 김수영, 전봉래와 창작자 자신의 이름인 김종삼까지 인유하고 있다. 인유한 “블란덴브르그 협주곡 제5번” 역시 바흐의 곡이다. 인유는 중요한 시적 장치로 시적의미를 더 풍부하게 한다. “ 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 역시 성경속의 지명으로 현실에는 없는 곳이다. 시의 제목인 ‘시인학교’ 역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 인유된 인물들은 김종삼이 나름대로 좋아하거나 지향했던, 아니면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사람일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전문
위 시는 서울의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그리고 남대문 시장 등 구체적 지명을 인유한다. 이 시에는 김종삼의 자의식이 깊숙이 투영되어 있다. 자신이 시인이면서도 시인이 못된다고 한다. 그는 “나는 시인이라고 자처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김종삼전집』303쪽)고 하였고, “나는 시에 대해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애착도 느끼지 않는다. 다만 창피 안 당할 정도로 써 갈길 뿐이다”『(김종삼 전집』328쪽)라고 고백을 했다. 이 시는 실제 구체적 경험을 쓴 것은 아닐 것이다. 시에 인유된 장소를 다녔던 작은 경험에다가 자신이 진정한 시인인가를 묻는 시에 대한 근원적 고민을 자문자답하는 형식으로 쓴 것으로 추정된다. 시를 내세워 뽐내면서 세상살이에 불성실한 시인보다는“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오히려 시인이라고 한다. 김종삼은《문학사상》1973년 3월호에 “시인들의 참 자세는 남대문 시장에서 포목장사를 하며라도 거짓부렁 없이 물건을 팔 수 있어야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공연히 시인을 자처하는 자들이 영탄조의 노래를 읊조리거나, 자기 과장의 목소리로 수다를 떠는 것을 보면 메슥메슥해서 견디기 어렵다.”고 하였다.
김종삼은 시 「올훼」에서 “나는 죽어서도/ 나의 직업은 시가 못 된다”고 하였다. 그가 시에서 지명을 인유하는 시는「장편」「스와니강이랑 요단강이랑」「고향」「아우슈뷔츠1」「아우슈뷔츠2」「두꺼비의 역사轢死」「샤이한」「스와니강」 등 여러 편의 시가 있다.
3. 절제된 묘사와 간명한 서술
김종삼의 시 창작 방법 가운데 묘사도 특이한 측면을 차지한다. 그는 “나는 자연을 모사(模寫)해 보려는 낡은 사진사들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그래도 시랍시고 몇 줄의 글을 써왔던 경력을 몹시 부끄럽게 생각하고는 있다 뿐이지”『(김종삼전집』296쪽)라고 하였듯이 시 창작에서 대상의 묘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의 시에 묘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창작자 자신의 체험으로 상정되는 일화의 기억을 고백적으로 단순 서술한 시들도 보인다. 그러나 대상을 형상할 때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감정을 절제한 객관적 묘사를 시도할 때 높은 시적 성취를 이룬다. 이를테면 그의 명작 「묵화」는 절제된 묘사와 회화적 심상의 절창이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묵화」 전문
제목처럼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하게 하는 시이다. 소는 농경시대에 반드시 있어야 할 동력이었다. 논밭을 갈고 물건을 이동하는데 소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를 신성시하였고, 나라에서는 소를 함부로 잡지 못하도록 법령으로 정하였다.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시킨 소에게 물을 먹이는 할머니의 모습이 영상처럼 선명하다. 인정이 많은 시골 할머니는 물을 먹고 있는 소의 목덜미에 손을 얹고 있다. 하루 동안 식구들을 위해 일 하느라고 수고했다는 노고를 치하하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물 먹는 소의 목덜미에 손을“얹고 있다.”가 아니고 “얹혀졌다”로 표현을 한다. 종결어미의 사동과 피동의 차이는 대상과 거리와 정동을 규정하는데 막중한 역할을 한다. “얹고 있다”는 표현은 할머니가 현재 행동을 하고 있어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 동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얹혀있다”는 그 반대의 경우가 된다. 거리감이 느껴지고 행동을 멈춘 정적 풍경이다. 전자가 활동사진이라면 후자는 그림이다. 소와 할머니는 “서로 발잔등이 부”을 정도로 시골에서 하루 종일 열심히 노동을 하고 지내는 일체이다.
