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몽항쟁 선봉 ‘삼별초’ 실체 찾았다
고려시대 대몽 항쟁의 선봉에 섰던 삼별초의 실체와 당시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는 획기적인 자료가 750년 전 침몰된 보물선 유물에서 나왔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충남 태안군 마도해역 수중에서 발굴된 13세기 선박 ‘마도 3호’선에 관한 기자회견을 6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갖고 목간(木簡) 32점을 비롯해 각종 도자기와 곡물류, 사슴뿔, 장기돌 등 총 287점의 인양 유물을 공개했다.
목간 판독 결과 마도 3호선은 고려시대 몽고 침략기에 임시수도 강화도에 거주하던 권력자들에게 바치기 위해 전라도 일대에서 거둔 세공(世貢)을 싣고 여수에서 출항, 서해안을 따라 가다 태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것으로 추정됐다.
화물 수취인은 시랑(侍郞·정4품) 신윤화(辛允和)와 유승제(兪承制)로, 이 중 ‘유승제’는 성이 유씨이며 관직이 ‘승제’(정3품)라는 뜻이다. 고려사 등 문헌에는 이에 해당되는 인물이 유천우(兪千遇)밖에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윤화와 유천우가 목간에 기록된 관직을 지낸 때가 1264∼1268년이라는 점에서 마도 3호선이 침몰한 시점을 유추할 수 있다. 또 다른 수취인인 김영공(金令公)은 최씨 무인정권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은 김준(金俊)으로 드러났다.
특히 목간에서 확인된 ‘우삼번별초도령시랑(右三番別抄都領侍郞)’이라는 기록은 몽고 침략에 끝까지 저항한 기동부대 삼별초가 좌·우 각 3번(番)으로 나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첫 실물 자료라고 연구소 측은 말했다. 또한 별초의 지휘관이 종래 7∼8품 하급 무반(武班)이라고 알려졌지만 4품 장군급인 시랑이 맡았다는 사실도 새로 밝혀졌다.
길이 12m, 너비 8m, 깊이 2.5m인 마도 3호선에는 그동안 발굴된 적이 없는 배의 이물(船首)과 고물(船尾), 돛대와 이를 고정하는 구조 등이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어 고려시대 선박의 전모를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마도 3호선의 화물로는 생선뼈가 대나무 상자에 들어 있었으며 말린 홍합, 개고기 포, 전복, 젓갈 등이 항아리에 담긴 채 발견됐다. 약재용 홍합털(足絲)과 사슴뿔도 다량 나왔다. 조약돌에 장군(將軍) 차(車) 포(包) 졸(卒) 등이 새겨진 장기알도 발굴됐는데 선원들의 오락용으로 추정된다.
성낙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장은 “마도 3호선은 삼별초 등 정치·군사·경제 실상과 함께 당시 먹거리와 오락 등 일상생활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담긴 타임캡슐”이라며 “발굴조사는 10월 말까지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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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란
三星隊 라고도 하며
고려시대 까지 전해오던 황제직속의 육사와 같은 軍 교육기관이었다.
각 학년은 9천명으로 이루어진 3년제로서 20세 이상의 성인들로 3차례 선발시험(문,무,면접)을 거치며
특수전과 교육 이수 후, 전국의 초급 간부로 임용되었다.
황태자들은 물론, 서희 윤관 강감찬 최영 최민수 이성개등은 모두 삼별초 출신이다.
려몽 항쟁 7년동안 이들이 선봉대였으며 려몽 평화조약에 큰 공을 세웠다.
지금 조선국사에서는 왜곡하여 천시하는데 이성개 왕되기전에 가장 먼저없앤 기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