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라는 작품은 이렇게 시작된다.
<(전략)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매일 호숫가를 찾았다는 나르키소스. 그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결국 호수에 빠져 죽었다. 그가 죽은 자리에서 한 송이 꽃이 피어났고,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따서 수선화(나르키소스)라고 불렀다.
(중략)
나르키소스가 죽었을 때 숲의 요정 오레이아스들이 호숫가에 왔고, 그들은 호수가 쓰디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대는 왜 울고 있나요?"
오레이아스들이 물었다.
(중략)
호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는 지금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지만, 그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건 전혀 몰랐어요. 저는 그가 제 물결 위로 얼굴을 구부릴 때마다 그의 눈 속 깊은 곳에 비친 나 자신의 아름다운 영상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가 죽었으니 아, 이젠 그럴 수 없잖아요."
(후략)>
지난주 일요일 비슬산으로 대구흥사단 YKA 등산 갔을 때 이야기다.
참나뭇가지에는 새잎이 막 돋아나고 있고, 약간 촉촉한 산책로 주위 땅 위에도 새싹이 뿅뿅 솟아오르고 있었다.
대구흥사단만의 윤회악수로 상견례를 하고 나니 제법 그럴 듯한 동그라미가 만들어졌다.
제가 등산대장의 자격으로 사회를 봤다.
"잘 생기고 멋진욱이 산에 오니 만물이 예의를 갖추네요(이와 비슷한 제 자랑의 얘기. 자세히는 모름)."
보통 때처럼 제 잘났다는 특유의 최면을 걸어가면서 얘기를 시작하는데, 옆에 서 계시던 김성수 단우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한 말씀 하셨다.
김성수 단우님은 화훼사업을 하시는 분이라 평상시에도 전공을 살린 실력이 묻어나온다.
"등산대장은 나르시즘에 빠져 있는 것 같네요. 안 그래도 여기 바로 옆에는 수선화가 쫙 피어 있는데......"
그러고 보니 우리가 집합한 장소 바로 옆 텃밭에는 수선화가 보기 좋게 가꾸어져 있었고,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작년에 왔을 때는 이것이 '수선화다. 아니다. 붓꽃이다.' 심지어 '튤립이다. 아니다.'로 논쟁을 했던 그 꽃이었다.
"나르시즘이라고 하면 수선화의 꽃말 말입니까? 자기가 자기 외모에 반해서 호수에 빠져 죽었다는 그 전설 얘기......"
"그래요. 그 얘기 맞아요."
옆에 있는 여러 단우님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평소에 난 남들이 보는 앞에서 노골적으로 항상 내 자신에 대해 '잘생겼다. 멋있다. 이 정도의 나이에 이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는 사람 있겠나?' 등등 자기 최면을 걸면서 살아왔다.
어떠하든 자기비하나 메조키즘보다는 백배 낫지 않겠는가만은.
그런 나의 행동을 이미 알고 있는 단우님들이 김성수 단우님의 멘트에 웃음을 터뜨린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 순간 난 위에 적어 놓은 <연금술사>의 첫 페이지 얘기가 퍼뜩 생각났던 것이다.
나르키소스도 자기한테 도취되어 있고, 호수도 자기한테 도취되어 있었는데, 한쪽이 없어졌으니 진정 자기의 모습을 볼 수가 없고, 그래서 상대의 소중함을 뒤늦게 깨닫고는 슬퍼한다는 얘기 말이다.
그래서 <연금술사>라는 책에도 그 글귀 마지막에 '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다.' 라고 적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짧은 글귀가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연금술사>를 읽을 지 2년이 지났는데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가 순식간에 기억이 살아난 것이었다.
그랬다.
난 지금까지 나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기도 했지만, 우리 아이와 벗씨를 포함한 가족, 회사 동료들, 그리고 흥사단의 선후배 단우님들과 학교 동창 등 지인들께도 비추며, 내 잘났다는 최면을 걸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잘 생겼다. 나는 좋은 사람이다. 나는 친절하다. 나는 잘 웃는다. 나는 사심이 없다. 고로 멋진욱이다. 헤헤.'
뭐 이런 최면을 스스로에게 걸면서 실제로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고, 또 실제로 그런지 반성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
그러한 거울에 비추어진 나의 모습에 대해 나 혼자 해석하고 살아왔으니 또 다른 호수라는 거울에서 본 실제는 알 수가 없다.
호수는 호수 대로 살아오고, 나르키소스는 나르키소스 대로 살아왔듯이 말이다.
이젠 <연금술사>라도 읽었으니 호수와 나르키소스가 서로가 거울이라는 사실만이라도 깨닫고 살아야겠다.
2007년 4월 20일
멋진욱 김지욱 서.
첫댓글 '나르키소스 = 수선화 = 멋진욱 = 나르시즘' 요렇다는 말씀이지요? ^^ ㅎㅎ 나르시즘 그 참 좋은거네요.
비슬산에서 본 수선화 너무 많아서 오히려 덜 신선해 보였던 기억이...나만 그랬는지.....다른 사람 생각은....
장가계는 잘 다녀왔슴둥??? 내 안부쪼매 전하재??? 사진의 수선화는 꽃의 바탕색깔이 흰색이라 덜 예쁜데, 바탕이 노랑색이고 속의 색상이 짙은 황금색의 수선화가 훨씬 더 예쁘걸랑요. 다음에 기회 닿으면 보시시요.
나르키소스의 눈을 통해 본 호수의 자아도취라... 결국은 상대방이 있음으로 해서 자뻑(자신도 뻑~가게 아름답다)으로 살아갈 수 있는거군요.
식당홀 단지뚜껑을 수반삼아 물에 동동 띄워둔 큰 수선화잎이 한결 다른느낌을주데요. 물에 뜬 수선화잎=나르키소스 . 식당주인은 혹 그뜻을 알고 물에 띄웠을까?