1947년 봄
심야
황해도 해주의 앞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트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므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水深)을 모른다
- 「민간인」 전문
이 시는 간명한 서술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 1977년에 발표된 이 시는 간명한 문장으로 상황의 서술을 통해 해방 후 분단 상황의 참혹함을 과거형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1연에서는 구체적 시간과 장소를 서술어미를 생략한 채 간단하게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조사 ‘의’, ‘ 과’, ‘의’3개를 빼고는 모두 명사이다. 극단적 감정의 절제를 보여준다. 1연이 상황을 이야기한다면, 2연에서는 동작이 시작된다. 울음 때문에 국경을 지키는 경비병에게 들킬까봐 우는 어린아이를 물속에 던지면서까지 이북에서 이남으로 조심조심 월남을 하는 참혹한 광경이 그려진다. 자식을 물속에 던진 부모의 수심은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깊이를 모를 것은 당연하다.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 「어부」 전문
인생을 작은 배에 비유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 시를 읽는 순간 독자는 어항에 매어 있는 출렁거리는 배의 심상을 쉽게 떠올린다. 대상인 매어있는 배의 특성을 단순 묘사한 작품이어서 독자가 쉽게 경험을 환기할 수 있다. 동시에 작품은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작은 고깃배처럼 인생은 항상 출렁거리고, 때로는 풍랑을 만나 뒤집힐 때도 있다. 그러면서도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인생이다. 거기다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처럼 멀리 나가서 물고기를 잡아서 가지고 오지만 결국은 물고기의 뼈만 남는 허무한 것이 인생인 것이다. 세상의 풍랑과 싸우며 헤쳐 나오며 명예나 돈이나 지위 등 인생의 목적을 이룬 것 같지만 결국은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인생무상의 깨달음을 형상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은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되는,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는 의지가 이 시에 담겨있다. 출렁임, 풍랑, 화사함, 기쁨이라는 인생의 여러 면모를 어항에 묶여 있는 작은 고깃배의 특성을 묘사하면서 비유하고 있다.
헬리콥터가 지나자
밭 이랑이랑
들꽃들이랑
하늬바람을 일으킨다
상쾌하다
이곳도 전쟁이 스치어 갔으리라.
- 「서시」 전문
맨 마지막 행에 창작자의 전쟁 체험이 발현되는“이곳도 전쟁이 스치어 갔으리라”가 느닷없이 튀어나오기는 하지만, 헬리콥터가 지나간 뒤의 풍경을 단순히 묘사하고 있다. 풍경의 단순하고 객관적인 묘사가 이어지다가 이런 모양을 “상쾌하다”고 감정을 개입시킨다. 마지막 문장에서는 “갔으리라”라는 불확정 추측의 서술형 어미를 통해 창작자의 관념을 개입시킨다. 마지막 행의 비약 때문일 수도 있다. 시행과 시행 사이의 비약의 공간을 독자는 상상력으로 채워 넣으려고 애쓰게 되면서 시가 독자의 눈에서 오래 머물게 된다.
4. 반복 : 의미 강조와 음율 조성
김종삼의 주된 창작방법 가운데 하나는 반복이다. 반복에는 어휘의 반복, 언술구조의 반복, 주제의 반복 등이 있을 것이다. 반복은 의미의 강조와 동시에 음률을 조성한다. 김종삼의 시에서 반복의 빈번한 사용은 그가 좋아했던 음악에서 배워온 것일 수도 있다. 반복이 주된 요소인 음악의 곡이야말로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 아닐까? 내용이 잡히지 않는, 사물로 감각되는 것이 아닌 무형의 음성으로만 감각 되는,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 「북치는소년」 전문
‘~처럼’의 언술구조가 3차례 반복된다. 이 시는 “동일한 표층 형식에 다른 의미 내용을 채워서 사용하는”(김화순,『 김종삼연구』41쪽) 구문의 반복을 사용한다. 시의 내용을 명확하게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내용이 없지만 아름다운 음악과 같다. 완전한 서사가 잡히지 않는 이 시를 읽으면 겨울 연말 상점에 진열된 천진한 서양나라의 북치는 소년 인형이 떠오르다. 아무런 목적 없이 북을 쳐대는 소년인 형의 순수한 모습은 “내용 없는 아름다움”그 자체일 것이다. 그리고 전후의 가난한 한국의 아이들이 받았을 서양에서 온 낯설고 아름다운 그림의 크리스마스카드가 떠오른다. 어쩌면 이 크리스마스카드에 북치는 소년의 모습이 그려져 있을 지도 모른다. 또 어린 흰 양들의 등에 반짝이는 진눈깨비도 아름답겠다는 생각이 든다. 독자는 독자의 경험 범위 안에서 이 시의 내용을 유추할 것이다.
그해엔 눈이 많이 나리었다. 나이 어린
소년은 초가집에 살고 있었다.
스와니강이랑 요단강이랑 어디메 있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었다.
눈이 많이 나려 쌓이었다.
바람이 일면 심심하여지면 먼 고장만을
생각하게 되었던 눈더미 눈더미 앞으로
한사람이 그림처럼 앞질러 갔다.
- 「스와니강이랑 요단강이랑」 전문
인용한 시에서는 제목의 “스와니강이랑 요단강이랑”도 강과 어미의 반복이고, “눈이 많이 나리었다”와 “눈이 많이 쌓이었다”의 비슷한 문장 반복, “바람이 일면 심심하여지면”의 절의 반복, “눈더미 눈더미”의 어휘 반복도 있다. “스와니강”은 포스터가 작곡한 노래이며, 미국 플로리다주를 거쳐 멕시코 만으로 흘러들어가는 강으로 김종삼의 다른 시에서도 반복하여 등장한다. 요단강은 성경속의 강인데, 다른 시에서도 반복된다. 스와니강은 주인공이 고향에 부모형제를 두고 그리워하면서 정처 없이 떠돈다는 내용의 노래이다. 어려서 고향인 북한을 떠나 일본과 남한에서 떠도는 김종삼의 유랑의식이 시에 투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간스포츠 1979년 9월27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어린 날의 추억에 차 있는 노래가 많다는 내용의 질문을 하자, 김종삼은 “사실 그래요. 선교사가 살던 지붕이 뾰족한 벽돌집이나 내가 너무 좋아한 스티븐 포스터의 가락들이 그대로 드러나죠. 포스터의 노래는 작사는 조금 유치하지만 곡은 참으로 좋지 않아요?”『(김종삼전집』311쪽)라고 한다. 위에 언급한 시 이외에도「미사에 참석한 이중섭씨」「나의 본적」등의 많은 시에서도 구문의 반복이 많이 나타난다.
바로크 음악을 들을 때마다
팔레스트리나 들을 때마다
그 시대 풍경이 다가올 때마다
맑은 물가 다가올 때마다
나 지은 죄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
- 「라산스카」 전문
이 시는 전반 4행에서 “~때마다”의 비슷한 언술구조를 4회나 반복하고 있다. 이 가운데 “들을 때마다”와 “다가올 때마다”를 각 2회씩 반복한다. 바로크 음악은 17세기 초에서 시작하여 18세기 중반 바흐의 죽음으로 끝나는 음악의 시대이고, 팔레스트리나는 16세기 미사곡을 많이 작곡한 르네상스시대의 이탈리아 음악가이다. 이런 음악을 통하여 화자는“그 시대 풍경”을 상상하기도 하고, 음악에 의하여 환기되는 “맑은 물가”를 상상한다. 그럴 때마다 화자는 자신이 “지은 죄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죽어서까지“영혼이/ 없”다는 참회를 한다. 라산스카는 뉴욕출신의 소프라노 가수 힐 더 라산스카라고 한다. 라산스카는‘앤니 로 니’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이고, 김종삼은 시의 제목으로 「앤니 로 니」와 「그리운 앤니 로 니」를 썼다. 두 시 주제가 모두 아름다운 자연과 어울리는 사람이 사는 장소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김종삼은 이 가수를 편애하였는지 같은 제목의 시를 6편이나 남긴다.
“미구에 이른/ 아침// 하늘을/ 파헤치는/ 스콥소리”「( 라산스카」전문,『 북치는 소년』, 민음사, 1979 )
“미구에 이른 아침/ 하늘을 파헤치는/ 스콥 소리// 하늘 속/ 맑은/ 변두리/ 새 소리 하나/ 물방울 소리 하나// 마음 한 줄기 비추이는/ 라산스카”「( 라산스카」전문,『 김종삼 전집』, 나남, 1991)
“녹이 슬었던/ 두꺼운 철문 안에서// 높은 석산에서 퍼부어져 내렸던/ 올갠 속에서// 거기서 준/ 신발을 얻어 끌고서// 라산스카/ 늦가을이면 광채 속에서/ 기어가는 벌레를 보다가// 라산스카/ 오래되어서 쓰러져가지만/ 세모진 벽돌집 뜰이어서”「(라산스카」전문)
“하늘 속 맑은/ 변두리/ 새 소리 하나/ 물방울 소리 하나/ 마음 한 줄기 비추이는/ 라산스카”「(라산스카」전문)
“집이라곤 비인 오두막 하나밖에 없는/ 초목의 나라// 새로 낳은/ 한 줄기의 거미줄/ 수변(水邊)의/ 라산스카// 라산스카/ 인간되었던 모진 시련 모든 추함 다 겪고서/ 작대기를 짚고서”「(라산스카」전문)
김종삼의 연구자 권명옥의 의견에 따르면, 김종삼은 생전에 ‘라산스카’의 말뜻 풀이를 거절했고, 시인이 꿈꾸는 내세의 어떤 천국 같은 장소를 가리킨다고 한다.『(김종삼전집』364쪽) 실제로 시를 보면 라산스카는 특정 인물인 가수가 아니라 김종삼이 죽어서 도달하고 싶은 세계로 추정된다고도 볼 수 있다.
5. 나오며
이상과 같이 김종삼의 시를 일별하여 지배적 창작방법을 분류해보면 인유와 묘사와 반복임을 알 수 있다.
음악을 애호하였던 김종삼은 음악과 미술가의 인명, 작품, 지명을 시문에 다양하게 인유한다. 김종삼의 많은 작품들이 인유에 의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 인용한 「시인학교」뿐만 아니라, 그의 시 가운데 많은 시편들이 인유를 활용하고 있다. 인유는 작품 내용의 풍부성을 실현하는데 도움을 주나 독자가 인유된 어휘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을 경우에는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갖는다.
그리고 김종삼은 절제된 묘사로 회화성을 획득하는 탁월함을 발휘하는데, 명작 「묵화」가 그것이다. 독자는 묘사된 공간을 통해서 아름다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하게 된다. 또한 단순 서술어미의 생략을 통한 간명한 서술형의 시문이 많다. 「민간인」같은 경우가 대표적인데, 1연의 경우 서술문의 극단적인 절제를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절제가 이 시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자신이 시인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그는 문장의 생략을 통해 독자의 참여를 확장시킨다. 그러나 지나친 절제와 생략은 시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
구문의 반복도 김종삼의 주된 창작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어휘의 반복, 언술 구조의 반복 등을 통하여 시의 의미를 강조하고 음률을 조성한다. 김종삼은 음악을 좋아하였고, 아마 그의 시에서 반복은 그가 음악에서 배워온 것일 수도 있다. 음악의 주된 요소가 반복을 통한 음율 조성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법은 “내용 없는 아름다움”으로 함축되는 그의 시세계와도 맞닿는다. 김종삼은 시의 어휘와 구문을 넘어 시의 제목이나 주제까지 반복하고 있다.
김종삼은《문학사상》1973년 3월호에서 “나는 살아가다가 ‘불쾌’ 해지거나 ‘노여움’을 느낄 때 바로 시를 쓰고 싶어진다.”고 했고, 자신이 시 창작을 해오면서 지니고 있는 변함없는 소신이 있는데, “시란 그것을 보는 편에서 쉽게 씌여진 듯이 쉽게 읽힐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김종삼전집』302쪽)고 하였다. 그러나 몇 편 이외에는 실제 그의 시가 쉽게 읽히는 것은 아니다. 시인의 시 창작 의도와 시 창작 실제, 그리고 시와 독자의 괴리를 김종삼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다.
■ 공광규 시인
.. 1986년《동서문학》등단. 시집 『말똥 한 덩이』 『소주병』 등.
.. 저서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연구』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등.
- 출처 : 계간 「시와 소금」 특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